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사진2


사진1은 개울 건너 이장님네 사과나무이고, 사진2는 우리집 사과나무이다. 3년 전 같은 시기에 심었는데 척 보기에도 차이가 난다. 이장님네 사과나무가 연륜이 약간 많아서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긴했지만 나무 크기만으로 보자면 우리집 사과나무에도 최소 한두 개의 사과가 달려야 하지 않을까만... 한개도 달리지 않았다. 아니 봄철에 사과꽃도 피우지 못했다. 그러니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나무를 대강 심어놓으면 열매가 알아서 맺겠거니 생각했다.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것보다도 우리는 농사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말하자면 도시촌놈. 아는 것도 없는데 이장님의 조언도 무시하고 우리식(?)대로 했다. 때맞춰 농약도 뿌리지 않고, 순도 자르지 않고(모르니까). 그래도 퇴비도 주고 애지중지 관심을 기울였는데 꽃송이 하나 열리지 않았다. 왜 그럴까...를 우리는 모른다. 그나마 아는 건 농약을 주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온갖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 파뿌리 하나, 고추 한 개, 사과 한 개...저절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 참고로 개울 건너 이장님은 한때 부모님이 사과밭을 가꾸었다고 한다. 일년 내내 사과를 먹을 줄만 알지 사과 하나 키워내지 못하는 이 무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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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책을 다시 읽는다. 새롭게 읽히는 걸 보면 건성건성 읽었던 것 같다. 읽었다고 읽은 게 아니었다. 2017년 간행된 책으로 읽었으니 6~7년 전인데 서경식의 한탄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 들어맞는다. 아마도 앞으로 6~7년 후에 읽어도 오늘의 이 느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 책의 제목 <내 서재 속 고전>의 '고전'이 갖는 의미를 이해한다. 서경식이 틀려도 좋으니 세상이 좀 좋은 쪽으로 흘러주었으면....


p. 79

사이드는 이 책*에서 오늘날 지식인 본연의 자세를 위협하는 것은 아카데미도 저널리즘도 출판사의 상업주의도 아닌 '전문주의(프로페셔널리즘)'라고 단언한다. "현재의 교육제도로는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좁은 지(知)의 영역에 갇혀버린다." 전문분화specialization된 사람은 "그저 순종하는 존재"가 된다. "당신 자신의 감동이나 발견의 감각은 사람이 지식인이 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감각인데 전문 지식인이 되면 모두 압살당하고 만다." 그 결과 '자발적 상실'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사이비 지식인들이 정부나 기업 주변에 모여든다. 그 복합체를 형성하는 무수한 세포와 같은 개개의 사람들은 얼핏 가치중립적인 전문가들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로 냉혹하게 권력을 행사하거나(종종 전쟁까지도!) 이윤을 추구한다.


*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


사이드에 관한 얘기 하나 더.


p.26 

집을 갖지 않겠다는 신조 때문에 사이드는 평생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주택에서 살았다.



사이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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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산골생활 중 가장 겁나는 생명체는 눈초파리이다. 새벽이나 해 저물 무렵 집 밖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눈 주위를 맴도는데 운이 나쁘면 눈 속으로 퐁당 들어오기도 한다. 작년 여름, 눈초파리 습격으로 안과를 찾아서 속초까지 갔었다. (양양에는 안과가 없다.) " 제 눈이 큰가 봐요. 눈초파리가 눈에 들어왔네요." 했더니 의사 왈 "ㅎㅎ 눈을 작게 뜨고 다니세요." 그래서 내가 세운 대책은? 바로 선그라스. 눈가에 착 달라붙는 스포츠용으로 날벌레의 접근을 막아주는데, 연전에 산책길에 눈에 들어간 날벌레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장만한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눈은 날벌레에겐 호수 같이 맑고 드넓어 보이나 보다. 아니 날벌레들이 눈 분비물을 좋아한다니 내 눈은 탁하디 탁할 뿐인가.


눈을 혹사시키면서 책을 읽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을 떠올리게 하는 책. 

깊이와 넓이, 질과 양을 만족시키는 책. 

헌책방으로 직진하지 않고 내 서가에서 살아남을 책.

무더위와 힘겨루기 하면서 끝까지 읽게 되는 책.

한두 꼭지는 도중하차해도 양해할 수 있는 책.

완독하느라 지쳐서 빨리 서가에 꽂아놓고 싶지만 그래도 손 놓기 아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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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8-05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넣어놓은지 오래인데 아직 시작을 못한 책이네요.

양양에 계신가봐요.
더위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nama 2024-08-05 20:32   좋아요 0 | URL
읽다보면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이에요. 저는 약간 변덕스러워서 내키지 않으면 중도에서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래도 끝까지 읽히네요. 무더운 날씨도 한몫하고요. 더운 날씨에 가만히 앉아서 책 읽는 맛도 좋아요.

양양 산골 오두막에 콕 박혀 있어요. ㅎㅎ
 

1. 나이 60이 저만치 지나갔건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서, 여전히 하루 해가 짧은 요즘.



 

꽃송이 버섯이다. 이름도 예쁘고 맛도 꽃내음이 살짝 풍기는 듯한, 감성 풍부한 맛이라고나 할까.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 식감은 부드럽다. 착한 이웃 덕에 조금 얻어 먹었다.


2, 끊어진 폰툰다리 연결하는 걸 돕다가 폰툰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그 위에 살짝 올려놨던 장화가 개울에 빠졌다. 물살이 빨라서 건져 볼 엄두도 못내고 말 없이, 인사도 없이 조용히 보냈다. 장화는 둘째치고 폰툰이 반으로 접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니까 순서가 이렇다. 비가 왔다>> 폰툰 한 쪽 밧줄이 끊어져서 맞은 편 개울가로 밀렸다>>끊어진 쪽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고 다시 밧줄로 고정시키다가>> 폰툰이 뒤집어졌다>> 체인 블록을 사용하여 다시 원래 모습으로 뒤집는 중에 폰툰이 반으로 접혔다. 흡사 나무 토막이 반으로 꺾인 듯한 모양새다.>>어찌어찌해서 겨우 원래 모습으로 돌려 놓는데 성공>> 잠시 후 반으로 꺾인 부분에 생긴 변형으로 다시 뒤집어짐>> 뒤집어진 상태에서 겨우 양쪽 연결, 일단 지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오전 시간이 다 날아갔다. (거의 모든 작업은 남편이 혼자 했고 후반부에 이웃분의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설명을 한들 글쎄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폰툰이란 단어부터 낯설 터이다. 설명하다보니 '원래' 란 단어가 줄마다 들어갔다. 요령부득이다. 


개울에 다리 하나 놔달라고 20여 년 간 군청에 읍소했건만... 


맨발로 언덕을 오르며 오두막으로 향하는데 분노인지 슬픔인지 체념인지 모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에이 씨~ 책이나 읽자.


3. 한겨레신문 칼럼 중에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을 즐겨 읽는다. 며칠 전 칼럼 ' 휴가 때 책 한권 어떠세요?'를 읽고 도서관에서 책 한권을 빌렸다.















'휴가 때 이런 무겁고 진지한 책을?'이라고 아마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제목이 주는 중압감이 있지만 그 선입견만 털어낸다면 장담하건대 이 책은 추리소설이나 연애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 주변의 청년들과 청소년들과 함께 읽으며 검증한 책이니 부디 나를 믿고 한번만 읽어보시라.......


이렇게 시작되는 글을 읽고 도저히 궁금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작가 선안나는 낯설었으나 ' 이 책을 집필하느라 이 년 동안 다른 글을 쓸 수 없었'다는데 이 또한 도저히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재미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에 대한 내용은 저 칼럼을 검색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항일투사 안재홍에 특히 관심이 갔다. 안재홍 생가가 있는 동네를 무수히 지나쳤는데도 한번도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학교 때 내 짝꿍이 살던 곳. 그 짝꿍에게 물어보니 안재홍 투사의 며느리가 초등학교 때 담임이었단다. 짝꿍 아버지가 안재홍 생가의 초가집 지붕 이엉을 다시 입혀주기도 했단다. 오늘 들은 얘기다.



항일투사 안재홍을 몰라봐서 참 부끄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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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Zone of Interest>를 인덕원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감상했다. 상영관이 드물다보니 난생 처음 인덕원까지 가게 되었다. 50석 중 관객이 7명 쯤이었나. 영화의 포인트는 사운드(배경음악)라는 걸 미리 찾아서 알고 갔기에 망정이지 멋모르고 갔더라면 영화 후반부에서나 겨우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음울하고 불유쾌하면서 뭔가 불안하게 하는 사운드는 역시 영화의 압권이었다.

'끔찍한 장면 없이 끔찍한 영화'. 그 끔찍함은 영화도 영화지만 내 안의 끔찍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셨던 엄마는 어느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집에서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너밖에 없다." 누군가는 평생 병에 걸려서 눈물겹고, 누군가는 외로워서 애달프고, 누군가는 식솔을 책임지느라 어깨가 무거워서 안타깝고, 생각해보면 모두 제각각 '불쌍'한데 나만 유일하게 그런 걱정없이 살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엄마는 참...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모르시나...씁쓰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내내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그렇게나 이기적이었나. 내 몫을 살아내느라 내 삶도 만만치 않았는데 엄마가 보기에는 그래도 다른 자식들에 비해서 수월하게 사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너만 안 불쌍하다."라는 말씀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안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질타하는 듯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데..하는 서글픔과 함께.


영화 제목인 Zone of Interest를 나는 이렇게 번역해본다. '혼자만 잘 사는 놈(이 있는 곳)'이라고. 혼자만 잘 살겠다고 마음 먹은 놈에겐 보이는 게 없다. 그저 저 살 궁리만 하면 되니까. 나라꼴이야 어떻든 제 맘대로 하고야 마는 저 못난 인간들이 죽치고 있는 곳...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뿌리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뻗어가게 하는 이 영화. 책 한 권보다, 며칠 간의 여행보다 더 진하고 매력있다. 쉽사리 뽑히지 않는 뿌리를 심어놓는다.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에 폰툰다리가 끊어졌다. 완전 고립은 아니지만 어쨌건 외부세계와 격리되었다. Zone of Isolation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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