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alle:1930~2002 )의 전기.

 

집과 직장에 책탑을 쌓아놓고 손도 대지 못하는 책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시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던 건, 목수정의 <파리의 생활좌파들>에서 이 예술가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2007년인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의 전시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한탄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과천인가에 이 분의 작품이 있다니 언젠가는 일삼아 보러갈 날이 있을 터.

 

읽은 것에 비해, 감탄하고 놀란 것에 비해, 느끼고 생각한 것애 비해, 내가 여기에 쓸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그저 읽고나니 좀 더 멍청해졌을 뿐이다. 온몸으로 살다간 예술가의 생애를 읽다보면 나 자신이 무척 초라해질 뿐이다. 초라하고 불쌍해진 나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직접 작품을 보면 어떨까? 분명 행복하리라. 행복에 겨워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어줍잖은 생각 따위 하지도 않을 것 같다. 아쉬운대로 책에 실린 작품 사진을 찍어보았다.

 

1966년 스톡홀름 전시회에 출품한 나나 시리즈의 대작 <혼>('그녀'라는 뜻이란다.)

 

 

오른쪽은 <내 애인의 초상(1961)>. 머리 부분의 과녁을 향해 다트를 던져봐?

 

 

"카드 놀이를 할 때처럼, 우리는 규칙을 모른 채 태어나는 것 같아. 하지만 어쨌든 손에 쥐어진 카드들을 제대로 써야겠지." - 니키 드 생팔

 

 

'소년은 늘 유명해지기를 꿈꿨다. 스위스의 영웅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면, 그는 유머와 지성, 엉뚱한 행동들을 동원하며 나섰다. 열여섯 살에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했던 일은 장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가장 우수한 선수 뒤를 끝까지 따라가다가 마지막 몇 미터를 남겨 두고 추월했다. 외톨이였지만 온 힘을 다해 한 가지 목표로 매진할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장은 몸소 체득했다.' - 110쪽

 

*위 글의 '소년'은 장 팅겔리라는 이름의 예술가로 니키의 연인이자 동반자이자 바람둥이로 니키와 더불어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 역시 삶이라는 카드을 제대로 사용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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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지 않는 별

 

별이라 해서 다 뜨는 것은 아니리

뜨는 것이 다 별이 아니듯

오히려

어둠 저 편에서

제 궤도를 지키며

안개꽃처럼 배경으로만 글썽이고 있는

뭇 별들이 있어

어둠이 잠시 별 몇 개 띄워 제 외로움을 반짝이게 할 뿐

가장 아름다운 별은

높고

쓸쓸하게

죄짓듯 앓는 가슴에 있어

그 가슴 씻어내는

드맑은 눈물 속에 있어

 

오늘밤도

뜨지 않은 별은 있으리

 

('안개꽃처럼 배경으로만 글썽이고 있는' 언니가 떠올라서 눈물이 핑 돌았다. '죄짓듯 앓는 가슴'이란 구절에 또 한번 눈물이 핑 돌았다. 언니를 향한 내 마음이 늘 죄짓듯 해서.)

 

 

어머니에 대한 고백

 

때 절은 몸빼 바지가 부끄러워

아줌마라고 부를 뻔했던 그 어머니가

뼈 속 절절히 아름다웠다고 느낀 것은

내가 내 딸에게

아저씨라고 불리워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질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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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길에 찍은 사진을 오늘 출근해서 올린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사리 때라서 물천지가 되었다.

 

 

 

 

 

 

 

 

 

 

 

 

 

 

 

 

 

 

 

 

 

 

 

 

 

단색이라는 게 따분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에요.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집중해서 한 가지 색을 관찰하느냐에 따라, 내 눈앞에서 그 색은 변화하고 변형하면서 환상의 공간을 열어 보이거든요.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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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0-30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길로 퇴근 하실텐데 사진 올리실때마다 다 다른 풍경처럼 보여요. 그러니까 사진으로 담으시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리>의 낱말뜻 찾아보고 갑니다. 저는 처음 보는 낱말이라서요. 덕분입니다.

nama 2015-10-30 08:39   좋아요 1 | URL
늘 같은 길인데 어제는 굉장했어요. 갈대와 억새가 그새 하얗게 색이 바래서 바람에 파도를 이루고, 나문재는 보라색으로 물들고, 노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닷물은 호수를 이루고....가을 풍경이 대단했어요.
사리와 조금이란 단어. 우리 엄마는 손가락 셈으로 사리와 조금을 따져서 멀리 버스를 타고 바지락을 캐러 가시곤 했어요. 손가락 셈은 보고 또 보아도 끝내 이해하지 못했어요. `사리 때`에서 굳이 `때`는 필요하지 않은 단어인데 안 쓰면 이해하기 어려울 듯 싶어요. 손가락 셈도 못하고 단어도 제대로 못 쓰고...아는 게 뭔지요...
 

 

 

 

 

 

 

 

 

 

 

 

 

 

 

목수정이 파리에 사는 생활좌파들 15명을 인터뷰한 글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처음에는 '좌파'에 대한 인터뷰이들의 견해를 메모했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었고, 그간 내가 생각해온 좌파에 대한 개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이들은 실제로 좌파로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생활좌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머리로만 좌파이거나, 행동이 없는 무능한 좌파는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씩 메모해놓았던 '좌파'에 대한 견해들을 옮길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다음 부분을 뻬끼는 것으로 바꿨다.

 

Q: 국정원한테 많이 당한 모양이다.

 

A: 물론이다. 한번은 나를 불러서 직접적으로 위험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한국 외교부가 프랑스 외교부를 통해 상원외교위원회에서 나를 쫓아내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우리 협회에 대해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시도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얌전하던 브누아 켄더도 이 대목에서는 이를 간다.)

 

Q: 그런 위험을 당하면서까지 협회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뭔가?

 

A: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별일 없었다. 조용했다. 이명박이 권력을 잡으면서부터 국정원 활동이 활발해졌고 우리를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2008년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가 불붙었을 때 우리도 사이트를 통해 이명박 정권을 비판했다. 국정원의 공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나에게 접근해왔던 한국인 중에 적어도 서너 명은 국정원의 정보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활동을 그만둘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아니, 사실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있고 나서 이 일에 더 재미가 붙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더 심해졌다. 일단 파리에 주재하는 국정원 직원의 숫자가 더 늘어났다. 그들이 우리를 방해하면 할수록 우리가 하는 일이 뭔가 의미가 있었던 거구나 싶고, 그렇다면 더 열심히 해주어야지 하는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

 

 

기타 소소한 표현들.

 

"흰머리는 인생의 아카이브야. 내가 살아온 인생이 이 흰머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야. 그래서 좋아해. 그러니까 염색 안 하지."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는 여성의 해방이 정말 중요하다. 알고 있는가? 나이 든 여자 한 명이 죽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인기가 있다...박근혜가 파리를 다녀갔는데도 신문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북한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비상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나라다. 대체 저 감춰진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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