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황당한 일이...오랜만에 정성 들여 길게 썼더니 저장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획 날아가버렸다. 평소 하던 대로 살아야지 뭘 또 새롭게 하겠다고...쯧쯧... 같은 글을 기억을 되살려 쓰기도 싫고 이 책에서 베끼고 싶은 부분만 적어본다. 원래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환자를 상담할 때 치료에 가장 효과가 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정서적인 애착관계다. '공감'이란 치료자가 환자의 경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감'과는 다르다. 동감은 치료자가 환자와 정서적인 객관적 거리 없이 환자의 감정에 치료자 자신도 빠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중략)

  치료자가 공감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환자에 대해, 환자의 주변 환경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환자에게는 변화가 일어난다.(중략)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를 둘러싼 대상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공감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친구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형식적으로 맞장구만 쳐주는 것은 아닌지, 회사에서 상사에게 받는 분노를 쏟아내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편의 분노를 모두 흡수한 채 그날부터 불면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자. 그랬다면 그것은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공감이란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건강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다.

 

 

  우리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일들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있다면 가끔씩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를 해보아야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중략) 하나의 도구를 몇십 년 동안 계속 사용하면 마모되어 고장나는 것이 당연한 데도 우리는 그 익숙함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바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변화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중략)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생각하면 평생 변화할 수 없다. 주변 환경이 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화병이 나거나 우울증으로 남은 여생을 불행하게 보낼 수도 있다. 변화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해도 내 생각이 변하면 된다. 내 생각이 변하고 다르게 행동하면 주변 환경과 조건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죽음과 죽어감>의 저자)

 

 

한 해의 마지막 날, 변화를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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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새해인사 드리러왔습니다.
내일이면 2018년이예요.
올해도 좋은 이야기와 다정한 인사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하고, 기분 좋은 날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a 2017-12-31 19:4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뜻하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길 기원합니다.
이웃이 편해야 내가 편하고 세상이 편해지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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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소설도 아니고, 감상적인 산문도 아닌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한다. 2000년에 첫 사회역학 교과서가 나오고 불과 10여 년 전부터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는데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병에 걸렸을 때 그 병과 아픔을 오롯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친구가 있다.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고 건강을 위해 매일 일정하게 운동도 하고 음식에도 욕심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다. 자타공인 모범적으로 건강을 유지해왔다고 여겼는데 어느날 건강검진에서 느닷없이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가족력도 전혀 없었기에 매우 당황스러워한다. 도무지 자신의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다. 병의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한다.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형질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이 분야에 학문적으로 큰 기여를 한 데이비드 바커 박사의 이름을 따 '바커 가설'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기 당뇨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태아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영양분이 부족할 때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영양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아는 뇌와 같이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당장 내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합니다. 설사 그 선택이 먼 훗날 당뇨병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할지라도, 지금의 생존을 위해 먼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성인병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일수록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태아나 막 태어난 아이가 굶주리는 것은 같은 기간 성인이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테니까요.

 

  몇몇 학자들은 이 역사적 비극이 인간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1945년 초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태아가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다양한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을 연구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 높았고 조현증(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2.6배 높았으며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사실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6.25를 겪은 부모세대와 그 얼마 후에 태어난 우리 형제자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순탄하지 못한 가족사의 원인이 여기에 닿아 있었다. 위에서 말한 친구의 당뇨병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닿아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이렇게 질병이나 죽음을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으로 그 원인을 찾아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원진레이온과 제일화학, 고용불안, 전공의 근무환경과 환자 안전,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실태조사,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건강, 인종차별, 재소자 건강,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총기 규제...이런 일들이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제대로 설명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총기사건에 대한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미국질병관리본부 보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연간 총기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이 31만 명이 넘습니다. 매년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총기사고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의 주장은 국민이 총기를 소유하면 모든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총기에 의한 사망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이것이 미국총기협회가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는 주장이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중요한 근거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경제적으로 윤택할 수 있는 임상의사 대신 사회역학을 공부하는 학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저자의 글에선 그의 진심과 진정성이 느껴져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중략)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이 분은 의사가 되었어도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 텐데....이런 의사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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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꾸준한 노력으로 체중이 6kg정도 빠졌다. 우선 평생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지녀왔던 통통함이 얼마간 사라져버렸다. 얼굴이야 원래 큰 사이즈가 작아질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몸은 제법 가벼워졌다. 심지어 맨바닥에 앉으면 엉덩이 뼈가 아플 정도로 그 푸짐하던 엉덩이살도 빠졌다. 전에는 상상해볼 수도 없는 변화를 맞았다. 진정한 의미의 상전벽해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아프다. 통증이 낫기는커녕 조금씩 강도와 폭을 넓히고 있다. 어제 아픈 곳이 더 아프고 안 아프던 곳도 덩달아 아파온다. 몸은 아프다고 아우성치지만 다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병원으로 돌아가긴 싫고, 내 몸의 주인이 되어 이러저러한 방법을 강구해보지만.....길이 더디고 멀다. 마음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책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읽은 책.

 

 

 

 

 

 

 

 

 

 

 

 

 

 

 

 

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어서 언젠가는 읽으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직장의 '왕언니'가 선물로 주었다.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고....구구절절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인데 극단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왜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꼭 자막으로 뜨는 구절이 있잖은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험'일 뿐일 수 있다는. 그러나 이 책은 개인적인 체험보다는 개인적인 소소한 감상과 사유가 책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자연을 만끽하면서 사는 사람의 자연 예찬, 일상과 의학적인 소견들이 마구 섞여있다. 낙엽더미에서 도토리 줍듯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걸러내야 했다. 눈에 체를 달고 읽어야 할 듯...

 

 

 

 

 

 

 

 

 

 

 

 

 

 

 

 

 이 책의 저자는 양의로서 흔치않은 길을 걷고 있는 분이라 진정성이 느껴지나, 이 자연치유의 길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환자를 일컫는 영단어 patient 를 말 그대로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이 책을 읽어도 통증을 가라앉힐 손쉬운 방법은 열리지 않는다, 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또다시 읽게 되는.

 

 

 

 

 

 

 

 

 

 

 

 

 

 

 

 

 

몹시 아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얻는다. 책의 서두는 구절구절이 밑줄긋기감이다.

 

(이하 인용문)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심각하게 아픈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인정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질병은 삶을 위협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충만한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는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다만 내게 일어나고 있던 일이 조금이라도 인정받기를 원했다./질병은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얼마쯤 읽다가 다시 내 조급증이 발동했다. 중간부분부터 성큼성큼 읽다가, 끝부분에서 한차례 더 엿보다가 책을 덮고 말았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느니 동네라도 한 바퀴 돌다와야겠다. 오후에 온다던 남편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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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출간된 책이니 읽은 지 7년 쯤 된다. 분명 읽은 책인데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완전 새 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그저 남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쯤으로 간주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자연치유'라는 제호가 눈에 들어와서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요즈음 '자연치유'가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게 그냥 글자만 읽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경험과 생각이 받쳐주지 않으면 독서가 그저 시간 보내기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제대로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 싶다.

 

치유란 새로운 소생을 위하여 공간을 마련하고 비우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먹어서 병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우선 버려야 한다. 건강을 되찾기 위한 치유는 신통한 것들을 잔뜩 먹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득차 있는 갖은 찌꺼기를 비워내고 공간을 마련하여 무슨 일이든 가능한 빈 그릇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즐겨서 자주 먹었던 음식들을 중단하고 해가 되는 버릇과 행동을 절제하는 것은 물론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도 놓아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삶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애착심을 일으키는 것일수록 그것을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은 욕구 그 자체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워야만 그 비운 곳의 밑바닥에서 새싹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도 놓아야 한다.'....이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먹는 문제에서, 좋은 무엇을 더 먹는 것보다 나쁜 것을 먹지 않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것도 쉽지 않음을,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져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나쁜 것을 먹지 않는 것은 수행과 다름없다. 비움이 수행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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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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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2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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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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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환자들로 붐비는 단골의원은 대기 시간이 평균 1시간이나 된다. 어쩌다 날씨가 궂을 경우 그나마 환자가 적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되지만 그것도 예상할 수 없다. 이 의원의 의사는 친절하고 상냥한 성품이고 늘 성실한 모습이어서 절로 신뢰감이 드는 분인지라, 내가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단골로 삼고 있다. 심지어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간 후에도 병원만은 이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나도 20년 넘게 이 의원을 친정 출입하듯 드나들었다. 나중에는 남편까지 이끌고.

 

익숙한 병원 풍경 하나. 1시간이나 순번이 오기를 기다리다보면 대기실엔 늘 말끔한 양복차림의 젊은 남성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두 명씩이나 눈에 띄는데 한눈에 보아도 환자는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칙칙하고 지루한 낯빛의 환자들을 제치고 이들은 다음 진료차례를 나타내는 모니터에 이름도 오르지 않은 채 어느 순간 진료실로 들어가는 특혜를 누린다. 틀림없이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다.

 

10년도 훨씬 이전, 얼떨결에 고혈압 환자가 되었다. 혈압이 높으니 몸무게를 5kg정도 줄여서 혈압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엔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된다기에, 몸무게를 줄여볼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채 덜컥 약을 먹기 시작했다. 고도비만도 아니고 약간 표준 체중을 넘은 정도에서 몸무게를 그 정도 줄인다면 혹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몇 년 후엔 중성지방이 높다하여 그 약까지 복용하게 되었다. 약만 처방하는 친절하고 상냥한 단골의사만 믿고.

 

친절함. 언젠가는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혈액검사를 받기 위해 옆 방으로 가게 되었다. 진료실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나는 남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첫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로 가시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날은 내가 환자로 온 게 아니어서 나를 상대할 의무가 없음을 상기시키는 행동이었다. 순간 20여 년 간의 신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환자는 그저 의약 소비자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면 당신은 그저 약만 처방하는 전문가? 제약회사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우리 몸에 불편한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현대 의학은 약을 주거나 수술을 권합니다. 저 역시 처음 진료를 하면서 선배들에게 배운 노하우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중보건의를 하던 시절에 공중보건의협회에서 주관하는 고혈압 유병률 조사에도 참여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소리 없는 살인자, 고혈압'이라는 조금 무서운 표현을 써가면서 마을 회관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혈압을 재준 뒤 조금 높게 나온 주민들은 다시 보건지소로 불러 재검한 다음 계속 혈압이 높으면 약을 처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혈압이 사람을 죽이는 질병이라고 교육한 뒤 보건지소에 오게 해서 혈압을 잴 때는 누구도 편안한 상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즉 상당한 불안감을 안고 왔을 때에는 당연히 혈압이 올라가 있을 터이고, 그것이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도 이제부터 당신은 고혈압 환자라고 이야기해주고 앞으로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현대 의학의 대증 치료를 하는 병원은 환자가 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이유로 환자를 만들어낼 궁리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건강교육을 할 때 우리나라 병원은 전 국민이 약을 먹는 그날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모든 국민이 건강해지면 망하는 것은 병원이고 제약 회사일 것입니다.

 

 

두 달 전. 대체의학, 통합의약으로 불리는 자연치유에 기대를 품고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로 장 해독과 영양보충을 핵심으로 하는데 물론 전반적인 식습관을 새롭게 바꾸어야 했다. 그 맛있는 남이 해주는 직장의 급식도 끊었다. 급식 뿐 아니라 그간 오랫동안 복용했던 혈압약도 고지혈증약도 다 끊었다. 약을 끊은 후, 혈압은 그럭저럭 정상 범위에 머무는데 직장에서 혈압을 재면 조금 올라가는 수준. 딱히 걱정할 정도는 아니란다. 빨간색으로 표기되었던 염증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아직도 빨간 수치가 몇 개 더 있다. 혈압약 끊은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르는지라. 이러다가 어느 순간 옛시절로 돌아가 이 약 저 약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양심적인' 의사들이 써내려간 이와 같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죽을 때 죽더라도 돈에 휘둘리는 한낱 의약품 소비자로 남아 저들의 배를 채워주고 싶지 않다.

 

 

증상이 심해지면 다들 큰 병원으로 가서 좀 더 정확한 값비싼 검사를 받고 진단명을 받아 들게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약물 투여가 시작됩니다. 진짜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말입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약이 있을까요? 저는 단 한 가지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몸은 스스로 증상을 일으키고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선행될 때, 단 한 알의 약이라도 체내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게 될 것이고 그래야 건강해집니다.(중략)

그러기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부터 없애야 합니다. 질병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므로 질병이 생겼을 때 병원에 반드시 가야 할 필요도 없고 약을 먹어야 할 일들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몸에 불편한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이런저런 약을 처방해주면서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합니다. 더 나아가 약을 안 먹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도 따라붙습니다. 결국 몸이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환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중략)

질병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만든 질병을 누가 고쳐야 하겠습니까?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물질도 질병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불치병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불치의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아프다니까 내 주위에서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용은 소위 명의를 찾아 유명 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이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반응들이다.

 

두 번째 밑줄. 어느 병원의 의사가 꼭 저랬다. 약을 꼭 먹으라고. 약국의 약사는 신이나서 말했다. 평생 먹어야 한다고.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의심하면서 살아야겠다.

 

아직도 크론씨병을 검색하면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나옵니다. 제가 의과대학에서 배웠던 내용을 지금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원인을 모를까요?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환자가 계속 약을 먹고 그러다 증상이 심해져서 수술까지 하게 되면 병원으로서는 나쁜 일이 아닐 테니까요.(중략) 원인을 모른다고 하면서 약물만 처방하는 병원을 다녀서는 절대 치유될 수 없습니다. 미 병은 본인이 만든 병이어서 본인만이 치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올바른 방법만 안다면 약을 먹거나 수술할 필요가 없는 질병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을 제 블로그에 써놓았더니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전파해서 환자들이 따라 하다가 잘못될까 두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 제 글을 읽고 따라 했을 때 가장 두려운 쪽은 환자가 아니라 약과 수술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했는데 먹는 것만 바꿔도 낫는 질병이니까요. 우리 몸에 생기는 질병은 분명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의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다. '원인'을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블로그

http://dr.ottuk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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