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이상한 것을 먹은 것도,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속이 아파서 온종일 눈만 꿈벅거리고 자리보전하고 있다가, 그래도 뭔가 해야지 싶어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계삼의 글을 읽으면 마음매무새를 고치게 된다. 그간의 마음 찌꺼기, 사고의 불투명함, 허망한 욕심, 애매한 믿음 따위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느낌이 든다. 순간이나마 정직한 마음자세가 되고 반성하는 인간이 된다.
이리저리 에돌지 않는 직선적인 표현은 설득력이 강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는데...
사실 말이지만, 지금 학교가 존립하는 것은 달리 다른 이유가 없다. 국가는 걷은 세금을 써야 하고, 교사는 월급을 받아야 하며, 학생은 졸업장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당위와 합리성이 아니라, 주어진 틀의 완강함이, 힘의 관계가 구조화시켜 놓은 압도적인 완력이 작동하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정치다. 그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힘의 운반자들'일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도와 정책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교육은 오늘날 한국인들의 사회적 삶의 성패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관문이다. 거기에는 중산층으로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와 여기서 밀려나면 끝이라는 공포가 서려 있다. 거기에는 믿을 건 내 가족, 내 자식밖에 없다는 가족주의와 가족애를 빙자한 끔찍한 자기애가 있고, 좋은 삶이란 그저 좋은 대학 나와서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는 속물적인 인생관이 있다. 나와 내 자식이 이 체제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내 자식이 기층민중의 일원으로, 농민으로 노동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이 벌 수도 풍족하게 쓸 수도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 문제는 아주 작은 것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퇴직 소감>에서
나는 영훈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쓴 시
민사고와 하버드를 향한 트랙에서 빠져나와 곧장 미용사가 될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진짜 혁신이다. 작금의 혁신학교 운동은 답이 될 수 없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에서
책을 채 반도 못 읽어서 여기까지만 옮긴다. 1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며 쓴 <퇴직소감>이 아프게 와닿는다.
☞계속☞
밀양송전탑에 대한 글이다.
돈 때문인지는 다 알고 있다. 밀양송전탑의 건설 여부에는 고리 지역 노후원전 연장 가동과 UAE 원전 수출 드라이브, 신고리 5~6호기 증설에 이르기까지 수십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돈이 걸려 있다. 세월호 이후에 어떤 일에서든 정권이 밀려서는 안 된다는 권력의 자기보호 본능이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한 줌 노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9개월 동안 연인원 38만 명에 경찰 주둔 비용으로만 100억 원을 들일 만한 분명한 이유가 그들에겐 있다.
밀양송전탑 싸움을 통해 내가 얻는 가장 큰 학습은 정치 공간이 '허당'이 되어 버릴 때, 국가와 시민이 직접 부딪칠 때 재난이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이며, 그 정치는 저들을 향한 청원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엮어 세우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진실을 나는 배웠다.
<20년째 같은 방식>에서
정권의 형편없는 지체를 조롱하는 것은 쉽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는 것, 비정규직의 고통과 맞서 싸우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 농업의 부흥 외에 한국사회의 다른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풍요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익숙한 삶의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언제나 힘겨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