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부분을 읽어내기 위해선 역시 영화보다 원작을 읽어야 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영화도 원작의 섬세함을 제대로 살려내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개츠비의 위대한 점'이 무엇일까'을 생각하며 읽었다. 더불어 그의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읽었더니 아름다운 구절이 눈에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섯 번쯤밖에 마주치지 못할 특별한 성질의 것이었다. 잠깐 전 우주를 직면(혹은 직면한 듯한)한 뒤,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바로 그만큼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호의적 인상의 최대치를 분명히 전달받았노라 확신시켜주는 미소였다.  -65쪽

 

이 부분을 영화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에게서 위와 같은 미소를 발견했다면 이미 친구 이상의 영적교류가 통한 것은 아닐지....

 

  6월의 아름다운 밤에 그가 원했던 것은 찬란한 별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무의미한 화려함의 자궁에서 벗어나, 드디어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알고 싶어해요." 조던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데이지를 오후에 당신 집으로 초청을 하고 자기도 불러줄 수 있는지를요."

  요청 한번 겸손했다. 오 년을 기다린 끝에, 고작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네 정원에 잠깐 놀러가기 위해 불빛으로 나방들이나 끌어모을 대저택을 산 것이다.     -100쪽

 

 

5년을 기다렸다.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을 한번 만나기 위해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조심스럽고 겸손한 남자기 개츠비였다.

 

 "안개만 없었다면 해협 너머에 있는 당신 집도 보였을 텐데." 개츠비가 말했다. "당신 집 잔교 끝에는 언제나 초록색 등이 켜 있더군."

  데이지가 갑자기 팔짱을 껴왔다. 하지만 개츠비는 조금 전에 자신이 한 말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초록빛의 심대한 의미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데이지 사이를 갈라놓았던 그 광대한 거리에 비하면, 그 초록빛은 거의 데이지를 만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느껴졌을 것이다. 달 주위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말이다. 이제 그것은 그냥 잔교 끝의 초록색 등으로 돌아와 있었다. 찬탄의 대상 중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 117~118쪽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여인의 집 잔교 끝에 켜 있는 초록색 등을 지켜보는 남자의 심정. 그 아련함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개츠비의 시인 같은 감성이 느껴진다.

 

  악수를 나누고 나는 그 집을 떠났다. 그러나 울타리에 도착하기 직전에 뭔가 생각이 나서 돌아섰다.

  "다을 썩었어." 내 외침이 잔디밭을 건너갔다.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그렇게 말했던 것이 지금도 기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내가 그에게 해주었던 유일한 찬사였다. 그는 먼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마치 우리가 오래전부터 공모하며 입을 맞춰오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의 얼굴에 모든 걸 이해한다는 찬란한 미소가 퍼졌다. 그가 입은 화려한 핑크색 정장이 흰 계단을 배경으로 밝은색 반점처럼 남은 모습을 보니, 문득 석 달 전 그의 고풍스러운 저택을 처음 찾아가던 밤이 떠올랐다. 찬디밭과 차도는 개츠비가 암흑가의 인물이라고 추측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그는 저 계단에 서서 자신의 영원히 더럽혀질 수 없는 꿈을 숨긴 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192쪽 

 

'영원히 더럽혀질 수 없는 꿈'을 간직한 개츠비의 운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말지만 그의 '영원히 더럽혀질 수 없는 꿈'에 대해서 두고두고 생각해보게 되는 게 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개츠비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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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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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인 스위스 바젤에서 펼쳐지는, 앙리 루소의 그림을 둘러싼 두 큐레이터의 대결. 큐레이터 출신 작가의 이점을 잘 드러낸 명작. 읽는 내내 세상의 일을 잊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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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게 작가 이름이 낯선 책인데, 읽으면서 세상 일을 잊을 정도라고 하시니,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nama님, 오늘은 비개인 날의 오후라서 그런지, 어제보다는 조금 더 밝은 느낌이예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nama 2018-04-04 20:30   좋아요 1 | URL
서양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재밌게 읽으실 수 있어요.
즐거운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소설은, 읽기는 재밌는데 읽은 후 무언가를 쓴다는 게 그리 재밌는 일이 아니다. 그냥 읽은 것으로 만족하고 싶은데 이렇게라도 읽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언젠가 또 읽을 것 같아 짧게나마 기록하고자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을 처음 접했다.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 살았다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작가의 삶 때문에 읽게 되었다. 

 

여기에 실린 소설은, 단편 하나하나마다 그 자체로 완성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수작이라고 하나. 내용이나 문체가 깔끔하면서 분명하다. 물론 내용 그 자체는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재능은 있으나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들, 배우자가 있으나 내연의 관계를 어쩌지 못해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는 했다.

 

 

 

 

 

 

 

 

 

 

 

 

 

 

 

 

읽는 김에 더 읽자 싶어 <잠복>을 잠시 집어들었으나 이 책은 후일로 미룬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을 못 읽을 것 같아서다. 일단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의 맛은 본 셈이니...

 

 

 

 

 

 

 

 

 

 

 

 

 

 

 

이 책은 구입한 지 좀 되는데 이리저리 굴리다가 끝내 읽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무심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으련만.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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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line (Paperback)
Gaiman, Neil / Bloomsbury Childrens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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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인도 뱅갈로르에서 구입한 책으로 당시 서점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인기가 있으면 재밌겠지 싶어 일단 사긴 했는데...드디어 읽었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글쎄 영화까지 찾아보는 성의까지야.

 

줄거리는 Coraline(Caroline이 아님)이라는 꼬마아가씨가 유령으로부터 자신과 부모와 이웃들을 구해내는 이야기이다. 흥미롭게 읽긴 읽었는데 내용을 쓰고자 하니....잘 안 써진다. 판타지나 동화에서 얻는 게 있다면 한 순간의 몰입의 즐거움이 아닐까?

 

인상적인 부분을 옮기자면,

 

'And he said that wasn't brave of him, doing that, just standing there and being stung,' said Coraline to the cat. "It wasn't brave because he wasn't scared:it was the only thing he could do. But going back again to get his glasses, when he knew the wasps were there, when he was really scared. That was brave.

 

...when you're scared but you still do it anyway, that's brave.

 

 

용감하다는 건, 무섭고 두렵지만 어쨌든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말벌이 있는 곳에 있다가 말벌에 쏘이는 건 그 자체로 용감한 행위가 될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말벌이 있는 곳에 안경을 가지러 다시 간다면 그건 용감한 일이다. 무섭고 두려운데도 안경을 가지러 갔으니까.

 

서지현 검사님, 힘내십시오. 당신은 참 용감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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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2-01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리뷰가 꼭 길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핵심을 콕 집어주시니.
아이들에게도 용기에 대해 말할때 이 책 예를 들며 좋겠네요. 전 영화 봤는데 어른인 저도 재미있었어요.

nama 2018-02-01 11:22   좋아요 0 | URL
하, 그러면 영화도 봐야겠네요.^^

보슬비 2018-02-0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재미있게 읽었는데, nama님의 리뷰가 책만큼 인상적예요. 저도 영화 찾아봐야겠어요.

nama 2018-02-02 07:28   좋아요 0 | URL
네이버에서 5,000원에 다운로드할 수 있어요. 저도 조만간 볼 것 같아요.

sabina 2019-02-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영화 찾아 보고 싶네요.
환타지나 동화는 영화가 재미를 더해 줄 수도 있더라구요.
애들 어렸을때 종종 함께 보며 제가 더 재밌어하던 기억이 납니다.^^

nama 2019-02-04 14:41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보겠다고 한 게 1년이 되었건만 아직 보지 못했어요.
조만간 볼 수 있을까 싶네요. ㅎ
 
사랑에 관한 데생 - 사코 게이스케의 여행
노로 쿠니노부 지음, 송태욱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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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로 구니노보(1937~1980)라는 낯선 작가의 소설. 어쩌다 무료 일본영화를 접할 때의 기대감, 딱 그만큼의 기대를 안고 읽었다. 어차피 빌린 책, 읽다말면 그뿐, 그랬는데 끝까지 읽었다.

 

고서점 주인인 스물여섯 살의 게이스케, 책을 매개로 한 그의 소소한 여행이 이 책의 내용이다. 시시한 이야기로군, 하면서 읽다보면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약간의 아쉬움 같은 여운까지 남을 줄이야. 긴 겨울밤, 난롯가에 앉아서 읽는 듯한 고졸한 외로움 같은 소설. 좋다.

 

 

오후 세 시까지 게이스케는 교토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헉슬리가 교토의 거리를 "쇠퇴한 광산 마을 같다"고 평한 것은 언제쯤의 일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미로 같은 도쿄의 거리에 익숙한 케이스케에게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구획된 교토의 거리는 늘 그렇듯이 기분 좋은 질서감을 동반한 자극을 주었다. '이런 거리에서는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아'라고 게이스케는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교토 거리.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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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8 1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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