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데버라 캐머런 지음, 강경아 옮김 / 신사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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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캐머런의 책 <페미니즘>을 다 읽었다. 매주 한 챕터씩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 책이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페미니즘의 여러 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되겠다.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내가 '지금' 하는 생각들은 이미 여러 사람이 거쳐 지나간, 어떤 초심의 단계? 같은 것을 나타낸다. 사람에 따라 내 말이 '초보'의 말로도, '급진적'인 말로도 들릴 수 있다. 이런 걸 설명하자니 좀 웃프기도 한데 아무튼 그렇다. 말/글로 내 생각을 표현할 때 검열의 형태로 보게 되고 이래도 괜찮을까 저래도 괜찮을까 이런 말은 좀 우습게 들리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게 지금 내가 하는 생각들이고 나는 그만큼의 자리에서 그만큼의 생각을 쏟아내면서 이 과정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가져온 표현의 자유나 설명 가능성 등의 어마어마한 이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에 의해 한계지어지고 여러 의미들을 그 한 단어 안에 가두게 되는, 딱지와 오인의 여지를 두는, 그래서 '페미니스트'들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지만 이미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였고 그렇게 살아온 여성들의 모든 행위와 노력들을 싸잡아 격하시키는 단어가 되어가는 것같은. 한마디로 가차없는 백래쉬, 이쪽저쪽그쪽 진영을 나눌 것도 없이 모두 깡그리, 백래쉬. 아무리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도 '어차피 너는 페미니스트, 니가 말하는 건 페미니즘, 난 듣고 싶지 않아, 세상에 그런 건 필요없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 비난하는 사람들.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알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 비판이라 생각하고 말하지만 사실은 비난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 작고 얇은 책은 나 스스로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고 비난의 자세가 아닌 정확한 비판의 자세를 취할 것을 다짐하게 한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정체성이 아니라 구조를, 자아가 아니라 언행을, 개인을 통한 전체를, 전체를 통한 개인을, 등등. 각각의 장(지배 구조/권리/노동/여성성/성/문화/경계와 미래)에서 매우 중립적인 태도로 최근의 페미니즘 경향까지 맥락을 짚고 문제를 지적하고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놓은 내용 모두가 좋았지만, 그래서 특히 마지막 장 '경계와 미래'가 더 눈에 들어왔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것, 그것을 어느 한 페미니즘의 범주에 넣어 경계를 짓기보다 좀더 열린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할 듯하다.

"교차성을 논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150) 이 문장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면 좋겠다. 교차,라는 단어는 단순한 교차로와 같은 길을 떠올려서 복잡하게 중첩된 상황을 표현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그건 논외로 하더라도 나는 이 문장이 페미니즘 활동가의 영역 뿐만 아니라 일상 속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혹은 어떤 상황을 논(비판)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행(실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비판하는 대로 실천해야 한다면(단 하나의 '흠'도 없어야 한다면) 지구상에 페미니스트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그자가 페미니즘을 하는가?"라고 묻지 않고 "그자는 페미니스트인가?"라고 묻는다."(156) 이 한 문장의 의미도 되새긴다. 당신은 페미니즘을 합니까? 페미니즘을 공부합니까? 오케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의 의미 중 하나는 개인의 선택을 완전히 '자유로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은 언제나 선택이 내려지는 맥락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선택을 둘러싼 현재의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페미니즘 그 자체에도 적용된다."(158) 신자유주의가 손을 뻗치지 않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또한번.

그저 당연하겠거니 혹은 그렇다 하니 그런가 보다 했던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간은 정의내리고 분류하고 단계를 나누면서 깊고 넓은 다각도의 문제들을 착착 접어 각각의 서랍에 넣는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어느 서랍에 누구와 같이 들어갈까를 혹은 들어갈 수 없을까 봐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작은넘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대서 해열진통제를 주었다. 50킬로그램 이상의 성인&어린이는 네 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한번에 1000mg까지를 복용하라고 되어 있다. 어림잡아 800 정도를 먹였다. 그거 알아? 이런 약을 제조해서 용량을 정할 때 대부분이 표준 남성을 기준으로 해왔다는 거? 엄마, 어떻게 여자 빼고 남자만 표준으로 삼을 수가 있어? 그게 말이 안 되는데. 50킬로 이상이면 여자도 남자도 다 해당이 되는 거지 약 복용서에 기준이 남자라고 쓰여있는 건 아니잖아? 한동안 또 열변을 토해야 했다. 제약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다, 그렇게 생겨먹은 게 이 세상이야.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페미니즘 책을 몇 권이나 읽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이론 따로 일상 따로인 것만 같다. 그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지금까지의 우리 현실이다.

이 훌륭한 페미니즘 개괄&안내서의 마지막 문장이 "페미니즘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논쟁을 일으킬 것이지만, "여성은 인간이라는 급진적 개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좀 슬프다.



◦◦◦◦◦◦◦◦◦◦◦◦◦◦◦◦◦◦◦◦◦


"확실히 페미니즘은 각양각색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모두는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 믿음에 기초한다.

1. 현재 여성은 사회에서 예속 상태에 있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겪고 체계적 불이익을 받는다.

2. 여성의 예속은 불가피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통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서문 16)


"두말할 것 없이, 무슬림 여성의 말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특정 집단 여성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라는 요청으로 정치적 논쟁이 해결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특정 집단 여성의 말을 듣다 보면 그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같은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해서 정치적 분석까지 같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종교적 권리를 지지하는 무슬림 페미니스트도 있고, 그에 반대하는 무슬림 페미니스트도 있다.

......

영국의 무슬림 페미니스트 야스민 레만은 여성이 베일 착용을 선택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항상 행위성이 행사된 결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니캅이 공적 논쟁으로 떠오르기 오래전, 영국에 거주하는 남아시아 여성들은 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헐렁한 튜닉과 바지) 같은 전통 복장을 강요받는 것과 (비무슬림 집단에도 있는) '정숙한' 복장에 대한 집단의 규범이 여성과 소녀를 통제하는 데 쓰인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레만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종주의에 불씨를 댕기지 않으면서 소수민족의 문화적 풍습을 비판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페미니스트는 주류 공동체 내부에서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기꺼이 지지하는 것처럼, 공동체 내부에서 성차별적 규범에 맞서 싸우려는 소수민족 여성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 권리 58~59)


"하지만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는 성별 분업 체계를 문제 삼지 않으며(여성이 가사 노동을 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면, 남성은 가사 노동을 분담할 이유가 더 줄어든다),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립된 일이자 성취감이 없는 일이기에 그 누구도 이를 전업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다루지 않는다." (3장 노동 79)


'위대함'이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 혹은 애초에 무엇이 예술이나 지식으로 여겨지는지에 관한 기준들은 중립적이지 않다. 이는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남성의 관념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전통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남성은 [세상을] 그들의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절대적 진리인 양 착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는 펜, 붓, 카메라를 드는 이가 누구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성별이 여성일 뿐인 예술가 개인에게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요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다른 관점, 즉 가부장적 전제와 기준에 대적하는 관점으로 세계가 재현되길 바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

하지만 여성이 만든 재현물이 많아지면 자동적으로 색다른 그림이 탄생한다고 그토록 단순하게 가정해도 될까?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조차, 그러니까 세게를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각은 가부장제 전통에 따라 형성되지 않는가?" (6장 문화 138~139)


"그(존 버거)의 논의 중 가장 유명한 구절은 삶과 예술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남성은 행동하고 여성은 보여진다. 남성은 여성을 바라본다. 여성은 보여지는 자신을 본다. 이는 대부분의 남녀 관계 뿐만 아니라, 여성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도 결정한다. 여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시자는 남성이며, 감시당하는 이는 여성이다. 그렇게 여성은 자신을 객체로 바꾼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하나의 광경으로 바꿔놓는다.


...... 남성 예술가는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며 남성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간청하고 이를 즐기는 여성을 그리기도 한다. 혹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버거는 이런 그림이 특히 위선적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여성의 손에 거울을 직접 쥐여줘 놓고 그림에 <허영>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나체의 여성을 그린 뒤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여성의 육체는 그 나체를 그리는 남성과 그 여성을 그리도록 비용을 지급한 남성 간의 거래에서 상품이다. 하지만 여성을 재현하는 관습은 마치 여성이 통제권을 지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 " (6장 문화 140~141)


"각 사례는 모두 있었던 일에 비해서 그에 대한 반응이 너무 과도해 보인다. 여성의 얼굴이 들어간 지폐 한 장쯤이나 여성이 주연을 맡는 주류 영화 하나쯤 세상에 있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위협을 느꼈을까? 이토록 강렬한 분노는 문화가 남성의 전유물이라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확신을 보여주며, 오늘날 성 정치의 중심이 문화적 문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매니니스트meninist'라 불리는 대안 우파의 유명 반페미니스트 논객들은 문화 정치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아붓는다. 그들은 문화가 변하려면 정치가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정치 변동에는 문화 변동이 필수 조건이라고 믿는다. 페미니스트와 반페미니스트는 문화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테제를 잘 알고 있다. 관념, 이미지, 이야기, 이론은 불평등을 지속하는 데도, 이에 도전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근, 대안 우파는 이제 서구 민주국의 남성에게 남은 것은 문화적 특혜밖에 없다는 느낌을 이용해왔다. 이들을 비웃기는 쉽다("여성 전투기 조종사/프로 축구 선수/ 총리는 허락해도, 여성 고스트버스터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돼!"). 하지만 이들의 분노는 실재하며, 심각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에게 이곳은 새로울 것 없는 전장이다. 하지만 문화의 현재적·미래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6장 문화 146~147)


"또 다른 대답도 있다. 현대 젠더 정체성 정치는 무엇이 '여성'이라는 범주를 정의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키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여기서도 의견이 나뉜다.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데 동의한다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래서 어떻게 여성이 되는가? 누구나 여성이 될 수 있는, 아니면 특정 종류의 개인사를 거쳐야 하는가(소속된 문화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당신을 남아와 정반대 방식으로 여아로 대우해주는 등)? 여성이 되는 것은 특정 신체를 지녀야 한다는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가? 육체는 사회적 맥락 속에 존재하기에 체현 경험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여성 억압을 끝내려는 페미니스트의 활동이 고려해야 할 물리적 육체의 현실이 존재하는가?

......

페미니즘의 '물결' 모델은 각 세대의 코호트 내에 존재하는 정치적 차이를 납작하게 만들어 축소해버린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페미니즘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관한 의견이 다르면 젠더의 본질과 의미에 관한 관점도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들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그랬듯, 페미니즘의 미래에도 함께할 것이다.

현대 페미니즘 속 젠더 정체성의 중요성은 문화 전반에서 정체성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또, 이는 오늘날 페미니즘의 현황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실비아 월비는 21세기에 페미니즘은 정치적 활동이라기보다 점차 일련의 개인적 정체성으로 개념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자가 페미니즘을 하는가?"라고 묻지 않고 "그자는 페미니스트인가?"라고 묻는다. 월비는 이처럼 자기 정의에 방점을 두는 것은 교차성과 포용이라는 목표를 거스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의 예처럼 실제로는 여성 억압에 저항하고 여성 진보에 힘쓰는 등 페미니즘을 행하지만, 그 구성원이나 조직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으면 이를 '페미니스트'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이런 활동들이 젠더와 인종, 계급의 교차성에 중심을 두고 있기에 이들을 페미니스트 활동으로 보지 않고 승인하지 않는 것은 노동계급과 흑인, 소수민족 페미니스트를 주변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 (7장 경계와 미래 15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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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0-08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적 전재와 기준은 워낙 막강한데다 자본주의 이익과도 잘 맞아떨어져 고착화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거기 거스를만한 주장들은 너무 쉽게 공격당하고 한계지어지고 모난돌이되는...이 책 저도 좋았어요! ^^*

난티나무 2022-10-09 05:29   좋아요 1 | URL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돈‘의 발명이 변화를 가져왔다, 그 시점부터 남자가 돈의 기능을 이용해 남성세계를 구축하고 여자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고요. 지금 자본주의 행태를 보면 정말 일리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은 좀더 읽어보고 나중에 소개해 볼게요. 재미있어요.^^)

공쟝쟝 2022-10-09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저는 주변 관계부터 시작해서 일상에서 생겨나는 소소한 질문들을 도외시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페미니즘은 나의 질문들이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가장 많이 알려주고, 여전히 질문하는 나 자신을 유별나다고 생각했던 그런 나 자신을 좀 괜찮은, 멋진 사람인 것처럼 여기게 해주었다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티나무님은 참 페미니즘 잘한다~! ㅋㅋㅋ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 하겠어요. ㅋㅋ 일단 사야하겠고요?ㅋㅋㅋ

난티나무 2022-10-10 00:16   좋아요 2 | URL
우리는 멋진 사람들!!!! ㅋㅋㅋㅋㅋ
이라고 말해놓고 쭈구리모드로 돌아가는 거, 저만 그런가요?^^;;;;;;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하면서도 자뻑상태 유지하기가 힘들....ㅋㅋ 사실 그게 자뻑이 아니라 ‘사실‘일 수 있는데 말이죠. 하핫.
저도 좀전에 책 또 사고 왔답니다? ㅋㅋㅋㅋ

2022-10-10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10-10 00: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심하게 들키면 안되는 것 처럼 두리번 거리며....)
......... 저도요.. 쭈그리 왕 쭈그리.......... ㅜㅜ 맨날 걱정하고 불안하고 안절부절하고........ 하지만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의 나가 좀 덜 쭈구리라 이 방식 쭉 밀고 나갑니다... ㅋㅋㅋ

2022-10-10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린고비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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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나는 가난과 한식구처럼 살고 있다.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 걸 일찍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작가가 그림에 재능이 있고 그걸 일찍 알아차린 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들보다 잘하는 게 없는 혹은 잘하는 걸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가난과 한몸처럼 살아야 했던 사람은, 무엇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하(했)는가 싶어져서 갑자기 내가 불쌍해지는 이런 생각의 흐름, 좋지 않다. "내 이름은 자린고비다."라는 첫문장에 이어지는 위 문단을 보면서 이 책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겠다는 느낌이 든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린고비란 무엇인가. 이 제목은 의도한 것인가? 원래 자린고비는 재물이 있음에도 지독하게 아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그림책 속 고비는 있는데 아끼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하고 못먹는 거... 안 해봐서 뭐가 좋은지 모르는 거... 그런데 자린고비라... 반어법? 물론 근검절약하는 사람을 가리켜 자린고비라고 하기는 하지만 부정적 의미가 강한 건 사실이다. (제목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하고 있는 중.) 


가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에게 가난의 기준이 같을 수 없는 법. 얼마나 돈이 없어야 가난한가. 어디까지 가난해봤나. 상징적/사회적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정녕 '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가. 하긴, 이 말이 모순인 게 이미 나는 '돈이 없어야 가난'하다고 말해버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것이 부유한 것이라고, 가난의 반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어제 취향에 대해 썼었는데 그것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 수 없어서 못하고 못해서 모르는 것. 경험하려면 돈이 필요한 세상. 경험하지 못해서 없는 취향을 발견하고 계발하려면 돈이 필요한 세상. 그럼 그까짓 취향이란 거, 무시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아마 계급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가능하겠지. ㅠㅠ 


"나는 성실히 일하고 내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마감일을 정확히 지킨다." 


돈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규칙을 어기지 않아야 한다. 큰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온몸으로 습득하는 생존전략. 투명인간처럼, 입이 없는 사람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닥치고 일하라'에 끼워맞춰지는 약자의 생존. 


"김밥을 시키면 단무지, 김치, 국물을 준다. 

모두 공짜지만 더 달라고 말하진 않는다. 

왠지 다음번 나의 김밥에 재료를 덜 넣을 것 같아서다." 


모두 공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으로 받는 걸 그렇게 꺼려하는 화자가 단무지, 김치, 국물을 공짜라고 말하는 건 좀. 엄연히 음식 가격에 포함되어 있고 그걸 지불한 것인데. 그러나 소비자 중에서도 약자인 입장을 표현한 마지막 문장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불이익. 당할까 봐 지레 움츠려드는 생활자세. 너무 익숙한 패턴. 


화자에게 밥을 사주고 싶어하고 먹을것을 건네는 편집자. 십년을 알고 지낸 사이라 신뢰가 쌓였으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동시에 꼭 먹을것을 사서 건네는 것으로 선의를 표현해야 할까 싶은 못된 마음이 스물스물 기어오른다. 왜지. 돈이 아니면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반항, 이런 거창한 이유 아닌데. 화자가 거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도 짐작이 간다. 물론 매우 고맙지. 그러나 돌아서서 생각하면 비참하거나 자괴감이 따라올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자괴감을 갖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기도 하고 황당한 일이기도 한데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선의와 친절이 당사자에게는 선의와 친절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쉽게 잊곤 하니까. 너무 쉽게 돈으로 선의를 표현하려고 하곤 하니까. 


"배 그림을 건네자 편집자가 물었다.

"또 그리고 싶은 거 있어요?"

"모르겠어요. 이유 없이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어서요." " 


그림을 그리는데 이유 없이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는 사람. 돈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 생존과 여유 사이의 괴리.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들. 경계하고 주눅들고. 


"다음 미팅이 끝나고 나는 편집자에게 물었다. 

"따뜻한 고기는 어떤 맛일까요?" " 


세상에, 다른 것에, 호기심이 생기는 화자. 다만, 그 호기심이 탐욕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동시에. 그럴 리 없겠지만. 미디어가 보여주는 탐욕을 특히 여성들의 탐욕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극소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호기심을 표현하는 저 문장에 걱정 반이 실린다. 지나친 기우다. 화자가 편집자에게 마음을 여는 이 순간. 그냥 그 순간. 


김밥의 세계를 넘어 떡볶이의 세게로 나아간 화자. 거기에는 편집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한걸음을 떼기가 힘들 수도 있다. 어떤 가치이든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서 편집자는 화자의 소중한 친구이다. 서로 인정하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친구. 이 그림책은 가난을 말하고 있지 않다. 친구를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심으로 다가오고 말을 걸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노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이다. 화자를 경험의 세계로 이끌어준 편집자 친구가 계속 화자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둘이 계속 친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옆에 접어두고. 화자가 자신의 그림에 좀더 가치를 부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화자가 가난한 것보다 친구가 없는 게 나는 더 슬프다. 그래서인지 점점 컬러로 바뀌어가는 따뜻한 그림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아도 풍경을 보아도 외롭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좀 삐딱하게 보면, 결국 '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화자는 돈의 힘을 깨달았다. 조금 더 주면 좀더 나은 것을 취할 수 있음을, 거기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것은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해볼 문제다. 관계와 돈의 힘. 편집자가 계속 화자의 친구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한켠에 마뜩찮은 불만과 불안이 끼어있는 이유이고, 이 그림책이 마냥 좋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돈이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또 파괴하는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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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9-28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차분하고 좋은데 이런 내용인지 몰랐어요. 많이 갑갑한 느낌이 들어요.

난티나무 2022-09-29 05:44   좋아요 1 | URL
음 읽기에 따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같아요. 두 사람의 관계, 특히 편집자가 화자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아주 신중하고 배려하는 게 느껴져서 좋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화자의 태도에서 긍정적이거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가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거기에서 빚어지는 감정과 관계의 모습들을 차분하게 그려내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저는 항상 좀 삐딱한 편이라 ㅎㅎㅎ 제가 좀 치우쳐서 보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어요.^^;;

바람돌이 2022-09-28 14: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살부터 평생 돈을 벌어와서 퇴직후 돈을 버는 어떤 삶도 살고싶지 않은게 제 소망이거든요
돈에 대해서는 참 양가적인 생각이 안들 수가 없네요. 그게 너무 없으면 진짜 자존감이 안 살아지잖아요. 어느정도까지가 나의 자존감을 뭉개지 않는, 그래서 친구를 대할 때도 뭔가 내가 궁색한 느낌없이 만날 수 있을까 그런것도 생각해보게 하네요.
제 친구 중에 예전에는 많이 친햇는데 어느샌가 잘 안만나게 되는 친구가 있어요. 그게 만나서 얘기를 하면 항상 어느샌가 넌 직장 다니니까 돈 많아서 좋겠다. 나는 돈때문에 걱정도 많고 힘들다 결국 이렇게 얘기가 가는.... 그렇다고 그 친구가 엄청 가난하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난티나무님의 이 글을 읽으니 그 친구도 생각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난티나무 2022-09-29 05:49   좋아요 3 | URL
맞아요 바람돌이님. 양가적일 수밖에 없죠. 저도 친구 사이에서 그런 거 많이 느꼈는데, 바람돌이님과 반대의 말을 많이 들었네요. 넌 돈 없잖아 돈 안 벌잖아 그러니 내가 낼게....@@ 그게 반복되니 기분이 씁쓸하더라고요.ㅎㅎㅎ 저도 엄청 가난한 건 아니었는데, 밥이나 커피 살 돈 정도는 있었는데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돈이라는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두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돈과 얽히면 관계가 그렇게 어려워지는 건지도... 이 책을 보면서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저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mini74 2022-10-0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당선 축하드려요 ~ *^^*

난티나무 2022-10-07 22:4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eBook]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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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이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물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상황들에도. 이름에 그 사람(존재)을 가두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름이 상황을 규정짓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우주의 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이름이 필요하다.

<긴긴밤>의 첫문장은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이다. 작가라고 이름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까. 이름지어진 것들의 세상에서 벗어나보라는 권유일 수도 있고, 이름이 주는 경계를 떨쳐버리고 싶은 소망일 수도 있었겠다. 더 큰 뜻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지워진 이름들, 사라진 이름들, 이름이 있어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사람(존재)들이 여전히 많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


이름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 맞다. 그러나 이름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버지들’. 나는 이미 이 단어에서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어떤 존재도 어머니의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나올 수가 없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알. 그것은 동물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인간의 폭력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버려지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도 한다. (아이를 버리다, 버려지다, 같은 단어의 사용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야기 속 보여지지 않는 맥락에서 이미 많은 고정관념을 통해 생각을 하기에, 이런 설정이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좀더 나아가 왜 아이를 ‘버리는’ 건 늘 어머니인지,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 어째서 재현은 늘 이런 식인지도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펭귄들은 알이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미운오리새끼?)로 품기를 꺼려한다.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 특성, 낳은 알이 깨어지거나 얼어버리면 다른 알을 훔쳐서라도 품으려는 성향, 암수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 이런 펭귄의 성향들을 참조하자.) 생명은 물론 소중하다. (이 문장에 얼마전 미국의 임신중지위헌판결이 겹쳐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 인간에 빗대어 아기를, 자식을, 품고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주려는 것이라면, 좋다. 뒤집어 생각하면 지나친 ‘새생명중시사상’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알을 지키려는 펭귄이 다쳤다. 그를 두고 나온다. 급박한 상황이다. 하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물에 빠진 어른과 아이(주로 엄마와 아이로 설정되는, 아빠와 아이는 들은 적이 드물다.) 중 누구를 먼저 구하느냐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모르겠다. 그 알을 그렇게 지켰어야 했는지. 사랑하는 이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나?


노든이 어렸을 때 있던 곳은 코끼리 고아원이었다. 그 곳의 코끼리들은 떠나지 않는다. 야생의 터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곳이다. 동물들을 야생으로 보내려는 선한 노력일 수 있지만 선함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물들이 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는가도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자세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으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죽임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원인이 그 한가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을 이야기 속에 집어넣어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질문들이 필요하니까. 


고아원을 떠나 독립하는 노든은 수컷이다. 독립을 격려하는 할머니 코끼리는 고아원에 머무른다. 자꾸 성별 운운하는 것이 싫지만 보여지는 것이 그러하니 어쩔 수가 없다. 야생을 모르는 노든을 가르치는 것은 아내 코뿔소이다. 암컷 코뿔소에 대한 묘사는 적다. 조연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딸 코뿔소를 낳고 노든을 ‘성장’하게 만들고, 인간에 대항해 죽음을 무릅쓴 아내 코뿔소는 계속 ‘아내’ 코뿔소이고 옆에서 죽음을 당한 딸 코뿔소도 ‘딸’ 코뿔소이다.(그들도 이름이 없다.) 살아남는 것은 노든, ‘수컷’ 코뿔소이다. 이것이, 남성으로 대변되는 인간이 여성을 착취하고 죽이는 세태를 반영하려는 의도일까? 나중에 노든이 보살피게 되는 알-펭귄-을 위해 딸 코뿔소가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했던 것일까? (인간은 동물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기도 하니까. 남자가 여자를 이유 없이 죽이는 경우처럼…) 알에서 나온 펭귄의 성별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암수 구별이 잘 안 된다는 펭귄의 속성을 생각하자.) 성별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좋은 의도일 수 있다. 독자들은 어떨까? 기존의 동화들을 떠올려보라. 영웅서사들, 꿈을 이루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모두 ‘왕자’ 아니던가?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명작동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부터도 이 어린 펭귄을 은연중에 수컷일 거라고 짐작했다. 화들짝 놀랐다. 어린 펭귄을 보호하고 격려해주는 것은 ‘아버지’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생명을 지키고(정작 아내와 딸은 죽고)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다른 수컷(으로 짐작할 가능성이 높은 펭귄)이 성장하도록 길을 터주고. 이런 맥락에서 이 이야기는 '수컷 성장 서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설정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면 그 의도는 성공이다. 돌봄과 교육에 무관심한 아버지들을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그 의도는 성공일까? 수많은 질문들 앞에 독자들이 그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문제를 성찰할 수 있을지, 또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애초에 동물에 빗대어 인간의 욕심과 세태를 풍자하려고 했다면, 연대를 통해 감동을 주려고 했다면, 왜 코끼리와 코뿔소와 펭귄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살지 못하는가? 이야기 속 어린 펭귄은 같은 종인 펭귄 무리를 찾아 거기에 속할 것이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가 인종차별주의를 보여주는 동화라는 사실을 아는가? 삐딱한 눈을 가진 나는 이야기 곳곳에 물음표를 찍는다. 감동적인 이야기예요, 라고 쓰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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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1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딱한 시선 너무 좋아요. 그런 삐딱한 눈이 있어야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오고 그 삐딱함을 수용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

난티나무 2022-07-19 01:34   좋아요 0 | URL
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힘이 나네요.^^
편향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앞으로도 삐딱해 보겠습니다~!!^^
 
안젤라 - 1세대 페미니스트 안이희옥 연작소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가 된 일상의 기록
안이희옥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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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책을 받은 것이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날 정도니 오래 미루어두었다. 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밤, 책상 위의 어려운 책들에 손이 가지 않아서, 좀은 소설소설한 거 읽고 싶어서, 책장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숙제(?)로 각인된 책을 꺼내들었는데 호로록 다 읽고 만 것. 미뤄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러나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 번 읽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나, 요즘 생각한다. 그러니 첫인상 정도를 적어둔다는 마음으로...^^;; 


지난번 읽은 <버지니아 울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과 방식이 비슷하다고 할까, 문장들이 비슷하다고 할까, 다른 이야기이지만 겹치고 그러면서도 좀더 포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전적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한국 현대사의 중요사건들을 짚고 있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많은 사건들을 이야기에 담다 보니 언급하고 지나가는 느낌도 든다. 이것도 넣어야지, 저것도 뺄 수 없잖아. 그럴 수밖에.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이야기를 갖고 있으니. 같은 이유로 좀은 헉헉거리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잘 몰라서 그렇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나니 부끄러움이 커진다.


"아녜스가 80년대 세대라면 요세피나는 90년대 세대로서 시대적 억압이 덜한 성장기를 보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거대 담론에는 별 관심이 없고 소소한 일상사가 주된 화제였다." (185)


거대 담론과 소소한 일상사는 별개의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러나 90년대에 20대였던 내 모습이 정확히 저기 저 말에 일치하는 듯해서. 앎과 모름의 차이. 그것에 대해서도.




"... 최초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나는 최초의 기억이 이 막막함이야.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 나 혼자 서 있었어. 밤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아마 적산 가옥 마루였던 거 같아. 나는 자다가 깨어 방에서 나와 있었지. 다락의 다다미방에서 아버지가 피리 종류를 불고 있었어. 가냘프고 애틋한 관악기 소리가 슬퍼서 나는 흐느껴 울었어.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은 어린 내가 기어오르기에는 가팔랐어. 막막했지. 가 닿을 수 없는 아버지의 애절한 슬픔. 달빛이 희뿌연 가운데 안개가 낀 듯했어. 나는 울었어, 소리 없이...... 그때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왔고 놀라서 나를 끌어안았어. 따듯한 어머니 살이 차가워진 내 몸을 폭 감쌌지. 나는 울음을 그쳤어. 거기까지야, 최초의 기억은." (100)


공감하기는 어려운 구절이지만 최초의 기억,이라는 말에 내 최초의 기억은 뭐지, 한참을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머릿속에 영화 장면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아있는 기억들. 최초, 기원, 이런 것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 「저는 한국을 떠난 적이 없는 토종 페미니스트예요. 유학 다녀오신 교수님들과는 경험이 조금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한국 여성으로서 토착적 한이 있지요.」

「어릴 때부터 생선을 먹으면 여자들은 꼬리와 머리 부분을 먹었고, 남자들은 몸통을 먹었어요. 도시락에 달걀도 남자만 싸줬어요. 차별이 심했어요. 그런 얘기를 쓰고 싶어요.」" (214)


이 부분이 왜 마음에 걸리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지는 정확히 알겠다. 다만 토종,이라는 말은 아닌 사람과 구별짓는 단어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무엇이 토종인가 의문이 생긴다. 말하고자 하는 토착적 한이 저런 것이라면 모르는 여성이 있겠나 싶다. 그러니까 남성과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저런 대화가 만들어진 것이겠지.


간간이 응? 싶은 문장들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옳다고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니 섣불리 뭐라 할 수는 없겠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가 오면 그때는 얼마나 다르게 다가올지. 이 어정쩡하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조금 가실 수 있을지.




"세 여자는 지금 별 탈 없이 사는 것에 감사하자고, 하루하루 건강 유지에 애쓰자고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자식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 세대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전전 세대, 전쟁 세대, 4·19 세대, 유신 세대, 전대협 세대, 한총련 세대, ·X 세대, · N 세대, MZ 세대 모두 저마다의 과제가 있으니까. 다만 많이 미숙했던 여성 운동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도 여성 운동의 하나다. 서로 다독이며 살자고, 가능하면 송이도 자주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267)


위로가 되는 문장.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도 여성 운동의 하나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롤모델도 더 많이 필요하고 스스로 그렇게 될 필요도 있다. 그러니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러는 것만으로도 '여성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작아지지 마! 사라지지 말자고! 주문을 외며, 여전히 비가 내리는 일요일, 우산을 받쳐들고 고인 물 위에 발걸음을 찍으러 나간다. 




(겉표지와 속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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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드는거 아닐까요? 대부분이 골병들고 억척스럽게 나이가 들죠. 사는게 너무 힘들잖아요.

난티나무 2022-06-27 19: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이에요....ㅠㅠ
그래서 그렇게 나이드는 게 여성운동이라는 말이 더 다가오는 것같기도 하고 현실이 힘들고 어려우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도 동시에 여전하고요. 역시 계급... 문제도 걸리고 특권의식이라는 말도 생각나는 지점이에요. 어려워요.^^;;;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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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으로 대체하는 리뷰) 



책을 읽는 내내 분노했다. 분노했으나 분노에 그쳤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은 짜증으로 이어졌다. 온 세상에 회색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 그 중 남자들의 얼굴을 짚으며 저 사람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길을 가는 사람들, 그 중 남자들의 얼굴을 보며 저 사람들은 '성매매'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 안에 서식하는 남자들, 그 중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보며 얘네들은... 하... 


이 분노와 더불어 치솟아오르는 감정들은 매우 복잡하다. 분노의 이면에는 어쩔 수 없고 바뀌지도 않으리라는 일종의 체념 비슷한 감정도 자리한다. 체념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체념적이다. 차라리 슬픔,이라고 해두자. 분노한다고 해서, 열폭한다고 해서, 슬퍼한다고 해서, 내게서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런 감정들은 오히려 호사스러운 것이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접하는 수많은 다양한 군상들 중 힘들고 불행하고 쥐어짜듯 착취당하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그 이야기를 읽고 분통을 터뜨리는 나는, 우리는, 이미 그 분통 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불행이 내게 올 리가 없어, 그건 다른 세계의 이야기야, 나는 그런... 계층의 사람이 아니야, 정말 불쌍하다, 짠하다, 그 사람들의 삶이 슬프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나 또한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려 하는 대책 없는 안일함. 스스로 만들어낸 안온함의 가면들. 


돈이 없어 힘들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한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갈 곳이 없어 입주 과외라는 것도 하고 선생님의 타이핑 작업을 돕기도 했다.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지 않았던 이유로 내 용기없음을 꼽아왔는데 이제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그래서 현실감 없이 돈을 벌었으며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정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연애라는 환상적 감상 안에서 내가 처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했다. 등록금이 모자라 학과장 선생님께 돈을 빌릴지언정 다른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내가 더 돈이 없는 상태였다면, 굶어죽을 지경이었다면,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는 처지였다면, 아예 돈을 빌릴 사람이 아무도 아무 곳에도 없었다면, 나도 내 몸을 자원으로 삼아 돈을 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룸살롱을 찾아가는 대학생들. 나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내게는 절대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뻔뻔하다. 건방지다. 나락은 한순간에 펼쳐진다. 


책을 읽었다고 쓰고, 다른 사람에게 읽히려고 애쓰고, 틈만 나면 이야기를 들춰내 떠벌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최소한을 뛰어넘는 또다른 일은 이렇게 지내다 보면 생길 것이다. 작은 단위의 경험은 큰 단위의 경험을 불러온다고 믿는다. 경험을 단위로 말하는 게 좀 웃기지만. 


남자들이여, 지금 있는 그 자리, 안온하신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포르노도 보지 않고 '성매매'도 안 한다고? 그래서 떳떳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 중 누구도 그 거대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매매'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각종 기관들이 어떻게 그 '산업'에 가담하고 공조하는 모양새로 기능하는지, <레이디 크레딧>을 읽으면 알게 된다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평소의 '성매매' 혐오발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두루뭉술하게 후려쳐서 생각하던 '성매매 산업'의 구조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매매'로 뒤덮여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책에 나오지 않은 뒷배경이 더 있을 듯하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 누구도 '성매매 산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자도, 여자도. 


회색 비가 내리는 마음 속에 아침의 환한 햇살이 내리쬔다. 창을 여니 발랄한 새들이 노래한다.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제목에 불행,과 안온,을 써놓고 보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어떤 것이 안온한 것인가. 그러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 그냥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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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4-27 1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리뷰 쓰시는 분들의 마음이 왜 죄다 절절하게 읽히는지...ㅜㅜ
저도 비슷한 생각들을 많이 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난티나무님도 읽으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잘 읽고 갑니다^^

난티나무 2022-04-27 21:06   좋아요 4 | URL
그러게 말이에요 책읽는나무님…^^;;; 힘든 책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열폭하면서요. 진짜 ‘성매매공화국’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룸살롱공화국,이라는 책이 있어요.)

수이 2022-04-28 10:40   좋아요 2 | URL
물론 대한민국도 그러하지만 여성의 몸을 돈을 주고 사려는 이들은 전세계 어디나 마찬가지 같아요. 여성의 몸에 안전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겨요.

난티나무 2022-04-28 13:2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비타님. 안전한 곳이 없어요. ㅠㅠ 그리고 생각보다 엄청나게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한국 세계 1등… ㅠㅠ

수이 2022-04-28 13:36   좋아요 2 | URL
아 우리나라가 1등인가요? 🙄 ㅠㅠ

책읽는나무 2022-04-28 14:30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가만 보면 좋은 쪽 1등은 안하고 나쁜 쪽 1등은 좀 많이 하는 듯요!!!

다락방 2022-04-27 19: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휴 고생하셨습니다, 난티나무 님. 리뷰에 담긴 난티나무 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네요. 저도 모르는 많은 것들이 성매매를 둘러싸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보다 더한 일들이 또 여기 있겠지요.

여러가지 의미로, 힘냅시다!

난티나무 2022-04-27 21:08   좋아요 4 | URL
그쵸 다락방님. 책에서 말하지 않은(못한)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힘들었지만 좋은 독서였습니다. 페이드 포 읽다 말았는데 그새 4월 말이라고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4-27 20: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 보면서 경제 문제에 얽힌 20대 시절의 제가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분노가ㅠㅠ 여러 모로 힘든 책 읽어내느라 고생하셨어요!

난티나무 2022-04-27 21:08   좋아요 4 | URL
분노는 표출해야 합니다!^^
감사해요, 거리의화가님~~~~

라로 2022-04-27 2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그런데 매일 달라가 오르는 거에요,,ㅠㅠ 내일 더 오르면 내일 살까? 뭐 이러고 있;;; 나 왜 이래요? ㅠㅠ

난티나무 2022-04-27 21:09   좋아요 3 | URL
기다리면 더 오른대요? 그럼 기다려요~~~~ㅋㅋㅋ

미미 2022-04-27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완독 수고하셨어요!*^^*
저도 읽으면서 만일 대학 다닐때
등록금을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그러다 친구중 누군가가 큰 돈이 된다며 나를 유혹했다면 어찌됐을까를 생각했어요.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고 휴학하고 일했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되어도 등록금 할인해줄 생각 1도 안하는 대학들...이번 정부 들어서 인상규제도 풀려 더 오를거라는데 그럼 그 돈을 갚기위해 학생들이 정작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그건 또 어떤 희생으로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난티나무 2022-04-28 00:35   좋아요 3 | URL
미미님도 등록금 때문에 힘드셨었군요..
정말 등록금 너무합니다. 학생이 돈으로 보이는 건가요. 또 오르면 학교 어떻게 다니라고???@@ 서울로 몰리는 것도 그렇고 교육의 변질도 그렇고 총체적 난국이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