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재미있는 책은, 책을 읽다가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나와야 하고, 공감에 겨워 무릎을 쳐야하고, 혼자 읽기 아까워 주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해야 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작가가 인도 여행 중에 겪은 에피소드 한 토막에 며칠이 즐거웠으니...

 

하지만 이 염소수염의 양탄자 상인은 여전히 날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손님. 인생은 짧디짧아요. 재산 같은 거 남기면 뭐하나요? 양탄자를 사지 않아도 돼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하지만 만약 이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괜찮잖아요, 하나쯤은. 이 아름다운 양탄자를 소유하는 시간은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아주 잠깐뿐이겠지만, 양탄자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 잠깐의 시간이 바로 영원이 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시인이 전하고자 했던 말 아니겠습니까?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읊는 양탄자 상인을 맞닥뜨린 저자는 마침내 비싼 양탄자를 구입하고마는데...물론 사기에 가까운 바가지를  흠뻑 쓰고.

 

대학시절에 접했던 오마르 하이얌의 시도 반갑고 사기꾼에 가까운 양탄자 상인도 추억 속의 첫 인도여행 때 만났던 카시미르 양탄자 상인을 떠올리게 해 매우 즐거웠다.

 

오늘도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적고 마는 게 아쉽다.( 근무시간중이다)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하고. ㅎㅎ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여행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떤 장소에서 모종의 경험을 한 여행자는 그 장소와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설<어린 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여행자와 여행지는 모종의 '길들여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그곳의 이름을 들으면 곧장 반가움에 '돌아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돌아간다'고 표현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의미 아니었을까?

 

'장소와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릎을 치며 읽은 구절이다.

 

맛있는 책을 읽는 맛이 좋았지만 어떤 부분에서 슬쩍 짜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바로 식도락여행 부분이다. 지나치게 디테일한 음식 얘기에선 하마터면 책을 덮을 뻔도 했는데, 꾹 참고 끝까지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이어져서 다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다는...

 

...게다가 세월이 흐르며 마음가짐에도 상당한 변화가 왔다. '인생은 그저 한 번의 여행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재산이란 죽어서 챙겨갈 수도 없는 것이니 인생 속에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과감히 '손을 놓는'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자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돈을 쓰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여행 중에 비용 때문에 망설이게 될 때는 꼭 이 문장을 기억하리라 다짐하면서.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 옮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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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Oliver 의 시는 이웃서재님의 글을 읽고 알게 되었는데, 검색해보니 쉽게 시를 찾을 수 있었다.

 

 

The Journey

 

One day you finally knew

what you had to do, and began,

though the voices around you

kept shouting

their bad advice-

though the whole house

began to tremble

and you felt the old tug

at your ankles.

"Mend my life!"

each voice cried.

But you didn't stop.

You knew what you had to do,

though the wind pried

with its stiff fingers

at the very foundations,

though their melancholy

was terrible.

It was already late

enough, and a wild night,

and the road full of fallen

branches and stones.

But little by little,

as you left their voices behind,

the stars began to burn

through the sheets of clouds,

and there was a new voice

which you slowly

recognized as your own,

that kept you company

as you stroke deeper and deeper

into the world,

deternined to do

the only thing you could do-

determined to save

the only life you could save.

 

어느 날, 자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길을 떠나는 자의 결연함을 노래한 시인 것 같다. 황량한 밤, 거리는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가득하지만 구름장 사이로 별빛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자신을 격려하는 새로운 목소리도 들려오는데, 목소리는 다만 자신의 목소리, 세상 속으로 홀로 걸어가야 한다.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단 하나의 일' 은 여행일까? 구해야 할 생명은 자신일까? 다른 일도 그렇지만 여행은 절실해야 한다. 떠나는 자의 절실함 같은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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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100쪽 가량 읽었을 때,

- 카잔차키스의 책을 모조리 읽고 싶다.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기 위해서라면 당장 퇴직해도 여한이 없겠다. 아, 빨리 퇴직하고 싶어. 

 

200쪽 가량 읽었을 때,

- 역시 대작가야. 어, 내 생각이랑 닮았네, 우와...

 

300쪽 쯤에선

- 흐흠, 이 챕터는 건너뛰자.

 

그러다 셰익스피어 부분에선,

- 번역이 문제인가, 내 독해력이 문젠가. 졸립다. 좀 자고보자.

 

 

번역본을 읽는 게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원본을 술술 읽을 정도의 실력은 못 되고... 거장의 책은 좀 다르긴 하다. 한 권을 마치 몇 권의 책처럼 읽게 된다.

 

이 책에 쓰인 어떤 부분을 남편에게 얘기해주다가 중간에 말이 막혀 끝을 흘려버린 적이 있다.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옮겨본다. 영국에서 왜 그렇게 언덕마다 양들이 풀을 뜯게 되었는 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환경이 어찌나 불결했던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14세기에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흑사병>이 돌았다. 먼저 아시아에서 시작된 병은 1347년에 키프로스를 덮쳐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그리스, 이탈리아, 북아프리카로 퍼졌고 1348년 1월에는 프랑스까지 올라가 8월에 영국 해협을 건넜다. 모든 나라들이 결딴났다. 죽은 사람들을 묻어 줄 사람조차 살아남지 못한 지역들도 많았다. 영국의 4백만 인구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250만에 불과했다.

때로 <운명>의 작용이 아주 미묘하듯이, 이 끔찍한 참사가 대영 제국을 형성하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유린된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거액의 재산을 챙겼다. 버려진 지역의 공동 삼림과 들, 목초지를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영지를 경작해 줄 일꾼을 찾을 수 없게 된 영주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땅을 임대하거나 처분하여 빵 값을 만들었다. 이처럼 뜻밖의 토지를 손에 넣게 된 농민들은 그 땅을 모두 경작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양 사육에 뛰어들었다. 그 바람에 양 떼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영국은 순식간에 다량의 양모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것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예전처럼 고립된 섬나라로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장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시장이 필요해진 영국은 양모를 운반할 상선들과, 상선을 보호하고 바다를 장악할 군함들을 함께 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운명은 바다를 장악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흑사병에서 목양의 필요가 생겨나고, 목양이 풍부한 양모를 낳고, 이 풍부한 재화가 상선과 군함들이 탄생하게 된 내력이다. 그리고 이 함대들이 대영 제국을 낳은 것이다!

 

이어서 이어지는 표현도 멋지다.

 

운명은 단기간 내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시간 단위가 아니라 백 년 단위로 움직인다. 바로 이것이 <운명>이 작용하는 미묘한 방식이다. 따라서 아무리 큰 참사라도 재난이라 부를 수 없고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행복이라 부를 수 없다. 먼 훗날 그것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처음에는 꼼꼼하게 읽다가 뒤로 갈수록 대강 읽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읽게 될 것 같지는 않고. 위에 옮긴 부분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고자 한다. 영국의 언덕마다 하얗게 구더기처럼 깔려있는 양떼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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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8-1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중반까지만 꼼꼼하게 읽는 책들이 꽤 됩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읽겠다고 놔둬도 자리만 차리하지 몇 년이 지나도 펼쳐보진 않더라구요. 기억하고 싶은 문구라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노력, 참 소중한 것 같아요. 덕분에 풀뜯는 양에 관한 이야기는 저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네요.^^

nama 2017-08-14 23:33   좋아요 0 | URL
한 권의 책에서 한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도 책을 읽는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책을 도중에 중단해도 그다지 괴롭지 않아요. 괴로워하며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여행안내서는 여행 전과 여행하며 읽는 맛이 전혀 다르다. 여행안내서를 제대로 고르려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여행을 반추할 때이다. 인생을 닮았다. 어떤 일을 끝내고나서야, 학교를 졸업하고나서야, 몇 십 년의 결혼생활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전체의 윤곽이 잡히듯 여행도 그렇다. 여행을 끝내야 비로소 여행가이드북이 눈에 제대로 들어온다. 예습으로 읽든 복습으로 읽든 여행가이드북을 읽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나중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려나...

 

 

 

 

 

 

 

 

 

 

 

 

 

 

 

여행 가기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다. 여행 가서 하나씩 참고하며 실전에 응용했는데, 이 책은 매우 주관적이서 일반적인 소소한 정보가 약간 부족하다. 치앙마이에 대한 애정 가득한 저자들답게 저자들이 좋아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들에게는 '가장' 멋진 곳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취사선택해야 한다. 가이드북에 '가장'이라는 최상급을 붙이는 건 좀 모순이다. '가장'을 위해 생략된 것은 어쩌란 말인가. 낯선 여행지에서 필요한 건 정확하고도 요긴한 사실을 담은 정보이지 누군가의 주관적인 선호도가 개입된 부분적인 정보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가이드북으로 소소하면서도 요긴한 정보들이 가득해서 한 권쯤 필요한 책이다. 위의 책과 이 책 중에서 한 권을 고르라면 나는 이 책을 고르겠다. 가이드북은 일단 실용성이 중요하니까.

 

 

 

 

 

 

 

 

 

 

 

 

 

 

 

 

여행기를 재독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만, 과연 내가 여행은 제대로 하고 왔나 싶어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어보았다. 물론 치앙마이 부분만.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랑 며칠 잠깐 여행하는 것의 차이가 확연히 구분된다. 현지여행사에서 일일투어를 신청하며 희희낙낙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 이 책은 근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품고 있다. 특히 <Enough For Life>의 주인내외와 함께 어울리며 현지인처럼 살아본 것이라든가,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카페를 찾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경험 같은 것은 흉내내기가 쉽지 않다. 단 며칠 간의 여행이란 별 것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책이랄까. 짧은 여행 후 이런 책을 읽는다면...흠...소금물을 들이켠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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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8-1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앙마이를 다녀오셨나 봅니다. 제가 최근에 어딘가에서 치앙마이 여행 후기를 읽고 치앙마이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글도 눈에 띄었어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가 봐요.
맨 위의 글에 염색하셨다는 글을 보고서는, 오! 저도 여행지에서 염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하핫.

nama 2017-08-14 10:36   좋아요 0 | URL
낯선 곳에서 염색을 해보니 마치 생전 처음으로 염색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미용사의 동작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각인되지요. 물론 염색의 질 따위는 따지지 않는 게 좋아요.
 

 

 

 

 

 

 

 

 

 

 

 

 

 

 

대단한 여성이 또 있다. 이번엔 독일인.

 

   8년 동안 나는 쉼 없이 여행을 다녔다. 그러는 동안 스물다섯 켤레의 신발을 교체했고, 0.5톤의 초콜릿을 먹어치웠으며 2,000일 이상의 밤을 텐트에서 보냈다.

   이것이 내가 8년 동안 걷고, 먹고, 잔 기록이다.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순간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10년 뒤에 나는 지금 이 사무실에도, 다른 어떤 사무실에도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자원 중 가장 적은 것은 시간, 정확히 말해 내 삶의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 이대로 경력을 쌓아 나아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또다시 소중한 몇 달, 몇 년을 잃고 말 것이다....몇 년 뒤에 내가 여전히 수천 킬로미터를 단숨에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힘이 넘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241쪽

 

   그러나 안정된 삶을 위해, 그리고 책임의식 때문에 계속해서 직장에 다니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아니면 야외활동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소득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둬야 할까? 

 

지독한 걷기여행이다.

 

   물을 아끼기 위해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전략을 고안했다. 나는 양치질을 한 뒤 입안을 헹구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식사 후에는 냄비에 소변을 받아 닦은 뒤 물을 약간만 사용해 행궜다. 그나마도 설거지한 물까지 마시는 토에크의 전략에 비하면 덜 지저분한 편이었다.

 

 

이 짧은 글조차 마음놓고 쓸 시간이 없네. 근무시간인지라....직접 읽어보시라구요.^^

 

덧붙임: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말빨이 훨씬 쎄지만 실제 걷기로만 따진다면 이 책의 저자와는 비교가 안 된다. 빌 브라이슨은 그저 귀여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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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7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7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