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한 권의 책을 읽기에는 긴 시간인데 어째서 매번 말일에 끝내지 못해 허덕이는지? 미스터리. 하루를 남겨놓고 저녁에, 아침에,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끝내야 한다는 강박 ㅋㅋ) 비스무리한 것에 시달리며 완주. 재독임에도 처음 힘들었던 부분이 새롭게 힘들었다. 신기하다. 조금 나아져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망상이었던 걸로. 공부한 게 없으니 똑같이 힘들지? 역사에 무지해서 다시 읽어도 @@. 당연하다. 성서 이야기도 마찬가지. 그러나 견디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거다 러너는 11장에서 독자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며 매우 고맙게도 책 전체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준다. 10장까지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마무리가 될 것이다. 밑줄을 치다가 플래그를 붙이다가 포기한 챕터가 11장이다. 전체가 밑줄감이다. 달달 외우고 싶다. 밑줄긋기로 옮기기도 불가능하다. 챕터 전체를 다 옮겨야 할 테니. 11장의 첫 문장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외워두어야 한다.
"가부장제는 거의 250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남성과 여성에 의해 형성된 역사적인 창조물(historical creation)이다."(373)
남성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남성 집단 전체를 지배집단으로 간주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마찬가지로 여성 집단을 뭉뚱그려 피지배집단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가부장제가 남성과 '여성'에 의해서 만들어져 유지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부록-용어정리 부분도 좋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책 속의 '가부장제'는 형체 없이도 내 옆에서 아직 살아숨쉬고 있고 나는 자주 숨이 막힌다. 거기서 걸어나오라고, 그러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천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따르고 뼛속까지 가부장제를 내면화한 사람이 그걸 완벽하게 벗어던질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또한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쉽게 생각하는 태도일 것이다. "여성들은 이중적 삶을 산다. 전체 문화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여성문화의 참여자로서."(418) 나도 그렇다. 그 이중적 삶이 더이상 구분되지 않을 때가 올까,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세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나가는 과정은 지난한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다. 거기에 따르는 회의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하는 것. 희망은 사람을 꿈꾸게 한다는 말을 가볍게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흉흉하고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도 단단히 정신을 붙들어매는 것, 내 주변의 가부장적 관념들을 깨부수는 것, 내 안의 내면화된 가치관을 벗어버리는 것, 함께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분노하는 것.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다시 다짐하기. 익숙한 습관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쉬우니까.
6월에도 (조금 힘들었지만) 참 좋은 독서였다. 거다 러너 책 좀 더 번역해서 내주면 좋겠다. 다른 책 두 권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와 <왜 여성사인가>는 품절이다...
"우리는 의식의 변화를 두 단계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최소한 당분간은 여성중심적(woman-centered)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가능한 한 가부장적 사고를 떠나야 한다."(396)
* 맞춤법
- 42 : 7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로서' => 으로서 ('서' 빼고 그냥 '으로'만 써도 될 듯)
- 59 : 마지막 줄 '양성이 모두 수렵에 참여했다고 믿다.' => 믿는다.
- 321 : 밑에서 7줄 '성서의 창조설화에 대해 도발적인 해석을 내놓다.' => 내놓는다.
- 355 : 밑에서 6줄 '기원적 650년경' => 기원전
- 415 : 15줄 '성차별주의에 의해 서로로 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다.' => 서로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