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 레드우드 숲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
차윤정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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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미국 여행기라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숲 생태 전문가의 여행기는 어떤 식으로 쓰여졌을까, 가 궁금했다. 나무 이야기라면 더 좋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고작 열흘 간의 여행으로 책 한 권을 쓴 것도 그렇다. 그런 자신감이 궁금하기도 했다. '학문적인 여행기'는 아닐까 의심도 갔다. 마침 4대강을 둘러싼 저자의 행보에 내심 불쾌감도 있던 터라 저자의 좌우를 살피고도 싶었다. 

오로지 출세라는 한 자리를 목표로 일로매진하는 무리들을 늘 보아온 터라 그리 이상할 것도 그리 섭섭할 일도 아니건만, 그래도 나무를 얘기하고 생태를 부르짖는 사람이라서 다를 줄 알았다. 위안삼아 차라리 더 두고 봐야 한다,라는 말을 남겨두는 게 좋을 성싶다. 슬퍼지니까. 

가족 여행 답게 남편과의 갈등 같은 것도 숨기지 않고 잘 드러냈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닐텐데. 더구나 책으로 나오는 건데. 꾸밈이 없는 저자의 진솔함이 읽혀지기도 했다. 

나무나 숲에 관한 것은 대강 흥미는 가지만 글쎄 내 분야가 아니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실은 그저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민들레나 쑥 같은 존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도 못하다. 엇그제만해도 민들레를 캐느라고 꼬박 주말 오전을 이틀씩이나 바친 터라 아무래도 먼 이국 땅의 나무 얘기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나 할까.

글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미국은 질색하면서 말이다. 미국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살금살금 들여다보는 이 심리는 또 뭔가 하고. 

그럴 즈음 반가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154) 한편 우리에게 미국이 로망인 것처럼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겐 한국이 로망의 대상이다. 서아시아나  남미에 부는 한국 자동차 열풍은 미국에서의 일본 차 열풍과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에 대한 도전을 권고하는 만큼 이런 나라들에 도전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어떨까. 미국, 유럽, 일본 같은 나라에서 한계에 찬 도전을 하는 것보다 우리의 경쟁력을 필요로 하는 제3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거지만, 아이들의 삶의 수준은 이미 그 정도에 도달해 있다.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엔젤레스에서 우리는 남들이 흔히 하는 도시 탐색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서울도 그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해 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 세 문장이 거슬린다. 과연 그럴까. 저자의 4대강을 둘러싼 태도 변화가 잠깐 떠오른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계급에서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나보다. 

책 한 권을 읽기가 왜 이리 골치 아픈가. 저자가 인용한 부분을 그저 다시 인용할 뿐이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은 위대한 자연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입니다. 세월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위대한 작업을 진행하지만, 사람은 파괴할 뿐입니다.(I want to ask you to do one thing ....keep this great wonder of nature as it is.....The ages have been at work on it and man can only mar it." 1903년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 말이다. 하지만 그냥 두고 보는 일도 우리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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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재즈 가수인 웅산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45명의 중3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오늘 2년 마다 있는 맞춤장학이 있는 날이었다. 일종의 학교 평가 같은 건데 더불어 학부모 공개수업까지 있었다. 두 학급 콘서트 관람건을 제의한 옆 선생(20여년 지기)을 따라 이 공연 관람을 준비한 것은 지난 4월 부터였다. 물론 미리 구두로 교감한테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5월에는 일찌감치 예매까지 마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학교의 큰 행사인 맞춤장학과 날짜가 겹쳤다. 맞춤장학 날짜가 발표된 것은 6월 초였다. 예술회관은 거기대로 사정이 있어서 환불은 불가능하다 하고, 학교에선 교감이 절대 불가하다고 끝까지 결재를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힘들게 다녀왔다. 

줄거리는 이렇게 단순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참 여러번 한숨을 토해내고 달갑잖은 회의에 빠져 들곤 했다. 학교 행사와 날짜가 겹친다는 이유로 절대 불가를 외친 교감은 내부결재를 낸 옆 선생을 몇번씩이나 오라가라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보다못해 아니 견디다못해 이번에는 교장한테 가서 사정을 말했다. 허락이 떨어졌다. 교장의 허락에도 불구하고 교감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또 오라가라 했다. 다시 교장한테 갔다. 역시 허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감은 우리가 기안한 출장 신청에 끝까지 사인을 하지 않았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지만 별 수 없다. 교감은 교감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서로 인정할 뿐, 필요 이상의 감정 낭비는 없어야 하는데...글쎄 내가 교감이라면 어떨까? 앞으로 그럴 일이 전혀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왜 그런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고 아우성들인지.....

이런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콘서트는...훌륭했다. 아이들이 지불한 5,000원(학교에서 나오는 학급운영비로 개인당 2,000원을 쓸 수 있으니 합계 7,000원이 들어갔다.)이 절대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재즈 음악을 들어보길 했을까. 나 역시 그렇고. 

아이들을 데리고 무슨 일인가를 벌인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오늘도 그랬다. 주의를 그렇게 주어도 티켓을 분실하지 않나 교통 카드를 잃어버리질 않나. 그것도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절대로 뛰지 않는 게으른 녀석들을 다그쳐 겨우 도착하니 이미 공연은 시작되었다. 두 곡이 끝나 겨우 입장할 수 있게 되어 뒷좌석에 겨우 앉을 수 있었는데, 가수의 얼굴 윤곽만 겨우 보이는 거다. 

웅산의 노래에 빠져들다보니 눈물이 찔끔 나온다. 옆 자리에 앉은 우리반 녀석들 생각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할 수 있는 게 재즈구나, 싶었다. 긴장된 몸과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지만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남겨두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게 재즈구나, 싶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우리반 남학생 녀석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행복합니다. 

 
   
   
  다음에 또 오죠.  
   
정이 없는 부부들이 흔히들 '자식 때문에 산다'라고 하듯 나는 '학생들 때문에' 선생질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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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박사 2010-06-1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힘내세요!~~
화이팅!!!~~~(^^)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권삼윤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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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마도 10여년 전쯤 저자의 책 <문명은 디자인이다>를 읽었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무척 참신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수차례 일독을 권하기도 했었다. 

요즈음 이탈리아에 대한 책을 읽어나가다가 이 저자의 이름을 보고는 따지지도 않고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연륜, 경험의 누적이란 다름 아닌 일정한 매너리즘의 내면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기행문이라기 보다는, 여행담보다 학구적인 설명이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를테면 '학문적인 기행문'쯤 된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글이다보니 아무래도 글 역시 직업적인 성격이 짙다. 여행기로서의 풋풋함이나 생동감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가 오히려 더 살아있는 내용이 많다. 30년 동안 한 곳을 들여다 본 글이다보니 더 깊이가 있고 내용도 더 알찰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탈리아, 지중해...>는 이도저도 아닌 좀 애매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간절함이 없는 여행은 참 밋밋하다. 그 밋밋함은 학구적인 설명이나 친절한 해설로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새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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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임준수 지음, 류기성 사진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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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언제 읽었던가? 출간되자마자 책을 구입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 내 수중에는 없다. 

그동안 일회성 입장을 거부하던 도도한 수목원이 천리포 수목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을 했다. 덕분에 오늘 가 보았다. 정말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다. 

그간 다녀온 수목원이라야 이 정도이다. 산림청 연수 받을 때 연수차 들른 광릉 국립수목원, 아침 고요 수목원, 외도의 식물원, 그리고 경기 화성에 위치한 물향기 수목원. 아참 하나 더 있다. 외도를 가꾼 분의 딸 내외가 운영하는 피나클랜드도 갔었다.

광릉 수목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는 한겨울인 1월이었다. 나뭇잎을 봐도, 꽃잎을 봐도 무슨 나무인지 무슨 풀인지 제대로 구분도 못하는 문외한이 한겨울 나목을 보고 설명을 들은들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처음 접하는 나무의 세계에 그저 어리벙벙할 따름이었다. 

내 직업의 세계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 분야에 대한 내 관심이라야 별 것이 없다. 어쩌다 책 한 권 읽고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관싱이나마 불러 일으킨 책이 바로 이 책<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이방인이자 귀화 한국인인 '민병갈'을 알게 되었고, 그의 열정에 감탄과 존경심이 우러났다. 오늘 이 수목원의 연못가에 있는, 민병갈을 기리는 석조 개구리를 보면서, 죽어서 개구리로 태어나고 싶다던 그의 바람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꽃과 나무의 세계를 접하면서부터 나는 내 직업과 내가 그동안 해온 이런저런 공부들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가지 못한 길이 아니었다. 아니 이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 일찍 깨우치지 못한 내 어리석음에 한숨이 저절로 났다. 

이런 한탄을 불러 일으키는데 한 역할을 한 게 바로 이 책이었다. 바로 민병갈의 삶이었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

천리포 수목원은 외도의 현란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 외도 역시 한 개인이 일으킨 절대 미감의 식물원이며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곳은 이 천리포 수목원인 것 같다. 카메라 보다 다이어리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 책, 안녕하신가 모르겠다. 이 책을 중국 따리의 한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로 보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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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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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줄이야. 

이탈리아를 가볼까나 구상중이어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이미 93년과 96년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몇 도시를 다녀오긴 했지만, 그당시 여행이란게 그렇듯 지나고 보니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중 한겨울에 갔었던 밀라노는 여타의 도시보다도 볼거리가 없었고 스산한 겨울 추위만 뼈저리게 실감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서는 뜨거운 물 한 잔 얻어 마시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여행 자체가 고행이었다. 한 달간의 여행을 끝내고 와서야 임신 사실을 확인했으니, 입덧을 치르며 하던 이탈이라 여행이었다. 

이 책을 읽자니 그 고생스런 이탈리아 여행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그리고 부러웠다. 다른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여행이 아닌 그곳에서의 삶이 몹시 부러웠다. 그 어려움과 고달픔이야 한낱 여행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한 세계를 샅샅이 경험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두고두고 부러운 일이다. 저자를 이탈리아로 이끈 칸초네 한 곡, 그 운명같은 만남이 왜 내겐 없었을까,하는 쓰잘데 없는 아쉬움 한 자락이 남는다. 내가 성장한 미군 부대 옆동네는 온통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들로 그득했다. 미국 문화는 지향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지양해야할 기피 대상이었다. 

이 책은 참 적절한 내용에,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글에, 또 적절하게 읽을 만하다. 이런 종류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시나 자랑 같은 것도 없다. 내용은 빈약하고 포장만 요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저자의 품위가 느껴졌다. 

(232)...더구나 패션은 예술이 아니다. 인간이 신체 위에 걸치는 기술일 뿐이다. 멋있고 아름다울수록 빛을 발하는 기술이다. 

패션 컨설턴트라는 저자의 중후만 멋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요란한 예술 아니 요술처럼 보이는 패션에 대한 이 짤막한 정의에, 저자에 대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첵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순히 패션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탈리아 전반에 관한 책이라고 해야겠다. 여행으로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살아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행의 한계를 분명하게 지적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삶의 속속들이를 여행을 통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음을 자각하게 해준다.  

별 것 있는 여행을 위해서 읽었건만 결과적으로 별 것 없는 여행의 한계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이래저래 아프다. 저자의 다양한 삶이 부러워 아프고 맛만 보고 그칠 내 여행의 얄팍함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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