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째주 - 제1부 프롤로그 & 제1편 운명*


의문. 사람 여자는 왜 번식기가 없을까?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동물들의 암컷은 번식기와 불임기가 있다고 하는데, 수유를 할 때만 젖이 형성되고 아닐 땐 들어간다는데. 십 대때부터 이루어지는 2차성징의 결과를, 매달 피를 여러날 흘리고 거의 쓸모없는 가슴을, 어째서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50이 넘을 때까지 가임기를 유지하는가? 그러고 보면 지금껏 월경을 귀찮아 죽겠다 그만 했음 좋겠다고만 생각했지, 여자에게 가슴이 달린 것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지, 왜 평생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월경을 하고 가슴을 달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가슴 이야기가 나와서 열이 올라 말하던 중에 젖 먹일 때만 쓱 나왔다가 끊을 때 쓱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냐고, 왜 죽을 때까지 허리에 무리가 가도록 달고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내뱉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여자는 자신보다는 오히려 난자의 요구에 적응하도록 되어 있다.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여자에게 있어 그 신체는, 자기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자기와 관계 없는 일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앵글로색슨 계통의 사람들은 월경을 '저주'라고 부른다. 사실 월경주기에는 조금도 개인적인 목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사람들은, 매달 흘러나오는 피는 수태했을 경우 어린아이의 피와 살에 충당된다고 믿었다. 이 낡은 학설의 진실성은 여자가 부단히 수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등 포유동물에서 이 발정주기는 특정한 철에만 시작되고, 피의 유출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이 매달 고통과 출혈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물은 오로지 원숭이 같은 고등동물이나 여자뿐이다." (p.58)


몽둥이와 맹수의 시대, 즉 자연의 저항이 강력하고 도구가 초보적이던 시대에 이 체력적 우월성은 지극히 중요했음에 틀림없다. 당시 여자가 아무리 건장하더라도, 적의에 찬 세게에 대항하는 가운데 출산에 예속되는 것은 여자에게 무서운 장해였다. 아마존 여자들은 자기의 유방을 잘라냈다고 한다. 이것은 전사로서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가 되길 거부했다는 뜻이다. (p.92)


(슬쩍 들쳐본 다음주 분량 '제2편 역사' 앞부분에 아마존 여자들이 유방을 잘라냈다는 말이 나와서 덧붙여 본다.)

책의 가장 첫부분 운명, 편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길래 여자의 몸은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 얼마나 살아남기 열악한 환경이었길래 가임기를 몇십 년이나 유지하도록 만들어졌을까. 피임 상담을 하기 위해 간 산부인과에서 이제 월경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어이 없어하며 코웃음을 치던 의사가 생각난다. 정관 수술도 하는데 월경 그만 하게 할 수는 없나. 임신을 피하기 위해 언제까지 여자가 몸에 약과 도구들을 집어넣어야 하나.


가슴 관련 예전에 읽은 책을 한 권 소개한다.














플로렌스 윌리엄스의 <가슴 이야기>. 전에도 언급한 적 있는데, 추천글들이 가관이긴 하다.ㅠㅠ 여성의 가슴이 성적 대상화된 신체로 여겨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떻게 여자의 가슴이 '섹시' 그 자체가 되었는지가 이 책에 나온다.) 그 글들을 읽다 보니 어 이 책이 좋은 책은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젖가슴에 대해 이렇게 깊이 연구한 결과물이 '거룩하고 섹시한 젖가슴' 운운할 일은 아니지 말이다. 아직도 여자의 가슴이 남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현대 여성들의 젖가슴과 관련한 질병, 환경 등의 문제에 살짝 치우치기는 하지만 여성의 가슴에 대한 연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가슴 관련 읽은 책이 이것밖에 없다. 여성의 가슴에 대한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 바람. '유방'으로 검색하면 유방암이나 중국의 유방 밖에 안 나온다.)


+ 이웃님이 한 권 찾아주셨다. 














***




"여자는 평소보다 민감해져서, 신경질적이 되고 쉽게 흥분하여 심한 정신장애까지 일으키는 수도 있다. 이때는 여자가 자기 몸을 쇠외된 불투명한 이물처럼 느끼고 가장 고통을 받는 시기이다. 여자는 자기 체내에서 매달 요람을 만들었다가 부수는, 집요하고 인연 없는 생명의 희생물이다. 달마다 한 어린애를 낳을 준비를 하고 빨간 주름의 붕괴 속에서 유산을 한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바로 그 육체는 자기의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육체는 그녀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다." (p.59)


1949년이라는 출판연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1장의 과학적 연구의 결과들은 아마도 몇십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수정된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과학 연구의 결과물조차도 완전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은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자들이 매달 겪는 월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월경과 여자의 '히스테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심한 정신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보부아르가 이 글을 쓴 시대를 감안하여 책을 읽어야 하겠다.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도 변화한다. 로빈 스타인 델루카는 그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에서 '생리증후군 신화'가 어떻게 여성들을 내면화시키고 삶을 옥죄는지를 말한다.


"생리증후군 신화는 무수히 많은 맥락과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든 깎아내리고, 평가 절하하고, 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화가 나 있거나 공격적이거나 적극적인 여성은 생리 중일 거라 생각하는 것조차 그 여성의 발언에 '못 믿을 여자'라는 커다랗고 새빨간 딱지를 붙이는 셈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강화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여성이 우리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생리 때문'이라는 생리 책임 전가는 입 밖으로 내건 안 내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상대의 힘을 빼앗는 수단으로 오늘날 남녀 모두가 휘두르고 있다. 생리증후군 신화의 어마어마한 저력(실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들이 '교활하고', '타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억지를 부리는' 존재라는 문화적 확인이다." (p.110) - <호르몬의 거짓말> 




그리고 아래 책을 야무지게 8월에 읽을 계획을 세웠으나 못 읽고 말았다. 읽었다면 아주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다. 9월에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의 성기(& 월경)에 대한 책도 한 권 소개한다.













리브 스트룀키스트, <이브 프로젝트>. 그림만화 책이고 쇼킹한 내용이 많으니 분노할 준비를 하고 읽길.




"우리에게 있어서 여자는 가치의 세계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인간이다. 그래서 이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p.82)


공부가 필요하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머리가 아프지만 책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임신을 아주 간단하게 '노동'이나 군복무 같은 '의무'와 동일시하기는 불가능하다. 여자에게 아기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민의 직업을 규제하는 것보다도 더 여자의 사생활을 깊숙이 침범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어떤 국가도 여자에게 제도적으로 성교를 강요한 적은 없다." (p.88)


지금, 국가의 '사생활 침해'는 벌써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일 아닌가. 극도의 저출산율 숫자 앞에 사회와 국가는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혼과 출산을 권유(강요)한다. 당장 TV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라. 온통 짝짓기와 연애와 결혼, 심지어 재혼까지 대놓고 성사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까. 지자체 내에서도 '짝짓기'를 위해 황당무계한 기획들이 나온다고 한다. 사회가 여자와 남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들의 짝짓기를 훔쳐보며 즐거워하고 부러워하는 세상이다. 그 달콤함(?) 뒤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으면서.



"남자들이 여자의 신화에서 이끌어 낸 이익을 단념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자기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여자를 단념함으로써 잃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여자가 자기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자신을 유일한 절대적 '주체'로 주장하기를 단념하자면 많은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게다가 대다수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도 않다. 또 여성이 열등하다고 감히 '결정짓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 남자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에 철저히 고취되어 모든 인류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여자는 나이가 어떻든 성인 남자와 동등한 사회적 권위를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이윽고 한 남자는 욕망과 사랑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한여자의 저항과 독립을 경험한다. 결혼하면 남자는 상대 여자를 아내와 어머니로서 존중하게 되고, 여자는 부부생활의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남자와 맞서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신을 확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남자는 양성 사이에 사회적 서열 같은 것은 없으며 대체로 차이는 있어도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서 약간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 가장 중요한 점은 직업적인 무능력이다 - 이것을 자연의 탓으로 돌린다.

남자가 여자에게 협력하는 친절한 태도를 보일 때, 그는 추상적인 평등원리를 내세우고 자기가 확인한 부족함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와 불화 상태에 들어가면 곧 사태는 역전된다. 그는 그 부족한 면을 끄집어내 이론화하여, 추상적인 평등마저 부인하려고 그것을 방패로 삼는다.

이처럼 많은 남자들은 별 악의 없이, 여자가 남자와 평등하니까 여자는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없으리라 단정하면서, ‘동시에' 여자는 결코 남자와 동등할 수 없으니 여자들의 요구는 헛된 것이라고 단정한다. 여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대우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문제가 남자에겐 어렵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사회적 차별이 그리 대단치 않은 것 같으나, 그 정신적·지적 영향이 여자에게는 매우 크다. 그래서 마치 천성적으로 그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자에게 가장 동정적인 남자도 좀처럼 여자의 구체적인 처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그 한계를 헤아릴 수 없는 자기들의 특권을 방어하려고 애쓸 때, 그들의 말을 믿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공격과 횡포에 가만히 앉아 위협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참다운 여자에게 보내는 타산적인 찬사에 그냥 속아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며, 여자의 운명을 함께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 운명에 감탄을 보내는 그런 남자들의 수작에 얌전히 말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p.29~30 프롤로그)


<제 2의 성>이 나온 지 70년 이상이 흘렀다. 분명 이 책은 구닥다리 내용이라고 비판받아야 할 시점인데, 여전히, 아직도, 현실과 똑 들어맞는 말들이 섬찟하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통탄한다. '한계를 헤아릴 수 없는 자기들의 특권', 내가 무슨 특권을 갖고 있다고 그래, 에 맞서서 스스로 인식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수작에 얌전히 말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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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30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러니까 대출해서 읽은 책들이라 그런 건 아니다. 내키는 대로 누르는 손꾸락이 문제다. 읽을 책들을 쌓아놓고도 대출하시겠습니까,에 넘어가는 건 정말 무슨 심리냐.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절반 가까이 읽다가 말았고 반납일이 되었다. 왜 문장들이 와닿지 않는지? 3개 정도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1개만 풀어놓은 느낌.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겁내거나. 혹시 뒷부분이 더 좋으려나? 


















이정연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편견 따위 버리라고! 저자를 응원하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밑줄 그은 부분은 없다. 간간이 운동 팁 나오는 건 유용. 운동하자 운동. 


















엘리 <연애하지 않을 권리> 

내용이 제목을 따라가지 못하는 예,라고 하면 너무 혹평인가. 끝까지 읽기는 했으나 며칠 지나니 인상마저 흐릿해져버렸다. 어떤 인상이었는지 기억을 되살리려면 다시 대출해야 하는데. 과연. 
















정무늬 <웹소설 써서 먹고삽니다> 

지난달 100자평 대회의 책 목록에 있던 거라 줄 서서 기다렸는데 대회가 끝나고 대출이 되는 바람에. 어영부영 읽어보기로 하고 쓰윽 앞부분을 훑었으나. 이걸 계속 읽어 말어 하는 와중에 그만 반납일이 되었고 자동반납이 되었고 그리고 그냥 잊어버렸고. 뒷부분은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게 어떤 내용이어서 보고 싶었는지 까묵. 정말 심심할 때 다시 빌려볼까말까. 

















오헬리엉 루베르, 윤여진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프랑스 사람이 쓴 프랑스는 어떨까, 궁금한데 대강 짐작은 된다, 이러면서 읽었음. 짐작이 얼추 맞았음.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한국은 손님이 왕인데 프랑스는 직원이 왕이라는, 완전 맞는 말인 그것이었다. 하하. (정확한 문장은 아님. 이런 의미였음. 반납돼서 찾아볼 수 없음.) 책 내용에 대체로 동감하고 때때로 읭? 했다.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차이가 없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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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하신 분 계시고 페이퍼도 올라오는데 오늘 벌써 21일이고. 뭐라도 끄적여야 하겠다는 압박감에 뭐라도 끄적인다. 

<제인 에어>는 언제 읽었는지 생각 안 날 정도로 오래전에, 아마도 중고등학교시절? 내 인생 암흑기에 읽은 책들이라 그런지 날아간 기억 속에 들어있나 보다. <오만과 편견> 역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에 없던 와중에 몇 년 전 다시 읽었고 심지어 작년인가에 또 읽었는데 말이다. 그 밖에 이 책에서 언급되는 소설들은 못 읽었다. <파멜라>는 다른 책에서 봐서 제목 익숙. <폭풍의 언덕>도 마찬가지. 언급된 소설들을 모두 다 읽었더라면 내용이 더 흥미진진했을 것인가 생각했다.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안 읽었다는 부담 없이 책을 접하고 있다. 접하고 있다는 표현이 매우 적절해보이는 것은 모두 다 아시는 것처럼 글자들이 잘 해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었다는 부담은 없지만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부담감은 또 엄청나서. 안 그래도 요즘 소설 너는 무엇, 아리송까리송해서 읽기가 힘든데 <소설의 정치사> 때문에 완전 더 아리송까리송해질 것 같아. 막연히 소설 쓰고 싶다는 '로망'을 갖고 있었는데 이젠 소설 못 쓸 것 같아. 너무 어려워. 정말 소설가로 태어나는 것인가? 싶을 정도. 

그래도 나름 플래그스티커 붙여가며 330페이지를 돌파하고 있다. 오늘은 뜬금없는 구절들만 몇 개 가져와보기로. 




"근대적 개인의 창조는 다른 무엇보다 특정 형태의 정치적 무의식을 요구했다." (p.75) 


가끔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눈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있다. 여기서는 "정치적 무의식".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올 구절이 아닌가. 한없이 많은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들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ㅠㅠ 




"여자 가정교사가 젠더 개념이 개대고 있는 구분을 흐렸던 것은 바로 돈을 벌기 위해 가정여성의 의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여자 가정교사는 가정적 의무와 돈벌이용 노동을 나누는 절대적으로 엄격한 구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구분은 대중의 마음에 너무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여성을 묘사할 때면 그가 누구이든 매춘부의 형상이 자유롭게 환기될 지경이었다." (p.161)


"가정적 의무와 돈벌이용 노동". 싸움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결론이 나지 않는, 아직 이길 수 없는, 골머리 아픈 주제. 나를 납득시킬 만한 논리가 세워지지 않은 건지? "감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여성". "매춘부의 형상". 열 받고. "감히" 논리는 여전히 활발한 유통을 보이는 것인지라. '순결한 처자'와 '매춘부' 논리 역시. 화가 난다아. (저기요, 락방님, 성착취 도서는 언제 읽나요?) 




"주체를 여성화하는 기획" (p.212) 


말이 필요없지. 화가 나지. 




"이 아둔한 남자가 쓴 시에서 성적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권력에서 분리되지 못했으며..." (p.295) 


"성적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권력에서 분리되지 못했"다. 성적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있나? 사랑이 되어야 하나? 성적 욕망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나? 왜 사랑에 '빠지면' 손 잡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막 더 나가고 싶고 그런 걸까? 사랑하면 섹스하는 게 '정상'인가? 정말 그게 그런 걸까? 당연한 걸까? 그래야 한다고 세뇌된 건 아닌가? 뭐 이런 지껄임. 





아마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집에 있는 <오만과 편견>부터 다시 읽어보겠지. 다시 읽어도 이전의 읽음과 크게 달라지는 느낌이 없다면, 별 생각이 없다면, 나는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상품 넣기 하려고 책 제목을 쳤더니 이런 책이 함께 뜬다.














제목도 "정치적 무의식"이야! 궁금하군.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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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8-21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난티나무님도 많이 나가셨네요. 아 저도 내일은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난티나무 2021-08-21 20:29   좋아요 1 | URL
어려운데 꾸역꾸역...ㅎㅎㅎㅎ 그래도 다행히(?) 중간중간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아요.^^

수이 2021-08-2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반에 미친듯 읽고 제인 에어도 읽기 시작하고 그랬다가 중반부 엠마 즈음에 다다라 아 음 헴 하다가 브론테 자매 이야기,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언니 나오면서 다시 막 달렸어요. 소설이 이토록 대단한가, 그렇단 말인가. 뭐 이런 거 읽는 동안 강하게 느꼈어요. 별 거 없는 소녀 소설, 결혼을 찬미하는 그런 제인 오스틴_ 이라고 오독한 제가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언급하신 책도 꽤 난이도가 상당해보여요.

난티나무 2021-08-21 20:31   좋아요 1 | URL
진짜 대단하죠? 앞으로 소설 어떻게 읽지 싶어요. 작가들도 골머리 앓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거 다 모르고도 소설 쓰는 사람도 많겠구나 싶기도 하고요.ㅎㅎㅎㅎ 새삼 언어의 힘에 대해 생각 많이 하게 하는 책이네요.^^

다락방 2021-08-21 20:44   좋아요 1 | URL
저 아직 읽으려면 멀었지만 여러분. 나는 예전부터 소설 읽으라고 소설 찬양했던 사람이에요. 알아줘요! (엉엉운다)

난티나무 2021-08-21 20:50   좋아요 0 | URL
울지 마요. 알고 있어요.ㅎㅎ (토닥인다)

수이 2021-08-21 20:52   좋아요 1 | URL
소설하면 다락방님 저절로 떠오르죠. 전공자인 줄 알았다니까요. 진짜루!!

다락방 2021-08-21 21:17   좋아요 1 | URL
아오 이 다정한 분들 😭
 













우에노 지즈코, <불혹의 페미니즘> 


'불혹'을 글자 그대로의 '불혹'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중의 의미로 독자들을 낚은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일본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일본의 40년 페미니즘 역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과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좀 버거웠다. 처음 읽은 우에노 지즈코의 책이라, <나의 행복한 페미니즘 공부법>에서 묘사되는 지즈코 선생님의 날카롭고 속시원한 문장들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앞부분 밑줄 긋고 나서 뒷부분에는 옮겨놓고 싶은 구절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구절들은 속 시원하지 않나? 




"정론은 시시하다. 말해봤자 소득 없이 끝나기 때문이다. 성차별은 악이다. 매춘은 나쁘다. 그렇다. 그래서, 뭐? 

정론을 아무리 떠들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정론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고, 정론으로 인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론대로만 된다면 세상에 힘들 게 없을 것이다. 정론이 시시한 까닭은, 정론으로 왜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와 오만함에 있다. " (전자책 8% 지점) 


"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됐습니다, 당신들 앞에는 여성해방에 앞서 자기해방이라는 큰 과제가 놓여있습니다. 부지런히 '맨리브'부터 하십시오"라고 대답해왔다. " (전자책 29% 지점) 




('자기해방'. 진심 와닿는 단어였다. 남성의 자기해방. 부디.)


일본에서의 페미니즘 운동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엿보면서 우리 나라 페미니즘 운동과 역사 이야기를 역시나 잘 모르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괜찮다. 이것저것 읽다 보면 길들이 만나 합쳐질 것이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불혹의 페미니즘>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읽겠냐고 묻는다면, 절레절레.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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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1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고 들어서. 일본의 페미니즘이라..왠지 우리나라보다 뒤쳐져 있을것 같아요.🙄 우리는 일단 정희진언니가 있어서 막 든든하고요~ㅎㅎ♡

난티나무 2021-08-12 00:48   좋아요 1 | URL
책에도 슬쩍 그런 이야기 나오긴 해요. 한국이 부럽다고(페미니즘). 근데 제 생각엔 도긴개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잘 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임요.ㅎㅎㅎ

단발머리 2021-08-12 0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앞쪽 읽다가 반납했는데 다시 찾아 읽으려고 해요. 전자책 8퍼센트 그 문단, 저도 밑줄긋기했었거든요.
일본의 상황이 우리보다 더 열악하다고 느낍니다. 미투 운동 시작한 여성이 아주 탈탈 털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환경에서 페미니즘 교육과 실천을 지속해왔던 우에노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난티나무 2021-08-12 00:50   좋아요 0 | URL
절반 넘어가면서부터는 슬렁슬렁 읽었어요. ㅠㅠ 우에노님 대단하신 것 동의하고요. 멋져!
우리보다 더 열악하다면 아아 상상도 하기 싫어집니다요…

유수 2021-08-1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기 시작하시면 저도 알려주세요. 같이 시작하고 파요

난티나무 2021-08-12 15:25   좋아요 1 | URL
저도 여쭈어보려고 했어요.^^ 저 아직 책 받기 전 ㅠㅠ 유수님 같이 읽어요~^^

2021-08-12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2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2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2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혹의 페미니즘> 밑줄 1

커뮤니케이션은 자원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여자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이상 실현? 가치 창조? 여자는 이데올로기나 이념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나 이념에 약한 지식인을 제외하면, 여자나 대중은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생활 외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내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를 표현하고 싶다, 이런 것들이 당사자에게는 가장 절실한 욕구다.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타자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재미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란 모든 자원을 소진한 뒤에 남는 최후의 자원이다. 자원은 쓰면 없어지지만 이 자원은 고갈되지 않는다. 다른 자원이 대 손에서 빠져나가도 이 자원만은 남는다.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가장 재

미있는 자원이다. 이 ‘관계‘라는 자원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여자의 운동이 아니었을까.
다만 ‘관계‘를 만드는 능력은 개인차가 두드러진다. 이 차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벌어진다. 돈도 시간도 체력도 의지가 되지 않는 인생의 가을에, 마지막까지 힘이 되는 것은 ‘관계‘라는 자원이다. ‘관계‘는 노후의 여유 자산이다. 그것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로 당신의 삶의 방식이 부정될지도 모른다고 하면 지나칠까.
단 ‘관계‘를 만드는 능력은 학습이 가능하다. 배움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여자들은 고립된 곳에서 어렵게 벗어나 이 ‘관계‘라는 자원만들기를 운동 안에서 서로 배웠다. 여자의 운동이 지닌 성장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까.

소노 씨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엘리트주의일 것이다. ‘정말로 실력 있는 여성들은 묵묵히 일해왔다‘ 라는 말에서, 자신은 실력이 있어서 발휘해왔다,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당신은 결국 쓸모없는 인간이다, 라는 본심이 드러난다. 이것은 여타 엘리트 여성에게서도 많이 보이는 사고방식이다. 엘리트 여성은 프라이드가 매우 높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를 공통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 그녀들은 강자의 논리를 몸에 익히고,
약자에 대한 상상력을 잃고 만다. 엘리트 여성의 엘리트주의는 골치아프다, 라고 자숙의 마음을 담아 말해둔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의 운동이다. 여성에게 이미 ‘실력‘이 있다면 이런 운동은 필요 없다. 나는 객관적으로는 엘리트 여성이지만(어쨌거나 대학 조교수이니까), 자신이 혜택 받은 특권적 소수파 안에 있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다. 내가 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다름 아닌 슈퍼우먼 신드롬이다. 엘리트 여성과 엘리트주의자는 다르다. 자신의 처지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상상력을 잃었을 때, 엘리트 여성은 엘리트주의자가 된다.

역사의 변화는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에게 불균등하게 찾아온다. 변화의 예고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여자와 아이다. 이유는그들이 사회의 주변부에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성(城)‘ 안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남자들은 발밑까지 밀어닥친 변화의 물결을 알아채지 못한다. 여자가 바뀐 것은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바뀐 것이다. 이제 이런 것은 할 수 없다고 여자들은 저마다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는 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자가 가만히 있었던 지금까지는, 하지만 남자들도 이제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여자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은 남자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것이다. 부부의 상황을 떠올려보라. 신혼 때는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했던

아내가, 20년이 지나자 자립을 원하고, 30년이 된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한다. "내가 뭘 잘못했어?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변해버린 건 당신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변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혼 서류를 받은 그날 아침까지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당신의 그 둔감함이 문제인 것이다.

페미니즘이 ‘발명한 여러 표현 가운데 최대 히트작은 ‘무임금 노동‘이다. 가사도 노동이다, 심지어 돈도 못 받고 하는 부당한 노동이다, 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부부 싸움에서 아내를 침묵하게 만드는 남편의 필살기,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라는 공격에도 반박할 말이생긴다.
"당신이야말로 누구 덕분에 매일 편하게 출근하는데? 나도 온종일 쉬지도 못하고 일한다고."
남편은 더 격분해서 말할 것이다.
"당신이 하는 일은 돈이 안 되잖아. 그런 건 일이라고 할 수 없지."
그럴 때는 이렇게 되받아쳐주자.
"당신이 하는 일이 돈이 되는 건, 남자라는 허울 때문이야. 결코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고."
페미니즘은 여성을 이론으로 무장시켰기 때문에 이런 아내를 둔 남편은 쉽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부부 사이는 확실히 나빠진다(하하). 아내의 수인한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까지는 ‘나 하나만 참으면 하는 아내의 포기와 인내로 부부 사이가 평탄하게 유지돼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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