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퇴직한 마당에 털어놓는 건데

나는 교원평가제 때
나에 대한 주저리주저리 서술형 평가를
한번도 읽은 적이 없다.
조롱 당하는 기분이 더러울까봐.

교원평가제 참여를 거부했더니
담당교사가 곤란하다며
사유를 적어야 한단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쓰시오.
이후, 불이익 같은 건,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저항이었다.
퇴직하게 되니 비로소 입이 열렸다.
얼마 후 퇴직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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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13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김누리교수님 영상을 보고나서야 교원평가제가 분명히 문제라는걸 인식했어요. 그 전에는 그냥 이상하다고만...어쨌든 부끄럽네요.

2023-09-14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p.343

 영미야, 창근아, 그 시절엔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고, 선배를 잘 따랐주. 반일 투쟁했던 선배들의 정신을 본받으려고 했어. 그분들이 대부분 좌익이었고, 그래서 후배들은 유식하면 유식한 대로,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좌익이 된 거라. 그땐 다 그랬주.


1945년 해방 때의 시대상황이다. 이 어렵지도 않은 상식적인 사실을 비틀고 억지를 부리는 무리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참으로 뻔뻔한 무리들.



2. 














수채화 같은 글을 읽노라면 가만히 감상에 젖곤하는데...하, 결정적인 단점이 자꾸 눈에 뜨인다.


p. 243

 두 여승은 앳된 소녀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그레한 볼, 도톰한 붉은 입술, 크고 선연한 흰자위와 까만 눈동자, 가늘고 긴 목덜미의 뽀얀 살빛, 처녀성이 눈부신 아름다운 용모였다. 배코 친 파란 머리와 헐렁한 잿빛 승복이 속인의 마음을 공연히 안타깝게 하는데, 정작 두 여승은 여느 소녀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밝게 웃고 새처럼 맑은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여승을 그저 여승으로만 볼 것이지, 외모를 하나하나 따지며 대상화하는 건 뭔가. 불편하다.


 p. 163

복지경의 소나기 한 줄기는 농부의 한계체온 이상의 무모한 인내에 대해서 여름날이 줄항복은 하는 것이다. 삼굿 같던 날씨가 제풀에 겁을 먹고 '독한 놈, 이러다 사람 잡지. 내가 졌다' 하듯 난데없는 시원한 바람 한 점을 백기처럼 흔들며 들판을 훑고 가버린다. 돌연한 날씨의 변덕에 농부들은 본능적으로 밭고랑에서 놀라 장끼 고개 쳐들 듯이 벌떡 일어나 건넌골 쪽을 쳐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컴컴한 골 안에서부터 막잠 자고 난 누에 뽕잎 먹는 소리처럼 버석거리며 뽀얗게 묻어 드는 소나기가 미처 피해 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들판을 유린해 버린다. 유린! 그 얼마나 협쾌한 유린인가. 수절과부가 외딴 골짜기에서 범강장달이 같은 사내에게 겁탈을 당한들 그만큼 협쾌할까.


협쾌란 통쾌하다는 말일 터. 이런 식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대상화 하는 표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시각으로보면 매우 시대착오적이지만 1938년생인 지은이가 살았던 세계에선 이런 시각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세계에서 살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러니 눈살은 찌푸려지지만 참고 읽는 수밖에. 



위의 두 책을 같은 주제로 열거하는 게 좀 무리인 듯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패러다임을 왜곡하고 시대를 되돌리려는 자들에게는 당당하게 맞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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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마다 동작하는 무의식적인 인식의 틀이 있긴 하지만 수채화 같은 글에 큰 오점을 남길 구절들이 꽤 있네요.
‘그리운 시절‘중에는 ‘겁탈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주호의 모험심이 얼마나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라는 뜨악한 구절도 나옵니다.

nama 2023-09-09 17:13   좋아요 0 | URL
그 시절에는 통용되었겠지만 지금 보면 핀셋으로 뽑아버리고 싶은 문장들이 꽤 있어요.
이런 책이 후세에도 남아 있다면 고전이 되겠지요.
 


1973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이야기이다.


어느 봄날, 학교에 갔더니, 오늘은 수업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란다. 예고도 없었고 설명도 없이 그냥 집으로 가라니 덜컥 겁부터 났다. 할 수 없이 친구들과 집으로 향하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지금 같으면 수업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라고 하면 얼씨구나 할텐데 그땐 좀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친구들 역시 그랬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부모님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튿날 등교해보니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도 전날에 대해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 출신의 젊은 담임 선생님이 장학적금을 장려하면서 코 묻은 돈을 모으게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40여 분, 버스를 타도 40여 분. 당시 산 속에 있던 학교에 가려면 시내버스에서 내린 후 20여 분을 걸어야 했으니 걸어가나 차를 타나 그게 그거였다. 작은 키에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부모님은 매일 왕복 차비를 주셨다. 꼬박꼬박 받은 차비를 착실하게 모아서 장학적금으로 담임 선생님께 드렸다. 60명이 넘는 우리 반에서 금액으로 내가 2등을 했다. 얼마 후 담임 선생님이 서울로 아주 떠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낸 장학적금을 들고. 내가 우리 반 대표로 장학적금의 행방을 묻는 편지를 선생님께 썼다. 답장이 왔다. 학교에서 월급을 받지 못해서 우리가 낸 장학적금으로 하숙비 등을 지불했노라고. 부모님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말씀을 안 드렸거나 이야기를 했어도 '그럴 수도 있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귀가가 늦는다고 학교에 전화를 하시던 까칠한 성격의 아버지가 그 일로 학교에 전화를 하지는 않았으니까.


중학교 첫 여름 방학. 방학 중 비상등교를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학교에 큰 일이 발생했다. 재단 이사장이 교실과 나란히 있던 이사장실에서 자살을 했다. 학교를 설립한 지 3년 차 -그러니까 나는 3회 졸업생이다.- 빚에 쪼들려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이사장 부인과 아들이 교내에 있는 사택에 거주하면서 학교 운영을 맡았다. 지금도 얼굴을 기억한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당시엔 몰랐으나 이후 하나하나 꿰게 되면서 전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교사들이 월급을 받지 못해 파업을 했었고, 월급을 받지 못한 담임 선생님은 우리들 장학적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고, 이 난관을 이겨내지 못한 이사장은 자살을 했던 것이다.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세상의 한 단면을 경험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이 파업을 했을까. 오죽하면 어린 학생들의 코 묻은 돈에 손을 댔을까. 오죽하면 이사장이 자살을 했을까. 불의와 부조리에 맞선 목소리가 무시당하거나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을 때 힘을 합쳐 저항하는 것. 이런 것이 파업이란 것을 조금씩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돈을 떼어본 경험도 의미는 있었다. 투자할 때는 신중을 기할 것. 절대적인 믿음 같은 건 없다는 것. 이사장의 죽음은 좀 어려웠다. 그래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파업은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생각의 자국을 남긴다. 하루치 수업 이상의 교육 효과가 있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아이들이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이다.


9월 4일 전국 교사들의 파업을 응원하며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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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틈만나면 퇴직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에 이 책을 구입했다. 당연히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보니 그럴만도 했다. 뭐랄까. 이 책은 술술 넘기기에는 너무나 교과서 같은 책이다. 마치 예전에 아카데미 토플이나 이재옥 토플 같은 영어학습서를 공부하는 느낌이 난다. 살강, 뼈물다, 주루막, 따비밭 같은 어휘를 검색하고 옮겨 써보는 행위는 새 영어단어를 공부하는 것 같고, 허투루 쓰인 문장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글은 영어 문장에서 틀린 부분을 찾을 때 처럼 집중력을 요한다. 에세이 쓰기의 모범이랄까 교과서랄까. 문장이면 문장, 내용이면 내용, 감탄하며 읽게 된다. 두꺼운 토플 책 두 권을 샅샅이 공부하고나서야 영어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나면 문리가 좀 트이려나. 트이겠지. 트일 것이다. 훌륭한 책이니까.


<앞자리>라는 글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고 써내려간 글이다. 옮겨본다.


  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영광의 자리일까? 희생의 자리일까? 영광의 자리든지 희생의 자리든지 맨 앞자리에서 나는 새가 한 마리 있어야 무리가 형성된다. 앞으로 불쑥 나선 새의 뒤를 따라서 무리(無理) 없이 재편성되는 기러기 떼의 대형으로 보아서 그 앞자리는 자기를 희생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들이 무리의 맨 앞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탐냈다면 다툼으로 대형이 흔들려 대장정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까마귀 떼처럼 흩어졌을지 모른다.

  늦가을 빈들 위를 나는 까마귀 떼를 보면 혼란스럽다. 거기에는 선두가 없든지, 전부 다 선두든지 하다. 오합지졸인 것이다. 선두가 없는 것은 선두가 살신성인하는 자리로 인식되어 기피하기 때문일 것이고, 전부 다 선두인 것은 선두가 영광의 자리라서 서로 탐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 의식 수준의 무리라면 통제나 질서 유지가 안 된다.

  기러기들은 맨 앞자리의 필요성을 잘 안다. 그래서 존중한다. (중략) 기러기 떼의 앞자리. 기러기들은 그 자리에서 나는 기러기를 고마워할지언정 선망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날지 못하는 자신의 힘 모자람이 부끄럽다기보다 미안할 뿐이다. 그 자리는 유세(有勢)하는 자리가 아니고 살신성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중략) 

  기러기 떼는 높이 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은 비단 시계(視界)에 국한된 말은 아니리라. 안데스산맥 높이 나는 독수리는 눈으로 사냥감을 보는 정도지만 추운 밤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가슴으로 구만리 장천 너머에 있는 도래지를 본다. 그것은 관점(觀點)을 말하는 것이다. (중략) 

  앞자리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다. 누가 맨 앞자리에 서든지 나는 어차피 끝에서 앞 사람의 날갯짓이 일으킨 상승기류를 얻어 타고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앞에서 항로를 잡아 주려는 제일인자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p.89~91


'불행'한 나날을 보내는 요즘. 구만리 장천 너머에 있는 도래지를 볼 수 있는 관점을 장착하지 못한 권력자를 허구헌날 보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살신성인하는 자리에서 골목대장 노릇하는 꼴을 보는 건 참으로 민망하고 역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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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31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살신성인하질 못한다고 생각해요. 내 눈엔 그 사람이 보여요,ㅠㅠ

nama 2023-08-31 15:35   좋아요 0 | URL
저는 욕심보다는 권력욕이 보여요. 권력에 취해 있으니 보고 싶은 것만 보겠지요.

잉크냄새 2023-08-3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 찾아보니 저자 목성균님의 짧은 작품 활동이 안타깝네요.

nama 2023-08-31 15:37   좋아요 0 | URL
저 책 한 권만으로도 존재감이 드러나고, 짧지만 강한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라로 2023-09-0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전자책 신청을 했는데... 늘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잘 지내시는지요? 건강은 많이 좋아지셨나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나마님.

nama 2023-09-04 15:08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라로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부하느라 몹시 바쁘시구나, 했지요.
좋은 글이 많이 실린 책인데 진도는 빨리 나가지 않아요. 늦은 저녁, 마음에 와닿는 글을 읽다보면 술이 당기기도 해요.
공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라로님.
 
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백가흠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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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읽으니 마치 스스로 발굴한 느낌이 들었다. 백가흠...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던가. 


책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느네 아버지'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어렸을 적 가장 좋은 친구'로 아버지를 두었다는 부분에선 부러움과 한숨,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버지....



아버지는 쓰고 싶었으나 쓰지 못했다. 아버지의 문학적 비애가 조금 위안받은 순간은 내가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소설 쓸 줄 몰랐으니까, 등단할 줄 몰랐으니 조금 기뻤을까. 아버지는 실제로 내게 기쁨을 직접 표현한 적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면서 정말 기뻤던 적은 당선 통보를 받았던 날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날, 오후에 통화하던 일이 생각이 난다. 학교로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는데, 금방 다시 전화를 하니 이미 학교에 없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야, 느네 아버지, 학교 조퇴하고 와서, 방에서 운다." - P44

어렸을 적 잊지 못할 소꿉친구 하나는 있기 마련이건만, 우리 삼형제는 그런 친구 기억이 없다. 어렸을 적 가장 좋은 친구는 아버지였다. 세상에서 아버지가 가장 재미있었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하고 놀았다. 아버지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게 가장 웃겼고, 읽어주는 동화책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나란히 턱을 괴고 엎드려 흑백 TV와 주말 영화를 보던 일이 가장 신나는 일이었다. - P46

옛날, 푸세식 화장실이 마당에 있을 때, 아버지는 볼일 보러 가서, 웬만해선 나오지 않았다. <옛날의 금잔디>나 <옛동산에 올라>같은 가곡에서 헨델이나 바흐, 독일 가곡, 찬송가까지 화장실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형제는 화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신청곡을 부탁하곤 했다. 얼기설기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 형제가 클래식광이 된 연유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간 것인지, 노래를 부르러 간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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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2023-08-3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렸을 적 가장 좋은 친구는 엄마였지요

nama 2023-09-01 09:32   좋아요 0 | URL
고마운 말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