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읽기는 집중도를 높인다. 시간이 잘 흐른다. 단, 적당히 읽을 만한 것을 읽을 때.

 

 

 

 

 

 

 

 

 

 

 

도서관에 신간도서로 비치했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몇자라도 적어서 학교 홈피에 올려야되겠기에 읽기 시작했는데...재밌다.

 

엄마 없이 사는 시골농장의 세 식구. 어느 날 아빠가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서 Sarah 라는 평범하고 키가 큰(plain and tall) 여자가 들어오는데, 조건이 있다. 일단 한 달 살아보고 결혼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다. 어린 남매는 혹여 이 여자가 아빠와 결혼하지 않고 멀리 가버릴까 불안해하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희망과 절망이 오간다. 새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마음 움직임이 눈물겹다. 담담한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내용이다.

 

아이들 책이지만 읽고나면 맑고 개운한 느낌이 난다. 좋은 책이다. 특히 거의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핑 돈다. Sarah가 마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이다. 세 식구는 Sarah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Papa took the reins and Sarah climbed down from the wagon.

Caleb burst into tears.

"Seal was very worried!" he cried.

Sarah put her arms around him, and he wailed into her dress. "And the house is too small, we thought! And I am loud and pesky!"

Sarah looked at Papa and me over Caleb's head.

"We thought you might be thinking of leaving us," I told her. "Because you miss the sea."

Caleb은 어린 남동생, Seal은 Sarah의 고양이. "Seal was very worried!"라며 눈물을 터뜨리면서 새엄마의 치마폭으로 뛰어드는 어린 남자아이의 외로움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한 폭의 그림같다. 아이들에게 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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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강렬한 햇볕을 쬐고왔더니 심신이 여의치 않다. 이열치열이란 사자성어는 복날에 땀 흘리며 삼계탕 먹을 때나 쓰는 말이지 뜨거운 여행지에서 더위와 갈증과 싸워가면서 쓰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열치열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기도 한다. 한여름 무더위에 속수무책일 때, '더워야 얼마나 덥겠어.'하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가며 3박 4일을 그 뜨끈한 방에서 더위와 싸웠더니 그 후부터는 아무리 더워도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한여름에도 긴 소매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실험정신이 대단하지만 섵불리 흉내낼 일은 못된다. 그냥 내 식대로 산다.

 

피서법이 따로 있겠는가.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수밖에. 나무늘보처럼. 그러다보면 오히려 더운 한여름에 집중이 잘된다. 무더위가 사람을 단순하게 하고, 단순해진 몸은 사고를 단순하게 한다. 물론 재미있는 책을 읽을 읽으면 최대의 피서법이 되지만 반대로 아주 재미없는 외국어 공부도 정신집중에 도움이 된다.(적어도 20대엔 그랬다는 얘기.)

 

 

 

 

작년에 도서관에 신청해놓은 책을 이제야 읽었다. 돈을 번다는 건 내 시간을 파는 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이 책. 예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딱 우리동네 사람들 얘기같다. 한여름 바람 잘 통하는 부엌 문지방에 앉아 책을 읽었던 기억도 나고.

 

 

 

 

 

 

 

 

 

 

 

여행 후유증을 이 책으로 달래다. 이제야 이 책을 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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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책을 도서관 신간도서로 구입하고 읽자니 약간 박자가 느린 감이 없지 않다. 이젠 집안에 책탑을 쌓아야 할 판이니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내 소유가 아닌 책을 보는 쪽이 마음도 몸도 편하다. 책이라는 소비재를 덜 구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책.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언급했나 했더니, 그래 알겠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영문학과 교수의 일대기가 잔잔하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딱히 불쌍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삶인데 마음 저변에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을 솟게 한다. 누구에게라도 있을 법한 그저그런 얘기를 그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딱 그 정도로 서술한 소설인데, 고전적인 감동을 준다. 명작소설을 읽는 기쁨이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물론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특히 영문학 관련 부분은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학시절 영문학사에 매료되어 겨울방학 내내 원서를 읽으며 그 숱한 작가와 시인들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사족이지만, 이 책은 번역이 훌륭한 것 같다. 마치 국내 창작소설을 읽는 것처럼 문장이 자연스럽고 매끈하다. 소설을 읽고 행복한 감정이 든 건 참 오랜만이다.

 

나이 마흔 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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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권을 읽으며, 청소년 소설도 읽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판타지류의 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 자랑거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 세계를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자각도.

 

사실, 소설 앞에 '청소년'이 붙는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껏 영문판 'The Giver' 나 'Holes' 정도, 아니면 영어동화로 분류되는 아동물 정도.

 

어렸을 때는 읽을 책이 썩 드물었다. 책이라고 해야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온갖 정부간행물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독서용이 아닌 불쏘시개용으로 조만간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동화책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학급문고로 개인당 한 권 씩 사서 서로 돌려본 것 외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전에는 언젠가 당시 서울의 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왔을 때 몰래 가방에서 훔쳐보았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내 유년의 유일한 동화책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랫방에서 언니 가방을 몰래 열어보는 일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책 내용마저 심장을 떨리게 했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다 읽고 읽고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계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를 놀라게 한 부류의 책이 또 있었다. 우리집에 세들어 살았던 군인가족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육사출신의 장교였고 아주머니는 이대영문과 출신으로 미군방송을 즐겨보았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다. 이분들이 이사를 가면서 몇 푸대자루의 책을 잠시 맡겨두고 간 적이 있는데 뒤란 한 구석에 방치되었던 이 책꾸러미가 우리 삼남매에게는 장난감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꾸러미 속에 한글로 된 책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영어로 된 책뿐이었고 게중에는 색채도 선명한 총천연색 포르노그라피류의 잡지도 적잖이 있었는데...포르노라는 말조차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 접한 이런 책들은 그저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몸매의 백인과 흑인의 적나라한 성기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정신적인 성장이 조금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더하기 대학 시절.

 

동화책에서 곧바로 세계명작소설로 넘어갔던 우리 세대에 비해서 요즘은 읽을거리도 참 다양하다. 다양함이 오히려 피곤함이 되는 걸 우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읽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게 부럽긴 하다.

 

위의 책. 약간은 모호하고 설득력이 약한 <기억을 파는 가게>보다 <괴물 사냥꾼>이 훨씩 가독성이 좋다. 반전이랄까, 복선도 재미있다. 아이들 특히 중학교 남학생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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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폐기될 뻔했던 것을 간신히 건져서 서가에 도로 꽂아놨던 책이다. 잘 했다.

 

오카나와 사람들 이야기를 동화로 읽고 있자니...재미와 교훈, 어쩌고 하는 말도 떠오르고...이게 과연 동화인가...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정답고 눈물겹구나, 하고 마지막 장을 술술 넘기고 있었는데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 후짱의 아빠가 죽는다. 정신병을 앓는 있는 아빠 때문에 묘한 긴장감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었는데...순간 눈물이 핑 돈다. 글썽거리던 눈물을 닦고 쓰고 있다, 지금. 와, 이렇게도 울리는구나!

 

단 한 줄, 이 책의 주제가 되는.

 

..일본은 오키나와의 마음과 만나면서 조금씩 제대로 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죽어갈 뿐이야.(347쪽, 기요시의 편지에서)

 

이 책에 나오는 야마노구치 바쿠의 <방석>이라는 시.

 

바닥 위에 마루

마루 위에는 다다미

다다미 위에 있는 것은 방석

그 위에 있는 것이 안락

안락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어서 깔고 앉으세요, 권하는 대로

안락하게 앉은 쓸쓸함이여,

바닥 세계를 멀리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생소한 세계가 쓸쓸하구나.

 

찾아보니 이 시인의 책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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