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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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때리는 채찍같은 글. 글만 잘 쓰면 무슨 소용인겨. 몸과 글이 하나가 되어야지.
생각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고집쟁이 농사꾼‘이 꾹꾹 눌러쓴 글. 두고두고 되새기며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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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이 바뀌어 나왔나봐요? 저는 전우익 선생님 웃는 얼굴 나와있는 책 가지고 있어요.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

nama 2021-02-23 16: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전우익 선생님 웃는 얼굴이 참 인상적이지요. 근데 책이 새록새록 나오는 것도 좋아요. 읽는 사람이 계속 있다는 거니까요.
 

 

아주 예전 우리 집 전화번호는 128번이었다. 동네(읍단위)에 전화기가 몇 대 없던 시절이었다. 부자였냐고? No~~. 얼리 어답터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전화기만 있었다. 송수화기를 들면 교환수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원하는 번호를 말하거나 '**가게'라고 말하면 전화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세월이 좀 흘러 세 자리였던 전화번호가 네 자리로 바뀌면서 전화기에 부착된 원반에 구멍이 송송 뚫리고 숫자가 적힌 다이얼식으로 바뀌었다. 교환수를 상대로 가끔 장난을 치던 오빠들, 만취하신 아버지가 툭하면 청와대를 연결해달라는 억지 같은 것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쏙 들어갔다. 다시 몇 년 후 국번호 6이 붙으면서 6-**** 가 되더니 다시 얼마후 국번호가 두 자리로, 다시 얼마후 국번호가 세 자리가 되었다. 역사가 깃든 28번은 끈덕지게 살아남아서 지금도 오빠가 그 번호의 집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임용고시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순위고사라고 불렀다. 내가 시험을 치르고 가까스로 교사가 되었던 건 마지막 순위고사를 통해서였다. 한동안 순위고사 시험 자체가 없다가 어느 해 느닷없이 많은 수의 교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9시 뉴스 마무리를 하면서 보도했다. 내가 지원한 과는 42명을 선발했는데 나는 그 중 28번으로 합격해서 교사가 되었다. 그리 자랑스러워할 순위는 아니었으나 팔백 명 이상 지원했으니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7년 만이었다. 그리고 교사 생활 28년 끝에 명퇴를 했다.

 

옛날 얘기를 하다보니....이래서 라떼가 되는구나!

 

 

 

 

 

 

 

 

 

 

 

 

 

 

 

 

김연수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김연수 소설에서 느끼는 모호한 느낌 같은 게 거의 없었다. 어차피 여행을 못 떠나는 시절, 철 지난 여행담조차도 반갑게 다가왔다. 게다가 문장은 깔끔하고 적당히 낭만적이니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한장 한장 넘기며 읽는 맛이 꽤 괜찮았다. 그러나 아무리 재밌게 읽었어도 내일이면 거의 잊어버릴 터. 마치 치매를 예행연습하는 것처럼. 꼭 하나만이라도 기억해서 읽은 보람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던 차에 으례 숫자 28이 눈에 들어왔다.

 

리스본이 내게 꿈의 도시가 된 건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파두 그룹 마드레데우스와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가 리스본에 가게 된 건 이들이 아니라 28번 트램 때문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종착역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구글 어스로 찾아보다가 그만 28번 트램을 찍은 사진을 본 것이다. 사진 속에는 개나리의 노랑보다는 겨자의 노랑에 가까운 노란색 전차가 좁은 골목 사이에 서 있었다. 동화 속 풍경 같았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전차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사진을 보며 반드시 그 노란색 전차를 타고야 말겠다고 맹세했다.            

                                               -p.101 <밀물처럼 밀려오던 리스본의 노스탤지어>에서

 

글은 계속 이어진다. 그가 묵었던 숙소는 포에츠 호스텔(Poets Hostel), 유서 깊은 예술가들의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 Cafe a Brasileira)가 있는 거리, 빔 벤더스의 영화<리스본 이야기>의 사운드트랙 앨범 <Ainda>를 들으며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

 

리스본이 하구의 도시, 석양의 도시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파두 때문이었을까? 장난감 같은 트램과 골목의 풍경이 하도 애틋해서였을까? 마치 한 시대가, 한 생애가 끝나는 순간의 감정처럼 막대한 노스텔지어였다. 얼마나 대단한 그리움이었던지 그 순간 리스본에 있으면서도 나는 리스본이 그리웠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리스본이 그립다.  -102~103쪽

 

 

어제는 18,293 걸음, 14.41km 를 걸었다. 평소보다 좀 더 걸었다고 오늘은 몸이 말이 아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몸이 사그라들겠지. 더 사그라들기 전에 '언젠가, 아마도' 나도 리스본에 가서 28번 트램을 탈 수 있겠지. 28번은 나의 인생 숫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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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변의 작은 책방 로맨틱 파리 컬렉션 1
레베카 레이즌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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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 혹해 도서관에서 빌려왔으나 내가 읽을 책은 아닌 것 같음. 또다시 손에 집어들지 않기 위해서 기록해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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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 하루키에서 하야오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8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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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투박하고 상투적이지만 읽다보면 친근감이 느껴져서 끝까지 몰입하게 된다. 이 시리즈를 더 찾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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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박완서:  (중략) 며칠 전에 피천득 선생하고 점심을 했는데, 그분도 가톨릭 영세를 받으셨다고 해서 " 어떻게 하셨어요?" 하니까 아름다워서 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되레 좋더라구요.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아름다워서 사랑했다는 게 맞지 그 여자가 진리이기 때문에 사랑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떻게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너무 억압하는 건 진리가 아닌 것 같애요. 사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나니' 그러면서도 진리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116~117쪽

 

 

박완서: (중략) 한번은 동화 쓰시는 정채봉 씨에게 말했어요. 나는 고해성사 때문에 언젠가 카톨릭에 대해 냉담해지고 말 것이라구요.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만들어갖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나요? 정채봉 씨에게 그런 말을 막 했더니, 웃으면서 피천득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선생님께서는 성당에서 나눠준 성사표를 그냥 통 속에 집어넣어버린다면서요? 한번은 그러시다가 신부님께 들키기까지 하셨다면서요?

 

피천득: 뭐, 들켰다기보다......난 말할 게 없으니까. 물론 따져보면 나도 죄가 있겠죠.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다 아실 텐데 한 다리 걸쳐서 그럴 필요가 있어요? 하느님이 다 아실 것 아녜요?

 

(중략)

 

피천득: 나는 한 번도 고해성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고해성사하는 방도 참 답답해요. 어휴, 그 좁고 답답한 방에 어떻게 들어가나 하는 생각부터 불쑥 들어요. 그리고 나는 솔직히 말해서 성체인지 하는 거 받아먹는 것도 이상해요. 맛도 없고 배부르지도 않은 그걸 형식적으로 먹고 할 까닭이 뭐예요.       -180~181쪽

 

 

아름다운 두 분이시다. 저런 마음으로 카톨릭에 입문한다면 적어도 냉담자는 되지 않으리라. 힘을 뺀 카톨릭을 상상할 수 없지만. 힘을 뺀 신앙인이 되는 건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가톨릭과 카톨릭. 책에 쓰여진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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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숙희: 그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박완서: 말로써 쉽게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여자들, 만만한 남자를 만나서 쉽게 평등을 이루려는 약은 여자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135쪽

 

 

그래서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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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2-10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톨릭 신자로서 너무 공강되는 글이예요.
박완서작가의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nama 2021-02-13 14:48   좋아요 2 | URL
대담집이라서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드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