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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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장마, 시름과 무기력, 걱정과 불안...이 모두를 멎게 하는 최고의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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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재밌게 읽고 있다. 레이먼드 카버, 페소아, 페르메이르, 아리스토텔레스, 카뮈,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을 완독했거나 읽고 있는 중이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이 되거나 딱히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을 때 제격인 시리즈이다. 한 인물에 빠진 저자를 따라 책에 몰입하다보면 이 유명하신 분들의 인생에 좀 더 밀착된 느낌이랄까. 진한 국물맛 같은 거.

 

 

 

 

 

 

 

 

 

 

 

 

 

 

 

 

 

여름이면 떠오르는 <설국>. 이 소설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책을 읽고서야 내가 <설국>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읽어보고 싶지만 내 마음 나도 모를 일.

 

 

 

 

 

 

 

 

 

 

 

 

 

 

 

 

 

<설국> 대신 읽은 <이즈의 무희>. 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쓰인 줄거리를 옮겨보면,

 

  스무 살의 주인공 '나'는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난다. 고아 기질 때문에 뒤틀린 성격을 고치고, 태생적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우연히 유랑 극단 일행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유랑 극단에는 열네 살 무희 가오루가 있었다. '나'는 가오루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 소녀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닌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소녀의 티 없이 맑은 성정을 느끼면서 '나'의 의심과 우울감도 사라진다.

   순간순간 가오루가 보여주는 '나'에 대한 작은 관심은 '나'의 일그러진 성격을 밝게 만들어주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가오루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네"라고 '나'를 평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둘 사이의 애틋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가 도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행이 시모다 항구에 도착한 날 '나'는 도쿄행 배에 오른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면서 서 있고 '나'는 선실에 누워 눈물을 흘린다.                         -168~169쪽

 

이런 줄거리 때문에 '일본판 소나기'로 부르기도 한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나기>에서는 주인공들이 죽어서 이별을 하고, <이즈의 무희>에서는 살아서 이별을 한다는 것.

 

누구나 일생에서 한번쯤 이 <소나기> 같은 시절이 있지 않을까. 내 눈 빛과 내 마음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어 분노와 우울로 버무려진 절박했던 시절의 강물을 가까스로 건널 수 있었던 경험 같은 거 말이다. 이 단편을 읽고나면 한동안 잠자고 있던 옛 일이 떠올라 며칠 밤 잠을 뒤척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 내 얘기도 소설감인데....엉뚱한 상상에 빠져서... 한달 넘게 이어지는 장맛비도 일조를 하고 있다.

 

그래도 소설이니 어떤 맛인지 맛은 봐야겠지요?

 

 잠시 동안 낮은 목소리가 계속되고 나서 무희의 말소리가 들렸다.

"좋은 사람이야."

"그래 맞아. 좋은 사람 같아."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라서 좋겠어."

이 말투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감정의 치우침을 휙 하고 순진하게 담아 던진 목소리였다. 나 스스로도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순순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상쾌하게 눈을 들어 밝은 산들을 바라보았다. 눈꺼풀 속이 희미하게 아팠다. 스무 살의 나는 자신의 성질이 고아 근성으로 비뚤어져 있다고 심한 반성을 거듭한 끝에, 그 숨 막히는 우울을 견디지 못하고 이즈로 여행을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의 보편적인 의미로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것이었다.                  -37~38쪽

 

'눈꺼풀 속이 희미하게 아팠다.' 내 심장이 희미하게 아파오는 문장이었다.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번역문으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섬세한 글맛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인상 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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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나의 독서 기록이 독서 행위를 따라가지 못한다. 리뷰나 페이퍼 쓰는 것은 점점 시들해지고 있으나 그나마 책 읽기에 몰두할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 리뷰나 페이퍼 쓰기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웅얼거림 같아서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다. 그래도 좋은 책은 울림이 강하다. 무기력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바로 이 책. 책에 몰입하다보니 집 나갔던 기운도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 총 455쪽 중 178 ~ 179쪽에 있는 반딧불 얘기는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결말을 암시하는 듯했다. 다 읽고보니 역시 그랬다. 다른 것은 다 잊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기억하고 싶어서 옮겨본다.

 

 

   카야는 탁한 눈으로 멍하니 밤에 낙서하는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병에 반딧불을 잡아 수집한 적은 없었다. 병에 가둘 때보다 풀어놓고 관찰할 때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암컷 반딧불은 꽁무니의 불을 깜박여 수컷에게 짝짓기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조디가 말해주었다. 반딧불은 종마다 불빛 언어가 다르다. 카야가 지켜보는 사이 어떤 암컷들을 지그재그 댄스를 추며 점, 점, 점, 줄, 이렇게 신호를 보냈지만 또 전혀 다른 패턴으로 춤을 추면서 줄, 줄, 점 신호를 보내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자기 종의 신호를 잘 아는 수컷은 그런 암컷만 찾아서 짝을 지으려고 날아간다. 그리고 조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다수 생명체가 그러듯 서로 엉덩이를 비벼 새끼를 만든다.

   카야는 문득 벌떡 일어나 앉아 주의를 집중했다. 암컷 한 마리가 암호를 변경했다. 처음에는 올바른 줄과 점의 조합을 반짝거리며 자기 종의 수컷을 끌어들여 짝짓기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다른 신호를 반짝거렸고, 그러자 다른 종의 수컷이 날아왔다. 그 암컷의 메시지를 읽은 두 번째 수컷은 짝짓기 의사가 있는 자기 종의 암컷을 찾았다고 확신하고 암컷의 머리 위에서 체공했다. 하지만 별안간 그 암컷 반딧불이 다리를 뻗더니 입으로 수컷을 물어 잡아먹었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 됐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이 소설의 끝부분에 나오는 <반딧불>이라는 시는 이 작품의 결말을 드러내는 멋진 장치가 되는데, 직접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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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30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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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시름을 잊고 깊이 빠져든 책. 소설은 역시 재미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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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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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읽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저 유명한 단편 <대성당>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몇 년 전에도 이 단편을 읽긴했는데 바쁜 와중에 대충 읽느라 미처 음미해볼 틈도 없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잘 쓰인 단편은 한 편의 시와 같아서 곱씹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번에 택한 방법은 원서 읽기와 오디오북으로 듣기.

 

 

 

굳이 원서를 구입하지 않고도 구글에서 간단하게 다운로드하면 된다. 오디오북은 유튜브로.

 

 

 

여러 개의 영상이 있는데 그중에서 청중을 앞에 두고 낭독하는 게 더 흥미롭다. 잠들기 전 자장가삼아 듣다보면 중간중간에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웃음은커녕 약만 오른다. 이 장면에서 왜 웃는거야?

 

<대성당>은 쉬운 단어로 쉽게 쓴 글이다. 문장만 보면 밋밋하고 멋진 표현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꼼꼼히 읽다보면 이 자체로 완벽하다는 걸 알게 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문장들이다. 긴 문장보다 짧은 문장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나 그것 또한 톡 쏘는 맛이 있다. 여러번 읽어도 뜻이 명확하지 않을 땐 김연수가 번역한 위의 책을 참고하면 역시 김연수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는데 그건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이미 유명할대로 유명한 소설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느낀 감흥은 남겨두고 싶다.

 

화자로 나오는 '나'는 속 좁고 찌질한 남자다. 십 년 동안이나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아내와 친구(the blind man)에 대한 질투심, 그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조급함, 장애인과 흑인에 대한 편견, 꾸준히 시를 쓰는 아내에 대한 몰이해 등 도무지 잘난 구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먼저 시각장애인에 대한 못마땅함.

And his being blind bothered me. My idea of blindness came from the movies. In the movies, the blind moved slowly and never laughed. Sometimes they were led by seeing-eye dogs. A blind man in my house was not something I look forward to.

 

 

시를 쓰는 아내를 두고 있지만 시에는 관심이 없음.

I admit it's not the first thing I reach for when I pick up something to read.

(뭘 읽으려고 할 때 내가 시집을 펼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은 인정한다.)

 

집으로 오는 친구를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아내에게 하는 말.

"I don't have any blind friends," I said.

"You don't have any friends," she said. "Period. Besides," she said. "goddamn it, his wife's just died! Don't  you understand that? The man's lost his wife!"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Was his wife a Negro?" I asked.

"Are you crazy?" my wife said.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사는 부인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연민.

....what a pitiful life this woman must have led.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며 즐거워하는 아내에 대한 질투심.

I saw my wife laughing as she parked the car. I saw her get out of the car and shut the door. She was still wearing a smile. Just amazing.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는 찌질함.

"Did you have a good train ride?" I said. "Which side of the train did you sit on, by the way?"

"What a question, which side!" my wife said. "What's it matter which side?" she said.

"I just asked," I said.

 

저녁식사 전 올리는 감사기도는 이런 식으로.

"Now let us pray," I said, and the blind man lowered his head. My wife looked at me, her mouth agape. "Pray the phone won't ring and the food doesn't get cold," I said.

 

그들 사이의 대화에서 자기얘기도 좀 나왔으면 하는 기대.

They talked of things that had happened to them - to them! - these past ten years. I waited in vain to hear my name on my wife's sweet lips: "And then my dear husband came into my life" - something like that. But I heard nothing of the sort. More talk of Rober.

 

이와 대조적으로 the blind man 는 한층 여유있고 유머감각도 있으며 마음도 열려 있다.

"It's fine me. Whatever you want to watch is okay. I'm always learning something. Learning never ends. It won't hurt me to learn something tonight. I got ears," he said.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는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 밤에도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마침내 TV에 나오는 대성당을 the blind man 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나'. 눈을 감고 있다.

My eyes were still closed. I was in my house. I knew that.

But I didn't feel like I was inside anything.(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It's really something,"(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I said.

 

눈을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고, 앞을 못 본다고 못 보는 것도 아니다. 앞을 못 보는 the blind man은 이미 마음이 열려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지만 육체적인 눈만이 전부라고 믿는 '나'는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야 이 만남을 통해서 눈 뜬 장님이었던 '나'는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나'는 비로소 마음의 눈을 뜬다.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고, 알지 못하던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놀라움을 나타내는 단 한 문장, "It's really something,"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가 카버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다. It's really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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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2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2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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