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칭찬을 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그런 분이군요. 학생들에게 뭔가 긍정적인 말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다른 선생님들과 똑같아요." 

 친구들도 이렇게 말한다. "그래, 넌 내 친구니까, 이미 나를 좋아하는 내 입에서 무슨 다른 말이 나오겠니?"

 그만! 누군가 당신을 칭찬해 준다면, 정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더라고,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렇게도 좋다는 것을 반드시 느껴 보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격려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 (108~109,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들이마시고,를 들이마쉬고,로 썼다가 어이쿠 하고 고쳤는데 들이마쉬고, 어쩐지 입에 쫙 달라붙는 느낌?)

칭찬에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은 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칭찬을 들었을 때 어떤 말과 표정으로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아이구, 아니에요, 무슨, 그렇지 않아요, 하면서 칭찬을 거부(?)해 본 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그런데 칭찬받았을 때 날름, 제가 그렇죠? 그 칭찬 잘 받을게요, 하면 또 상대방 얼굴이 그렇게 뜨악해 보일 수가 없다. 이것도 나만의 생각인가? 배운 적 없고 해본 적 없어서 몸에도 없다. 칭찬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칭찬한 사람의 반응을 '겸손'으로 상정하고 있었을 테니 당황하거나 아니면 속으로 아니꼬워하거나?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한정된 반응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요즘은 시행착오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만큼 실수도 잦고 방법도 모르겠고 그럴 때가 많다.



⎾ '나는 개를 본다'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이러한 문장 구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내가 개를 보고 있는 동안 개도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주어-동사-목적어'의 틀에 짜 맞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런 문장론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고, 신선한 세상과 만날 수 있으며, 글쓰기에 색다른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지나친 우월감에 빠져 있다.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도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그들만의 삶이 있다. 개미는 자기들만의 도시를 만든다. 개들도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식물은 숨을 쉰다. 나무는 우리들보다 훨씬 오랜 수명을 가지고 산다. (114,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문장 구조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글이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도 거기서 기인하는 게 많겠지. 생각이 굳어져 있으니까.

 인간의 지나친 우월감에 동감하는 바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이 그렇지 않나? 이런 모양 세상을 만든 건 8할이 인간의 '지나친' 우월감이지.

 그런데 이 챕터보다 앞선 다른 챕터에서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나온다.

"... 죽은 이들은 짐승처럼 도살되어도 상관없는 이름 없는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이 세상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숭고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일어나 노란 치즈를 사러 가게로 향했고, 크고 작은 삶의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동시에 이 지상의 모든 슬픔과 겨울을 겪었고 한때 쿵쿵거리는 장엄한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85~86)

흠흠. 이 문장들은 인간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닌가요??? '그들은 동물이었고 이 세상 속에서 각자 숭고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일어나 먹이를 구하러 나갔고, 크고 작은 삶의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동시에 이 지상의 모든 슬픔과 겨울을 겪었고 한때 쿵쿵거리는 장엄한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 말 안 되나?

 '짐승처럼 도살되어도 상관없는'이라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왜 걸릴까? 나는 왜 이 구절이 마음에 걸리는 걸까?



⎾ 가끔 이런 이들도 있다.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 결과물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생각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 (88, 케이크를 구우려면)⏌


 이 부분에선 또 왜 찔리는 건가? 글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나 이러고 있는 게 아닐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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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1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독서모임 할 때 모임의 회원 중 몇 명과 한 달에 한 번 글쓰기를 해보자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모임 이름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였어요.
이 책 읽고 이 책 내용과 제목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였던 것 같아요.
결국 몇 번 못 넘기고 흐지부지 되었는데 ㅎㅎ
이 책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제목만은 언제나 강렬해서 좋아요.

난티나무 2023-11-14 02:33   좋아요 1 | URL
저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다시 펼쳤습니다.
다시 봐도 좋은 부분(각성(?)되는 부분)이 많아요.ㅎㅎㅎ
모임 이름 줄이면 ‘뼈내써‘네요?^^
모임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 같아요.
 

1.

드라마를 봤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남주, 능력 있는 남주, 그러나 어김없이 관계에 무지하고 제멋대로 자기중심적인 남주, 카메라가 남주를 비출 때마다 후광이 따라오게 만들어 '멋진 남성 떠받들기' 신화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웃는 얼굴이 이쁘고 (몸매도 이쁘고) 똑 부러지게 친절해서 '윗사람에게 이쁨 받고' 승진도 하는 여주는, 마치 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돈 없고 힘없고 빽도 없는 여자, 돈 많고 힘 있고 빽도 있는 남자, 이 구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문제 해결은 남자, 위로하고 보듬는 역할은 여자. 이것도 마찬가지. 속이 터진다. 거기다 할많하않 이성애 로맨스 어이없음은 기본이지.


2.

영화를 봤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청춘들이 자본주의사회와 거기에 푹 절은 인간들에게 먹히고 있었다. 가장 아래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억압과 착취와 모멸을 견뎌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갑질과 성희롱을 일삼는 인간들. 비교와 성과에 목을 매는 사회. 일이 잘못되면 가장 아래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형사는 원인을 찾아 길을 거슬러올라가지만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촘촘하게 잘도 짜여 있지, 모두의 합작품인 이놈의 사회는. 암담하고 가슴 아프다.


3.

인터넷 기사를 봤다. 성과 젠더가 나오기만 하면 득달같이 댓글 다는 인간들. 무지가 아주 빛을 발하는데 공감하는 인간들은 뭐냐. 분노가 치밀어 싫어요를 눌렀다. 다음 댓글에 또 눌렀다. 10초에 한 번 누를 수 있다는 안내가 뜬다. 기다린다. 좀처럼 댓글도 보지 않고 공감도 누르지 않지만 오늘은 참을 수가 없다. 10초를 기다려 또 누른다. 세 번째가 되니 악성 뭐시기라고 뜬다. 욕이 나온다. 기사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튼소리 모욕적인 말 퍼붓는 댓글이 악성 아니고 뭐냔 말이냐. 화면에 뜬 숫자와 알파벳을 꾹꾹 눌렀다. 싫어요 한 개. 10초 기다림. 싫어요 한 개. 10초 기다림. 악성 어쩌고. 숫자 누름. 10초 기다림. 싫어요 한 개. 암울하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직장에서 바람직한 (그러나 여자는 마땅히 벗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는 못마땅한) 일을 한 여성이 인터넷 '마녀사냥'으로 해직당한 이야기가 나왔고... 극악한, 어이없는, 성차별과 거대한 '남성성'을 편드는 사회, 직장, 가족, 정부... 


4.

1, 2, 3이 도처에서 반복되고 일상에서 변주된다. 끊임없이, 과격하게. 1,2,3,4,5,6,7,8,9,10................................


5. 

나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성의 변증법>에서 한 말들에 대체로 수긍하고 동의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나오게 되었는지 알 것 같다. 가슴에 얼마나 분노가 차올랐을지 짐작된다. 알게 되면, 깨닫게 되면, 세상은 이렇게 암흑이다. 앞서간 똑똑한 사람들은 그걸 견디지 못했으리라. (파이어스톤은 보부아르가 '견뎠다'라고 헌사에 썼다. 동의한다.)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때로 가부장 자본주의와 타협하기도 하는 나는 가끔 터질 듯한 분노에 우울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냥저냥 살아버리고 있다. 모든 게 내 일 내 마음이 되면... 못 살 것 같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못 살 것 같다. 그러니 서로 편을 들어주자. 파이어스톤에게 편 들어주는 사람이 몇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의 수많은 저작을 읽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


6. 대체로 동의한다고 했다. 아주 가끔 읭?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매우 급진,이라고 들었으나 생각보다 급진이 아니었다. 아마 '여자'가 주장한 것이라 더 급진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을지 모르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러고도 남을 세상 아닌가. 


7. 울분이 차올라 책을 샀다.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분노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러다 다른 데 신경 쓰느라 금세 잊고는 새롭게 분노하는 시간이 또 오겠지. 그렇게 잊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견디는 힘이 되는지도. 참 바보 같지만. 세상 참, 지랄맞다는 생각 이틀째. 






얼레, 많이 안 붙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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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7-31 23: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7월 마지막 날, 리뷰 쓰기에는 시간이 없고... 책도 어제 겨우 다 읽었음. 생각이 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냥 감상으로 대신한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내 마감 내가 못 지키는 듯한 느낌. 뭔가 할 말이 더 떠오르면 그때 리뷰를 쓰도록 하자. 7월의 책 끝. 자정 되기 30분 전. ㅋㅋㅋ

유수 2023-07-31 2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같은 책, 같은 시기에 읽었어요. 난티나무님. 감상 좋아요. 안 쓰여진 부분도 많이 겹칠 테고요.

난티나무 2023-08-01 01:50   좋아요 1 | URL
유수님 😍😍 이따 유수님 리뷰도 읽으러 갈게요~~~~
어휴 며칠 힘드네요. 엉엉. 견디자!!!!! ㅠㅠ

책읽는나무 2023-08-01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으셨어요.
이 책은 제겐 다른 책들보다도 작가의 삶에 이입되어 며칠 좀 우울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좀 아프게 읽혔어요.

난티나무 2023-08-01 19:0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책나무님. 그렇게 제대로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사라진 여성들이, 똑똑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ㅠㅠ

2023-08-0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자 2023-08-0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난티나무님 종이책은 알라딘배송으로 종종 구매하시는 건가요?

난티나무 2023-08-07 22:23   좋아요 1 | URL
알라딘직배보다 모아서 소포로 받는 것이 조금 더 싼 거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배송비 올라서 ㅠㅠ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때도 많고요. 아 저는 동생 집으로 택배 보내고 한 달에 한번 소포 받아요.^^;;;
 















이렇게 좋을 일?!?! 

나온 지 오래 됐지만 좀더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닐까? 

2권을 다 읽어가고 나에게는 3권이 남아 있다. 

오늘 읽은 5장(개인 속의 역사, 기억으로서의 역사)에서 밑줄. 




⌈우리는 '가족'이라는 고리가 너무 강하여서 '자각'을 한 여성들도 결혼을 하면 그 속에 묻혀 버린다는 것을 알고 고심했다. '의식 전환'은 아주 미약한 효과를 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줍잖은 여성 해방적 지식은 자기 분열만 가져온다. '주변성'을 보다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 자신이 가진 '주변성'에 보다 확실하게 정체성을 심어야 한다.⌋ (198) 



⌈억압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해방의 언어만 배우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지배 언어의 눌림 속에 만들어진 그 '말 같지 않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해방의 언어'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착각인가? 그런 착각은 '해방의 언어'를 외부에서 끌어 오는 '식민지 엘리트'들이나 할 일이다. 이제는 오히려 지배 담론에서 비껴나 있는 그 '횡설 수설'하는 말을 바탕으로 새 말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억압 상황에서 '말 같지 않게' 사용되어 온 '말'을 살려 내지 않고서, '억압'을 줄여 가고 없애 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지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 동안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말'의 형태로 자신이 해왔던 말을, 또는 생각을, 주변성을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가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204~205)



⌈다시 나의 실험 현장인 <또 하나의 문화>로 돌아와 매듭을 지어 보자. 외부에서는 이 모임에 대해 모든 것을 다 가진 '혜택 받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인 중에는 어느 누구보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혜택을 받고 안 받고가 아닐 것이다.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삶의 실험을 하면서 충실하게 말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그럼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207) 



⌈사회 운동이란 역사성을 되찾는 작업이며, 일상성 속에서 개인을 역사와 연결시켜 내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일하기보다 우선 목소리를 살려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름'을 성급하게 없애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211)



⌈지식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론이라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여기서 경험이란 경험 주체자가 가진 시선과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찰적 경험을 뜻한다. 역사란 그러한 자기 성찰적 경험을 쓰는 일이다. 경험 주체자의 적극적 기억 행위, 또는 서사 행위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또 경험되는 글쓰기 과정이 곧 역사 쓰기인 것이다.⌋ (213 /215)



⌈자기가 자기를 보기 어렵듯이 '중심'에서는 '중심'을 보기 힘들다. 더구나 자신이 가진 '중심'에 매달려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시선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없다. '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떄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만 보인다. 그러나 일단 그 자리를 인정하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난한' 자리가 시선의 변화에 따라 매우 풍성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않고는 실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 (220) 







+ 그리고 좋은 소식. 좋으니까 조금 큰 글자로.ㅎㅎㅎ (북플에서는 죄 같은 크기로 보이겠지만....) 




연휴라서 하루 일찍 발행했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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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2023-05-05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 시리즈 다 있는데 진짜..명저죠. 정희진 샘도 2권은 꼭 읽어보라고 강추하신 책이고요.

밑줄그으신 부분 저도 좋아하는 부분인데요.

이 책 후반부에서인가, 저런 여성들의 글을 모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신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그 부분에서 좀 마음 아팠어요..저 당시 주제별로 발간된 책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저도 어딘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요. 수다나 하소연, 또는 약간의 자기 자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들이...여성이 자기의 주변성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글이란 진짜 어려운 것이구나....아흑... 조한 샘도 어느 책에선가 그 당시 글쓰기의 한계를 지적한 게 있었는데, 어딘지 기억은 안 나네요.

대신 저 시도가 2010년대 중반부터 아닐까, 저 책 나오고 약 20년이 지난 후에서야 여성들은 자기 언어를 봇물처럼 쏟아내게 된 걸까..그런 생각 했어요.

난티나무 2023-05-05 12:05   좋아요 2 | URL
맞아요! 명저! 정희진 샘이 2권 강추하신 이유 너무 잘 알겠고요.

여성들의 글, 그렇죠. 찾아서 읽어보셨다니 와 🙌
일상 대화에서도 그렇잖아요. 수다, 하소연, 자랑… 에 그치고 마는. 말이나 글이나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고민이고, 결국 경험을 성찰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일이고요. (우리가 그래서 ‘통하는 대화’에 희열을 느끼지 않습니까.ㅎㅎ )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렇게 수다로 하소연하는 일을 후려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해요. 그게 시작점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20년 후가 되었네요. 그래서 조혜정 샘과 이 책이 더 우러러 보였어요. 학교 수업 이야기할 때면 아 나도 그런 수업 들었었다면 하고, 또하나의문화 이야기할 때면 아 나도 그런 공부하는 데서 공부했었으면 하고, 제 8-90년대를 돌아보기도 했고요. ㅎㅎ 오프라인 공부모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늘 하는 거고.^^;;

댓글 반가워서 또 말이 길었어요.^^ 말하고픈 건 더 많지만 ㅋㅋ 다른 부분도 인용해서 좀 올려봐야 겠습니다.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2023-05-05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9 0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5-05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들이 유수님이랑 페이퍼에서 등장해서 저도 샀어요!! 😤

난티나무 2023-05-05 19:25   좋아요 0 | URL
굳!!!!!! 👍👍👍

hnine 2023-05-0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글읽기와 삶읽기 정말 오래된 책인데...저 책 1권 나왔을때 읽은 세대랍니다.

난티나무 2023-05-09 05:02   좋아요 0 | URL
우어!!!! 저는 이제야 알았… ㅎㅎㅎ 전 그때 어디에 살고 있었던 걸까요?????@@
 





5장 밑줄 올리면서 사진도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북플 밑줄긋기 하니깐 사진 올릴 수 없대... 컴으로 들어와서 저장페이퍼를 누르니 글쎄 행복의 약속 읽으면서 주절주절 휘갈긴 글이 세 개나 있다. 그런데 올리기가 쫌... (다들 이래서 조용하신 거 맞아유?) 뭐 별 내용 없고 감상적이라 그렇기는 하다. 이케저케 만져보고 싶으나 잘 안 되는 ㅋㅋㅋ 어쩔? 리뷰 쓰는 게 목표인데 이래서야 리뷰는커녕 백자평 쓰기도 어렵겠다. 

아무튼 결론만 남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어렵거나 말거나 그저 좋구만. 미리 별 다섯 드림. 아메드 다음 책 <고집스런 주체> 언제 나옵니까,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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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26 0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읽으면서는 오만 생각이 드는 데 읽고나니 아무생각이 없어지는 행복의 약속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6 13:4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무의식에 남기를! 어쩌면 행복! 🤔

다락방 2023-04-26 0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요. 저는 아직도 여전히 읽는 중이지만, 오늘 아침엔 불현듯 한 줄 정리가 되더라고요.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6 13:43   좋아요 1 | URL
역쉬 다락방님!!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

라로 2023-04-26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런 어려운 책을 장바구니에 넣게 만드는 님아!^^;;

난티나무 2023-04-26 13:44   좋아요 1 | URL
라로님 그간 바쁘셔서 못 오신 동안 저는 꾸준히 책을 샀더랍니다.(응?) ㅋㅋㅋ
이 책 어렵지만 좋아요!!!!
 

오늘의 생각 : 행복도 없고 미래도 없고 나는 내장으로 생각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나는 대체로 불행했다. 그러나 상대적 시각으로 보자면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겠다. 문제는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어떤 좋은 순간에 그게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거나 환하게 크게 웃거나 춤을 추거나 빙빙 돌거나 방방 뛰어다니거나 건배를 하거나 아무튼지간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순간의 행복에 젖어드는 기쁨을 누리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고 기억한다. 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런 순간들이 드물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그런 감정을 온전히 누리기에 너무 쪼글쪼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또는, 어떤 것도 내가 생각하는('바라는') '행복'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이건 '좋은 느낌'이라고 내가 바랐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거기에 결핍된, 모자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내 생각 내 모습 혹은 다른 사람의 단점과 상황의 부정적 측면을 캐어내 그 순간을 도려내어 칼질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도대체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런 따위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이건 행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자세는 어디에서 왔을까? 불행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건 아니고? 그건 행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어떻게 다르지? 


새벽에 깬다. 깼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잠은 달아난다. 달아나는 잠을 애써 붙들려고 하지 않는다. 속이 쓰리다. 벌써 몇 달은 된 거 같다. 깨기 전에 꾸던 꿈에는 여전히 화장실이 나오고 전화기가 나오고 학교 시험지가 나온다. 이제 좀 그만 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난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겉으로 멀쩡해 보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러는데 의식이 닿지 않는 거기에서는 항상 두렵고 불안한지, 몇 년째 비슷한 꿈을 꾼다. 소변을 볼 수 없는 화장실. 더럽거나 막혔거나 문이 없거나 한 화장실. 얼마 전에는 꿈에서 '무사히' 깨끗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아 이제 좀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어제 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못했다. 전화번호를 누를 수 없는 전화기,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번호와 이름, 아예 아무것도 눌러지지 않는 전화기, 누르면 누를수록 먹통이 되어가는 전화기. 이 또한 얼마 전에 통화에 성공하는 듯한 꿈을 꾸었었지만 도돌이표처럼 자꾸 돌아간다. 어제도 얼른 연락해야 하는 사람에게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시험 보는 꿈. 항상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고 나는 겨우 문제 한두 개를 풀었을 뿐인데 이내 시험지를 걷는다.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나는 시험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시험이거나 공부를 하지 않았거나 시간이 모자라거나... 어제도... 그랬다... 


쓰린 배에 뜨거운 물주머니를 얹고 흐릿한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어떤 것이 배 안에 있구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에게 통증으로 알려주는구나. 내 의식은 희미하게 뿌옇게 그냥 요즘 좀 우울한 거 같아, 바닥에 가라앉지 말아야지, 한다. 사실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이럴 땐 인간의 언어가 유한하다. 우리는 엄청나게 엄청난 것들을 몇 안 되는 언어로만 겨우 상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원망스럽고 때로는 기특한 나의 내장, 그 기특함 뒤에는 내 분노를 내 우울을 내 좌절을 내 불안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는 자각이 따른다. 때로는 불쌍하기까지 한 나의 내장! 


<행복의 약속>을 읽으며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는 여러 순간들을 맞았다. 어떤 문장에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어떤 문장에서 보이는 내 모습, 어떤 문장에서 생각나는 사람, 어떤 문장에서 이건 도저히 말로 하지 못할 것같아 싶은 생각... 한없이 떠들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그저 입 다물고 지나갈 것 같기도 한, 기분. 그래서 눈에 걸리는 문장들을 천천히, 멈추어 바라본다. 나는 저 문장들 어디쯤에 있을까. 왜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올까. 아직 중반쯤 읽고 있지만 어쩌면 나는 책 속 문장들을 이미 경험했을지도, 무의식 속에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확인하거나 들여다 볼 수 없는 그 곳,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어떤 뚜렷한 의식도 들어서기 전의, 모호하고 경계도 없는 그 곳, 잠에서 깨어나 속쓰림을 알아채기 전에도 내 위가 쓰림을 갖고 있었듯이, 그 언저리 어딘가. 


혼자 살고 있는 아빠와 아침에 통화를 했다. 유년 시절 내 불행의 최대 원인이었던 아빠. 생각할 때마다 항상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어떻게든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내 마음은 혼란스럽다. 아니 가증스럽다. 아니 모르겠다. 아빠라는 사람 자체가 나에게 불행이었던 것은 아니다.(맞나?) 그건 그 사람이 가져오는 무언가였다. 밤의 공포였다. 지금은 어떤가. 이빨 빠진 호랑이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몸집이 더 작아지고 있는 할아버지인 그는, 그러나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실체 없는 불안. 아니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불안. 그만 돌아서고 싶어지는 마음. 그래, 미래가 문제구나. 걱정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건 모두 미래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건 과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의 걱정은 과거로부터 온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이런 성격인가 싶기도. 하지만 과거에서 벗어난다는 건 무엇이며 그렇게 벗어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미래는 각자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닥치겠지만(항상, 영원히),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무엇이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모든 걱정과 불안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이제는 내 내장도 좀 알아줬으면.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발견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아니,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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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님의 몸은 알고 있습니다!!!

“뇌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5퍼센트가 장의 내분비 세포인 장내 크롬친화성 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장이 세로토닌 대부분을 생산하고 또 사용한다는 사실은 장과 뇌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연결되며 그 연결이 상당히 대등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장은 뇌와 척수가 관여하는 중추 신경계와는 별도의 신경계로 장운동을 조절한다. 식도부터 장에 이르는 9미터의 길에는 적게는 2억 개에서 많게는 5억 개나 되는 신경 세포가 분포해 있다. 척수에 퍼져 있는 신경 세포에 버금가는 양이다. 무수히 많은 신경 세포를 가진 장은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필요한 음식은 소화하고, 위험한 것은 구토나 설사를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신경생리학자 마이클 거숀은 장이 가진 신경 세포의 규모와 장 신경계의 독자적 능력을 강조하려고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똑똑한 난티나무 장 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5 06:15   좋아요 1 | URL
아아 쟝님 저 북플에서 밀린 좋아요 누르다가 그만 잠이 와버려요… 자고 내일 다시 올게요!
오 내 장 똑똑한!!! ㅎㅎ 일전에 어디선가 들은 기억 있는데 일케 적어주셔서 감사!! 장이 부릅니다, 난티나무야 자야지~~~ ㅠㅠ 졸려😵‍💫

난티나무 2023-04-25 15:13   좋아요 1 | URL
아니 진짜 9미터에 2억~5억 개라니 @@ 너무 대단한 거 아니에요????@@ 오늘부터 배를 더 많이 쓰담쓰담 해야 겠어요. 고생이 많다!!!! ㅎㅎㅎ 며칠 전에 스트레스 뽱 받아갖구 밥만 먹으면 배가 아프고 설사하고 그랬는데 ㅠㅠ 내 장은 느무 똑똑하다 진짜….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4-26 00:24   좋아요 0 | URL
유산균 먹고 햇빛보고 산책하면 세로토닌 뿜뿜!! 나 말고 내 장을 행복하게 만들면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ㅋㅋㅋ 장한테 먼저 잘해주는 전략을 취해보아요~!

공쟝쟝 2023-04-2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을 20대 내내 앓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닌데….
저는 사회가 제시하는 행복의 기준이 제가 달성하기엔 너무 높은 것 같아서… 이미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주눅들었던 시간들이 좀 아까운데… 이 책 보고는 아 기준에 맞는 사람들도 미래로 행복을 계속 유예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러면서 ㅋㅋㅋ 좀 꼬수왔다 ㅋㅋ (꼬였죠?)
그래도 나 자신에 대한 행복의 기준은 낮은 저 스스로가 좀 좋아졌어요… 음… 혼자 살면서 저는 깔깔 웃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언제 웃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특히 동생들이랑 있을때 많이 웃어요. 그런데 저는 웃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 더 행복해요. 웃지 않아도 행복해요. 난티님 😌

난티나무 2023-04-25 06:15   좋아요 0 | URL
(행복하게 잠든다…. 내일 봐요~~^^)

난티나무 2023-04-25 15:10   좋아요 1 | URL
(쟝님 안녕!)
음 저는 어릴 때부터 상당히 냉소적 시각을 가지고 아 진짜 이런 🐕떡같은 세상 무엇?! 이런 마인드로 살지 않았나 싶고요, 그 세상이란 내 몸이 거하는 세상, 미시적 세상이었고… 20대에는 저도 자주 위장에 탈이 나는 생활을 ㅎㅎㅎ 그런데 지금도 툭하면 위장 탈이 나니 ㅠㅠ 발전(?)이 없는 건지 내 삶 계속 그런 건지…@@ (아이고 속쓰려…)
그래서 뭐, 행복? 흥! 너희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거 다 그짓말이야, 그런 따위는 없어! 이런 마인드였다고 할까.. 뭐 지금도 그렇고요. 그러면서도 그 일반적인 잣대에 비추어 거기 미치지 못하는 내… 상황보다는 내 상태를 탓하게 되는 거 같아요. 쟤는 하는데 난 안(못) 하네? 쟤가 해서 이룬 건 안 부러운데 쟤가 한다는 그 실행력은 나한테 부족해서 짱나네? ㅋㅋㅋ 하는 건 적으면서 기대치만 높아갖고 ㅠㅠ
행복은 지나가는 거다! 웃지 않아도 행복하다! (알쥬알쥬) 작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순간들, 적어본 적 있어요. 늠 많더라고요.ㅎㅎ 주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이었고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어요. 자잘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감정들에는 이입을 잘 하는데 크고 눈에 잘 보이는 감정들에는 이입을 잘 못한다… 대응도 잘 못한다… 이건 경험치에서 오는 차이가 아닐까, 싶은. 몸에 익어버린 습관처럼 말이죠.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처진 입꼬리를 올려봅니다.
쟝님 댓글에 행복한 난티나무!!! 🥰

공쟝쟝 2023-04-26 00:30   좋아요 0 | URL
행복역치가 낮아서 아주 작은 것으로도 아주 깊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