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세계테마기행>에는 내노라하는 여행가들이나 지역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저 사람들

은 좋겠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TV에도 나오고...' 늘 부러운 시선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는데 이들 출연자들의 압권은 단연 한국방송통신대의 중국어과 김성곤교수이다. 특히 이 분의 중국한시낭송은 늘 감탄을 자아낸다. 자유자재로 흘러나오는 저 낭랑한 한시에 한량같은 특유의 호탕한 기운까지 더해지면 그저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이 분의 강의를 드디어 들어볼 기회가 왔다. 인천지역 방송통신대 중국어과 3학년 출석수업에 이 분의 강의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저녁밥을 김밥으로 대강 때우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길쭉한 강의실에는 대략 60~70여 명의 학생들이 들어차 있었다. '학생'이라지만 대부분이 늙수그레한 분들이었다. 평균나이 55세 정도? 남자들은 60대 이상되는 분들이 많았고 여자들은 20대도 더러 있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기도 하고.

 

덕분에 소동파의 전적벽부 원문을 읽었다.

 

壬戌之秋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游於赤壁之下   

임술년 가을 7월 16일에 나는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닐게 되었다.

淸風徐來  水波不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되는 적벽부는 후반부에 이르러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 흘러가는 것은 강물과 같이 쉬지 않고 흐르지만, 그 흐름은 다하는 일 없이 여전히 흐른다.

차고 기울어지는 것은 저 달과 같지만, 끝내 아주 없어지지도 더 늘어나지도 않는다.

변한다는 관점에서 사물을 보면 천지간에 한순간이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과 나는 모두 무궁한 것이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천지 사이의 모든 사물은 각기 그 주인이 있어서

만약 나의 것이 아니면 털끝만한 것이라도 취할 수 없지만,

오직 강 위에 부는 밝은 바람과 산 사이에 뜨는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눈에 담겨지면 아름다운 경치가 된다.

이를 취하여도 막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주신 무진장한 보배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라오."

 

 

한문을 옮기기가 너무나 번거로워 해석만을 옮겨보자니 예전 우리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떤 것을 설명하실 때는 늘 한자를 써서 한 글자 한 글자 뜻풀이를 해주시곤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체를 하며 한자를 써볼 요량이면 '그것도 글씨냐'며 한말씀 하시곤 했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해 이제 내 자식이 영어를 쓰게 되면 '그것도 영어발음이냐'며 내가 타박을 놓는다. 아마 위의 시도 영어로 되어 있다면 기꺼이 원문을 베꼈을 지도 모른다.

 

강의실에 꽉 들어찬 늙은 학생들을 보며, 이제는 확실히 중국어가 대세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머잖아 중국어가 필수과목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어도 시원찮고 한문 실력도 없는 우리 아이들은 또 어찌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성곤교수의 유쾌한 수업 이야기에서 결국은 아이들 걱정으로 글을 맺는다. 세상엔 공부할 게 너무나 많다.

 

 

( 원문의 한문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복사했더니 줄 간격이 내 맘대로 안 되어 윗글과 아랫글이 간격이 다르다. 요만큼 쓰는데도 지친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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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9-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읽어보는 적벽부입니다
임술지추칠월기망에 소자여객....어쩌고....청풍은서래하고 수파는불흥이라...저쩌고
아둔한 머리로 외워보려고 낑낑대던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

nama 2016-09-02 07:27   좋아요 0 | URL
저는 소동파보다는 셰익스피어랑 친해서인지 한문이 영 외워지지 않습니다. 영시도 물론 외우지못하지만요. ㅠ 한문을 독학하려면 독기가 필요할 듯싶어요.^^
 
발리의 춤 비판세계문학 3
오까 루스미니 지음, 이연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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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인도네시아 소설이다. 발리에 가기 전이었다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일대를 여러 번 여행했지만 그들의 문학작품을 애써 찾아서 읽는 일은 별로 없었다. 미안하고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편향적인 교육을 받은 폐해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인 게으름도 있을 테고.

 

1967년 발리 태생인 오까 루스미니라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가 쓴 이 소설은 2003년 인도네시아 문교부 최고 작품상과 2012년 태국 동남아시아사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신자 수를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발리는 독특하게도 힌두교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인도의 힌두교와는 약간 다르지만 여전히 신분제인 카스트가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 그네들의 깊숙한 삶의 이면을 이 소설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발리를 여행했다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용은 책 뒷 표지에 실려있는 글을 옮긴다.

 

<발리의 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두 세대 발리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뜰라가의 어머니 루 스까르는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급인 수드라 출신이었으나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브라만 계층의 남성과 결혼하여 귀족의 신분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가 공들여 키운 딸, 뜰라가는 어머니와 반대로 수드라 계층의 남성인 와얀 사스미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브라만 계층의 여성과 수드라 계층의 남성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발리 전통과 그러한 결혼이 큰 불행을 가져오리라 믿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혼을 감행한다. 뜰라가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려는 강한 의지로 삶의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켜 나가려 노력한다. 그러던 와중 남편이 와얀이 병으로 죽게 된다........

 

이런 줄거리도 재밌지만 특히 내가 주목하게 된 부분은 뜰라가의 춤 선생님인 깜브렌의 등장 부분이다. 우붓에서 이틀 밤에 걸쳐 보았던 발리전통춤이 아직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붓에서는 거의 매일 시내 이곳저곳에서 발리전통춤 공연이 상연된다. 춤은 매우 세련되어서 기교도 섬세하고 화려해서 볼거리로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이 세련됨은 그들 전통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일찍부터 이곳의 매력에 홀린 서유럽 사람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조리해놓은 작품에 불과하다. 춤 선생님인 깜브레는 그런 점에서 발리 여성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 같다.

 

" 내 말을 잘 새겨들어라. 발리 여성에게 있어 일이란 제사 예물을 만들고 기도하고 예식에서 춤을 추는 거란다. 그것이 바로 이 예술을 지탱해주는 거야. 옛날 사람들은 무엇이 개인의 활동이고 무엇이 예술 활동인지 굳이 구별 짓지 않았다. 그저 사원에 예식이 있으면 춤을 추었던 거야. 허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난 이 춤의 은총을 계속 지키기 위해 태어났다. 그런데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내 춤의 은총을 망쳐 버렸어. 그들은 춤의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무엇이 춤을 만드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외국인 앞의 무대에 세워 팔아먹을 생각만 했어. 그들은 이 귀한 전통 유산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외국에서 배워오지 않은 모양이더구나. 문화는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이야."(98~99)

 

"너도 발리에 사는 다른 외국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 서양 사람들은 우리를 어리석은 사람들로 바라보지. 거짓말을 하고 속이기 적당한 사람으로 우리를 생각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들이 서양 사람들과 비교할 때 훨씬 더 대단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105)

 

"난 그저 사람들이 내가 이 땅을 위해 한 일을 존중해주길 바란단다."(113)

 

그들의 전통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전통춤이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질되어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협은 삶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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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멍하게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불쑥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찰나의 무심함이다. 화려한 볼거리나 멋진 경치보다 오히려 아무런 의미도 없어보이는, 이를테면 생선바구니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의 하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눈도 돌리지 않는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장면에 나뭇잎 떨어지듯 툭하고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발리 우붓에 있는 유일한 운동장(또 있나?)에서 동네 청년들이 축구하는 장면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여행자들.

 

 

 

여행지에서는 마음껏 텅 빈 채로 지낼 수 있다. 그게 여행이지 싶다. 

 

 

 

그렇게 텅 빈 나날들이었지만 밤마다 꿈에 시달렸다. 여행 초반에는 이틀에 한번꼴이다가 후반에는 매일 밤마다 꿈에 시달렸다. 꿈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학교'였다. 수 년 전에 담임을 맡았던 꾸러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는데 내가 담임을 다시 맡게 되었다는, 생각하기조차 두렵고 겁나는 일도 일어났다. 꿈 속에서도 '설마 이게 현실이 아니겠지.' 하면서 내내 안절부절하다가 불쑥 잠이 깨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곤했다. 그런 연속된 악몽으로 새벽을 맞는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더 이상 꿈 속에 '학교'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현실 속의 '학교'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왔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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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매혹적인 언어(글)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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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발리>꾸따

 

지인이 소개해준 호텔이라 별 고민없이 3박을 했는데...

 

작은 독채들이 여럿 모여 단지를 이룬 호텔로, 외관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단아하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고택같은 격조있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지금은 낡고 허름하지만 한창 때는 그 지역의 호텔을 대표하지 않았을까 싶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분명 화려한 내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때는 잘나갔으나 지금은 퇴물로 변해버린, 과거의 옛영광을 상상하게 하는 참 야릇한 호텔이 바로 이 Balisani Pudma 라는 호텔이다.

 

 

 

 

 

 

 

 

 

 

 

 

 

 

 

 

 

 

 

 

 

 

 

 

 

 

 

 

 

 

 

 

 

 

 

 

외관뿐이랴. 삐그덕거리는 침대와 누렇게 바랜 침대시트, 겨우 숨을 쉬는 화장실과 욕실, 채널이 하나뿐인 엣날 텔레비전, 소리가 요란한 낡은 에어컨, 15cm가량의 큼지막한 나무열쇠고리, 우중충한 실내공기 등은 영낙없는 우리네 여인숙을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손님이라곤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그중 5~6명은 (아마도) 장기투숙중인 서양노인네들이다. 하루에 삼만 원이 채 안되는 가격이라 처음으로 딸아이에게 방 하나를 쓰게 했더니 입이 헤~벌어졌다.  

 

수년 전 발리에서 테러가 일어나 200며 명이 목숨을 잃은 지역이 이곳 꾸따이다. 건물 외관으로 봐서는 수십 년 전에 지어진 호텔인데 그렇다면 테러와도 무관했다는 얘기다. 테러에도 안전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조용하고, 옛 영광도 떠올려볼 수 있는 곳....서핑으로 유명한 꾸따해변의 파도와 더불어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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