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두 번 보고 각본집 두 번 읽고 써보는 주절주절.

일차 폭력으로 인한 이차 폭력. 이 말을 떠올리게 만든 인물, 홍산오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홍산오, 그는 죽기보다 감옥가기를 싫어하는 인물이다. 한 여자 오가인을, 그에 의하면 '사랑'했다. 그는 그의 방식대로 사랑했고 그의 방식대로 죽음을 택했다. 죽는 방식도 폭력적이다. 가위, 피, 추락. 그런데 계획한 바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오가인이 보는데서 그렇게 한다. 폭력에 폭력을 더한 셈이다. 자기중심주의라고밖에... 정말 홍산오가 오가인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나? 죽으면서까지 트라우마를 만들어주는 게 사랑인가? 홍산오를 끌어안고 해준을 올려다보는 가인의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이게 남자들이 사랑하는 방식인가요?"

이 방식은 송서래가 택한 죽음의 방식과 대비된다. 산오의 "... 너 아녔음 내 인생 공허했다"라는 말은 얼핏 감동적으로 들리지만 이건 사랑고백도 뭣도 아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다. 항상 '나'가 세계의 중심이지. "여자들은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하고 자요?" 산오의 이 말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포인트는 "자요?"다. "(걔랑) 잤니?"와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사귀어요? 도 아니고 결혼해요? 도 아니고 자요? 이 말은 남자들이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사랑 = 섹스) 그래서 중요한 대사다. 해준이 산오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설득을 위해서였거나 말거나 간에. 더군다나 똑같이 비슷한 말을 나중에 해준도 하지 않나. 이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그들이 '사랑'한다고 믿는 여자들은 철저히 타자가 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사랑. 그러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타이밍은 늘, 맞지 않게 되어 있다. 이성애에 있어 사랑에 대한 생각,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어긋나서 슬픈 게 아니다.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 우리는 그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


그러면 서래와 해준은 어떠한가.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는 상황을 적확하게 본다. 해준의 머리꼭대기에 있다고 말해도 좋다. 사람이 어리석어지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자주 그 지점에 도달해버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순간들을 갖는다. 서래는 남자들의 사랑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해준이 말한 적 없다던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의 사랑이 언제 끝났는지 안다. 그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도, 비겁한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초반 서래가 해준에게 보이는 관심과 행동들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호기심,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유형에 대한 호기심일 확률이 높다. ("말씀. ... 아니 사진." 해준은 이걸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근거로 삼지만 틀렸다. 서래는 '말씀' 부류다. 해준은 계속 틀린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유형,이라는 말은 관객에게도 유효하다. 여전히 찌질하고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여전히 폭력적이고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전형적인 남자이지만, 그래도 지금껏 보지 못한 유형은 맞다. 과연 그런가 생각은 좀 해야 한다. 그저 요리 좀 하고 눈썰미 좀 있다고 해서 과대평가를 하는 건 아닌가 의심해봐야 할 지점이다. 잠깐의 호의나 친절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담배. 사랑하니까 이해해준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해준은 동료들에게 폭언,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 막상 자신은 피의자를 두드려팬다. 욕설은 하지 않지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서래에게 한다. 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말만 하고 증거를 없애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품위' 있는 남자니까.

어쨌거나 서래는 해준 때문에, 혹은 해준을 위해서, 혹은 해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죽은 게 아니다. 서래는 다 알아버려서 죽었다. 사람도, 세상도. 탕웨이의 아우라에 가려져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방인의 고달픈 삶. 밀입국 중국인. 영화에서는 외국인으로 나오지만 같은 한국여성이라 해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래의 삶이 훨씬 고달플 뿐.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처절함마저도 아우라에 가려졌다. 반면에 서래가 보여준 당당함은 가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자주 부족한 '당당함'. 서래 캐릭터가 갖는 양가성. 혹은 장단점. 어쨌거나 해준이 서래의 죽음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기폭제가 될 수는 있었겠다. 세상은 서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를 이용하고 유린했다. 사람에 대한 약간의 희망을 해준에게서 보았으나 그것 역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끝의 끝에서 마지막 불이 꺼졌다. 죽음은 서래가 행한 다른 방식의 사라짐이다.

해준은 서래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작고 귀여운' 아내 정안에게는 없는 매력의 소유자. 그가 중국인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국적을 알기 전에 이미 해준은 서래에게 반했으니까. 그가 서래에게 한 말, "서래씨는요, 꼿꼿해요."는 스스로에게 바라는 이미지이다. 남편, 경찰, 아버지로서 꼿꼿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자부심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스스로 품위있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없어보인다. 사랑은 투사이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투사해 그 환상을 좋아하는. 서래가 꼿꼿한 것은, 우스갯소리지만 등을 잘 굽힐 수 없는 몸을 가져서 그럴 수도 있다.(풋.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는 항상 자세가 '꼿꼿'했다.)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해준에게 매우 중요하다. 마치 그것만이 그의 삶에서 의미가 있어보인다. 이 지점도 매우 중요한데, 남자들은 흔히 자부심을 자존심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준이 '붕괴'되었다고 한 말은 자존심의 붕괴일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 채 서래를 범인이라 생각하고(배신 혹은 기만당했다는 자책) 어떻게든 서래가 범인임을 입증해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노력. 어리석고 어리석다... 그렇다면 해준이 서래를 찾아 바닷가를 헤매게 된 이유는? 서래가 범인이 아님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서래에게 사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품위'있는 형사니까. 설령 그가 다시 서래를 만났다 하더라도 뻘소리를 할 확률 100%. 그는 사랑이 무언지 계속 모를 것이다. 정안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서래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해준이 깨달았다고 치고 하는 말이다. 아닐 확률이 높지만.) 해준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랑(서래)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이었고, 서래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랑(해준)이 아니라 서래 자신이었다.

서래가 중국인인 것은 여성과 남성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절묘한 장치였다. 아마 이 부분에서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정안과 해준이 그랬듯이, 가인과 산오가 그랬듯이, 서래와 해준이 그랬듯이. 이 영화의 주제는 여남 간 소통의 불가능성, 바로 그것이다. (뭐 원래 인간 사이에 소통이라는 게 불가능하기는 하다. 쩝)


"뭐라고요? 한국말로 해 줘요."


(한국말로 하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 서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 연수다. 서래와 가장 친밀한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

+ 서래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건 좀 아쉬웠다. 처음엔 그냥 아쉬웠는데 가만 생각하니 무수한 영화들에서 얻어맞고 상처입고 죽어 사라지는 여성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죽어 사라지는 여성의 재현, 이라서 아쉬운 것같다. 잘 만든 영화인데 군데군데 이렇게 반복재현되는 것들. 현실을 반영해 굳건한 남성의 무너지지 않는 세계와 자꾸만 흔들리고 무너지는 여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어디까지 반영이고 재현이고 어디에서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건지 좀더 고민해 봐야.

+ 해석은 내 마음대로.














(알라딘에는 영화이미지를 올릴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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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9-14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해석에 90%쯤 동의합니다.. 남은 10%는 잘 이해 못해서 그런 걸로.

난티나무 2022-09-14 19:30   좋아요 3 | URL
오 90%! 수하님 더 방가방가 ㅎㅎㅎ
10% 어느 지점인지도 궁금해지네요.^^

건수하 2022-09-14 23:47   좋아요 2 | URL
10%는… 사실 깊이 생각하고 쓴 수치는 아니에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결국 남자와 여자,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뭐 이런 측면에서..

사실 해준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좀 경박(?)하다고 해야하나… 유부남이고 용의자 후보인데 막 초밥 시켜주고 허벅지 보여주는데 여경 나가라고 하고 남의 집 들여다보고 자기 집 데리고 가서 요리해주고… 너무 조심성이 없지 않나요.

그게 그 사람의 사랑이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전 남자의 사랑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니까요.

근데 서래의 선택은 성별만이 아니라 확실히 계급? 어쨌든 상황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해준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도 뿌렸고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었을까..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게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도 같았고 언어 소통이 잘 안되는 점도. 이 부분 좋았어요.

난티나무 2022-09-15 00:58   좋아요 3 | URL
아! 맞아요! 그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해준의 행동들, 특히 ‘잠복‘을 빗댄 스토커질! 아 나 경찰이고 잠복할 수 있고 그러면 걔를 볼 수 있는 거구나! ㅠㅠ
경박하다는 표현, ㅎㅎㅎ 속은 그런데 겉으로는 품위 있는 척 하는 거. 웃겼고요. ㅎㅎㅎ

서래는 이미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 길목에 해준이 있었던 거고요. 어쩌면 임호신을 만나기 전에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수하님 댓글 보니 해준을 좀더 깔 걸 싶네요.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14 18: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흥미롭게 읽었어요. 그리고 제게는 아주 음, 정확한(?) 아 어떤 단어가 좋으려나, 아무튼 동의할만한!!! 해석이라 보입니다. 저는 영화를 한 번 봤고 각본집은 슬쩍 들춰보기만 해서, 제대로 다시 뭔가 느끼기 위해 한 번 더 봐야하나? 생각하지만 한 번 더 보고싶진 않더라고요. 너무 좋은 글이에요, 난티나무 님. 크-

난티나무 2022-09-14 19:45   좋아요 4 | URL
사람들이(여성들이 ㅎ) 자꾸 보고 또 보고 한다니까 은근히 나도 더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더 드는 듯해요. 저도 그랬고요. 처음 봤을 때 흥~! 이랬기 때문에 ㅋㅋㅋㅋ 다시 본다고? 그랬거든요. 풋. (저는 아마 더 잘 ‘비판‘하려고 다시 본 거...ㅋㅋㅋ 좋아서 다시 본 것은 확실히 아님...ㅎ)
이 영화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알겠어서 조금은 슬프기도 했어요.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숫자)이 극소수라 느끼는 것처럼 영화를 곱씹는 여성들도 아마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도요.^^;;;

다락방 2022-09-14 1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만, 저는 여기에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파괴적이긴 했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는,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상대의 마음과 기억에 각인되는 그런 사랑이요. 그 사랑은 결코 제가 할만한 사랑은 아니지만, 서래가 선택한 건 저는 극진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자기파괴적인 그러나 극진한, 영원히 기억될만한 그런 사랑이요. 그런데 이건 난티나무 님 말씀처럼 서래가 서래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니, 궁극적으로는 그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9-14 21:26   좋아요 3 | URL
맞아요. 어떤 형태이든 사랑이 있죠. 다만... 서래는 사랑을 했지만 해준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아니면 적어도 그것이(어떤 것이) 사랑인 줄 모르는 사람으로요. 그리고 아주 조금 서래의 사랑도 의심(?)이 가는데, 왜냐하면 처지가 너무 안 좋고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이 엿보이는 해준에게 끌린 건 아닌가, 방어기제로써? 무의식적으로? 하하 그런 생각도 해보았더랬습니다. 아무튼지간에 서래는 해준의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을 시작하는데 해준이 멍청하게 말을 해서 현실을 깨닫게 되잖아요. 다르지 않구나... 그래서 미결사건으로 벽에 사진 붙여놓고 잠 이루지 못해라, 하는 말이 저는 좋았어요. 딱 그만큼이 해준의 사랑(?)이고 서래는 그걸 아는 사람. 거기서 더 나갈 수 없는 사람이 해준이라는 걸 아는 사람. 이 지점은 계급과도 어느 정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우리는 사랑에서 계급을 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탕웨이 아우라가 가려버린 부분이 이 계급이기도 하고요.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듯해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니까요.^^

공쟝쟝 2022-09-15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 같은 남자는 나같은 여자와 결혼해주지 않으니까요…
저도 많이 동의하는데.. 그래서 사랑 안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영화 보면서 사랑하고 싶었어요!!! 난티님 평 너무 좋으네요! 정확하기도 하고 그래서 뼈아프기도 하고요.

난티나무 2022-09-15 16:52   좋아요 1 | URL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세요!!!!! ㅋㅋㅋㅋㅋㅋ
우리와 사랑을 나눌 사람 음 여성 제외하고, 과연 있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따아...

공쟝쟝 2022-09-15 17:45   좋아요 1 | URL
없다고 말하자 그것이 현실!

얄라알라 2022-09-17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보니까....˝없다. 없다˝의 영화처럼 느껴졌는데

난티나무님께서 이렇게 적어 주셨네요..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 우리는 그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_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9-19 19:55   좋아요 0 | URL
없다, 그쵸. 없다... 흑흑흑
몸은 좀 괜찮으세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왜 쓰는가"와 동격의 물음이다. 나의 삶과 글쓰기와 사회는 어떤 관계인가. 나의 글쓰기 태도는 어떤 가치관에서 나온 것인가. 비슷한 말 같지만 조금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나의 글쓰기는 어떤 사고방식 때문에 가능했는가." " (10) 



바로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들이 있다. 왜냐하면...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 단순함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답은 늘, 왜, 한두 문장으로 명료하게 끝나야 하는가? 사람들과 만나고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고(반대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도 마찬가지) 돌아와서도 계속 그 질문을 생각한다. 내가 한 대답을 떠올리고 그 대답이 충분치 않았음을, 혹은 조금 어긋났음을 깨닫는다. 아차 혹은 에잇 싶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 나에 대한 이미지 하나를 만들어 돌아갔다. 다음에 만나 다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그의 뇌리에 박혀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내가 계속 변화하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왜 쓰니,라고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샘의 다른 책 제목처럼 나는 "나를 알기 위해 쓴다",가 가장 적절한 대답 같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모르겠다. 지금은 계속 분열하는 나를 찾으려고, 살피려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잘 보려고, 나와 대화하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잘 보려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내 생각은 지금 어떤지, 어떻게 변화해갈 건지를 보려고, 이해하려고, 분노하려고, 반성하려고, 그러기 위해 혹은 그러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고, 좀더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내 말과 행동과 생각을 정당화하려고, 나를 나에게 이해시키려고, 조금 더 편해지려고... 이런 이야기를 '너는 왜 쓰니'라는 질문 앞에 즉각 늘어놓을 수 있나? 없다. 나는 즉답의 능력이 한참 부족해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그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대답하지 못하는 성향이 앞으로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 이불킥이 줄어들 거라는 믿음, 그거 없이 어떻게 살아?) 


왜 쓰는가, 보다 "나의 삶과 글쓰기와 사회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에 더 꽂힌다. 써야 한다는 강박 비스무레한 것이 생겨버린 지금은 책 읽고 나서 무조건 쓰기, 읽으면서도 메모하기, 지나면 잊으니까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기, 스치는 생각을 잡아채서 끄적거리기, 등등을 시전하면서 왜 보다는 어떻게를 더 고민하게 되는 듯한데 사실 이 어떻게,도 고민한다고 해서 짜잔 어떻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아서 때로 끄적거려놓고 차마 플랫폼에 올리지 못하는 글도 있다. 어떻게든 나는 '살고' 있고, 그것을 쓰고, 쓰는 와중에 내가 속했거나 아니거나 한 사회에 대한 내 생각도 거기 들어가게 마련이니 뭐 단순하게 생각하면 셋이 불가분의 관계, 그 정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그냥 글이 내 삶이고 사회고 뭐 그런 거지. 거꾸로도 마찬가지. 셋이 한몸 속에 들어있는 것. 조심해야 할 것은 언어의 한계와 제한성.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언어에 의해서(만) 물질,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행위가 존재를 가능케 한다"(12)는 정희진샘의 말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흔히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도그마와 다양성을 대립하는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각각의 다양성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틀린 생각을 다양성이나 취향으로 옹호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처럼 탈정치적이고 무의미한 말도 없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여혐이 있으니 남혐도 있고, 구타당하는 여성이 있으니 구타당하는 남성도 있다"는 말은 논리도 현실도 아니다." (20)



논리도 현실도 아닌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답답하다.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모두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팩트를 팩트로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한숨이 나오고 그만 절망하는 단계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오곤 한다. 누군가는 아예 말을 말라고 하고 누군가는 아예 관계를 끊으라고 하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모든 관계를 끊으면? 그것도 지향해야 하는 바는 아니지 않나? 세상은 어떻게 변할 수 있나?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리면 지구는 벌써 멸망하고 인간의 흔적은 싸그리 없어지고 없을 텐데. 그러나 스스로 각성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각성할 수 있게 뭐든 하나씩 던져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이 책의 다른 제목이 있다면 '공부란 무엇인가'이다. 아는 것을 버리자. 자기 입장에서 출발해 경계를 넘어서자. 우리 모두 트랜스포머(trans-former)가 되자!" (24)



아는 것을 버리는 일은 지금껏 안다고 믿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몰랐던 새로운 것을 깨닫고 지식을,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과정이라고 풀이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혹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것이 곧 변화하는 지식 혹은 의견일 수 있다... 자기 입장에서 출발, 우선 내 입장 내 위치를 깨닫는 것. 경계 넘어서기도 실천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매사 염두에 두지 않으면 자칫 내 위치를 망각할 수도 있으므로 또는 함부로 행동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그런데 어째서 이 어렵고 어려운 일을 '아는' 사람만 해야 하는지. 여기서부터 혹은 여기에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이 있(었)을까? 




+ 9쪽 인용구에 대해서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어야 해.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 장춘익 " 

-> 이 구절 난 좀 맘에 안 드네. 왜냐. 이건 완전히 남성의 시각으로 보는 페미니즘이 아닌가 말이다. 페미니즘도 철학이고 가치관이고 학문이다. 이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남성사회 남성지식인인데(아 가부장적 마인드를 가진 여성들 포함)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 신뢰를 받으라니, 이런 황당무계한 말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려면 어차피 다른 분야도 다 공부해서 지식뿜뿜해야 되는 건 맞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여성학자들 대체로 다 똑똑하잖아! 박식하잖아! 그걸 인정하기 싫으니 저런 말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고 공감도 안 됐다는. 물론 정희진샘은 여러분 공부하세요, 많이 하세요, 이걸 강조하려고 가져오셨겠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알아챘지만. 아님 이렇게 까라고 가져오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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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9-13 0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님.. 우리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장춘익 ㅋㅋㅋㅋ 저거 나 불만 이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하님 댓글에 나는 맘에 안든다고 달아놨는데 ㅋㅋㅋㅋ 여기서 내 맘 같은 말 똑 나오네요?
이 책 좋죠? 하하. 너무 좋습니다. 난티님 글 보니까 더 좋아요!!!!! 여기는 오늘부터 연휴 끝나고 또 일상이 시작됩니다. 건강 잘 챙겨가며 공부열심히 하세요~!

수이 2022-09-13 09:47   좋아요 3 | URL
수하님도 좋다 했고 단발님도 좋다 해서 저도 좋다 했는데 아 저렇게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허허허. 그런데 장춘익 아저씨가 왜 저렇게 말했는지 전 알 거 같아요. 물론 남성의 시각일 수도 있지만. 한나 아렌트 언니도 그렇고 다른 언니들도 그렇고.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리려면 다른 쪽 공부도 잘 해야하고 그래야 다른 이들이 네 말에 좀 솔깃해지지 않겠느냐 이런 뜻 아니었을까요. 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데 페미니즘은 읽는 이들이 정말 제한적이라는 걸 다시금 느껴요, 요즘 들어. 나도 읽어봐야겠군요. 저 책. 결국은.

건수하 2022-09-13 10:3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 새벽에 일어나 난티님 글 보고 좀 놀랍기도 하고 찔리기도 하고.
그러나 여기는 못 달고 공쟝쟝님 글 댓글에 달았어요.

장춘익 님이 남자 분이라 그리고 직접 들은게 아니라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저도 아래 비타님 말씀하신 정도의 뜻이었다고 생각.
정희진 님이 까는 뜻에서 얘기하신 게 아니었다면요. 그 분은 까려면 그냥 까지 않았을까 뭐 그렇게 생각해 보면서?

공쟝쟝 2022-09-13 10:35   좋아요 1 | URL
일단 남자는 깐다 ㅋㅋㅋㅋㅋ 난 아인슈타인도 깐다 ㅋㅋㅋ 하이젠베르크도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농담이고, 전 딱 하나요! 좀 편해지면 안돼? ㅋㅋㅋㅋ 좀 편하게 살자는 거죠 ㅋㅋㅋ 그리고 남자 설득할 필요는 없는 듯요 ㅎㅎ 남자는 남자가 설득해야죠ㅋ 여자는 자아에 집중하자고 필리스 채슬러가 여성은 당분간 여성중심적이어야 한다고 거다러너가 말씀 하셨습니다 ㅋㅋ 솔깃하게 만드는 건 나중에. 일단 나 먼저 나를 사랑하는 페미되기 ㅋㅋ 나 그거 하려고요 ㅋㅋㅋ!!!

수이 2022-09-13 10:42   좋아요 2 | URL
아니 남자들을 설득하자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 알고 페미니즘 읽는 여자들 진짜 극소수, 전 남자들보다 같은 여성들 입장에서 말한 거예요. 페미니즘이 왜 필요해? 난 여자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한걸~ 이라고 말하고 생각하며 사는 여자들이 팔할 이상이라고!!

공쟝쟝 2022-09-13 10:4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정말? 내주변은 다 이기적인 페민데 ㅋㅋㅋㅋㅋㅋ 다 자기 입맛대로 한남 팰 때 페미 가져다 쓰고 책읽는 사람은 거의 없음ㅋㅋㅋㅋ (근데 난 걔들이 맞다고 생각해요 ㅋㅋ) 오 여자로 태어나서 행복해서 남 책읽는 거 배아파하는 그심성 연구해봐야겠다 ㅋㅋㅋㅋ

건수하 2022-09-13 10:47   좋아요 2 | URL
비타님 마음 이꼴 제 마음 ㅋㅋㅋ

남성보다 여성 설득이 먼저죠.
팔할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ㅠㅠ

공쟝쟝 2022-09-13 10:46   좋아요 1 | URL
아 가부장제 부역이 그래서 나온 말이엇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기혼페미 귀하신 분들 ㅋㅋㅋㅋㅋㅋㅋㅋ !!!!!!!!!! 완전 💕💕💕💕💕💕💕

수이 2022-09-13 10:54   좋아요 2 | URL
페미는 여성들이란 카테고리 자체만으로 봐도 극소수라고 봐요. 제 친구들 중에 여성주의 읽는 이들은 알라디너 동지들이 전부, 아무리 여성 서사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해도 이게 전반적으로 나아가기까지는 시간이 진짜 오래 걸릴 거예요. 제 생각이지만.

공쟝쟝 2022-09-13 10:50   좋아요 1 | URL
비타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는 미래가 환영하는 사람들~!! 역시 50살의 쟝쟝이 적중하네요?! 저는 지금도 미래도 행복하려고요!!!! 암튼 설득하는데 에너지 빼지마요 ~ 자기 자신이 되어요~ 나는 고구마다 행복한 고구마 흥얼흥얼

단발머리 2022-09-13 12:33   좋아요 3 | URL
장춘익님 말을 전한(전하는 형식이었음) 정희진쌤의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속 저 문단을 읽어본 사람으로서(에헴) 정희진쌤의 의도는 까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고요. 정희진쌤이 장춘익 선생님의 제안을 ‘긍정‘하신 걸로 보입니다.

다른 거 다 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정희진쌤이 개인의 발명, 자본주의, 근대의 탄생, 탈식민주의, 환경주의, 마르크스, 푸코, 해러웨이, 스피박, 니나 유발-데이비스, 코젤렉, 클라스트르는 모르시고 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케이트 밀렛, 파이어스톤, 이리가레만 이야기한다면 좋아하실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없을걸요, 아마? 나는 선생님의 지식이, 선생님의 존재가 지적인 열망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거든요. 그건, 장춘익 선생님의 제안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원리이기도 하구요.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가 근사해졌다는 의미.... 로 전 이해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9-13 20:33   좋아요 2 | URL
아...저도 장춘익 님의 말을 배움의 자세에 돌입하려고 하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고 쉽게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글을 읽다 보니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완전 다른 책을 읽은 듯한 느낌도 들어 책을 읽을 때, 좀 더 신경 써서 읽어야겠구나! 깨닫고 갑니다ㅋㅋㅋ

난티나무 2022-09-13 22:19   좋아요 2 | URL
와 이 분들~!!!!! ㅎㅎㅎㅎㅎ

공쟝쟝님)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는데 맘에 안 들잖아요, 그쵸? 왜 페미니즘 자체로는 인정 못 받아? 페미니즘이 얼마나 심오하고 어려운 학문인가요? 왜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이런 반발심 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남자는 깐다! 이거도 저랑 비슷 ㅠㅠ 어째요 ㅋㅋㅋㅋ) 설득 필요없다는 말에 공감은 해요. 왜냐! 설득이 안 됨! 남자도 여자도! 설득보다는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그것 또한 내 마음대로 안 됨... ㅋㅋㅋ

비타님) 그쵸그쵸 우리 모두 무슨 말인지 다 너무 잘 알죠.ㅠㅠ 그래서 문제...ㅎㅎㅎ
페미니즘 왜 필요함? 나 여자라서 넘 행복해! 이거 저도 진짜 ㅠㅠ 팔할 이상이 모두 행복하다고 여기지는 않겠지만 ㅋ 그만큼 많은 거 맞는 거 같아요. 위에도 썼지만 설득 전혀 안 되고 ㅠㅠ 씨알도 안 먹히고 ㅎㅎ 가족도 친구도... 그러나 그렇다 치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어제 저녁에는 주방에서 식구 셋을 상대로 혼자 페미 주장! ㅎㅎㅎ 그 순간만은 세상 외롭더이다. 끙. 만약 정말 제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식구들이라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9-13 22:29   좋아요 2 | URL
(넘 길어져서 중간에 댓글 자르면서 쓰고 있음 ㅎㅎㅎ)

수하님) 아니 왜 댓글 못 다셨어요? 막 얘기해도 괜찮은뎅요!!^^
인용구의 말은 무슨 말인지 모두들 너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도 저 말을 만약 여성학자선배언니가 한 거라면 하고 생각해봤는데... 그랬어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요. 장춘익님이 남성이라 그런 것이 아닌 거죠. 그 분도 현실을 넘잘알, 정희진샘도 넘잘알, 그러니 인용하셨을 거라고 보고요. 음 그런데 정희진샘도 못 까는 거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 가끔 합니다.ㅋㅋㅋ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을! 이것도 맞는데 설득 안 되기는 진짜 마찬가지인 듯해요.ㅠㅠ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딱 적당한 표현 아닌가 싶네요. @@ 설득하는데 에너지 빼지 말라는 공쟝쟝님 말씀이 맞아요. 에너지 엄청 들어요. 그러나... 아예 딱 끊는 것만이 답인가는 좀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저도 단발머리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원리를 페미니즘 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독 날 세워 들이대는 느낌 너무 많이 들어서요. 인용구 아니라도 일상에서도 그렇고요.
‘긍정‘하셨다는 말씀, 맞아요. 저도 그런 뉘앙스로 이해했어요.^^


난티나무 2022-09-13 22:31   좋아요 3 | URL
책 읽는 나무님) 같은 문장을 읽어도 생각이 다 다른 것이 독서의 묘미 아니겠습니까.ㅎㅎㅎ 누가 더 맞고 누가 덜 맞고가 아니라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바가 다른 거겠죠.^^
 















* 2장 내용과 감상 정리 


2장에서는 국가와 여성의 관계, 국가페미니즘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폭력의 상관성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를 예전에 읽으면서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와 더불어 국가의 '존재'에 대해 잠깐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으로 한국의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위치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데 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인종, 계층, 젠더, 그밖의 조건들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며 산다는 건 매우 불쾌한 일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국가의 시민이 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존재들 사이에는 틈새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 시민권, 영주권 등을 얻어 국가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인간대접을 받으려고 열심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에하라의 저항은 웃음을 유발하는 사치스러운 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50) 그러니까 우에하라는 일본인이고 일본 국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땅에서 그렇게 '사치스러운 놀이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우에하라가 그러고 있을 동안 그의 아내는 돈을 벌었을 확률이 높다.) 프랑스인이 아니고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여전히 이 사회 이 국가에서 이방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살려면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한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 이방인이지만 이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돈을 벌어 세금을 낼 수 있는지를, 기타등등 기타등등. 증명하지 못하면 협박을 받는다. 못해? 그럼 너네 나라로 돌아가. 나는 선거권을 가진 프랑스 국민이 아니므로 '사치스러운 놀이'를 할 수 없다. 추운 겨울날 아침, 체류증 갱신을 위해 이민국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줄서서 두 시간을 기다린다. 굴욕적이라 느끼지만 하라는 대로 한다. 나에게 프랑스라는 국가는 무슨 의미인가?


("근대 민주주의는 한편에서 법적 수준의 평등을 실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소수자 집단을 재생산해왔다. 이러한 기술은 법이 아니라 지식 권력에 의존한다. 배제의 원리가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실현되는 대상은 비시민 이주민 집단이다. 이들은 국가의 영토에 거주하지만, 국가법의 외부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여기에 다른 소수자 집단과 이주민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국적nationality이 근대 시민성 모델의 핵심인 이상, 국가의 법이 국적 없는 인간을 평등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주민은 결코 포괄될 수 없고, 오로지 배제의 대상만 되는 특수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박이대승,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중에서) 아침에 읽고 있던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다. 좀 이해가 간다.)


두번째 챕터 '국가법 이전 혹은 너머의 여성'에서는 국민일 수 없었던 여성, 국가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모성을 기반으로 한 보살핌의 윤리에서 우월성을 찾았던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면서 봉착하게 된 문제를 언급한다. "차이와 평등이라는 페미니즘의 의제 또한 현실적, 이론적인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남녀평등은 남녀의 능력에 차이가 없으므로, 여자도 남자처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평등의 논리는 남성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그런 보편적인 가치로 여성이 닮아가는 것이다. 남녀평등을 지향한 결과 모두 하나의 성이 되는 값비싼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남성이 됨으로써 동일성을 자기복제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인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성과 평등한 능력을 인정받아서 제도로 편입한다는 것은 국가의 가치를 보편적인 것으로 수용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럴 경우, 차이의 정치에 바탕하여 여성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제도적인 문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남녀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면, 공적인 정치의 장 안에서 여성특유의 차이를 주장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57) 성별간 평등을 주장하는 것, 정치의 장에서 여성정치인들이 보여지는 모습, 얼마간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 에 대해 의구심이나 불편함을 가졌던 이유가 이것인가 싶다. 페미니즘은 성별간의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국가페미니즘(국가와 협상, 보호기능에 의존하면서 변화 가능성 탐색 - 국가페미니즘 (좁은 의미의 관료화/제도화된 페미니즘 포함) -> 여성권익보호를 위해 정부의 여성 관료가 되는 것을 의미)'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세번째 챕터의 내용이다. 국가에 복종함으로써 소멸을 자초했다는 관점. 예를 든 단체는 여성개발원(현 여성정책연구원)이다. 어용, 관변 페미니즘의 국가페미니즘으로의 대체. 핑계 같지만 모든 역사에 취약해서 1980년대의 정치사에도 까막눈이지만 여성단체가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간략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런 변화과정은 여성운동의 딜레마("여성운동을 위해 여성운동을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점"(61))를 보여주기도 한다. "...MB정권의 출범을 위한 인수위에서 정부부처통폐합대상으로 가장 만만한 여성가족부를 들고 나온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를 제외하고는 보건복지부와의 통폐합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63) 10년도 전에 씌어진 글인데 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릇된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는 일은 후퇴다. 지금 한국은 갑절로 후퇴 중이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은 폐지(2015년)된 '간통법'으로 여성과 국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진실은 아무리 경이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반복되면 경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런 아름다움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현상을 습관화라 하고,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 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결혼'이라 부른다."(63) 매번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며 살 수는 없지만 가끔은 똑같은 아름다운 경치에도 감탄하게 되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그런 경이로움이 가능하면 좋겠다. 그러자면 열린 마음, 적당한 거리, 방기되지 않는 자유와 의무,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불륜은 불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한 핑계라고 프로이트는 분석한 바 있다. 그 '어떤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인생의 끝에서 마주치게 될 죽음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불륜을 꿈꾸도록 만드는 '특별한' 사유가 된다. 이 경우 불륜은 죽음과 허무를 지연시키는 아름다운 유혹으로 포장된다. 프로이트의 분석이 빈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67) 저자가 예로 드는 무수한(!) 남성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프로이트의 분석이 일견 맞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애인이나 결혼동반자가 있을 때의 '불륜'이 어째서 윤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무엇이 윤리인가, 무엇이 사랑인가, 이런 질문부터. 일평생 한사람만을 '사랑'하고(그 사랑 지속될 리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하고) 그 사람과만 섹스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내 애인, 내 결혼동반자, 라는 개념이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사랑 없는 섹스는 범죄로 간주했고, 사랑 없는 결혼은 부끄러워해야 할 비윤리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도처에 편재한 사랑은 엄청난 축복으로 간주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와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만 허용된다. 사랑의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배우자라는 한 사람에게만 영원히 유지되는 감정도 아니다."(67) 우리는 결혼 제도와 '바람 피우는 것, 불륜', 에 대해 지나친 잣대를 들이댄다. (주로) 이성애에 있어 신체접촉을 너무도 중요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섹스가 사랑이라고 믿어서이기도 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이기도 하다. 성별 불문, 요즘 시대엔 바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이것이 단순히 육체적 욕망만을 좇는 결과가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불륜에의 욕망을 법으로 막는 것은 인권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폭력적이다. 국가가 그 기원에서부터 폭력적이라면 그런 국가에게 여성들이 간통법 등을 통해 보호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간통죄를 민사도 아니고 형사 처벌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행복권, 성적 자기결정권을 알아서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큰 국가 가부장에게 가서 남편/아내를 혼내주고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가부장적인 국가에게 호소하여 금기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금기를 풀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69) 이렇게 되려면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법안이 여러 방면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갈 길은 먼데 정치판은 쑥대밭이다...


+ 인용

"불륜의 플롯은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협소한 의미의 가족관계(남편과의 불화, 시댁과의 갈등 등)로 환원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가족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의 불륜의 플롯은 '가족은 해체되었다'는 소문을 무성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며 이를 통해 가족 해체에 대한 근거 없는 위기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륜의 플롯은 표면적으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남편과 아내라는 협소한 의미의 가족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와 개인의 삶, 그리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상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의 토대이다. 따라서 가족 이데올로기를 봉건적 속성으로 치부하는 담론은 가족을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로 스스로를 가치 절하시켜 여성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한 가족을 자본주의적 모순의 층 속에서 생산/재생산이라는 경제적 모순의 차원에서 탐구하거나 가족 이데올로기를 계급 모순의 한 발현태로 해명하려는 시도 역시 권력 관계의 상상적 모델로서 작동하는 '가족'의 메커니즘을 해명할 수 없다."(권명아,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중에서)



그리 길지 않은 2장을 읽으면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 멀리 있다는 이유로 어찌 보면 조금은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요즘은 매우 자주) 한국의 세태가 부끄럽고 때로는 (특히 누가 욕하려 할 때) 편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뿌리깊이 박힌 '민족'주의 때문일까.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 국가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인 나에게 국가는 지금 어떤 의미인가. 나는 국가에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해야 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공적 영역에서 여성이 '남성화'되지 않고 행위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추상적인 질문들을 어떻게 하면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까.


+ 막 던져보는 질문 


* "많은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여성이 무슨 억압을 받는다고 그래'라고 하면서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거론한다."(62) "가부장적인 한국사회가 보기에 여성들은 차별받는 집단이 아니라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집단이다."(63)

-> 이 책이 씌어진 10여 년 전에도 이랬다. 지금도 그렇다.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한방에 깨부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가 싶을 때도 있다.


*"사실 일부일처제는 남성을 길들여 가정화(혹은 가축화domestication)하려는 여성들이 이루어낸 하나의 성취라고 볼 수 있다."(64) -> 동의하는지? 이 관점에서 일부일처제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참고 : 초판 1쇄와 초판 3쇄 책의 문장이 다르다. 내 책은 초판 3쇄. 3쇄가 1쇄보다 더 강경...?)


* '불륜'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단어를 대체할 새로운 단어가 있다면? 대체해야 하나? 없애야 하는 단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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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7 21: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년전의 현실이나 지금의 현실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현실을 옹호하려는 이상한 논리들은 더 많아지고 더 강경해진듯요.
저는 저기 남쪽으로 튀어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아 국가 역시 이런식으로 유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걸 막 실감나게 느꼈달까요?
물론 난티나무님 말씀대로 그가 일본에 살고있는 일본 국민이기 때문에, 또 진짜로 생계는 아내가 다 해결해주기 때문에라는 단서가 붙었지만요. ^^

난티나무 2022-09-08 19:17   좋아요 2 | URL
맞아요, 거꾸로 가고 있는... ㅠㅠ
어쩌면, 인터넷 가상공간이라는 곳이 더 큰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어요. 생각만 하던 것들을 가감없이 쏟아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 말해지지 않았던 것들이 쏟아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게 보면 원래 그렇게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그런 분위기에 여러 모로 쉽게 편승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있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상한 논리들이 부각되기 좋은 조건이기도 하죠...

소설은, 맞아요. 저도 비슷했어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런지^^ 좀더 비판적인 입장이 될 것 같기는 합니다.ㅎㅎㅎ
 

읽고 싶은 책,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사고 싶은 책,이라고 썼다. 사놓고 안 읽는 책이 너무 많아서 쭈글쭈글. 















몸문화연구소 <자연문화와 몸> 

'몸문화연구총서'라는 이름을 달고 시리즈로 나오고 있나 보다. 이 책은 번호가 14인데 시리즈 총 12권이라고 나온다. 다른 몸 이야기 책들도 관심이 간다. 그런데 이 시리즈 책들 너무 인기 없는 것 아님? 여기에라도 좀 넣어둬야 겠다. 책은 안 읽었지만 그래도 되겠지? 다 보고 싶은데? 

















































(북플에 자꾸 책이 붙어 나와서 그어보는 밑줄. 이 선도 북플에서는 안 보임.ㅋ)




















김은정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부제 :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저자는 영어로 책을 썼고 미국에서 이 책으로 수상을 했다고 한다.(2017 전미여성학학회 앨리슨 피프마이어상과 2019 미국 아시아학학회 제임스 B. 팔레이즈상)  그래서 옮긴이(강진경, 강진영, 자, 자매?)가 있다. 벌써 흥미롭고. 


책소개: 

장애와 질병이 있는 몸의 현존을 부정하고 반드시 재활하고 극복해야 할 ‘치유’의 대상으로 여기며 폭력적으로 서사화해 온 한국의 역사, 정책, 제도, 문화 텍스트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여성/젠더학과와 장애학 프로그램 부교수 김은정의 저서로,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2017 전미여성학학회 앨리슨 피프마이어상, 2019 미국 아시아학학회 제임스 B. 팔레이즈상을 수상하며 학계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를 다룬 소설, 영화, 신문 기사, 정책 문건, 활동가의 글 등을 텍스트 삼아 ‘치유’를 명분으로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삶을 파괴하는 ‘폭력’을 들여다보고 사회적·정치적 맥락 안에서 분석함으로써, 장애와 질병에 관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재현의 다른 상상력을 제안한다. 「심청전」, 「노처녀가」, 「백치 아다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당신들의 천국』, <만종>, <꽃잎>, <팬지와 담쟁이>, <수취인불명>, <오아시스>, <핑크 팰리스> 등 고전에서 현대까지의 서사와 기념우표, 광고, 사진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망라해 여성주의 장애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장애학적 문화 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가 장애의 문화적 재현, 관련 정책, 사회운동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저자 특유의 정교한 논리와 세심한 언어로 살필 수 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체체파리의 비법, 늠 좋아가지고! (아직 다 못 읽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단편선이라고 하니 혹!!! 이건 또 얼마나 재밌을까?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이 책은 주디스 메릴의 단편이 실린 단일한(ㅋ) 책이다. 주디스 메릴은 어디에 나오느냐.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이다. 거기 나온 소설들 간단하게 목록을 작성 중인데(조금 기다리셔유) 주디스 메릴 단편을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했더니 번역본은 온리!!! 이것밖에 없다. '오로지 엄마만이' 한 편. 종이책은 일시품절이고, 전자책으로 살까.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부제 :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에세이 

이거 어디서 보고 담아놨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험험. 그린비 프리즘총서 40, 이 책모양 어디서 본 듯하다 했더니 낸시 프레이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가 이 시리즈였다. 대박 어려웠는데 음. 이 책도 왠지 그럴 것같아. 비싸기도 하고.@@ 그린비 이 시리즈 책들 포스가 장난아님. 제목만 봐도 그래. 

















사라 아메드 외 <정동 이론> 

순전히 정동,이라는 걸 잘 이해 못하겠어서 마침 읽던 책들에 사라 아메드가 자꾸 보여 검색해봤다. 설명만 읽고는 뭔지 감이 안 잡히는 개념이라. 사라 아메드의 글이 있다는 이유로 보관함에 넣었으나 목차 매우 흥미롭고. 왠지 막 재밌을 거 같은데 어렵기도 하겠지? 갈무리 아프-꼼 총서 라는데, 여기 세 권 다 정동 책이다. 궁금궁금. 다 읽어보고 싶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사고 싶어 하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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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9-02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라 아메드 안 그래도 읽어야지 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마주하니 담아가겠습니다 :)

난티나무 2022-09-03 06:02   좋아요 1 | URL
비타님 전번에 <행복의 약속> 읽으신 거 봤어요. 저도 읽어보려고요, 사라 아메드.^^

얄라알라 2022-09-0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ㅎ 사라 아메드

난티나무님, 감히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저도 깜짝 놀랐어요. 포스팅 읽으며..

몸문화 연구소 하도 이름이 특이해서 예전에 뒤져본 적이 있었는데 ^^ 사라 아메드 마냥

난티나무 2022-09-03 06:05   좋아요 1 | URL
또 통했네요, 얄라알라님과~^^
이렇게 우연이 겹치면 되게 신기하고 기분 묘하죠?
그리고 관심사가 비슷해서 더 자주 일어나는 듯해요.ㅎㅎ
<자연문화와 몸>에 읽고싶어요 한 분도 아마 얄라알라님이었던 듯?^^

거리의화가 2022-09-03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은 저도 예전에 찜해둔 책이었는데 아직도... 시작을 못했네요ㅠㅠ 이런 책이 한 두권이 아니라서...ㅋㅋㅋ
몸문화연구소 시리즈는 놀랍네요! 이런 책은 관심받기 쉽지 않은 분야라 책을 얼마 찍어내지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도 몇 권 찜해갑니다~ㅎㅎㅎ

난티나무 2022-09-03 18:46   좋아요 0 | URL
치유… 찜해두신 분들 많은 것 같더라고요. 거리의화가님도 찜!
몸시리즈 문장들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읽고 싶은 내용이던데 책소개 아래가 다 너무 깨끗…ㅎㅎㅎ 이럴 땐 한국책도서관이 매우 아쉽습니다. 도서관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단발머리 2022-09-03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라 아메드 찜하고 갑니다. 저는 처음 보는 책들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 @@

난티나무 2022-09-03 18:49   좋아요 1 | URL
전 사라 아메드 한 권도 읽은 게 없어요 ㅎ 조만간!!! 엄청 인용 많이 되더라고요.^^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 피임/임신/출산

6월에 읽은 책 밑줄 그은 것 보다가 북플에 안 올렸길래 가져왔다. 문장들이 <임신 중지>보다 훨씬 읽기 쉬웠네. 가져온 부분들 좀 길지만 읽어보시길. 전자책으로 빌려 읽었는데 종이책 사고 싶어지네!


소라야 시멀리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2014년 말, 남성 피임약 임상실험이 피험자 남성들의 부작용 기피로 조기종료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전 세계의 여성들은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부작용이란 여드름, 기분변화, 성욕저하, 우울, 체중증가였다. 첫 언론보도가 나간 후 이틀 내내 어디를 가든 여성들이 이 이야기를 하며 빈정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기자들, 주로 남성 기자들은 여성들의 반응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지에 대해 기사를 썼다.

여성들이 호르몬 피임약의 유해한 부작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남성들을 비웃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다수)는 기가 막혀서 웃었다. 우리는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나 많은 남성이 여성의 삶을 모르고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글은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3만 회 이상 공유되었다. (29%)

2016년 1200명 이상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남성은 계획에 없던 임신을 "절대 걱정하지 않거나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임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새하얀 공포,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의 복용을 깜빡했을 때의 패닉, 응급피임약이나 안전한 임신중절을 처방받지 못한 좌절감을 남성들은 느껴보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자궁 내 피임장치의 삽입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는지, 호르몬 패치의 부작용으로 일 년 내내 생리를 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29%)

드물긴 하지만 잠재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이런 위험성을 차치해도 피임은 비용이 높고 여성이 병원, 진료소, 약국을 여러 번 드나들어야 한다. 한 방법이 잘 통하지 않아서 다른 방법을 시도라도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이런 과정에서 언제든, 한 여성이 잠자리에서는커녕 살면서 다시 마주칠 일 없을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그녀가 선택한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부정할 권력을 지닌다. 약사의 처방전 작성 거부 같은 노골적인 부정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더 흔한 경우는 피임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비싸게, 가능한 한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찾는 사후피임약 플랜 비Plan B를 생각해보자.

2015년 조사 결과, 해당 약을 카운터 뒤에서 꺼내주거나 잠금장치 안에 진열하는 대신 선반에 놓고 판매하는 것을 선호하는 가게는 14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6 왜? 여성이니까. 섹스. 아기들. 통제해야 하니까.

피임 처방전 대부분은 약사들이 작성한다. 선반에서 직접 약을 집는 대신 사후피임약을 요구하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거절당하는 일이야 언제든 다른 약국으로 가면 그만이니 약간 불편한 일 정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런 상황이 구체적인 피해에 영향을 미친다. 피임으로의 접근을 거부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여성의 이익 침해이자 품성에 대한 비난이며, 그녀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로, 이 모든 것은 그물망처럼 빽빽히 얽혀 있는 장애물의 일부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상호작용에는 필연적으로 깊은 분노가 따른다.

남성의 경우, 기본적인 피임기구인 콘돔을 살 때 그들이 극복해야 하는 가장 까다로운 장애물이란 1만 2000년 된 양가죽 기술의 최신 버전이 2달러를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그것을 사러 길모퉁이 가게에 다녀올 만한지 정도다.

여성은 피임을 이해한다. 우리는 위험을 이해하고 원치 않는 임신의 비용을 이해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이끄는 삶과 우리가 세우는 계획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런 태평한 무지는 우리의 관계와 성생활에 개인적 차원의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멍청하고 태만하게 공공정책을 구상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끼친다. (30%)

자녀가 있든 없든 모성의 이상은 우리 여성의 정체성을, 즉 우리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삶과 우리의 감정을 형성한다. 출산은, 그리고 출산과 우리 여성의 관계는 우리가 여성으로서 내리는 가장 중요한 대부분의 결정과 여성인 우리에게 내려지는 대부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모성에 대한 요구는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생식력을 관리하는 데 삼사십 년의 세월을 쓰도록 틀을 짠다. 생식력을 관리할 정도로 운이 좋다면 말이다. 여성이 내리는 모든 결정, 심지어 사회적 압박으로 당사자 여성의 의지가 개입되지도 않는 결정은 여성의 신체, 관계, 생계를 유지하는 능력 및 자아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30%)

자신의 임신 경험을 이야기할 때 여성들은 누군가 좀더 설명해주었더라면, 진부하지 않게 웃기려는 시도 없이 설명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도 이 기분을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내가 아는 여성들, 즉 내가 아는 엄마들인 여성친지들이 왜 이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매일매일 신체와 감정이 변하는 인생의 중대사가 이렇게 침묵 속에 묻힐 수 있다는사실에 좌절했고 화가 났다. 그리고 나 자신의 침묵에도 놀랐다.

그간 내가 섹스를 위한 대상이었다면 임신한 나는 재생산을 위한 대상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후자에는 무방비상태였다. 급속도로 눈에 띄게 변하는 임산부의 몸은 물건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임신한 여성을 빤히 쳐다보고, 논평하며, 만진다. 그녀의 몸은 모두의 소유인 것이다. 심지어 낯선 사람들도 몸무게나 배 크기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무얼 마셔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임산부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는 생각이나 의식이 부족한 상태 혹은 적어도 평상시와는 다르게 주도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어느 쪽이든 대상화는 배가 나온 임산부에게 매일 벌어지는 일이며, 임산부는 자신이 대상화된다고 느낄 때 더더욱 사물처럼 행동하여 덜 움직이고 덜 말한다. 초음파검사를 받을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을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초음파는 부모가 느끼는 커다란 행복과 기대감의 원천이고 진단도구로서 필수적인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굳어진 인식은 초음파가 임신 및 출산에 끼치는 잠재적 해악을 축소하는 데 적극 기여한다. 일반적인 초음파검사에서 우리는 태아를 보지만 여성은 보지 못한다. 발달 중인 태아는 엄마의 신체 내부와는 상관없는 바다, 병甁, 텅 빈 우주를 표류할 수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1965년 『라이프』지에서 18주 된 태아가 타원형의 투명한 태낭에 싸여 무한한 어둠 속을 떠도는 상징적 사진을 게재했을 때 그것은 그야말로 초기 우주비행사들이 찍은 빈 공간 속 지구 사진, 태아 사진과 마찬가지로 놀랍고 새로운 지구 사진을 반영한 것 같았다. 이 태아의 이미지는 스웨덴 사진작가 렌나르트 닐손이 『탄생 이전 생명체의 드라마Drama of Life Before Birth』라고 부른 드라마틱한 사진 에세이의 일부였다.10그때는 지금처럼 여성의 몸의 부재가 문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임신을 표현하는 다른 묘사를 찾아보면-가령 온라인에서 "배아embryo 이미지" "태아fetus 이미지" 등을 검색할 경우(정확성이 떨어지게도 동일한 이미지가 검색된다)-아기만 찍힌 사진이 주로 나온다.

아니면 출산 직전의, 배가 몹시 부른 여성의 사진이 나온다. ‘드라마‘는 여성의 것이지만, 닐손의 사진에는 여성이 소거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미지들로 인해, 문화적 상상계에서 여성들은 임신하여 투명인간이 되거나 비임신상태에서 곧바로 분만이라는 벼랑으로 마법처럼 이동한다. 이 중간시기는 태아가 여성의 몸에 잉태되는 것을 넘어 여성의 몸 그 자체인 시기다. 하나의 접합체에서 갓난아기가 되기까지 모든 단계가그녀의 몸으로부터 구체화된다. 입자 하나, 세포 하나, 체모 한 올, 뼈 한 조각. 그녀의 세포, 혈액, 혈장, 태반, 호르몬, 체액, 소화된 음식, 움직임, 불안, 두려움, 통증, 불편함, 기쁨, 경이, 희망, 그리고 진통까지. (30%)

비교적 최근까지 임신, 출산 시기와 그 이후에 여성이 겪는 변화에 대한 공개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특히 남성은 그러한 변화에 깜깜한 무지의 상태로 남겨지기 일쑤다. 최근의 의학 설문조사 결과, 출산한 지 일 년이 넘은 산모의 77퍼센트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허리통증을 참았고, 49퍼센트는 요실금으로 고생했으며, 50퍼센트는 꾸준한 골반통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 후 거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여성이 골반뼈가 부러졌음에도 골절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고, 41퍼센트의 여성은 골반저근에 파열이 있었다. 4분의 1에 가까운 여성이 출산 후 십팔 개월이 지나고도 성교통을 느꼈다. 분만시 회음부를 절개했거나 회음부가 파열되어 봉합이 필요할 때 의사들은 여전히 ‘남편을 위한 한 땀‘을 더 꿰맨다. 필요한 것보다 한 땀을 더 꿰매어 질관을 조여서 파트너의 성적 쾌락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일부 여성들은 성관계중 극심한 통증을 느낀 후에야 여분의 한 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1%)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내릴 수 있는 재정적으로 가장 위험한 결정이다. 자녀가 없는 여성과 비교해보면 유자녀 여성은 새로 직장을 구했을 때 임금을 평균 1만 1000달러 적게 받는다. 자녀 1인당 7.8퍼센트의 임금삭감을 마주하는 셈이며, 이 삭감은 누적된다. 익히 잘 알려진 이 임금소득의 침식을 경제학자들은 "모성 페널티"라고 부르며, 젠더를 뒤바꿔 말하자면 ‘부성 보너스‘라는 필연적 결과가 있다. 아버지가 되면 남성은 고용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심지어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 더 높다. 그리고 자녀 1인당 수입은 6퍼센트 증가한다.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하는 것은 재정적 위험도의 측면에서 아슬아슬하게 2위다. 이혼한 여성은 자신이 이력서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고,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일에 우선적이면서도 지원은 받지 못하는 책임이 있으며, 충분한 돈을 벌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다양한 이유로 이혼가능성이 높은 중하위층, 저소득 시급 노동자들의 경우 특히나 그렇다. 이런 상황에 처한 많은 여성들은 신용거래나 긴급생활보조금에 접근할 수있는 통로가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여성의 장기적인 재정안전성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이 유연근무를 시작할 때 진정한 위험에 처한다. (31%)

사실상 모든 사회가 모성을 찬미하지만, 이것이 여성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반추하자면 구십 초마다 한 명의 여성이 예방 가능했던 임신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산모 사망의 99퍼센트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미국은 산모 사망률이 가장 높은 선진국이며, 그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오늘날에는 캘리포니아보다 보스니아나 쿠웨이트에서 아이를 낳는 편이 더 안전하며,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여성은 스칸디나비아국가에서 출산하는 여성보다 사망할 가능성이 6배 더 높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흑인 엄마들은 백인 엄마들보다 사망률이 3~4배 높은데, 이는 여성의 건강과 관련한 가장 큰 인종격차다. (32%)

2009년 피닉스의 로마가톨릭병원 관리자인 마거릿 맥브라이드 수녀는 이런 현실에서 표적이 되었다. 맥브라이드 수녀는 위험한 폐동맥고혈압으로 병원에 도착한 임신 삼 개월 차 스물일곱 살 여성의 생명을 구했다. 병원윤리위원회 소속이었던 맥브라이드는 여성의 생명은 구할 수 있지만 임신은 종결시킬 수술을 승인했고, 유산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네 아이의 젊은 어머니는 목숨을 구했지만 맥브라이드는 파문당했다. 주교는 왜 아이의 어머니와 맥브라이드 수녀가 파문되었는지를 설명하며 "어머니의 삶이 아이의 삶보다 우선될 수 없다"라는 성명문을 읽었다. (33%)

재생산정의는 진보를 지향하고 사회의 평등을 촉진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적 의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보수와 진보양측의 전문가들은 일제히 임신중절권을 문제삼으며, 이를 지지할 시 민주당은 중도층의 표심을 잡지 못해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당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여성의 인권을, 여타 모든 진보적인 의제의 목적이 전제하는 기본조건을 기꺼이 무시하겠다는 신호였다. 이런 연관성을 무시한다면 결과는 여성이 직접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체스판의 말이 되는 어리석고 위험한 게임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지적하듯 출산 횟수를 논하는 법안과 정책 수립의 장 어디에도 명백히 여성은 없으며, 그곳에서 여성은 협상카드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신체의 통합성과 자율성을 포함해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은 모두를 살리는 윤리강령이다. (34%)

임신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엄마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여성이 괴짜에 불완전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무지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때로 의사들은 자기가 당사자보다 더 잘 안다는 믿음으로 여성 환자의 불임시술 요구를 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과 교도소에서 유색인종 여성들이 본인의 동의 없이 불임시술을 당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의사들의 거절은 제도적 인종차별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캘리포니아의 조사 보고서를 통해 140명에 달하는 여성이 수감기간중 제대로 된 동의 절차 없이 불임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추악한 우생학의 역사가 얽힌 시술이 금지되었다.) 압력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예전보다 의도적으로 비출산을 선택한다. 그러나 아이 없는 여성은 아이 없는 남성과 달리 대중의 맹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선택은 가족들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괴롭힘마저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여성은 불편함과 적개심을 숨긴 무신경한 ‘농담‘, 예를 들어 똑딱이는 시계라느니, 캣 레이디라느니, 혹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는 둥의 농담을 견뎌야 한다. 어째서 오늘날 여성들이 점점 더 비출산을 선택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명백히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다. (34%)

"평소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세요"는 우리가 흔히 듣는 조언이지만, 여성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의 핵심에는 다가가지도 못한다.

모성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중심에 자리한다. 여기서 여성이란 싱글여성, 자녀가 없는 여성, 아내, 어머니 등 모든 여성을 말한다. 살면서 겪는 경험 중 하나인 엄마 됨은 복잡하고 즐거우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삶을 바꿔놓는다. 그러나 모성이라는 이상은 종종 여성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막는 곤봉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엄마가 됨으로써 우리는 기쁨, 사랑, 안정, 공동체를 찾을 수 있고 또 많은 여성이 그러듯 삶의 가장 큰 목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여자아이와 성인 여성의 불가피한 행로도, 우리 모두를 평가하는 기준도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모성이 여성에게 휘두르는 무기가 아닌 사회, 강압적이지 않고 가혹하거나 폭력적이지도 않은 사회,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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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8-31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을 읽다보니 속이 부글부글 한데.. 그래도 읽고 싶네요! 안그래도 조금 더 쉬운 책을 읽고싶다 생각한 참이었어요. 공유 감사합니다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8-31 19:03   좋아요 2 | URL
그쵸, 완전 부글부글! 그러나 분노가 당연합니다! 😡🔥
밑줄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2022-08-31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0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2-08-31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난티나무님!! 이 책 분노유발이네요? 제목 눈에 익은데 저도 담아가야겠어요.^^*

난티나무 2022-09-01 06: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분노유발!ㅋㅋ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꽈.
앞부분 좋았는데 뒷부분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요...ㅎㅎㅎ 다시 읽어야 할까 봐요...^^;;;

바람돌이 2022-08-3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임신중지에 나오는 여러 문제들을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군요.
밑줄긋기만 읽어도 분통이 터지는데 책 읽다보면 어떨지..... ㅠ.ㅠ

난티나무 2022-09-01 06: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읽기 어렵지 않게 술술, 그러나 분노에 분노를 더하는 책.^^


다락방 2022-09-0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제목이 너무 뻔해서 저쪽으로 제쳐두었는데 밑줄그으신 거 보니 읽고싶어졌어요.

난티나무 2022-09-01 23:29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러게 말이에요. 뒷부분 생각 안 나는 걸 보니 조금 뻔하기도 했던 거 같기도...^^;;; 이노므 기억력...ㅠㅠ
근데 밑줄 보니 요 부분은 또 좋더라고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