*8월 4째주 - 제1부 프롤로그 & 제1편 운명*
의문. 사람 여자는 왜 번식기가 없을까?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동물들의 암컷은 번식기와 불임기가 있다고 하는데, 수유를 할 때만 젖이 형성되고 아닐 땐 들어간다는데. 십 대때부터 이루어지는 2차성징의 결과를, 매달 피를 여러날 흘리고 거의 쓸모없는 가슴을, 어째서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50이 넘을 때까지 가임기를 유지하는가? 그러고 보면 지금껏 월경을 귀찮아 죽겠다 그만 했음 좋겠다고만 생각했지, 여자에게 가슴이 달린 것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지, 왜 평생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월경을 하고 가슴을 달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가슴 이야기가 나와서 열이 올라 말하던 중에 젖 먹일 때만 쓱 나왔다가 끊을 때 쓱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냐고, 왜 죽을 때까지 허리에 무리가 가도록 달고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내뱉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여자는 자신보다는 오히려 난자의 요구에 적응하도록 되어 있다.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여자에게 있어 그 신체는, 자기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자기와 관계 없는 일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앵글로색슨 계통의 사람들은 월경을 '저주'라고 부른다. 사실 월경주기에는 조금도 개인적인 목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사람들은, 매달 흘러나오는 피는 수태했을 경우 어린아이의 피와 살에 충당된다고 믿었다. 이 낡은 학설의 진실성은 여자가 부단히 수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등 포유동물에서 이 발정주기는 특정한 철에만 시작되고, 피의 유출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이 매달 고통과 출혈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물은 오로지 원숭이 같은 고등동물이나 여자뿐이다." (p.58)
몽둥이와 맹수의 시대, 즉 자연의 저항이 강력하고 도구가 초보적이던 시대에 이 체력적 우월성은 지극히 중요했음에 틀림없다. 당시 여자가 아무리 건장하더라도, 적의에 찬 세게에 대항하는 가운데 출산에 예속되는 것은 여자에게 무서운 장해였다. 아마존 여자들은 자기의 유방을 잘라냈다고 한다. 이것은 전사로서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가 되길 거부했다는 뜻이다. (p.92)
(슬쩍 들쳐본 다음주 분량 '제2편 역사' 앞부분에 아마존 여자들이 유방을 잘라냈다는 말이 나와서 덧붙여 본다.)
책의 가장 첫부분 운명, 편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길래 여자의 몸은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 얼마나 살아남기 열악한 환경이었길래 가임기를 몇십 년이나 유지하도록 만들어졌을까. 피임 상담을 하기 위해 간 산부인과에서 이제 월경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어이 없어하며 코웃음을 치던 의사가 생각난다. 정관 수술도 하는데 월경 그만 하게 할 수는 없나. 임신을 피하기 위해 언제까지 여자가 몸에 약과 도구들을 집어넣어야 하나.
가슴 관련 예전에 읽은 책을 한 권 소개한다.
플로렌스 윌리엄스의 <가슴 이야기>. 전에도 언급한 적 있는데, 추천글들이 가관이긴 하다.ㅠㅠ 여성의 가슴이 성적 대상화된 신체로 여겨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떻게 여자의 가슴이 '섹시' 그 자체가 되었는지가 이 책에 나온다.) 그 글들을 읽다 보니 어 이 책이 좋은 책은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젖가슴에 대해 이렇게 깊이 연구한 결과물이 '거룩하고 섹시한 젖가슴' 운운할 일은 아니지 말이다. 아직도 여자의 가슴이 남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현대 여성들의 젖가슴과 관련한 질병, 환경 등의 문제에 살짝 치우치기는 하지만 여성의 가슴에 대한 연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가슴 관련 읽은 책이 이것밖에 없다. 여성의 가슴에 대한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 바람. '유방'으로 검색하면 유방암이나 중국의 유방 밖에 안 나온다.)
+ 이웃님이 한 권 찾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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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평소보다 민감해져서, 신경질적이 되고 쉽게 흥분하여 심한 정신장애까지 일으키는 수도 있다. 이때는 여자가 자기 몸을 쇠외된 불투명한 이물처럼 느끼고 가장 고통을 받는 시기이다. 여자는 자기 체내에서 매달 요람을 만들었다가 부수는, 집요하고 인연 없는 생명의 희생물이다. 달마다 한 어린애를 낳을 준비를 하고 빨간 주름의 붕괴 속에서 유산을 한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바로 그 육체는 자기의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육체는 그녀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다." (p.59)
1949년이라는 출판연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1장의 과학적 연구의 결과들은 아마도 몇십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수정된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과학 연구의 결과물조차도 완전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은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자들이 매달 겪는 월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월경과 여자의 '히스테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심한 정신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보부아르가 이 글을 쓴 시대를 감안하여 책을 읽어야 하겠다.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도 변화한다. 로빈 스타인 델루카는 그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에서 '생리증후군 신화'가 어떻게 여성들을 내면화시키고 삶을 옥죄는지를 말한다.
"생리증후군 신화는 무수히 많은 맥락과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든 깎아내리고, 평가 절하하고, 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화가 나 있거나 공격적이거나 적극적인 여성은 생리 중일 거라 생각하는 것조차 그 여성의 발언에 '못 믿을 여자'라는 커다랗고 새빨간 딱지를 붙이는 셈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강화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여성이 우리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생리 때문'이라는 생리 책임 전가는 입 밖으로 내건 안 내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상대의 힘을 빼앗는 수단으로 오늘날 남녀 모두가 휘두르고 있다. 생리증후군 신화의 어마어마한 저력(실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들이 '교활하고', '타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억지를 부리는' 존재라는 문화적 확인이다." (p.110) - <호르몬의 거짓말>
그리고 아래 책을 야무지게 8월에 읽을 계획을 세웠으나 못 읽고 말았다. 읽었다면 아주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다. 9월에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의 성기(& 월경)에 대한 책도 한 권 소개한다.
리브 스트룀키스트, <이브 프로젝트>. 그림만화 책이고 쇼킹한 내용이 많으니 분노할 준비를 하고 읽길.
"우리에게 있어서 여자는 가치의 세계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인간이다. 그래서 이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p.82)
공부가 필요하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머리가 아프지만 책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임신을 아주 간단하게 '노동'이나 군복무 같은 '의무'와 동일시하기는 불가능하다. 여자에게 아기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민의 직업을 규제하는 것보다도 더 여자의 사생활을 깊숙이 침범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어떤 국가도 여자에게 제도적으로 성교를 강요한 적은 없다." (p.88)
지금, 국가의 '사생활 침해'는 벌써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일 아닌가. 극도의 저출산율 숫자 앞에 사회와 국가는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혼과 출산을 권유(강요)한다. 당장 TV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라. 온통 짝짓기와 연애와 결혼, 심지어 재혼까지 대놓고 성사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까. 지자체 내에서도 '짝짓기'를 위해 황당무계한 기획들이 나온다고 한다. 사회가 여자와 남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들의 짝짓기를 훔쳐보며 즐거워하고 부러워하는 세상이다. 그 달콤함(?) 뒤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으면서.
"남자들이 여자의 신화에서 이끌어 낸 이익을 단념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자기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여자를 단념함으로써 잃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여자가 자기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자신을 유일한 절대적 '주체'로 주장하기를 단념하자면 많은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게다가 대다수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도 않다. 또 여성이 열등하다고 감히 '결정짓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 남자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에 철저히 고취되어 모든 인류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여자는 나이가 어떻든 성인 남자와 동등한 사회적 권위를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이윽고 한 남자는 욕망과 사랑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한여자의 저항과 독립을 경험한다. 결혼하면 남자는 상대 여자를 아내와 어머니로서 존중하게 되고, 여자는 부부생활의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남자와 맞서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신을 확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남자는 양성 사이에 사회적 서열 같은 것은 없으며 대체로 차이는 있어도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서 약간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 가장 중요한 점은 직업적인 무능력이다 - 이것을 자연의 탓으로 돌린다.
남자가 여자에게 협력하는 친절한 태도를 보일 때, 그는 추상적인 평등원리를 내세우고 자기가 확인한 부족함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와 불화 상태에 들어가면 곧 사태는 역전된다. 그는 그 부족한 면을 끄집어내 이론화하여, 추상적인 평등마저 부인하려고 그것을 방패로 삼는다.
이처럼 많은 남자들은 별 악의 없이, 여자가 남자와 평등하니까 여자는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없으리라 단정하면서, ‘동시에' 여자는 결코 남자와 동등할 수 없으니 여자들의 요구는 헛된 것이라고 단정한다. 여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대우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문제가 남자에겐 어렵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사회적 차별이 그리 대단치 않은 것 같으나, 그 정신적·지적 영향이 여자에게는 매우 크다. 그래서 마치 천성적으로 그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자에게 가장 동정적인 남자도 좀처럼 여자의 구체적인 처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그 한계를 헤아릴 수 없는 자기들의 특권을 방어하려고 애쓸 때, 그들의 말을 믿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공격과 횡포에 가만히 앉아 위협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참다운 여자에게 보내는 타산적인 찬사에 그냥 속아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며, 여자의 운명을 함께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 운명에 감탄을 보내는 그런 남자들의 수작에 얌전히 말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p.29~30 프롤로그)
<제 2의 성>이 나온 지 70년 이상이 흘렀다. 분명 이 책은 구닥다리 내용이라고 비판받아야 할 시점인데, 여전히, 아직도, 현실과 똑 들어맞는 말들이 섬찟하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통탄한다. '한계를 헤아릴 수 없는 자기들의 특권', 내가 무슨 특권을 갖고 있다고 그래, 에 맞서서 스스로 인식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수작에 얌전히 말려들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