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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단편소설 읽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저 유명한 단편 <대성당>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몇 년 전에도 이 단편을 읽긴했는데 바쁜 와중에 대충 읽느라 미처 음미해볼 틈도 없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잘 쓰인 단편은 한 편의 시와 같아서 곱씹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번에 택한 방법은 원서 읽기와 오디오북으로 듣기.
굳이 원서를 구입하지 않고도 구글에서 간단하게 다운로드하면 된다. 오디오북은 유튜브로.
여러 개의 영상이 있는데 그중에서 청중을 앞에 두고 낭독하는 게 더 흥미롭다. 잠들기 전 자장가삼아 듣다보면 중간중간에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웃음은커녕 약만 오른다. 이 장면에서 왜 웃는거야?
<대성당>은 쉬운 단어로 쉽게 쓴 글이다. 문장만 보면 밋밋하고 멋진 표현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꼼꼼히 읽다보면 이 자체로 완벽하다는 걸 알게 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문장들이다. 긴 문장보다 짧은 문장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나 그것 또한 톡 쏘는 맛이 있다. 여러번 읽어도 뜻이 명확하지 않을 땐 김연수가 번역한 위의 책을 참고하면 역시 김연수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는데 그건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이미 유명할대로 유명한 소설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느낀 감흥은 남겨두고 싶다.
화자로 나오는 '나'는 속 좁고 찌질한 남자다. 십 년 동안이나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아내와 친구(the blind man)에 대한 질투심, 그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조급함, 장애인과 흑인에 대한 편견, 꾸준히 시를 쓰는 아내에 대한 몰이해 등 도무지 잘난 구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먼저 시각장애인에 대한 못마땅함.
And his being blind bothered me. My idea of blindness came from the movies. In the movies, the blind moved slowly and never laughed. Sometimes they were led by seeing-eye dogs. A blind man in my house was not something I look forward to.
시를 쓰는 아내를 두고 있지만 시에는 관심이 없음.
I admit it's not the first thing I reach for when I pick up something to read.
(뭘 읽으려고 할 때 내가 시집을 펼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은 인정한다.)
집으로 오는 친구를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아내에게 하는 말.
"I don't have any blind friends," I said.
"You don't have any friends," she said. "Period. Besides," she said. "goddamn it, his wife's just died! Don't you understand that? The man's lost his wife!"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Was his wife a Negro?" I asked.
"Are you crazy?" my wife said.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사는 부인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연민.
....what a pitiful life this woman must have led.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며 즐거워하는 아내에 대한 질투심.
I saw my wife laughing as she parked the car. I saw her get out of the car and shut the door. She was still wearing a smile. Just amazing.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는 찌질함.
"Did you have a good train ride?" I said. "Which side of the train did you sit on, by the way?"
"What a question, which side!" my wife said. "What's it matter which side?" she said.
"I just asked," I said.
저녁식사 전 올리는 감사기도는 이런 식으로.
"Now let us pray," I said, and the blind man lowered his head. My wife looked at me, her mouth agape. "Pray the phone won't ring and the food doesn't get cold," I said.
그들 사이의 대화에서 자기얘기도 좀 나왔으면 하는 기대.
They talked of things that had happened to them - to them! - these past ten years. I waited in vain to hear my name on my wife's sweet lips: "And then my dear husband came into my life" - something like that. But I heard nothing of the sort. More talk of Rober.
이와 대조적으로 the blind man 는 한층 여유있고 유머감각도 있으며 마음도 열려 있다.
"It's fine me. Whatever you want to watch is okay. I'm always learning something. Learning never ends. It won't hurt me to learn something tonight. I got ears," he said.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는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 밤에도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마침내 TV에 나오는 대성당을 the blind man 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나'. 눈을 감고 있다.
My eyes were still closed. I was in my house. I knew that.
But I didn't feel like I was inside anything.(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It's really something,"(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I said.
눈을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고, 앞을 못 본다고 못 보는 것도 아니다. 앞을 못 보는 the blind man은 이미 마음이 열려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지만 육체적인 눈만이 전부라고 믿는 '나'는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야 이 만남을 통해서 눈 뜬 장님이었던 '나'는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나'는 비로소 마음의 눈을 뜬다.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고, 알지 못하던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놀라움을 나타내는 단 한 문장, "It's really something,"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가 카버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다. It's really some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