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담사 한용운 기념관에서 발견한 글이다.



저런 살아있는 표현은 이제 나올 수 없다. 똥도 깔끔하게 처리되고 송장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경우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지 한참 생각해보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단박에 나온 대답은...정치 권력자와 그 무리들...


2. 


옆 집 창고 바닥 마감에 문제가 생겨서 작업을 도왔다. 까만 건 타르라는 물질이고 초록은 에폭시라는 마감재인데 이 둘이 화합을 이루지 못해 바닥이 끈적거렸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투명색의 에폭시(하도)를 칠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바닥이 화상을 입은 듯 들뜨고 말았다. 위 사진은 초록의 에폭시(상도)를 긁어내는 와중에 찍은 사진이다. 채 마르지 않은 에폭시의 독한 냄새에 질식할 듯했다.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일을 하건만 나는 몇 조각 긁어내면서도 온갖 감정이 들끓었다. 불평도 잠시, 창고 밖으로 나와 옆집 데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흰구름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어디선가 누군가 이 일을 하는 사람들 생각을 얼핏 했다. 고맙다는 말로도 부족하구나...


3. 40여 년 전 아버지께서 사주신 책장 포함해서 4개를 버렸다. 그러고도 4개가 남았다. 책보다 책장 버리기가 훨씬 수월하다. (사진을 찍고 올리려고 했으나 자꾸 오류가 나서 생략) 책 좀 그만 사야겠지만 제 버릇 남주랴.


4. 이삿짐을 싸다가 대학 졸업사진을 발견. 졸업식에 온 사람들을 살펴보니, 아버지, 엄마,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사촌여동생, 막내이모와 이종사촌동생. 그리고 앞집 노씨 아저씨가 있었다. 양복 입은 노씨 아저씨는 직접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졸업식에 양복을 입고 오신 거였다. 멀리서 부모님과 기차를 타고 오셨나, 고속버스로 오셨나. 나는 모른다. 이제 물어볼 사람도 세상에 없다. 나는 노씨 아저씨께 살가운 적이 있었던가.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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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0-19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드셨겠어요. 에폭시 작업은 냄새가 많이 나고 작업하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두 분 일이 많으셨겠어요.
오늘이나 내일 비가 오면 날씨가 많이 차가워질 거라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nama 2023-10-19 20:39   좋아요 2 | URL
의식주에 관련된 일을 해보면 생각이 구체적이 되어서 좋아요. 힘들지만 기회가 되면 또 해야지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레삭매냐 2023-11-0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유혹은 도무지 이기기가 쉽지
가 않습니다.

오늘도 또 새로운 책이 없나 하고
보게 되네요.

사진에서 찾아내신 옛 추억...
저도 오랜 사진들을 찾아 보고 싶
네요.

nama 2023-11-18 14:12   좋아요 1 | URL
세상사에 엮이다보면 잠시 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만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니 책을 찾게 되네요. 책만큼 믿음직한 친구도 없는 듯해요.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이 책의 저자 김현아 교수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p.290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본다면 한없이 모자란 이야기를 용기내어 하게 된 이유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바꾸는 데 작은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큰 변화는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바위를 뚫는 물처럼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용기와 인내이다. (중략)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작은 변화 중 하나가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정신질환 환자에게 하는 '미쳤다'는 말을 '아프다'로 바꿔보도록 노력한다면 환자에 대한 낙인이 어느정도 옅어질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신질환'이라는 말 자체를 '뇌질환'으로 바꿔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실이 그러하고, 뇌도 엄연히 신체이므로 마치 여타 신체질환과는 달리 의지나 성격의 문제라는 편견을 만드는 말은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이다.



가독성 좋은 책인데도 읽느냐고 힘들었다. 온몸으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읽고나면 마음과 몸이 지쳤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책의 힘으로 '정신질환'이 '뇌질환'으로 인식되는, 작지만 큰 변화를 기대해본다. 언어의 힘을 믿고 싶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책들이 세상에 많이 나오기를 희망해본다. 아픈 사람의 목소리, 가족의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 두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다. 
















양극성장애를 겪는 분이 쓴 책. "그것은 일단, 그저 병"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확하게 썼다.

















양극성장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쓴 책. 작년에 '내가 뽑은 최고의 책'이었다.



*****덧붙임: 위의 책들은 양극성장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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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2 

  그때 나는 도자기를 보는 방법 하나를 배웠고, 그것은 내 세상살이의 무슨 지침처럼 지금까지 뇌리에 새겨져 있다.

  "도자기 진짜 가짜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초짜는 부끄러움을 감추고 물었다.

  "그건 간단하지."

  선생의 대답에 나는 귀를 세웠다. 그 방법이 바로 내가 세상살이의 지침이라고 하는 그것이었다.

  "우선 그 골동을 사다놓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걸세."

  "예?"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은 경상도 통영 사투리일 그 말투를 천천히 가다듬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운 돈을 투자한 도자기를 오래오래 지켜보고 있으면, 결국 싫증이 나는 것과 싫증이 안 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싫증이 나는 것은 가짜일 공산이 크다. 아무리 지켜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인 것이다

  어찌 들으면 근거 없는 논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곰곰 곱씹고, 또 살아오면서 여러 몹쓸 일 겪기를 오래 하다 보니, 그처럼 진리의 금언이 따로 없었다.

           (중략)

  새벽잠이 없어진 지 꽤 오래인 요사이, 나는 선생의 말을 되살리며 어둠 속에 앉아 있곤 한다. 이제까지 나를 오래도록 지켜봐온 사람 혹 있다면 어떻게 여길 것인가. 내 작품은 또 어떨 것인가. 진짜로 올려질 것인가, 가짜로 내려질 것인가. 나 자신 나를 지켜보며 아무쪼록 싫증이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하며 오래전의 저 도자기를 여전히 지켜본다.

                                     <오래 지켜보기> 중에서





그러고보니 윤후명의 작품들을 오래 지켜봐왔다.


오래 지켜봐온 것들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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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끼고 사는 책은 버리지 못한다. 

사람은 떠나가도 책은 말없이 남아 있다.

나에게로 와서 내게는 고전이 된 책들.

마지막에 불쏘시개로 쓰일망정 떠나보내지 못하리.



      



몇년에 걸쳐 아파트에 있던 책 중 60~70% 가량을 산골로 옮겼다. 남편의 땀방울로 이루어진 과업이다. 거의 대부분을 지게나 배낭에 담아 20여 미터 폭의 개울을 건너고 언덕길을 올랐다.

헌책방을 할까, 북카페를 할까...오지 중의 오지에서 책방을 하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다 꿈같은 얘기. 떠나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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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0-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상당히 많네요. 한두 권은 몰라도 사진에 나오는 만큼 이동하려면 상당히 힘드셨겠어요.
정리가 잘 된 공간이 북카페처럼 근사해보입니다.
nama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nama 2023-10-07 15:00   좋아요 1 | URL
욕심이라면 욕심, 미련이라면 미련 같은 것이지요. 어쨌거나 못 버리겠어요.
감사합니다.^^

은하수 2023-10-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만해도 넘 아름다운데요~~~
옮기시느라 고생하셨죠!
저도 이사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낸 책들 자꾸 생각나는데...진짜 엄청나게 무거워서 고생한 기억이 새록새록^^
나만의 북카페 하세요~~

nama 2023-10-07 15:04   좋아요 2 | URL
떠나보낸 책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그 안타까움이란.... 그래서 못 버리나봐요.
요즘은 웬만하면 도서관을 이용해요. 책 쌓이는 게 무서워서요.

은하수 2023-10-07 18: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요
그런데도 쌓이는건 그냥 어쩔수 없다 하게 돼요^^
 

난생 처음 하는 경험, 그런 건 일깃감이 된다. 단풍 든 깻잎 반찬은 밥도둑이라기에 따라 나섰다. 깻잎을 한장한장 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금방 진력이 난다. 아침부터 단단한 늙은 호박을 자르느라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던 참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평생 누군가의 노동에 얹혀 살아왔다는 자각. 내 딴엔 엄청 많이 땄노라고 설렁설렁 콧노래를 부르는데 왕언니께서 내 작태를 금방 알아보셨다. 수확량이 적다고 함께 간 영희 씨의 깻잎을 내 바구니에 보태게 하신다. 엉, 이러면 내 일거리가 많아지는데...고마움보다 내 수고로움이 앞선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누렇게 단풍 든 깻잎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내 평생 이렇게나 많은 깻잎을 손질하는 것도 놀랍다. 시작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에는 결국 끝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꼬다리를 너무 바투 잘랐다고 한소리 들었다. 먹을 때를 생각해야 했다.




끓인 물을 부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끓일 만큼 큰 솥이 없어서 전기포트와 작은 냄비에 끓이다보니 약간의 실수와 착각이 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큰 돌멩이로 누르는 것까지 완성. 하룻밤 재운다.




이틑날 아침, 영희 씨가 굵은 소금과 김치통을 들고 와서 도와준다. 사실은 도맡아 한다. 물과 소금의 비율이 1:3 으로 짜게 절궈서 실온에서 숙성시킨 후 2주 후에 먹는다고 한다. 겨우내 두고 먹을 수 있단다. 먹는 방법은, 적당량을 끓인 물에 데치거나 물에 담가서 짠맛을 우린 다음, 양념을 해서 중탕으로 쪄 먹는다고 한다. 지금은 양이 많아 보이지만 먹다보면 금방 바닥이 난다고 한다. 아주 맛있단다. 기대된다.


산골은 일년 중 지금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쾌청하고, 모기도 없고, 볕도 좋아 빨래와 붉은 고추가 바짝 마른다. 밤을 주울 때 한차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두둑 밤 떨어지는 소리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밤은 내가 주울테니, 먹는 건 그대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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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0-0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노란빛이 있는 깻잎을 보니까 전에 먹어본 콩잎 장아찌 생각나요. 잎이 노란색이었거든요. 숙성해서 찌는 것까지 하려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네요.
nama님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nama 2023-10-07 09:03   좋아요 0 | URL
콩잎을 주로 먹나봐요. 저는 언뜻 식당에서 먹은 것도 같은데 기억나지 않네요.
손이 많이 가지만 해볼 만해요.
무탈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3-10-07 09:33   좋아요 0 | URL
아이, 아니예요. 콩잎은 딱 한 번 먹어봤어요. 낙엽같고 두꺼워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한식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많은데, 깻잎절임 맛있었으면 좋겠어요.
nama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nama 2023-10-07 15:07   좋아요 0 | URL
저도 맛이 궁금해요. 낙엽 같은 맛이 날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