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후배 장례식에 갔다.

 

부고 문자가 왔을 땐, 당연히 그 아이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느낌이 싸해서 문자를 다시 봤을 때... 본인 사망은 충격이었다.

 

2018년 2월 말, 그 아이는 또 다른 후배와 함께 손을 잡고 내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왔다.

 

"언니, 우리 결혼해요."

 

같이 공부하던 정독실 후배였던 두 사람은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했다.

 

전혀 몰랐다. 그 아이가 암과 싸우고 있던 사실을.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암 선고를 받고 치료와 수술을 거듭했을텐데 왜 아무도 몰랐을까.

 

죽음은 그렇게 나이를 무시하고 그 아이를 데려갔다.

 

 

중국의 어느 소수 민족 신화에 보면 붉은 새벽이 붉은 이유는 아버지 해가 아기 별들을 잡아먹어서라고 한다. 죽음이란 그렇게 곳곳에 선연한 핏빛을 남기는가보다. 여태껏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나보다 어린 생명들이 죽는 건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란 허망함.

 

삶이 쉽지 않기에, 삶에 의미를 두고 싶어진다. 삶이 행복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 사는 거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고통스러울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고, 행복은 그 순간이 지나가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책이었다. 어쩌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는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엇갈린 길이 또 다른 사랑을 데려올 줄 몰랐더랬다.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가득 찬 곳은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보는 듯 했다. 저벅저벅 걸어가다보면, 처음 생각한대로가 아니더라도 만족할 만한 곳이 나올게다. 비록 생각한 장소는 가 보지 못할지언정 말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다시 그 곳에 가면 나는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삶이 흘러간 자리를, 특히나 빈 자리를 보는 건 슬프다기 보다는 허무할 것 같다. 마치 장례식을 다녀오고도 한참 뒤 우연히 그를 떠올리는 장소에 갔을 때처럼 말이다.

 

나이가 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이 나이까지 살아왔다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순간을 느끼며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곧 다시 일상에 매몰되겠지. 찰나 스쳐가는 깨달음은 말 그대로 찰나에 존재할 뿐, 나는 다시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찰나들이 한 번씩 나를 스쳐갈 때면 또 다시 깨우침을 주겠지. 그러면 조금은 자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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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8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봉신연의 1
허중림 지음, 홍상훈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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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능무의 봉신연의가 원전이 아니었으니,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비교하며 읽어도 재미가 있다. 천교와 중국화 된 불교의 신들이 주나라 편이라면, 절교의 신들은 상나라 편이다. 이는 마치 헤라와 아테나가 그리스의 편을 들고, 아프로디테가 트로이의 편을 드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것이라면 봉신방에 이름이 오른 신들은 전쟁을 통해 육신을 벗고 직위를 가진 신에 봉해지고, 그리스의 신들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가 어렵고 대놓고 전쟁을 조종하기가 힘들다는 점 정도?

운명은 천명이란 이름으로 정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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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초한지 1~3 세트 (전3권 + 가이드북) 원본 초한지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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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의 초한지가 ‘서한연의’인 줄 착각하고 살았더랬다. 술술 읽혀서 좋다. 하지만 봉신연의든 삼국지든 열국지든 초한지든... 너무 뻥이 심하다. 뭐만 하면 몇 십만 군사들이 나온다. 진나라 병사 20만을 몰살해도 또 어디선가 몇 십만의 대군이 두둥 나타난다. 이 책의 군사 다 합치면 징집 가능한 남자 수가 어마어마하다. 기원전 200년대인데...

항우가 패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안타깝다. 유방이 인자한 듯 해도 잔인한 부분들이 있다. 토사구팽은 만고의 진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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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장원에 머리 하러 갈 때 들고 갔다. 읽히기야 술술 읽히는데 내가 삐딱해서인지 아니면 세상이 바뀐 건지 조금 뜨악하게 읽은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이 분들 말씀이 이 분들이 살던 때의 문자라는 건 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속세에 때가 잔뜩 묻은 채 씩씩거리며 사는 내가 감정이 이입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살기 쉽다면 모두가 부처가 됐겠지.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생각보다 거칠고 어둡고 엉망진창인데 유혹적이다. 곳곳에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아아... 난 길을 지나가다가도 어디선가 어묵 국물 냄새가 나면 자동으로 돌아본다. 냄새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다. 사실 깨닫기가 힘들기에 중생이 모두 깨달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던 지장보살님은 정말 대단하다로 끝내려고 시작한 이야기인데 결국 먹는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ㅎㅎㅎ

 

지난 주에 드디어 주짓수 파란띠를 달았다.

 

주짓수 도장에 발을 디딘 지 2년만이다. 여자에 작은 체구에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꾸준히 다녔더니 어느새 2년이 지났고... 하얀 띠가 파란 띠로 바뀌었다. 관장님이 파란띠를 매 주는 데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뿌듯하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고...

 

주짓수를 하고 부턴 부쩍 자신감이 늘었더랬다. 이제는 길을 가도 일단 도망은 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 상상 속에서는 나쁜 놈에게 암바를 걸고 초크로 기절시키고 이랬지만, 현실에서는 아마 도망만 쳐도 다행이겠지.

 

주짓수 도장을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작은 지 알았다. 나는 키도 작지만 몸무게도 적게 나가서 늘 나보다 10키로에서 30키로 많은 사람들과 스파링을 하거나 연습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보다 어리다. 어린 여자애들이 막 운동하는데 너무 귀엽고 좋아서 승부욕이 나질 않았다.ㅠㅠ 그러니 스파링을 할 때 결사항전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내가 얘한테 이겨서 뭐하나 이런 맘이니...

 

그래도 시간의 힘은 무서웠다. 이러다가 보라띠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그건 좀 무섭다. 파란띠까지야 그냥 단다고 해도 보라띠는...ㅠㅠ 하다보면 다는 건 아닐까...허허허

 

알라딘에 주짓수를 검색했더니

 

달랑 9건이 뜬다...

 

 

 

 

유도는 2천건이 넘고 태권도는 500건이 넘는데 주짓수는 달랑 9건...

 

주짓수 좋은데, 정말 좋은데...

 

오늘도 저녁에 도장 가서 열심히 해야지. 나는 나를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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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너무 멋져요 꼬마요정님. 대박 멋지네요. 조용히 주짓수 하고 계셨군요! 책도 열심히 읽으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다니.. 세상 멋진 분 ♡
따세요 따세요 보라띠도 확 따버리세욧!! >.<

꼬마요정 2020-05-12 16:10   좋아요 0 | URL
하고 싶어서 했는데 파란띠가 되었어요!!! 좀 많이 기뻐요^^ 근데 체력이 심하게 달려서 책을 좀 못 읽었죠 ㅎㅎㅎ 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신체 나이는 속이기가 좀 힘드네요 ㅎㅎㅎ 그래도 재밌어요

제가 보라띠까지 갈 수 있을까요? 넘 어려운데요, 그 때까지 살아있겠죠? ㅎㅎㅎ

카스피 2020-05-12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꼬마요정 2020-05-12 16: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대단하지는 않구요, 그냥 재미가 있어서요^^ 역시 좋고 재미난 일을 할 땐 장사가 없는 것 같아요 ㅎㅎ
 
눈보라 -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뒤바뀐 사랑의 운명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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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온 <벨킨이야기 스페이드 여왕>에 수록된 이야기들과 겹친다. 하지만 번역가가 다르고, 책이 너무 예뻐서 살 수 밖에... 둘 다 잘 읽혀서 번역은 잘 모르겠다.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읽을 때마다 새롭다.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한 줄기 빛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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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5-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 너무 예뻐서 다 샀어요. 근데 표지 글자가 벗겨지니 조심하셔요. 귀하게 다뤄야 하는 책이더라구요 ㅠ

꼬마요정 2020-05-10 21:36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일단 책꽂이에 잘 꽂아두긴 했어요. 집에 냥이들이 다니는데 털도 잘 붙더라구요. 이쁜데 관리하기가... ㅠㅠ

북깨비 2020-05-1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표지가 너무 산뜻해요. 내용이고 나발이고 일단 장바구니에 넣고 리뷰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꼬마요정 2020-05-11 09:38   좋아요 1 | URL
내용은 당연히 좋아요 ㅎㅎ 단편이지만 오래도록 곱씹게 되더라구요. 읽을 때마다 느낌도 달라서요. 삶이라는 게 힘들다가도 좋기도 하다가 그렇잖아요. 사셔도 후회 하지 않으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