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제1편 형성 제3장 성 입문 & 제4장 레즈비언


5주차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자주 생각했다.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든 (아직도) 금기로 여겨져 입밖에 꺼내어놓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 뭐 이런 것. 뜨거운 건 맞나? 아무튼. 생각을 하면서 생각했다. 역시 바닥까지 솔직하기는 힘들겠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불특정다수에게 그대로 공개되어 어떻게 날아다닐지 모르는 글로는, 어렵겠다. 나는 소심쟁이다, 아직은. 옆지기와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서로에게 솔직하기도 어렵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도 아직 어려운데 말이다. 남는 것은... 허공에 뜬구름 잡는 소리거나, 보부아르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이거나. (언제쯤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듣고 의견을 나누는 날이 올까?)




"정상적인 성행위는 사실상 여성을 남성과 종()에 예속시킨다. 공격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거의 모든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성 쪽이다. 이에 반해서 여성은 남성의 포옹에 따를 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언제나 남성에게 정복될 수 있지만, 그는 페니스의 발기상태가 유지되지 않는 한 그녀를 정복할 수 없다. 처녀막 이상으로 확실하게 문을 닫는 질 경련과 같은 강한 반항만 아니라면, 여성의 거부는 극복될 수 있다. 질 경련의 경우라도 아직 남성에게는 완력에 좌우되는 육체를 상대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다. 여자는 객체이기 때문에, 그녀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 본디 역할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성이 성교를 원하는지 또는 그저 거기에 따를 뿐인지 애써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성은 죽은 여성과도 동침할 수 있다. 성교는 남성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 자연적인 결말은 남성의 만족이다. 또한 여성은 전혀 쾌감을 느끼지 못해도 임신이 된다. 게다가 임신은 그녀에겐 결코 성적 과정의 완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종()이 요구하는 봉사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임신·분만·포유(哺乳)의 과정을 통해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실현된다." 469~470


자, "정상적인 성행위"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세상에 '정상'이라고 규정지은 것들은 진정 정상인 것들인가. 우리가 그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삶의 기준, 잣대, 가치관 들이 정녕 옳은 것이었나. 그런 생각들 위에서 과연 우리의 '성행위는 정상'인가. "남성은 죽은 여성과도 동침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장에 대한 증거를 실제의 사건들에서 충분히 보고 듣는다. 충격적으로 들린다면 수많은 강간살인사건을 다시 잘 살펴보자. "성교는 남성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새롭게 내 머리를 두드린다. !!! "종이 요구하는 봉사" "그것은 ...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실현된다."





"원시문명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자에게는 침대가 '헌신'의 장소인 듯이 인식해 왔다. 남성은 선물로 또는 그녀의 부양을 책임지는 것으로 그 헌신에 대한 감사를 대신해 왔다. 그러나 헌신한다는 것은 주인을 갖는 것이며, 그 관계에는 아무런 대등성도 없다. 결혼의 구조 자체가 매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즉 여자는 '자기 몸을 주고', 남자는 그 대가를 지불한 뒤 여자를 소유한다. 남성이 여성이라는 약자를 지배하고 소유하는 일을 금하는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다." 470 


남자들은 흔히 착각하곤 한다. 여자에게 '잘하'는 것이, 아니 '잘해주'는 것이 곧 선물(혹은 돈) 공세라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선물을 하는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 가끔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옆지기의 말이 그리 반갑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알 수 없는 감정들, 기분 나쁨, 내가 벌지 않는 돈, 내가 관리하지 않는 통장... "결혼의 구조 자체가 매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 문장에 반박하지 못하겠다. 이전까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반박할 수 없다.ㅠㅠ





"남성의 섹스 용어는 군대 용어에서 유래했다. 사랑하는 남자는 병사처럼 혈기가 왕성하고, 그의 성기는 활( )처럼 팽팽하며, 사정할 때는 '발사한다'. 그것은 기관총이며 대포이다. 남성은 공격이니, 습격이니, 승리니 하는 말을 함부로 지껄인다. 그의 성적 흥분 속에는 어떤 영웅주의적 취미가 있다." 471


"여성의 욕망에 섞여 있는 혐오 속에는 단지 남성의 공격성에 대한 공포뿐만이 아니라, 깊은 실망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좀더 강조할 만하다. 여성의 육체적 기쁨은 성욕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남성의 경우에는 촉각과 시각을 통한 즐거움이 이른바 성적 쾌락과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또한 수동적인 에로티시즘 자체의 모든 요소들이 모호하다. '접촉'만큼 애매한 것은 없다." 475


이것 또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여성의 욕망에 섞여 있는 혐오". 엄청난 사회화와 세뇌. 그리고 모호함. 진짜 모호하다. 나는 모호하다. 탐구해야 할 모호함이다. 




"남자는 여자를 상대로 쾌락을 '얻고', 그것을 여자에게 '준다'. 이런 말 자체가 불평등하다." 485


옳소! '얻는다'라는 표현도 거시기하지만. 행위로 차별하고 언어로 다시 차별하다.




"정신적 저항은 쾌락의 표출을 방해한다." 495


"여자는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생각하는 남자들의 이기주의에도 시달리지만, 또한 그녀에게 쾌감을 주려는 남자들의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인 의지에도 감정을 상한다. '타인을 즐겁게 하는 것은 상대를 지배한다는 의미이며, 남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자기의 의지를 포기하는 행위이다'라고 슈테켈은 말한다." 495


"성공적인 성교에 필요한 것은, 소심하면서도 단순하고 우직한 많은 남성들이 생각하듯이 쾌락의 수학적 동시성이 아니라, 성욕의 복잡한 형태를 낳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성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시간과 기교, 즉 '격렬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남자들은 여자의 성욕이 여자의 상황 전체에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모르고 있다." 501


"여자의 성생활이 전개되는 여러 가지 조건은, 단지 이제까지 설명한 사실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회적·경제적 상황 전체에 달려 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이 이상으로 여자의 성생활을 연구하는 것은 모호한 추상적 이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검토에서 몇 가지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성적 경험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 조건의 모호성을 발견하게 하는 인생 체험의 하나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육체로서, 정신으로서, 타자로서, 주체로서 스스로를 경험한다. 이 충돌이 특히 극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여성의 경우이다. 여자는 먼저 자기를 객체로서 파악할 뿐, 처음에는 쾌락 속에서 확실한 자주성을 발견하지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육체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로운 초월자인 주체로서의 권위를 회복해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험으로 가득 찬, 종종 실패로 돌아가게 될 계획이다. 그러나 여자가 처한 상황 자체의 괴로움과 어려움이, 남자가 고지식하게 속아 넘어가는 그 속임수들로부터 그녀를 지켜 준다. 남자는 공격적인 역할과 오르가슴의 충족된 고독에 내포된 거짓 특권에 속고 있다. 여자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정한 체험을 쌓는다.

여자는 그 수동적 역할에는 다소 정확하게 적응하더라도, 능동적 개인으로서는 언제나 손해를 보고 있다. 여자가 남자를 선망하는 것은 그가 소유한 기관이 아니라 그 먹이 때문이다. 남자는 상냥하고 애정이 충만한 부드러운 감각 세계, 즉 여성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데 반하여, 여자는 거칠고 살벌한 남성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아이러니이다." 508


"여자의 성욕이 여자의 상황 전체에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모르고 있다." 옆지기와 대화할 때 누누이 말하는 바인데 이걸 남자들이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친밀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섹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듣고 해체하고 다시 맞추는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레즈비언을 '남자를 모방하려는' 그녀의 욕망 때문에 '남성'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녀를 잘못 규정짓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이 현 사회가 규정하는 그대로 남녀 성별의 구별을 받아들임으로써 얼마나 많은 모호성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사실 남자는 오늘날 '적극적'인 것과 '중성적'인 것, 즉 남성과 인간을 대표하고 있다. 한편 여자는 단지 소극적인 것, 즉 여성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여자가 인간적인 존재로서 행동할 때마다, 세상은 여자가 남성처럼 행동한다고 말한다. 여자의 스포츠·정치·지적 활동과, 다른 여자에게 갖는 여자의 욕망은 '남성적 저항'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여자가 고려하는 자기 초월적 가치들을 거부한다. 그래서 주체적인 태도를 취하는 여자는 비본질적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대한 오해는, 인간 여성은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세상이 인정한다는 데 있다. 이 여자다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성애자거나 어머니인 것으로 아직 충분치 않다. '참다운 여자'란 전에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 가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문명이 만들어 낸 인공적 산물이다. 교태와 순종 같은 이른바 여자의 '본능'은, 남자에게 남근적 자존심이 불어넣어지는 것처럼 여자에게 불어넣어진다. 남자라고 해서 반드시 남성적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여자 역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그렇게 순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충분한 까닭들이 있다." 513


'제4장 레즈비언' 부분은 따로 덧붙일 말이 없다. 513쪽 구절을 인용한다. 아직 잘 모르기도 해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더 공부가 필요하다.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점차 문제가 복잡해지는 걸 느낀다.


***

이렇게 1권 읽기가 끝났다. 2권이 기대되면서 동시에 겁난다. (라고 써놓고 오늘 화요일이라 2권 앞부분 읽는데 재미있으면서 쑥쑥 읽히면서 역시 뼈때리고 그런다. '성'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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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리뷰 쓰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뼈 때리는 글. 너무좋죠?!! 1권 클리어 수고하셨습니다ㅎㅎ👍👍

난티나무 2021-10-05 23:5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깐요! 왤케 뭘 쓰기가 어렵죠?!^^;;;;;; 뼈 아파요.ㅎㅎㅎ ㅠㅠ 😍😍😍😅😅😅

막시무스 2021-10-0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습니다! 아직 읽지않은 부분이지만 덕분에 예습 잘 했습니다! 2권도 화이팅 하십시요!ㅎ

난티나무 2021-10-06 17:46   좋아요 1 | URL
넵 막시무스님도 화이팅!!!! ㅎㅎㅎ 👏👏👏👏👏

얄라알라 2021-10-0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용어..찾아보면 더 많겠네요. 함께읽기 으쌰으쌰 응원드립니다.

난티나무 2021-10-09 01:07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북사랑님, 응원 고맙습니다~^^
 














동서문화사 2권을 시작했다. 프랑스어 원서가 있지만 읽어낼 실력이 안 되기에 한글판으로 읽으면서 아주 간혹 궁금한 문장을 찾아 비교해보곤 한다. 그런데 간혹의 그 찾기에서 좀 걸리는 번역이 눈에 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행위는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헌신‘이라고 여겨진다. 남자는 자기의 쾌락을 '받고', 그 대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여자의 육체는 파는 물건이다. 여자에게 자기 육체는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이다." 539


이 문장들에서 눈에 띈 단어는 '헌신'과 '파는'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On admet comme jadis que l‘acte amoureux est, de la part de la femme, un service qu‘elle rend à l‘homme; il prend son plaisir et il doit en échange une compensation. Le corps de la femme est un objet qui s‘achète " 


헌신의 경우, 넓은 의미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서비스와 헌신. 

"여자의 육체는 파는 물건이다"라는 문장의 원문에서 사용한 동사는 se vendre 가 아니고 s'acheter 이다. 그렇다면 '팔다'의 의미보다는 '사다' 혹은 '제공하다' '거래하다' 등의 의미가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문장의 주어가 여자가 아니고 여자의 몸이긴 하지만, 어쨌든 파는 물건,이라는 말에는 파는 행위의 주체가 여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해석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여자의 육체는 파는 물건이다"라는 문장은 남성&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문장이다. 이런 생각. 이렇게 생각하니 "남자는 자기의 쾌락을 '받고' " 도 거슬리네. 쾌락을 '취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 

을유 개정판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궁금하다. (갖고 계신 분들 안 귀찮으시면 한번 찾아봐 주세요. 2부 2편 상황 제1장 기혼 여성 앞부분입니다. 동서판 2권 539쪽.)


번역은 참 어렵다. 몇 문장이라도 우리말로 바꿔보는 일을 해보면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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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4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4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달에 읽고 페이퍼나 리뷰를 쓰지 않은, 몇 권의 책을 여기 모아본다. 


















박혜윤 <숲 속의 자본주의자> 

김선우 <40세에 은퇴하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40세에 은퇴하다>는 옆지기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 몇 개월 전에 사서 갖고 있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빌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책의 저자가 부부다. 책을 읽는데 크게 상관은 없다. 비슷한 이야기가 간혹 나오기는 한다. 

솔직함이 독자의 눈으로 찾아지는 것이라면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야 솔직하게 보여지는 걸까. 사전정보 거의 없이 읽었으나 왠지 착 달라붙는 맛이 없다. 매우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인데 나는 왜 자꾸 색안경을 장착하게 되는 건지, 그게 내 선입견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기 같은 페이퍼를 쓸 때에도 자기검열 모드가 발동하는데 책을 쓸 때는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고. 두 권을 굳이 비교하자면 <숲 속의 자본주의자>가 좀더 좋았다고 말하겠다. 삶을 대하고 생각하는 태도 같은 것.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의미있고 좋아보인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때로 부러움을 느낀다. 비슷한 삶을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에 대한 감탄이라고 해 두자. (예를 들면 집에서 인터넷 사용하지 않기.)  

에피소드를 좀더 적절히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뭔가 구체적 연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까. 하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른 글쓰기 스타일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평점을 매기지는 못할 듯하다. 아리송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읽을 만하다.



















오한기 <인간만세> 

첫 부분 읽는데 어, 낯이 익다. 좀더 읽는데 어, 이거 읽었잖아. 단편집인가 했다. <멜랑꼴리 해피엔딩>에서 읽은 단편 「상담」이 실려 있다. 슬슬 읽고 다음 편을 읽으려는데 어라? 이야기가 이어진다? 좀은 황당무계하고 가끔 웃기고 때로는 진지한, 아니 어쩌면 내내 진지함을 장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이야기. 신선했다. 소설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뒤에 실린 해설보다는 나았다. 차라리 소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겠다.ㅠ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조각조각 분석되어서 해설이 붙는 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재미있어할까, 슬퍼할까, 아무렇지도 않을까. 비꼬다. 이 단어가 떠오른다. 
















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빗소리가 들리는 일요일 오전, 결국 빗소리 따라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노래도 그림도 얼굴도, 무엇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북토크 영상으로 처음 만난 이반지하에게서 뿜어져나오던 불안과 자기방어기제 같은 뉘앙스들이 나의 편견이라 생각했었다. 절반을 읽으니 다른 사람 즉 '남'의 입장에서의 내 시각이 편견만은 아니었구나 싶다. 이거 좀 오만방자한가. 무엇으로도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존나 다양하다'.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밑줄만 올리고 글을 안 썼더니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내 뇌는 정상이다. 그래도 읽었고 좋았고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으니 이렇게 흐릿하게라도 기록을 남겨야지. 다시 읽을 때 옆지기와 함께 하면 더 좋을 듯하다. 인터넷 강연에서 만난 김현미 선생님 짱! 
















캐럴라인 냅 <욕구들> 

사야 하는 책이라고 ****님이 강추하셨는데 종이책 사서 받기 너무 오래 걸리므로 전자도서관 줄 서서 대출. 뭐라고 페이퍼도 리뷰도 적을 수 없다. 밑줄이라도 올리려고 엄청 체크해두기만 했다. 그것도 못 했네. 옆지기와 함께 읽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진짜 별것 없기는 하지만 아무튼 페이퍼 커밍 순. 아, 이 책은 꼭 종이책으로 살 겁니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하. 한숨부터 나온다. 뭐랄까. 이거 페이퍼나 쓸 수 있겠어? 싶은 마음. 위에 <욕구들>이 마침 있으니 비교하기 딱 좋지 아니한가. 두 권 다 읽으신 분들은 짐작하실 듯. 이 책을 향한 찬사의 말들은 핵심을 좀 비껴나는 것 아닌가. 뭣이 중한디. 한글 제목 <배움의 발견>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읽다가 열받아서 이렇게 썼다. '여자는 인질이다'(책 제목). 딸도 인질이다. 
















윤지선, 윤김지영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읽었다. 읽었는데... 또르르... 아마도 다음달에 페이퍼 커밍 순. 그 때 쓸 거니까 지금은 이하 생략. 
















케이트 쇼팽 <이브가 깨어날 때> 

(제목 진짜 구리다.) 용기내어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 이거 진짜 원제목 안 봤고요(전자책 표지에 영어 잘 안 보여요, 아마도 안 봤을 거예요), 제목이 <이브가 깨어날 때>이고요, 내용 궁금했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뭐가?)인지 아닌지가 알고 싶었고요, 케이트 쇼팽인 거는 알고 있었고요. 지금은 이것만 쓸게요. 아마도 페이퍼 하나 정도는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요. 이 소설은 케이트 쇼팽의 그 유명한 <각성>이었던 겁니다.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소설 다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거지요. 만쉐! 




아래는 이번달에 읽고 뭐라도 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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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30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쇼팽 어웨이크닝을 지금 이브가 깨어날 때 라고 내놓은 건가요? 세상에.. 이브가 깨어날 때라니… 🥲

난티나무 2021-09-30 13:49   좋아요 0 | URL
오래전 나온 책인데 제목을 아주 자극적으로 뽑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많이 읽게 하려고? ㅎㅎㅎ 제목 딱 보고 그래 무슨 이야기 하나 봐주겠어! 이랬다는 거죠 제가. ^^;;

다락방 2021-09-30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배움의 발견은 저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라 깜짝 놀랐어요. 제가 기대한 내용이 나오는 대신 알고 싶지 않은 내용(아동 학대)이 이어져서 아오 읽는 내내 힘들었네요 ㅜㅜ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읽고 싶어 찜해두고 있어요. 페투 읽고나니 더 그래요. 훗.

난티나무 2021-09-30 13:54   좋아요 0 | URL
한글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원제목도 다르게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글에 없기는 하지만 성적 학대는 없었을까도…ㅠㅠ 그 나쁜 오빠 셰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 같…. 아무튼…. 음 생각과 다른 책이었어요 저도.

숲 속의 자본주의자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벌써 궁금한데요?^^

단발머리 2021-09-3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많이 읽으셨네요! 책 구하기 어려우신데도 이렇게 부지런히 읽으시는 모습 너무 멋집니다!! <배움의 발견>의 한숨 이해합니다. 다른 책들 이어지는 페이퍼도 기다릴께요^^

난티나무 2021-09-30 13:56   좋아요 0 | URL
이번달 좀 달렸어요.^^ 전자도서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ㅎㅎㅎ
배움의 발견…ㅠㅠ 종이책 안 산 거 다행이라 생각 드네요.^^;;;
아이구 페이퍼 올리러 일어나야겠어요.ㅋㅋㅋㅋ 🥰
 















제2부 제1편 형성 제1장 유년기 & 제2장 젊은 처녀 


(매번 쓸 때마다 헷갈리는 내용 구분 용어들. 그리고 쓰면서 보니 '처녀'라는 단어가 거슬리는구나. 을유에서 나온 개정판은 어떤가 미리보기 하고 왔는데 똑같네.) 


여자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읽었다. 요약하는 재주가 없어서 긴긴 내용을 정리하긴 어렵고 두루뭉술하게 느낌만 말한다면, 모조리 다 맞는 말은 아닌 듯하지만 생각의 깊이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정도가 되겠다. 어째서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지 나의 상태가 매우 의심스럽다. 정리도 안 돼, 비판도 안 돼, 열렬한 찬사도 안 돼,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슬프다. 다른 분이 올리신 지난 번 분량의 정리글을 보니 아 내가 책을 읽기는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인용구가 새로웠다. 이 무슨. 그러므로 이 책은 대충 한 번 읽어서는 안 된다? 을유 개정판 사야 한다? 나에게는 프랑스어판도 있다? 




** "어머니와 딸의 복잡한 관계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딸은 어머니의 분신인 동시에 타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딸을 가슴깊이 사랑하는 동시에 딸에게 적대감을 품기도 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강요한다. 이는 어머니 자신의 여자다움을 자랑스럽게 요구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고, 또 그 억울함에 복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356) 


플래그 붙여둔 이 부분을 다시 보니 최근 읽은 소설 두 편이 저절로 떠오른다. 엄마와 딸의 관계. 뜬금없이 여기서 추천함. <엄마에 대하여> <밝은 밤> 

보부아르가 나중에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뒷부분 궁금해짐. 엄청 알고 싶다. 엄마와 딸, 엄마와 나. 애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관계. 모두 엇비슷해 보이지만 비슷하지 않은, 관계들. 



















** "자기를 하나의 주체로, 자율성·절대성·초월성을 갖춘 존재로 느끼는 개인에게, 자기 안에서 열등성을 선천적 본질로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일자(一者, 단 하나의 존재)‘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또한 스스로 타자로서 바라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다. 인생수업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여자로서 자각했을 때, 소녀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환경은 남자의 세계에 의해 사방이 막혀 있고 제한되며, 지배되고 있다. 여자가 제아무리 높이 뛰어오르고 멀리 밀고 나아가더라도, 언제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천장이 있고, 앞길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 남자가 받드는 신들은 저 멀리 하늘 위쪽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여자아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다." (377)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이라니! 이런 적확한 표현이라니. 




** "체계적인 교육으로도 그 문제만은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말해 두어야겠다. 부모나 선생이 제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성적인 경험을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그것을 경험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분석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더라도 유머러스한 일면이 있으므로 진리를 전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꽃의 시적인 연애와 물고기의 결혼에서 출발하여 병아리 고양이 염소를 거쳐 인류에까지 올라갔을 때, 우리는 생식의 신비를 충분히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적 쾌락과 성애의 신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조용한 피를 지닌 여자아이에게 애무와 키스의 쾌감을 어떻게 설명하랴? 가족끼리는 때로 키스를 입술로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왜 어떤 경우에는 이런 점막의 접촉이 황홀감을 낳는가? 그것은 장님에게 색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색정작용(色情作用)에 그 의미와 통일성을 부여하는 직감적 흥분과 욕망이 결여되어 있는 한, 그 작용의 여러 가지 요소는 불쾌하고 괴상하게 보인다. "(385)



9월에 작은넘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올해 만 15세다. 모르는 사이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 너무 갑작스러워 처음엔 좀 당황했고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조금 후에 수많은 걱정들로 바뀌었다. 나는 무엇이 걱정스러운 걸까. 어째서 내 아이가 상처받을 일보다 그 여자아이가 상처받을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걸까. 아니 내 아이가 상처를 주는 사람일까 봐 두려운 건 아닌가. 이것 또한 편견은 아닐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의사소통과 배려와 공감의 태도를 내 아이가 어느 정도 성숙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혹은 전혀 성숙하지 못하게 표현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첫번째 불안이 온다. 이것은 내가 충분히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반성하나 지금도 여전히 뭔가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은 것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집에서의 태도와 바깥에서의 태도는 다르리라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아이를 내가 믿지 못하는구나 싶은 질책. 

두번째 불안은 역시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성' 관념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하고, '콘돔 없이는 섹스도 없다'를 외치는 나지만 실제 두 사람 사이의 섹스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준 것이 없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몸으로 나누는 사랑이며 기타등등 두루뭉술한 말들을 해왔지만 정작 갑자기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엄청난 조급함과 불안이 마구 피어오른다. 친구 집에서 밤샘파티를 한다고 하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미 방학 때 2번이나 다녀옴) 더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랑과 섹스가 무엇인지 새삼 잘 모르겠다. 젊을 때 탐구했어야 하는 주제를 외면(?)하고 살아와서 이제야 탐구 중이고 답을 찾기는 아직 어렵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뭐라고 딱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두려움. 그래도 아니라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지금껏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이 많다고, 너희는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 것들을 말하고 싶다. 

385쪽의 인용구.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게릴라 교육이라도 해야지 싶고. 교육 말고 또 어떤 방법이 있겠나 싶고. 집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웃프고. 나 어릴 때보다 세상은 더 노골적으로 이미지화했고. 매일 그것들을 접하고 사는 아이들의 정신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왜 엄마인 나만 해야 하나 싶고.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니 그저 신세한탄에 불과하다 싶고. 나는 이 이야기를 왜 했나 싶고. 돌고돌아 자책이구만. 쩝. 결론! 결국은 '관계'다. 관계에의 탐색. 그리고 성찰. 무엇이 평등이고 존중인지. 우정도 사랑도 섹스도 결국은 모두. 




** "한편 여자는 자기에 대해서처럼 애인에 대해서도 수동적 대상이기 때문에, 그녀의 에로티시즘에는 처음부터 모호성이 존재한다. 복잡한 충동 속에서 여자는 자기 육체를 차지한 남성으로부터 자기 육체가 찬미되기를 바란다. 여자가 남성을 매혹하기 위하여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거나, 자기가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매혹하려고 애쓴다는 견해는 사실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여자는 자기 방 안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시도하는 살롱에서도, 남자에 대한 욕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425) 


'모호성'에 동그라미를 쳤다. 모호성. 그렇다. 처음부터 모호성이 존재하는 에로티시즘. 플러스 엄청난 수동성. 두려움. 어린 아이일 때부터 온몸으로 습득된 이런 성향은 나이 50이 되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모호하다. 




** "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녀가 갇혀 있는 영역 안에서는 무의미한 물음이다. 진실은 베일이 벗겨진 현실이다. 베일의 제거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녀는 행동하지 않는다." (452) 


이렇게 뼈를 때리는 말이 나오면 아프다. 행동. 행동. 



***** 


유년기와 성장기 이야기라 나의 어릴 때, 아이들 어릴 때, 지금의 나와 아이들, 그리고 엄마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들의 말과 행동을 책에 비추어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다고 쓰면 좋겠다. 시도는 했다.^^ 여자아이들의 '인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고.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역시. 


읽을 때 흠칫거리다가 다 읽고 정리 안 돼서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책이 너무 좋아서,가 아닌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지난달 한동안 컨디션 난조일 때 침대에 누워 책읽어 버릇했더니 중간중간 정리할 겨를이 없더라. 9월에도 그 버릇 못 고치고 있다가 이렇게 또 같은 실수를 한다. 문장을 잡고 늘어져봐. 노트랑 펜은 옆에 늘 준비하고. 응, 그럴게, 근데 그거 침대에서 해도 되잖아? 이렇게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악당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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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09-27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공감가는 문구들이 많은 거죠?^^
저도 열심히? 제2의 성을 읽어 나가곤 있는데 요즘 좀 침체기네요.
읽어나가는 것이 내 그릇이 너무 부족하단 생각이 들면서 다른 책들을 좀 더 읽고 공부를 해야하는 게 아닌가?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재밌다가도,또 어떤 때는 어렵기도 하고....또 어떤 때는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애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문제에선 더 어렵고 난감할 것 같습니다.특히나 아들에겐...
제 큰아들은 20살이 되었는데 아직 모쏠이긴 하지만 가르쳐야지~~싶어 말을 몇 번 꺼내보곤 하는데...너무 어렵더라구요ㅜㅜ

난티나무 2021-09-27 19:49   좋아요 2 | URL
(20살이면 만 19인 거죠? 우리집 큰넘과 같아요.^^ 이 얘기 예전에도 한 것 같은 느낌...^^;;)
저는 작년부터 페미니즘 책 읽으면서 주절(?)대 놓은 게 있어서 말 꺼내기는 어렵지 않은데 음, 뭐랄까요, 의식화가 어렵다고 할까요.ㅠㅠ 정작 행동할 때는 어찌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도 하고요. 진짜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하는 일이에요. 쉬쉬 좀 그만 했으면...
같은 책 읽어서 좋아요, 책읽는나무님~~~~!!!^^

공쟝쟝 2021-09-28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것이, 그 불편한 것을 읽는 것이 행동이 아니면 무엇이 행동이겠사옵니까? 그렇게 장성한 아들내미가 있으셨군요~ 난티님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것이 우리에겐 책도 있지만 좋은 영상물도 많더라고요. 얼마전에 시즌3이 나온 넷플릭스 섹스 에듀케이션(한국 제목 :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이 있습니다. 걍 미친 약빨고 만든 새시대의 성교육 성장드라마... 인데 만약에 아드님과 같이 보실 수 있다면..... 저는 박수 쳐드리고 싶은 데. 솔직히 말하면, 절대 같이 볼 수 없으실 겁니다 ㅋㅋㅋㅋ(저는 못봅니다. 아들이랑? 오.. 절대 못봐)ㅋㅋㅋㅋㅋㅋ문제는 그 잘만든 드라마를 보면서도 누구 가슴이 크네 누가 이쁘네 하는 사춘기 한남들의 글들을 봐버려서 좀 승질이 난다는 것이지만... 혹시 안보셨음 한번 봐보세요!! 좋은 부모님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난티나무 2021-09-28 14:45   좋아요 1 | URL
우왓!!!! 공쟝쟝님 쨩이야요!!! 시즌1부터 봐야 하나요? 같이 볼 수 있을지 먼저 간을 함 보고 ㅎㅎㅎ 아 볼 수나 있는지 먼저 찾아봐야 겠네요. 같이 절대 못 봐요?@@ 흠흠

읽는 것도 행동이다 이렇게 썼다가 지웠어요.ㅎㅎㅎ 🤣

공쟝쟝 2021-09-29 10:21   좋아요 0 | URL
시즌1부터죠 ㅋㅋㅋㅋㅋ 시즌 4도 제작 확정이래서 저는 즐겁습니다 ㅋㅋㅋ 같이 못보실걸요 ㅋㅋㅋ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나누는 것 말고 더 큰 행동이 있으려고요? 저는 그 이상의 행동을 알지 모탑니다 (엣헴)

난티나무 2021-09-29 15:15   좋아요 0 | URL
악 오늘 꼭 찾아봐야지!!! ㅎㅎ
왠지 밖으로 뛰쳐나가야 할 것 같고 막, 무슨무슨 단체 찾아봐야 할 것 같고 막, 미는 것 같은 그런… ㅎㅎㅎㅎㅎㅎㅎ 조급함이 가장 큰 적일까요?
 














앞부분 엄청 좋아요 잘 읽혀요 하고 9월 2일에 글 올리고는 엄청 좋았던 앞부분에 대한 페이퍼는 쓰질 않았네.ㅠㅠ 가사노동에 관한 글들, 57페이지까지 플래그 위주로 다시 훑어보니 이건 뭐 다 밑줄을 그어야 하는 거였다. 고민된다. 다 옮겨야 하나. 



** "만약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량을 줄인다 하더라도, 노동 계급이 산업 안에서 투쟁하여 그러한 기술 혁신을 활용하고 자유 시간을 얻는다 하더라도, 가사노동에는 그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은 고립된 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책임져야 하므로, 가사노동을 고도로 기계화한다 해도 여성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항상 근무 중인 이유는 아이를 만들어 내고 신경 써 주는 기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 생산성 증대는 요리, 빨래, 청소 같은 특정 서비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여성의 노동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이유는 기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 - P34


고립,에 동글동글동글 동그라미. 기계는 핵심노동만 하고 주변노동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므로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 생산성 증대'는 3분의 1(혹은 그 이하)만 기대할 수 있다. 



** "또한, 여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알지 못하면 남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여기서 분명히 하려는 바는, 우리가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세계에서 생산 활동을 하면서 임금을 받지 않을 때 상사의 형상은 남편의 형상 뒤에 숨이 있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남편이 가사 서비스의 유일한 수혜자처럼 보이는데, 이 때문에 가사노동은 모호하고 노예 상태와 유사한 특징을 띠게 된다. 다정하게 관여하고 다정하게 협박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가사노동의 첫 번째 감독관, 즉 친밀한 관리자가 된다.
아내가 남편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일하고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경우에도, 남편은 신문을 읽으며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차려 주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가사노동으로 대변되는 특수한 착취 형태에는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특수한 투쟁 형태, 다시 말해 가족 내부에서 여성이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 P40


따라서 요점은, 기껏해야 거리 시위에 가끔 참여할 준비를 하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임금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 주부를 집 안에 평화롭게 남겨두지 않는 투쟁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주부라는 우리의 역할 그리고 우리 존재를 고립시키는 게토가 된 가정을 거부하면서, 가사노동의 전체 구조를 당장 깨부술 수 있는 투쟁 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가사노동 중단 뿐만 아니라 주부 역할 전체를 끝장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작점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이다. 요컨대, 가사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투쟁의 전복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가사노동 시간과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의 관계를 지금 당장 전복해야 한다. 침대보와 커튼을 다림질하고 바닥이 반짝거릴 때까지 닦고 먼지를 터느라 매일매일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이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분명 여성들이 멍청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앞서 여성의 상황을 교육 수준이 보통 이하인 학교와 비교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실제로 여성이 자아를 실현할 방법은 가사노동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자본이 여성을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 과정에서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 P41


그러니까 말이다. 투쟁. 싸워야 하는데.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 마침 또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나는 그 이후 쓰기를 일단 멈춤 했다고 한다. - 주방으로 갔더니 옆지기가 오늘은 오징어볶음 할까, 하고 저녁 준비할 태세를 갖추길래 밥만 얹어놓고 냅다 도망나왔다. 시간이 생겼으나 글은 쓰지 못하고 마당 풀 뽑다 왔다. 아침에 이 책 마저 읽느라 책상 앞에 꼼짝않고 앉아있으니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났다. 지저분해도 청소를 하지 않는 요즘의 나다. 청소하는 건 좋은데 책 읽는 게 방해되는 건 싫다. 방 청소한다고 들어와서 여기저기 밀어댄다. 청소하는 행위가 단순히 행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무엇이 우선인가. 무엇이 최선인가. 무엇이 상생인가.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과 '뭐라고 말해야 기분나쁘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어처구니없음-나에게 짜증나는 순간-의 괴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언제나 좁혀지려나.) 





** "우리는 여기서 승화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한다. 단조롭고 하찮은 잔일들이 주는 절망감과 성적 수동성이 주는 절망감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성의 독창성과 노동의 독창성은 인간 욕구의 두 가지 영역으로, 우리는 ‘선천적 활동과 후천적 활동의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여성은 (따라서 남성 역시) 선천적 힘과 후천적 힘을 동시에 억압당한다. 여성의 수동적인 성적 수용성은 강박적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주부를 만들어내고, 단조로운 조립 라인조차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하찮은 가사노동과, 같은 일을 매일, 매주, 매년 반복하고 연휴에는 두 배로 하게 만드는 규율은, 자유로운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우리의 유년기는 순교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우리는 백지보다 더 하얀 천 위에서 깨끗한 성생활을해서 행복을 얻으라고 배운다. 또, 섹슈얼리티 및 다른 창조적 활동을 동시에 희생하도록 교육받는다.
이제까지 여성 운동은 특히 질 오르가슴 신화를 파괴하여 여성의 성적 잠재성을 남성이 엄격하게 규정하고 제한하도록 허용하는 육체적 메커니즘을 폭로해왔다. 이제 우리는 섹슈얼리티를 독창성의 다른 측면들과 결부시키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노동이 우리와 우리 개개인의 능력을 불구로 만드는 한, 우리가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 행세를 하고 그들이 하는 노동이 그들을 불구로 만드는 한, 섹슈얼리티가 항상 속박당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질 오르가슴 신화를 깨뜨리는 건, 종속 및 승화와 상반되는 여성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질 오르가슴 신화가 음핵 대 질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음핵과 질 대 자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질은 애초에 상품으로 팔리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통로, 즉 자궁의 자본주의적 기능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우리의 선천적 힘, 우리의 사회적 도구의 일부이다. 결국 섹슈얼리티는 가장 사회적인 표현이고 가장 심오한 인간의 소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의 해체이기도 하다. 노동 계급은 계급 자체를 초월하기 위해 계급으로 단결한다. 자율성을 초월하는기반을 만들어 내려고 우리는 계급 안에서 자율적으로 결속한다."  - P48~49


**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먼저 여성들을 서로에게서, 남성에게서, 자식에게서 분리하고, 여성 개개인을 가족 안에 가두려는 역할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 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주부들이 이 모두를 거부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자신을 노동 계급의 한 집단으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위가 가장 강등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 투쟁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보완하는 인물, 바로 주부에 반대하고 여성의 개별성을 긍정할 수 있는 계획을 마땅히 제안해야 한다. 주부 역할의 생산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마땅히 내놓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기본적인 육체적 기능의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게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 생산적인 창조성과 함께 가장 먼저 강탈당하는 성性적 기능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아 제한 연구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임신 중절이 금지되고 결국 ‘치료‘ 목적으로만 허락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개혁주의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적으로 관리되면 거듭해서 계급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을 만들어 낸다. " - P54



가사노동과 성을 연결지을 생각은 못했다...고 쓰려다가 어라 연결해서 자주 생각해 봤네 싶다. 가사노동 자체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가사노동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모양의 정신적 스트레스다. 안정감을 찾을 수 없고 친밀함을 느낄 수 없고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고 누구도 나의 정신적/육체적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그야말로 고립의 감정을 느끼는 여자에게 성이란, 섹스란, 그것을 나눌 사람에게서 조금의 위로도 받지 않을 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하면 섹스의 횟수가 늘 것이라는 내용을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이 말은 절반만 유효할 것이고 가사노동의 의미를 단순화시킨다. 왜냐하면 '집안일'이라는 '행위'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쓴 청소기의 예를 보라. 남편이 집안일을 했으나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여성 투쟁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로사 언니도 좋아하고 싶다.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글인데 문장 사이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아마도 그 거리는 나의 부족함일 터, 이 언니 책 더 읽고 싶어 찾아보았더니 <집 안의 노동자> 달랑 한 권 번역되어 있다. 뭐야.  <탈정치의 정치학>에 글 한 편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발전과 재생산」 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 실린 글과 같거나 비슷한 내용일 듯하다. 


















** "수백만 여성이 전통적으로 여성이 영위하던 자리를 거부하면서 여성 운동이 일어났는데, 자본은 여성 운동을 만들어 낸 이 추동력에 달려들어, 더 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재편하고 있다. 여성 운동은 이 상황에 저항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성 운동은 운동의 존재 자체로, 또 더욱 분명한 행동으로, 여성들이 노동을 통한 해방이라는 신화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충분히 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십억 톤의 목화를 자르고, 수십억 개의 그릇을 씻고, 바닥을 수십억 번 닦으며, 단어를 수십억 개 입력하고, 수십억 번 타전하며, 수십억 개의 기저귀를 빨았다. 이 모든 일을 손수, 또 기계로 했다. 저들이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던 영토에 우리를 들여보내 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착취를 마주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제3세계의 저발전과 거대 도시의 저발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대 도시의 부엌에 도사리고 있는 저발전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인 기획은 제3세계가 성장할 것을 제안한다. 제3세계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에다가 반反산업혁명의 고통까지 당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거대 도시에 사는 여성들도 이와 동일한 ‘원조'援助를 받아왔다. 그러나 해야만 했기에, 또 여분의 돈이나 경제적 자립 때문에 집 밖으로 일하러 나간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플레이션이 우리를 이 빌어먹을 타이핑 인력 혹은 조립 라인에 못 박아 버렸고, 이 상황에서 구원은 없다고. 우리는 저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성장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하는 여성의 투쟁은 가정의 고립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게 아니다. 종종 월요일 아침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어지더라도. 마찬가지로 주부의 투쟁 역시 집 안에 감금되는 상황을 사무실 책상이나 공장 기계에 붙들려 있는 상황과 바꾸려는게 아니다. 때때로 12층짜리 집단 주택 안에 존재하는 외로움보다는 나아 보일지라도." - P55~56



자, 일단 여기까지 쓰고 늦은 아침을 먹겠다.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오늘은 월요일이다. 당연한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인데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뽀인뜨다. 뭐래.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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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2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른쪽 책도 그렇지만 왼쪽 책도 어쩐지 페미니즘의 투쟁과 중복될 것 같아요.

읽느라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고생하셨어요. 꼭 나의 마음 같은 글을 읽는 것도 기쁘고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는 것도 기쁘죠. 고되지만 분명 얻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난티나무 님, 10월도 11월도 12월도 함께 열심히 가봅시다!

난티나무 2021-09-27 17:59   좋아요 1 | URL
그쵸그쵸. 그래도 <집안의 노동자>는 왠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긴 해요. 가사노동 부분이 좋았거든요.^^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더 자세자세하게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또 운동한 거 위주로 이야기할려나...ㅎㅎㅎ
12월까지 이미 도서 구비 완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9-27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리뷰 어떻게 쓰나 앞이 캄캄합니다. 멋진 언니들도 왤케 많은지요! 중간중간 정리해놓은걸 정리중인데 하...읽어야 할 책도 더더 늘어났고요. 저도 밥부터 먹어야겠어요ㅋ😳

난티나무 2021-09-27 18:01   좋아요 1 | URL
리뷰 쓸 수 있을까 싶습니다요.^^;;;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감상문...이 될 거 같은, 뭐 저야 늘 그렇지만요.ㅎㅎㅎ
저는 집에 있는 에코페미니즘,을 이제 읽어야 하는가보다 했습니다. 맛난 거 드세요, 미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