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나는 


 어땠나. 


 이젠 잊었다고 생각할 때쯤 찾아오는 무기력 상태, 온몸에 힘이 빠지고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몸, 몇 년에 한번씩 그랬는데도 매번 새로운. 얼마간 아프고 나서 이건 갱년기 증세다,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지금, 그건 과연 갱년기 증세였을까, 묻는다. 비슷한 증상, 특히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자주, 그랬다. 예전 한번은 초기공황이라고 생각했다. 더 폭넓게 불안장애라고 하자. 그렇게 혼자 명명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 불안해서 몸이 아픈 모든 증상들이 딱 들어맞게 설명되는 단어였다. 확실히 지난 겨울에는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었다. 시기도 딱 맞다. 들쑥날쑥하던 월경을 한 달 내내 했다. 이렇게 명료한 증거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장애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내내 불안했기에. 불안이 아픔을 가져왔는지, 호르몬이 불안을 가져왔는지가, 중요할까. 


 잠깐,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떻게 사람을 형성하는가, 생각한다. 담대하지 못해서, 용기가 없어서,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만한 꿈과 포부가 없어서, 나는 나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그것 역시 어린 시절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불안은 나와 함께 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것도, 집에 돌아가는 것도, 밤에 잠드는 것도, 꿈 속에서도, 항상. 내가 그렇지, 성격 어디 가나, 이런 식으로 나를 외면했던 시절이 길었다. 언젠가부터 내 감정, 내 생각, 내 몸을 이루고 있는 팔할이 불안이라는 생각이 들자, 많은 부분들이 이해되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그저 말 뿐이라 그것이 행동을 바꾸거나 생각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정확히 무엇을 이해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아무도, 그것이 내 자신이라 하더라도 한 치 오차 없이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주관적 판단일 뿐. 그래도 이해되었다고 쓴다. 어쨌거나 납득은 되니까. 바깥에서 이유를 찾고 원망하다가 드디어 안으로, 안으로. 


 불안은 상상을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난 상황을 가정한다. 상상은 불안을 낳는다. 무한 반복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온갖 증거를 가지고 상황을 증폭시킨다. 눈빛 하나, 동작 하나, 말 한 마디에 엄청난 무게를 부여한다. 그것들은 모두 나를 구덩이에 파묻는다. 정확하게 보이는 것들은 정확하게 보여서,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렇지 않아서, 괴롭다. 그러나 정확하게 보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는가? 


 지난 겨울, 나는 불안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혹은 드러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 지금 이렇게 불안을 쓰는 이유는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든 불안은 말과 행동과 생각을 잠식한다.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꺼내지 못하고 엉뚱해진다. 불안하다는 건 대상이 누구건 무엇이건 나를 대상 아래에 위치시키는 일이다. 나는 그 대상 앞에서 잃을 것이 있다. 그 대상이 두렵다. 그러므로 불안하다는 건 대상이 누구건 무엇이건 대상 아래에 위치시킨 나를 대상과 동등한 위치로 혹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욕심이다. 잃고 싶지 않아서,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그래서, 불안은 자주 실패한다. 실패함으로 일상을 지배한다. 불안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면서 흘려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다시 불안이 된다. 깨닫는 것으로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올 봄은 좀 환해질 지. 


 마당의 수선화 한 줄기를 꺾어다 갈색 맥주병에 꽂아 책상에 두었다. 봉오리는 하룻밤 사이에 만개한 꽃이 되었다. 집안 온도가 너무 높은가, 좀 천천히 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란 꽃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아름다운 대칭. 중심의 정확함. 나무랄 데 없이 선명한 색. 코를 스치는 향. 경이롭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엔 불안하지 않다. 애석하게도 너무 짧은 순간. 때를 안다는 건 직관적 능력이다. 식물처럼,이라는 생각이 도움이 될까. 파묻힌 구덩이에서 새로운 싹을 올려보내고 그렇게 내린 뿌리로 구덩이가 가득 차는 날이 올까. 봄은 매번 오고 있는데. 매번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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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16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동적주절거림, 좋아합니다.^^

난티나무 2023-03-16 14:05   좋아요 0 | URL
좀 부끄러워요.^^;;;
 

오늘은 책 대신 다이어리 페이퍼다. <내일의 섹스...> 책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데 ㅎㅎ 아 진짜 섹스 이야기 계속 하기 좀 지치기도 하고 페이퍼 도배 ㅋㅋㅋ 그래서 뻘페이퍼 하나. 


나는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한다. 생각해 보니 생활 전반에 걸쳐 그런 성향이 짙다. 뭔가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늘 있기는 하지만 그걸 종이에 똑 부러지게 옮기거나 파일을 만들거나 하지 않는다. 좀 잘했으면 하는 바람과는 상관없이 늘 이 모양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2년이 끝나갈 무렵 그래도 내년에는 뭔가 좀 새로이 계획적이고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보자 싶어 알라딘서 책 살 때 뜬금포로 가계부 다이어리 굿즈를 선택했더랬다. (사진 맨 왼쪽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경제 관념이 약하기도 하고 가계부란 걸 써본 적이 없다. 새해라고 뭐 달라지기야 하겠냐마는 인간이란 자고로 기대와 희망의 동물 아닌가. 나도 가져보자, 그 희망. 그러나 아시다시피 인간은 참 변화하기도 어려운 동물. 오늘 2월 5일인데 사진 찍느라 가계부다이어리 올해 들어 처음 만져본다.ㅠ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냥 메모를 할 수 있는 노트 부분이 엄청 많다는 사실.ㅋㅋ 








사진 두번째는 알라딘 서재의 달인 선물인 피너츠다이어리다. 이것 역시 한번도 펼치지 않은 채 백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 매일 종이에 일기를 쓰는 일의 쓸모를 자주 의심하곤 한다. 그렇게 늘어나는 다이어리와 노트들이 차지하는 공간과, 다시 들쳐보지도 않을 무용함. 그러면서 계속 사들이는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아깝지 않다는 건 참 모순이다. 작년 피너츠다이어리는 3분의 1이나 썼을까.@@


세번째는 김찬송그림다이어리라고, 난다 책 사면 주는 행사를 했었는데 다이어리 갖고 싶어서 책 산 거 안 비밀. 다이어리만 보면 눈 돌아가는 거 어째서 그런지 알고 싶다. 이건 무슨 결핍인가? 혹은 허영? 하지 못함에 대한 갈망? 그저 이쁜 거 갖고 싶은 마음? 하. 얘는 무지막지하게도 2023년이라고 박혀 있고 내지도 모두 날짜별 분류라 올해 안 쓰면 그냥 숫자 무시하고 노트로 써야 한다. 매장 넘길 때마다 그림이 하나씩 나와서 그림다이어리다. 예쁜 다이어리에는 아무거나 쓰면 안 될 것같은 강박도 좀 있는 듯. 세 끼 밥 먹고 책 읽었다고 매일 그렇게 쓰면 안 될 것같은. 그래서 아직 아무것도 안 썼습니다? 


(김찬송그림다이어리의 이번주 페이지.)





첫번째 사진의 마지막은 반달 그림책 사면 줬던 다이어리.ㅋㅋ 그래도 이 꽃다이어리는 날짜가 박혀 있지 않다. 유후. 위클리다이어리라 펼치면 일곱 칸으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다. 아놔, 진짜 다이어리 욕심 좀 올해에는 버리자. 그래보자. 다들 하나씩 갖고 있는 듯한 손바닥다이어리 그거도 엄청 갖고 싶었는데 있어도 안 쓸 걸 알기에 참았다. 사고픈 대로 샀다면 아마 열 개쯤은 되었을 걸.@@ 말하나마나 이 다이어리도 연필 자국 하나 없다.ㅎㅎ 


(이 다이어리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제 값 주고 산 건 없다.ㅎㅎㅎ 하나는 선물, 나머지는 책 사면 주는 굿즈. 돈을 안 쓴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인간.)


사진은 없지만 탁상달력도 네 개...ㅋㅋㅋㅋㅋㅋ 내 책상은 하나입니다만?ㅋㅋㅋㅋㅋ 

역시 사진은 없지만 다이어리용 스티커들도 엄청나다.ㅋㅋ 저기요, 다꾸 안 하시잖아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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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06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다이어리가 필요없게 되서, 해 지난 다이어리가 쌓여있어요.
그래도 이런 애들은 탐나네요^^

난티나무 2023-02-06 17:08   좋아요 0 | URL
저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이어리가 필요없게 되는…ㅎㅎㅎ

라로 2023-02-06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겨~~~. 난티님 제 도플갱어 아니쉽미꽈?? 저 이 글 읽고 넘 웃었어요,, 제가 쓴 글 같아요! 하지만 저는 요즘 5년짜리 일기를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쓰는 공간이 짧기도 하고 5년이니까 매년 안 사도 되니까 다이어리에 대한 욕심이 점점 멀어져서 꾸준히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올해가 5년 째에요 그래서 내년에 다시 5년짜리 살 생각을 하니까 좋아요,, 김찬송그림다이어리의 그림은 멋지네요. 아무튼 스티커 구경하고 싶어요!ㅋㅋㅋ (저도 많거든요 - 뭐가 안 많겠어요, 제가.ㅠㅠ)

난티나무 2023-02-06 17:1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매년 안 사도 되는 다이어리도 좋네요. 이제 1년이 너무 짧잖아요 ㅠㅠ
그림다이어리는 그림 감상용으로라도 매일 펼쳐봐야 할 텐데 말입니다.ㅎㅎㅎ
스티커 역시 제가 산 것보다는(안 쓸 걸 아니까) 부록으로 딸려온 것들, 그때그때 안써서 남은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예뻐서 산 건 예뻐서 못 쓰고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2-0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 전 안 쓸 걸 알아서 이제 안삽니다! 사놓고 안쓰기의 반복과 후회로 이제 다이어리 욕심이 모두 소멸됐지... 근데 예쁜 거 못 참는 버릇은 못 고쳤습니다. ㅜㅜ 전 이제 그 대상이 다이어리가 아닐 뿐....

건수하 2023-02-06 09:57   좋아요 1 | URL
예쁜 거 은오님은 뭐 사시나요 ㅋㅋ

은오 2023-02-06 10:28   좋아요 1 | URL
가장 심각한건 옷이고요... 막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거나 완전 관상용인 물건에는 관심이 없는데, 실용성이 있으면서도 예쁜 물건이라면 못참는 것 같아요. 그런 물건이라면 이미 집에 있음에도 더 예쁜게 보일 때마다 사고싶은 게 문제 ㅠㅠ 누가 내 통장 막아라!!!

건수하 2023-02-06 11:46   좋아요 1 | URL
옷이면 실용적이네요 ㅎㅎ
실용적이면서 예쁜 물건은 실용적이면서 안 예쁜 물건에 비해 가격이 확 올라가더라고요 (안 실용적이어도 마찬가지인가 ㅎㅎ)

난티나무 2023-02-06 17:16   좋아요 1 | URL
은오님 안 쓸 걸 알아서 안 사는 경지에 오르시다니, 저도 그렇게 되길!!!!! ㅎㅎ
옷은 정말… ㅠㅠ 경지에 이르기 힘든 순간들이 많죠. ‘심각’하다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수하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옷 사서 안 입고 걸고 넣어둔 옷이 저는 많아서 실용적 아닌 거 가타요..ㅠㅠ 안 실용적이어도 비싸다에 또 공감..ㅎㅎㅎ

공쟝쟝 2023-02-06 08: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이어리나, 노트에 관해서라면 뽕을 뽑는 편, 끝까지 쓰는 편 입니다. (놀랍죠?) 500페이지 넘는 노트도 다 씁니다. ㅋㅋㅋㅋ

은오 2023-02-06 08:35   좋아요 0 | URL
500페이지 넘는 노트를 다 채우고도 항상 할말이 넘치는 쟝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2-06 08:3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손으로 썼고 꾸미지도 않고 그저 글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2-06 09:57   좋아요 1 | URL
아.. 쟝님은 노트에도 서재에도 할 말이 많구나...
이건 문과 이과의 문제는 아닌거 같은데 저는 왜 그렇게 할말이 없을까요 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2-06 17:18   좋아요 1 | URL
손목 부러워요!!!! 손가락 관절도 !!!!! ㅠㅠ
쓴 노트 정리와 보관과 나중에 찾아보기 팁도 좀 방출해 주세요~~~~^^

책읽는나무 2023-02-0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커도 얼마나 예쁜지 보고 싶다ㅋㅋㅋㅋ
탁상달력 네 개ㅋㅋㅋ
저도 탁상달력이 몇 개나 되는지 몰라요^^
암튼 제 맘같이 쓰는 난티님의 이런 페이퍼 너무 애정하는 글입니다.
저는 올 해는 어떻게든 다이어리 완글 해보려고 막 쓰고 있는데 1 월 말부터 어째 또 밀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안 돼~ 안 돼~ 하면서 세 번째 김찬송 그림다이어리를 보구선 내년엔 저런 다이어리도 한 번 골라봐야겠구나! 침 질질 흘리고 갑니다^^;;;🤤🤤

난티나무 2023-02-07 19:06   좋아요 1 | URL
스티커 별 거 없어요.ㅎㅎㅎ
저 어제 다이어리 처음으로 펼쳐서 일기 한바닥 적었고요.ㅋㅋㅋㅋㅋㅋ
다이어리에 따라오는 스티커 중 하나 잘 떼어서 붙여보았습니다.ㅋㅋㅋㅋ
그림다이어리는 펼쳐서 책상에 세워 놓을까봐요. 푸핫
 

아직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내 그런 기분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 집 내 침대에서 하루종일 뒹굴고 싶은 마음 굴뚝.

딱히 할 것도 볼 것도 있지 않은
뚜렷한 목적 없는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하게 되는 시간.

드디어 내일 집에 간다. 그래서인지
피곤함이 몰려오는 오후.
무조건 걷기보다 어디든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 기술 연마 필수, 지금은 그 기술 써먹는 중.

앉아서 쉴 때 읽으려고 전자책 들고 나왔지만
눈이 무겁다. 밀려있는 책들 어쩔. 나는 말이야, 책을 읽을 수 있는 여행을 원한다고.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젊은 시절.(물론 나는 지금도 젊다.😜) 나만의 여행 패턴이란 게 있을 리가 없다. 누군가는 책 읽을 거면 여행을 뭣하러 오냐고 할 지도 모르는데 ㅋㅋ 숙소에 퍼져서 책 읽는 여행 좋지 않나요?

어쨌거나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최고다. 누가 됐든 함께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불만도 생긴다. 내 맘대로 안 된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또 한번 실감한다.

내 여행 패턴에 대해 고민하면서.
안경을 벗으면 몇 미터 앞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내 시력을 걱정하면서.
어딘가에서 바람에 실려오는 하수구 냄새를 피할 도리 없이 맡으면서.
빵집의 에스프레소가 어째서 2,20유로인가에 대해 투덜거리면서.
글감을 휘갈겨놓은 수첩을 뒤적거리면서.

그런데
빠리에는 책방도 많고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
좀전에도 길가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를 보았고 좀더 전에도 지하철에서 아이 셋 데리고 탄 남자가 책을 펼쳐 읽는 걸 보았고 그 전에도 어제도 그저께도 길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까페에서 책을 읽는 여자들을 보았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만큼은 종이책과 인간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만.

책을 읽기에는 머리와 눈이 무겁고 손글씨를 쓰기에는 손목이 아프고 멍 하자니 너무 멍해서 북플을 열고 수다 삼매경.

집에 가서 쓰러지지 않으면 ㅎㅎ 다음주에 나타날게요. 뿅.



(책 이미지 넣고 싶어 ㅎ 여행 중 간간이 매우 간간이 들여다보는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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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3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소에 퍼져서 책 읽는 여행은 늘 로망이에요! 왜 뭐 때문에 그런건지 나도 몰라요.ㅋㅋㅋ
어쨌든 집떠나면 고생 뭐 이런 말이 생각나는 글이에요.ㅎㅎㅎㅎ 돌아오심 푹 쉬셔요,, 쉬시면서 여행하는 동안 내가 왜 그랬지? 뭐 그딴 생각 하지마시길요.^^;

난티나무 2022-10-31 21:52   좋아요 0 | URL
같은 로망을 가진 라로님~^^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진리일까요?ㅠㅠ
 

북커버를 다시 만들었다. 제목을 지난번 것은 잊어주세요,라고 써야지 하다가, 그럼 나는 이 두번째 북커버를 왜 만들었지,를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북커버를 왜 만드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 오늘 생각의 시작이다.


지난번 것은 잊어주세요. 나는 이걸 보이기 위해 만들고 있나? 쪼그리고 앉아 다림질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기 싫거나 말거나 이미 하나를 만들었고 좀 덜 실용적이긴 해도 어쨌든 책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아주기는 할 텐데 굳이, 더 예쁜 천으로 다시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읽던 책을 팽개치고 사서 고생을 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첫 시작은 물론 책을 보호하기 위한 커버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의문. 책은 꼭 보호해야 할까? ^^;;; 나는 이미 답을 안다. 필요 없다. 그냥 책주머니(이것도 이미 있음)에 넣어 다니면 된다. 아무데나 얹어두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나는 시간을 들여 커버를 만든다. 왜? 갑자기 퐁퐁 솟아나는 창작(?) 욕구? 뭐 하나에 꽂히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아무리 생각해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 글을 읽을 이웃님들, 밖에서 책을 꺼냈을 때 혹여 와닿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 그런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여지기 위한 행위.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별 수 없이 인간이구나,와 함께 그래서 좀은 다행이구나, 싶기도 하고 반대로 그러지 않고 싶어지기도 한다. 시작은 그저 (필요는 없지만)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을지라도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자(이것도 이유 중 하나이기는 하다) 서둘러 레벨업을 해야 겠다는 욕망이 생겨버렸다. 그 바탕에, 사실 더 잘 만들 수 있어요, 이만큼요,가 있다.(두번째라고 해서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ㅠㅠ) 한마디로 인정 욕구 + 과시 욕구다. 결과물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뛰어난지(?) 객관적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결국 자기만족이겠지. 결과물에 대한 만족이라기보다는 과정과 행위에 대한.


커버를 다 만들고 책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추를 달거나 고정끈을 만들거나 해야 하는 필요를 느꼈다. 판매되는 북커버들에 똑딱이나 고정끈이 있는 이유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실과 코바늘을 꺼냈다. 코바늘로 뜬 팔찌는 어느 정도 늘어나는 성질이 있어 책에 끼우면 웬만큼 고정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별 생각없이(라고 쓰고 열심히 색을 골랐다고 읽는다. 이런 거 하나도 나는 얼마나 별 생각없다고 쓰는지.) 근처에 있던 녹색과 갈색실을 합쳐서 끈을 뜨기 시작했다. 절반쯤 뜨고 커버에 맞추어 보는데 색이 이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런. 일단 뜬다. 끈은 몇 개라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단추를 달까 그냥 통으로 이어버릴까를 고민하면서 세로고정할 수 있는 길이 하나를 떴다. 어제 본 합창경연이 생각났다. 참가팀 중에 음악을 전공한 주부&엄마들이 모여 만든 합창단이 있었다. 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출전했다. 연습기간에는 아이를 등에 업고, 가족에게 맡기고, 돌아가며 봐주었다. 그들의 노래는 아름다웠다. 보고 듣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지 못하고 중단한 채 집에서 독박육아를 하고 있구나. 답답함과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였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저렇게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갇혀 살고 있구나.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아까운가 말이다. 끈 색을 바꾸어 다시 가로끈을 하나 더 뜨면서 만약 내가 어릴 적부터 뜨개를 꾸준히 해왔다면 지금 전문가가 되어 있겠지, 뜨개 뿐이랴, 하는 부질없지만 쓸데없지는 않은 생각을 했다. 나도 아깝다. 그들도 아깝다. 저기 너머 여성들도 모두, 아깝다.


완성된 고정끈 색이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다. 살짝 색을 바꾸어 다시 가로끈을 떴다. 단추도 달았다. 통으로 연결하면 다른 책에 사용하지 못하니 조금 넉넉하게 떴다. 이쯤에서 북커버의 단점을 말해야겠다. 책을 펼치면 손에 쥐는 느낌이 불편하다. 책 크기에 꼭 맞는 커버라도 펼쳤을 때 책과 천 사이가 뜨게 마련이다. 책에 촥 붙지 않아서 조금 신경쓰인다. 책을 덮어두면 예쁘지만 계속 덮어둘 것도 아니고, 크기고정커버는 조금만 판형이 다른 책에 씌우면 책과 커버가 겉돌기 일쑤다. 이런 걸 왜 사고 만들고 하는 걸까? 완성 후 또 질문을 던진다. 이제 안 만들어야지, 끝! 이래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간다. 아, 다음에는 책 크기에 고정할 게 아니라 여러 책에 맞게 책날개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야 겠다. 그러자면 보자, 음 이렇게 접어서 이렇게 고정하고 거기에 고무밴드를 달고... 응? 또 만든다고? 아니 도대체 왜??? 책이 더러워지는 게 싫으면 가지고 나갈 책만 종이로 싸주면 되지 않나? 이뻐보이지만 실용적이지는 않은 천커버(혹은 뜨개커버)에는 왜 욕심을 내는 것일까? 자기만족, 인정과 과시 말고 또 무엇이 더 있나?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1.이렇게 글을 끝내려고 하는데 지금 막, 책을 펼쳤을 때 천과 책 사이가 뜨지 않게 만드는 기가 막힌(?)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이걸 시도해봐? 말아?)

(2. 그 기가 막힌 방법을 조금 더 머릿속에서 발전시켰더니 책에 단추 모양만큼의 자국이 생길 것같다.)

(3. 일단 보류.)

(4. 3을 쓰는 순간 2를 해결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천재?)

(5. 4의 두번째 문장은 취소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천의 제 색깔이 안 나와서 포기한다. 두번째 가로끈 장착. 여행 준비 끝. 응?) 





(첫번째 세로 고정끈 장착하고 어둠 속에서 찍은 사진. 이게 뭐라고 색이 제대로 안 나온다고 투덜투덜. 역시 사진 하나도 보여지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믿거나말거나 실물이 훨씬 이쁨.ㅋㅋㅋㅋㅋㅋㅋ) 





(최소한의 바느질을 추구했다. 그래도 커버 양 날개를 잇는 것과 단추 다는 건 바느질을 해야 했다는.) 





(얌전하게 안에 들어가있는 책. ㅎㅎㅎ)





(뜨개고정끈은 여차하면 팔찌로도 사용 가능.) 



(짐승일기 한정 북커버 뻘짓 끝! 그런데 어제도 나는 뻘짓을 하나 더 한 것같다? 그거슨 전자책으로 한 뻘짓... 하... 뻘짓은 계속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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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11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라하는 색 올리브그린 바탕에 너구리 넘 귀여워요. 뜨개로 가름끈을요 ~ 우아합니다
팔찌로도 다용도네요. 헤어밴드로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니 진짜 솜씨가 보통 아니에요 난티나무 님.

난티나무 2022-10-11 21:27   좋아요 0 | URL
아! 헤어밴드도 되겠어요!^^ 하고선 지금 바로 머리에 쓸려고 했더니 안 들어가네요.ㅋㅋㅋㅋㅋ 책이 작은 크기라 ㅎㅎ
☺️❤️🥰

프레이야 2022-10-11 22:1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안 들어가나요

난티나무 2022-10-12 01:04   좋아요 1 | URL
끈이 짧은 건지 머리가 큰 건지?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10-1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난티나무 2022-10-12 01:05   좋아요 1 | URL
헤헷~ 🥰

거리의화가 2022-10-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똥손인 저는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ㅠㅠ

난티나무 2022-10-12 18:47   좋아요 0 | URL
뭘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했어서 ㅎㅎㅎ 그런데 저는 좀 마무리를 못하는 성향이 있어서, 벌여놓고 마무리 짓지 못한 미완성 무언가들이 너무 많아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ㅠㅠ

건수하 2022-10-12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실 저는 저번 것도 예쁘다 생각했는데요 ^^;; 이번 커버는 확실히 훨씬 더 예쁘네요!
(뭘 스스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 자)

책표지가 코팅되어 있으면 책과 천을 양면테이프로 고정해도 되지 않을까요?;;

저도 <포르노 랜드>를 화장대에 올려놨더니 남편이 왠지 움찔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 아이가 포르노가 뭐냐고 물어보면 곤란하니까 안쓰던 북커버를 찾아 씌웠답니다. 크기가 거의 같아서 아슬아슬... 천의 신축성을 믿으며 억지로 당겨끼웠어요.

난티나무 2022-10-12 18:54   좋아요 1 | URL
우와 수하님, 지난번 것도 천이 얇아서 그 모냥이 되었지만 ㅎㅎㅎ 이쁘다 해주시니 고마워요, 흑흑.
(그거 추가터치 들어가는 거 안 비밀. 만들었으니 일단 쓸 수 있게!ㅋㅋ)

커버는 그냥 일반천이라서 양면테이프 고정 안 되고 제가 어제 또 미련이 남아서(못산다) 안쪽에 테이프를 달아서 좀더 책 표지랑 천이 딱 붙어있게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좀 낫네요. 그립감도 조금 낫고요.^^

포르노랜드....ㅋㅋㅋㅋㅋㅋㅋ

2022-10-12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2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4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우 2022-10-1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솜씨 너무 좋으세요. 😃 책 싸 놓으니 얌전하니 참 이쁘네요^^

난티나무 2022-10-12 18:56   좋아요 0 | URL
호우님 칭찬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2-10-12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짜 멋지잖아요. 역시 일단 바탕 색깔이 이뻐야 하고요. 왠지 이건 팔아도 될 것 같은 고퀼러티인데요. 거기다 뜨개고정끈까지 럭셔리합니다. 난티나무님 옆에 있으면 나도 해줘하면서 막 칭얼거릴거 같습니다. ^^

난티나무 2022-10-13 03:13   좋아요 1 | URL
아하하 만들어서 팔까요?@@ 저는 수작업으로 물건 만들어 파시는 분 존경합니다. ㅎㅎㅎ
책커버 말고 팔찌는 가능~ㅎㅎㅎㅎㅎ

파이버 2022-10-12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뜨개고정끈 넘 멋지고 예쁜걸요. 랫서팬더 커버도 귀엽고 끈 색깔과 잘 어울려요. 머릿속의 상상을 실물로 옮길 수 있는 손재주가 마치 마법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2-10-13 03:14   좋아요 1 | URL
마법!!! 우와 🤩 ‘특급 칭찬’이네요. ㅎㅎㅎ (김희애가 떠오르면서 ㅋㅋ)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2-10-12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뻐요 😍 💕

난티나무 2022-10-13 03:15   좋아요 2 | URL
헤헷 감사해요. 칭찬 듣고 싶어 다시 만들었습니다.^^;;;;;

psyche 2022-10-13 0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이쁘네요! 뜨개끈도 딱 맞춤이고요. 난티나무님 솜씨가 너무 좋으세요.

난티나무 2022-10-13 03:19   좋아요 2 | URL
아아 사실 그렇게 좋은 솜씨는 아니라서 좀 부끄럽지만, 감사합니다!!!! 🙏
 

(네이*블로그에서 주간일기챌린지 중이다. 그게 뭐라고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매주 쓰고 있는데 오늘은 오늘의 뻘짓을 썼다. 이게 다 알라딘에서 산 책커버 때문이라고 우겨본다. 그래서 갖고 와 보는 오늘의 뻘짓 일기.)


다음주 주말부터 며칠간 여행 간다. 무슨 책을 갖고 갈까 고민...은 아니고 생각 중인데 보아하니 몇 글자 읽지도 못할 듯.ㅋㅋ 그래도 챙겨가야 안심(?)이 된다. 참나, 무슨 안심? ㅎㅎㅎㅎ 일단 전자책 넣고. 이번달 알라딘 여성주의읽기 책이 <포르노랜드>다. 하. 이거 여행 다니면서 읽을 수 있음??? 반사~ 어쨌거나 이북리더기에 들어는 있다. 솔직하게 말이다, 전자책만 가져가면 된다. 거기 안 읽은 소설들도 있고 읽다 만 책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왜 책쟁이들은 읽지도 못할 책을 마구 챙기게 되는 것일까??? 마치 한 시간에 한 권씩 읽어치울 것처럼. 요며칠 한 권의 책을 틈날 때마다 읽고 있는데 두어 시간을 읽어도 한 권은 커녕 반의 반도 못 읽는다. 어쩔? 그래도 한두 권 정도는 가져가야... 어휴 정말 어쩜 좋으냐.

일단 김지승의 <짐승일기>를 챙기기로 한다. 앞부분 조금 읽고 아껴두고 있다.ㅋ 책이 얇고 적당히 작고 하드커버이고... 응? 그런데 막 가방에 넣어갖고 다니면서 꺼냈다 넣었다 하면 금세 지저분해지는데. 오늘 책 한 권 구입하면서 함께 작은 북커버(4X6판)를 사기는 했다. 그거 내 손에 들어오려면 한 달은 지나야 한단 말이야? 집에 있는 두어 개의 북커버들은 크기가 너무 크다. 몇 권의 책과 커버들을 맞춤해보면서 아니 세상의 책들은 왜 이렇게 크기가 제각각이란 말인가 했다. 그러다 금세 다른 크기의 책들이 매력 있지,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야, 태세 전환. 이런 뻘짓과 뻘생각을 하다가 책에 꼭 맞는 크기의 커버를 만들어버리자는 허황된 생각을 해버렸다. 잠시 검색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조금 얇은 천으로 책에 촥 붙는 커버를 만들어볼까 해서 천을 꺼내고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아 일이 너무 많아, 바느질 하기 싫은데, 이렇게 되어버림. 내 주력 손재주는 코바늘뜨기라 일단 이미지 몇 개 찾아보고 실까지 꺼내와서 5분간 뜨다가 쿨하게 포기. 응 이거 아니야. 실과 천을 모아둔 박스들을 훑다가 오래된 손수건들을 발견했다. 얇고 테두리 박음질 필요없고 잘만 하면 책에 촥 붙을 수도 있을 것같다. 오케이, 실행.

가끔 이렇게 뭐에 하나 꽂힐 때가 있다. 손으로 하는 건 주로 코바늘뜨기였... 어제는 구석에 놔둔 에코백을 꺼냈더니 그 안에서 코바늘뜨기로 만든 가방들이 우수수 떨어져서 잠시 당황. 그리곤 웃음이 나왔다. 아 뭐야. 이것들 다 뭐지. 쓰지도 않을 거 뭘 이렇게 많이 만들었담. 그러고는 의자에 주룩주룩 걸어뒀다. 조만간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도 좀 꽂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ㅋㅋㅋ

아무튼지간에 (왤케 주절주절 길어지냐) 먼지 앉은 다리미랑 다리미판을 꺼내고 얇고 낡은 손수건을 잘 다려서 일케절케 책 크기에 맞춰 접고 또 다리고 접히는 부분은 쿨하게 그것(이름 모르겠다. 천 사이에 넣고 다리면 똭 붙는 그것. 아시는 분 알려주삼요.) 넣어 다리고. 모양을 잡아 바느질이 아니면 어케 할 수 없는 부분을 꿰맸다. 뭘 만들건 미리 재단이나 숫자 세기 이런 거 일절 안 하는 나,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ㅋ 천이 얇으면 촥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지. 또 어쩔 수 없이 가장자리를 따라 홈질을 했다. 늘 느끼는 건데 난 홈질을 못해. 비뚤비뚤. 예전에는 이런 걸 보면 니 마음이 비뚤다 어쩌구 그런 소리 곧잘 했는데 이젠 아니다. 홈질을 잘 하려면 그것만 무수히 반복연습하면 된다. 가지런히 예쁘게 홈질을 하는 사람은 그래서 잘 하는 거다. 나는 몇 년에 한 번 하는데 그걸 잘 하면 내 손은 재봉틀이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완성한 커버는 손수건이 낡은 만큼 좀 없어보이기도 한다. 북커버에 주로 단추를 달거나 고무밴드로 고정시키는 이유가 다 있구나 싶다. 그러니 벌어지지 않고 잘 여며지도록 나도 단추를 하나 달아야 겠다. 여기까지 오늘의 뻘짓. 그런데 이렇게 뻘짓을 하고 나니 좀더 이쁘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헐. 그만 해. 오후에 뻘짓 하느라 재밌는 책 못 읽었잖아. 와 진짜 아까 바느질 하는데 나 이런 생각 했음. 눈이 네 개거나 머리가 두 개거나 거기에 손이 네 개면 한쪽은 바느질하고 한쪽은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그럼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 바느질이나 뜨개질이 가능하다면. 아 그러려면 머리가 두 개인 편이 낫겠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래니.ㅋㅋㅋㅋㅋ

한 권 더, 뭘 갖고 갈까? 못 말린다. ㅠㅠ

















(깔려 있는 초록천으로 만들고 싶었...@@ 바느질 싫어서 패스했는데 결국 바느질함.ㅋㅋ 사진으로 다시 보니 저 너구리 천 늠 이쁜데? 다시... 만들...까?????@@ 애초에 실패할까 봐 제일 낡은 걸 골라든...ㅋㅋㅋㅋ 내 이럴 줄 알았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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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2-10-09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잠깐만… 저기 저 너구리… 너구리가 맞나 살펴보다가… 슬마… 너구리의 탈을 쓴 사람…????????@@)

라로 2022-10-09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ㅎㅎㅎㅎ 다 만들어요!! 너구리 진짜 이쁨이고요, 악어는 음 갑자기 그 악어 책 생각 나고요. ㅎㅎㅎ 근데 훌륭하십니다!! 코바늘!! 알라딘엔 왜 이리 손재주까지 좋은 분들이 많은 겁미꽈?? 의상 전공한 저는 뭡미꽈??(눈뭉 찔끔)

얄라알라 2022-10-09 18:09   좋아요 0 | URL
라로님!!!의상 전공하신 후 전혀 다른 분야 프로페셔널 되신 거였군요
와 이전에도 감탄이었는데 더더욱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난티나무님 옷감(원단?이 더 정확한 단어일까요?) 고르시는 감각과 바느질 솜씨!! 와우!

난티나무 2022-10-09 22:53   좋아요 0 | URL
라로님 우리는 전부 전공과는 별로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ㅋ
저 오늘은 코바늘 갖고 이래저래 해보고 있어요… 못말린다…..하아…ㅎㅎㅎㅎ

난티나무 2022-10-09 22:57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저는 책욕심 다음이 천욕심…@@ 이젠 좀 많이 내려놓기는 했지만 ㅎㅎㅎ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수납장 한가득….@@ 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10-0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이거 아니야.˝

ㅋㅋ 저 이 문장 환청처럼 귀에 맴돌아요 ㅎ

난티나무 2022-10-09 22:58   좋아요 1 | URL
그 주문 항개도 소용없어요.ㅋㅋㅋㅋ 오늘 코바늘 요래조래 난리치고 있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22-10-09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열심히 바느질 하는 난티나무님 상상 ^^
지금 완성된 저 북커버는 그럼 짐승일기 깔맞춤인가요? 박음질도 괜찮아요. 다만 색깔이...
자 이제 연습하셨으니까 아래쪽의 너구니라 악어로 새로 만드심이 어떨지요. 굉장한 작품이 나올듯합니다. ^^ 그리고 옷감속에 넣는건 그냥 접착심 아닌가요? 울 어머니가 바느질 하셔서(저는 안합니다) 저렇게 부르는걸 들은듯요.

난티나무 2022-10-09 23:00   좋아요 2 | URL
네! 완전 짐승일기 맞춤 북커버! ㄱ
그런데 보신 것처럼 너무 ㅠㅠ 낡아버림…ㅋㅋㅋ 그래서 저건 좀 터치(?)를 가해서 써볼까 하고요. 다시 만들어야 겠어요.ㅋㅋㅋㅋㅋㅋ 못 살아…
접착심 접착테이프 이렇게 부르는 거죠? 혹 다른 이름이 있나 싶었어요. 이거 최대로 활용해볼려고 머리 굴리는 중.ㅋㅋㅋㅋㅋ

노란곰 2022-10-1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치보에서 나온 아이 레인코트랑 비슷한 천이네요^^ 난티님의 책을 애정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저도 기분이 좋아요 :) ㅎㅎㅎ (색연필들고 막막 줄그어야지 다짐하고는 결국 3m 찾는 아이)

난티나무 2022-10-11 21:35   좋아요 0 | URL
비슷한 무늬를 보셨군요.^^ 저는 좀 비뚤어진 애정 아닐까요??? ㅎㅎㅎ 결국 다시 만들었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