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본기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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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중국 전설 시대부터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한 무제 때까지의 역사를 기전체 형식으로 써 내려간 역사서이다. 사마천 자신이 생각한 역사의 기원을 신화 시대까지 끌어올린 것을 보면, 황제 헌원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헌원은 덕치로 세상을 다스렸는데, 사마천은 사기 본기에서 덕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헌원은 신화에서는 신묘한 능력을 발휘하고 인간이 아닌 자들을 중용하고 본인 역시 신과 같은 모양이나, 여기서는 한낱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본기 12편 중 1편은 오제 본기이다. 오제란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등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다섯 제왕이다. 치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로마의 오현제 같다고나 할까. 어디에도 유적이나 증거가 없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 현명한 사람을 계승자로 삼았으며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시켰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사마천도 태사공왈 하면서 남아있는 기록이 있어 적으니, 전부 허황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못 배운 이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증거가 없으니 이거 진짜야!라고 하기 어렵지만, 춘추전국시대 때 학자들이 적어둔 게 있으니 진짜라고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오제가 토벌하려고 하는 축융이나 공공, 도철, 궁기 등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들은 전설 속의 흉 또는 흉수인데, 인간의 역사 속에 넣어두려니 뭔가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순 임금의 부인은 신화 속에서는 요 임금의 두 딸로 아황과 여영이란 이름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녀들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으니 서운하기도 하다. 어쨌든 사마천은 이 전설의 오제 시기를 인간의 역사 속으로 편입하면서 시기도 한참을 앞서고 영토도 아주 넓어지게 되었다.


2편은 하 본기이다. 하나라 왕은 우로 시작한다. 우 임금은 치수에 성공한 임금인데, 현대도 마찬가지로 치수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 편 역시 전설 시대의 일이니 아주 재미있다. 우 임금 때부터 구주(九州)의 세계관이 등장한 것 같다. 우 임금은 구주를 다스렸는데, 앞선 오제 시기에는 열 두주 였던 것이 구주로 정착한 것 같다. 


3편은 은 본기이다. 은 왕조는 구체적으로 고증된 왕조다. 이 편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17대 주왕에 이르기까지 은나라 600여 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은'이란 지명은 지금의 하남성 안양현의 수둔촌을 말하는데, 실제로 은나라의 도읍지였다고 한다. 


이 편은 은의 시조인 설()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간적이 알을 삼켜 설을 낳고, 순 임금은 설을  상나라에 봉하고 자씨를 성으로 내렸으며, 설이 죽자 아들 소명이 즉위하고, 소명이 죽자 아들 상토가 즉위하고, 상토가 죽자 아들 창약이 즉위하고, 창약이 죽자 아들 조어가 즉위하고... 이런 식으로 죽고 즉위하고 하다가 주계가 죽어 아들 천을이 즉위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성탕이다. 성탕은 덕을 잃은 하나라 걸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은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덕을 잃고 온갖 폭정을 가한 끝에 주나라 무왕에게 망한다. 사마천은 은 본기에서도 덕으로 다스려야 함을 강조한다.


누가 신묘한 영능으로 태어나고 그의 자손들이 태어나고 죽으면서 공적을 쌓고 결국은 중요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마천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실제로 고려 왕건이나 태조 이성계를 보면, 이들의 조상을 기술할 때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4편은 주 본기이다. 주나라 8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주시대와 춘추 전국시대를 포함한다. 주로 서주의 역사에 중점을 두었고 평왕이 동천한 이후 각 제후들의 세가도 잘 드러나 있다. 주나라는 후직(요 임금 때 농업의 스승)이 선조인데, 그 때문인지 농업을 중시하고 공유나 고공단보 등의 업적 역시 농업과 관련되어 있다. 주나라의 경우, 앞선 나라들과 달리 남아 있는 기록들이 많기 때문에 사마천은 기록에 입각하여 주나라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주나라는 무왕이 등장하기까지의 시기와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운 이후 257년의 서주 시기와 평왕이 동천한 이후 동주 시기와 원왕 이후의 전국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동주 시기는 춘추 시대, 원왕 이후의 시기는 전국 시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주나라 876년의 역사는 덕으로 다스리던 시기에서 힘으로 다스리는 시기로 넘어가며 진(秦)나라에게 천하를 넘겨주게 된다. 


주 본기 마지막은 이러하다. "동주와 서주는 모두 진나라에 편입되고, 주나라는 망하여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p.164) 흥망성쇠란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 싶은 문장이었다. 그래서일까, 태사공은 한(漢)나라가 일어나고 나서 90여 년 후 주나라의 후손을 찾아 '주자남군'이란 칭호를 내렸고, 이는 열후와 지위가 같아 비로소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고 마무리한다. 


5편은 진(秦) 본기이다. 진나라는 전욱제의 후예인 여수가 선조라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족보를 잘 기록하고 간수했는지 신기할 따름이긴 하다. 은 시조인 설이 알에서 태어났고, 주 시조인 기가 거인의 발자국으로 인해 태어난 것과 유사하게도 여수는 제비 알을 삼키고 대업을 낳았다. 진 본기도 읽다보면 아주 재미있다.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진나라 역시 부침이 많았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진시황이 진시황이 되기까지 역시 온갖 역경과 고난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진나라 왕 정은 자리에 오른 지 26년 만에 처음으로 천하를 합병하여 서른여섯 개의 군을 만들었으며, 호칭을 시황제라고 했다. 시황제가 죽고 아들 호해가 이세황제가 되었고, 환관 조고가 이세를 죽이고 자영을 자리에 올렸다. 그리고 진나라는 멸망했다.


사기 본기는 신기한 편이 몇 편 있다. 오제 본기도 신기한 편이지만, 진시황 본기가 별도로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그리고 항우 본기도 있고, 여 태후 본기도 있다. 사마천은 진시황이란 인물을 보다 깊이 파헤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항우의 경우, 사마천은 항우를 영웅으로 본 듯 하다. 본기는 제왕들의 전기인데 여기에 항우를 포함시킨 것은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의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목상 황제는 의제였으나, 항우는 스스로 서초 패왕이 되어 제후를 임명하는 등 실질적 황제였다. 여 태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고조가 죽은 후 여씨 천하를 만들어 실질적 황제 노릇을 했으니까. 이렇게 본다면 사마천이란 사람은 참 재미있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6편은 진시황 본기이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을 이룩한 황제이다. 출신성분이 불분명하고, 어린 나이에 볼모 생활도 하고, 후계 구도 자체에 들지 않았으나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누구보다 권력의 힘을 잘 알았고, 권력을 잘 휘둘렀다.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했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했고, 도로를 닦았다. 하지만 아방궁을 짓고 분서갱유를 일으켰으며 가혹한 법치주의를 실시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불로장생에 현혹되었고 마침내는 애써 일군 나라의 기틀을 무너트렸다. 나는 진시황 본기를 보면서 계속 떠오른 사람이 바로 일론 머스크였다. 두 사람이 무언가 성향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인데, 아마 냉혹한 결단력과 추진력, 불로장생이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7편은 항우 본기이다.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인물이며 패왕이었다. 장기에 나오는 초와 한은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다. 진나라의 폭정으로 우후죽순 반란이 일어날 때 항우 역시 항량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 사람들을 모았다. 뛰어난 장수였으나 생각이 좁았고, 책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의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고, 자신의 용맹함을 과신했다. 진나라를 멸망시켰고, 천하를 손에 거머쥘 순간이 눈 앞에 있었으나 유방에게 패했다. 사면초가 이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신화에 보면 순 임금은 눈동자가 둘이었다고 한다. 태사공이 말하기를, 주생(사마천이 알고 지낸 유학자)이 항우 역시 눈동자가 둘이라고 들었다 한다. 아무 세력이 없던 항우가 패왕이 되기까지 순 임금과 같은 천명을 받았으나 스스로를 꾸짖지 아니하고 덕이 아닌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려 했기에 천명을 잃은 것일까. 


8편은 고조 본기이다. 고조 본기는 읽다보면 하늘의 뜻이란 게 진짜 있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유방은 평민 출신의 건달이었다. 항우에게 계속 패했으나 결국 뜻을 이뤘고, 중국이란 나라의 기틀이 되는 한나라를 세웠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렸고, 능력 있고 어진 사람을 적재적소에 썼으며, 쓴소리라도 잘 받아들였다. 하지만 권력욕도 굉장해서 자신의 권력을 넘볼 것 같으면 가차없이 제거했다. 자신이 제일 중요했기에 항우로부터 도망칠 때 부인과 자식을 몇 번이나 마차에서 밀어 떨어트렸고, 여인 2천 명에게 갑옷을 입혀 내보낸 뒤 도망치기도 했다. 여색을 밝혔고, 술 먹고 빚을 지고 거짓말 하고 허세를 부리는 등 건달이 하는 짓은 다 했다. 하지만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 사마천은 한 고조가 겉으로는 온화하고 너그러우나 속은 좁고 치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마천은 또한 그가 세운 한나라가 하, 은, 주의 병폐와 그 병폐를 다스리는 식의 통치의 순환을 이어갔다고 평가했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그 병폐를 다스리지 않고 형법으로 가혹하게 통치했으니, 한나라가 병폐를 계승하기는 했어도 이를 개혁해 백성들을 곤하지 않게 했으니 하늘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말이다.


9편은 여 태후 본기이다. 사마천은 고조 본기 이후, 한 고조 사후 즉위한 혜제 본기가 아닌 여 태후 본기를 배치했다. 실질적으로 황제 노릇을 한 것은 여 태후라고 본 것이다. 여 태후는 이름은 치이며 고조 유방의 정식 황후이다. 유방이 죽은 후 자신의 아들인 유영이 즉위했는데, 그가 혜제이다. 여 태후는 황로 학설을 신봉하여 도가의 무위를 통치의 근본으로 생각했고 이를 토대로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고 경제 발전을 모색했다. 이는 한나라 이전에 횡행했던 법가의 가혹함을 생각하면 백성들에게는 다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마천은 이 공로를 인정했다. 하지만 또한 여 태후의 전횡으로 유씨 일족을 내쫓고 공신들을 모욕해서 쫓아낸 후 여씨 천하를 만든 것은 달갑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잔인하기까지 하여 자신의 정적이자 연적이었던 척 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들어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 결국 명분은 유씨에게 있었기에 여 태후 사후 여씨 일족은 몰락하지만, 여 태후란 존재가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한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듯이, 한 고조 유방의 곁에 여 태후가 있었기에 한나라가 설 수 있지 않았을까.

 

10편은 효문 본기이다. 효문제 유항은 유방의 넷째 아들이다. 유방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황제가 된 것은 그에게 덕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사마천은 말한다. 효문제는 주발 등이 여씨들을 평정하고 난 후 황제에 즉위해 23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사마천이 성군이라고 칭송하는 황제로 덕치를 보여 준 황제이다. 황제는 늘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겼고 늘 백성을 생각했으며 덕으로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불합리한 법령을 없애려고 했는데, 제나라 태창령 순우공이 죄를 지어 처벌받게 되자 막내딸 제영이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자신이 노비가 되어 아비의 죄를 갚겠으니 아비를 용서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천자는 교화를 베풀지도 않고 형벌부터 가하니 그 형벌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괴롭고 부도덕한 것인지 안타깝다면서 육형을 없애도록 했다. 제영의 효심은 오늘날 경극의 주제로도 널리 공연될 정도로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11편은 효경 본기이다. 효경 본기는 사기 본기 중 가장 짧다. 목록만 있고 내용이 없으며 <한서> 경제기에 의거해 재구성했다는 설도 있다. 위작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으나 위작이 아니라는 증거 역시 없으므로 본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12편은 효무 본기이다. 사마천을 궁형에 처한 그 한무제가 효무 본기의 주인공이다. 한(漢)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 중 한 명이고 업적 또한 어마어마한 황제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업적은 잘 안 보인다. 눈에 잘 보이는 것은 무제가 불로장생을 위해 계속 신선을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시호인 '효무'를 붙인다든지, 문장이 처음 60여 자를 제외하면 <봉선서>와 완전히 일치한다든지 하는 점 등 때문에 위작 시비가 있는 편이다. 정말로 사마천은 무제를 폄하하고 그의 업적을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무제는 다른 어떤 중국의 제왕보다도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제후국들이 천자의 관할 아래에 있는 것을 이상적인 세계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진시황이 했던 생각과도 비슷한 듯 한데, 무제는 자신이 이상적인 세계라고 생각했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토목 공사나 흉노 원정 등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화려한 제국을 위해 백성들의 피땀이 동원된 것이다. 또한 마음에 안들면 가족에게까지 가혹하여 무고(巫蠱)의 난 같은 참혹한 일도 일으키면서 한나라가 전한, 후한으로 나뉘고 또다시 중국이 쪼개지는 원인이 되었다. 어떤 학자는 진시황과 한무제가 유사하게 서술되었다는 점을 들어 실제로 사마천이 한무제를 비판하기 위해 이렇게 썼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한다.

  

역사서를 읽다보면 하늘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치가 있어 그 이치에 합당하게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가진 것도 다 버리고 스스로 희생하기까지 하는 반면, 누군가는 가진 것에 더해 더 큰 것을 바라고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킨다. 큰 권력은 베풀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작은 권력까지 빨아들여 결국 혼자만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진나라가 쇠퇴한 지 오래되자 천하는 흙이 무너지고 기왓장이 부서지듯 했으니, 비록 주공 단의 재주가 있었더라도 다시는 그 간교함을 펼칠 곳이 없을 터이니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버린 자영을(가의와 사마천이) 책망한 것은 잘못된 일이구나! 속세에 전하기로는 진시황은 죄악을 일으키고 호해는 죄악이 극에 이르렀다 하니 일리가 있다. 그런데 다시 자영을 책망하며 진나라의 국토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른바 시세의 변화를 통찰하지 못한 것이다. (기나라의) 기계가 휴읍을 제나라에 바친 것에 대하여 <춘추>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나는 <진시황 본기>를 읽다가 자영이 조고를 거열형에 처하는 데에 이르면, 일찍이 그 결단을 탄복하고 그 의지를 애석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자영은 삶과 죽음의 도의를 갖췄다.

-반고의 <전인>에서 - P280

주9) 치사(致師)를 번역한 것인데 치사란 전쟁을 하기에 앞서 소수의 날랜 군사들을 적진에 보내 약을 올리며 싸움을 거는 것을 말한다.

(주 본기 중에서)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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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코퍼필드 1 비꽃 세계 고전문학 16
찰스 디킨스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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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막내 동생이 소고기 사 준다고 해서 일요일 점심을 동생들과 함께 먹었다.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동생들이 좋아해서 먹으러 갔다. 비싼 음식 사 주고 싶어하는 동생의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말이다. 그러나 역시 나는 0.3인분 먹었고, 동생은 생각보다 밥값이 싸게 나와서 놀랐고, 덕분에 커피까지 막내가 쏘게 되었다. 앗싸!!


'오디오그라피'라는 카페를 가게 됐는데, 거기는 멋진 사장님이 계셨다. 음향기기와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인데, 거기 앰프랑 스피커랑 아주 좋은 것들을 갖추고 계셨고, 일정 시간이 되면 카페 손님들을 지하 청음실로 초대해 두 곡을 들려 주셨다. 나랑 동생들이 갔을 때 들었던 노래는 <헤어질 결심>에 나왔던 '안개'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음.... 다들 좋다하니 좋은가보다... 했다. 나는 막귀니까. 그런데 음악을 듣고 난 뒤 사장님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시절의 음악을 들으면 잠시나마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이다. '안개'는 내가 살던 시대가 아니니 모르겠지만, '잘못된 만남'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저 노래는 무용시간 과제였는데, 그 때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저절로 가사가 튀어나왔다. 


음악도 그 시절을 떠 올리게 하고, 냄새도 어떤 시절을 떠 올리게 한다. 그리고 책도 어떤 기억을 불러온다. 나에게 이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그러했다. 


데이비드는 금요일 자정에 태어났다. 유복자였고 유복하지 못했다. 베시 대고모는 그가 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떠났고, 데이비드는 아름답지만 유약한 어머니와 패거티 유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가 머드스톤을 만났고, 행복한 시절은 막을 내렸다.


데이비드의 엄마인 클라라가 머드스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그와 결혼하자, 머드스톤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머드스톤은 먼저 자신의 누나를 집으로 들였고, 클라라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머드스톤과 머드스톤 아씨는 클라라의 재산을 모두 가로챘고, 클라라의 아들인 데이비드를 위한 일들을 못하게 했다. 머드스톤은 스스로 데이비드를 가르치려고 했고, 데이비드를 아주 나쁜 아이인 마냥 취급했다. 클라라가 아들을 두둔하려거나 위하려고 하면 나쁘고 못된 아이는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면서 클라라가 마치 아들의 버릇을 나쁘게 만든 것처럼 말했고, 클라라는 늘 자신이 잘못했다 생각했고 데이비드를 지켜주지 못했다. 데이비드 역시 머드스톤과 머드스톤 아씨를 두려워했고,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데이비드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패거티 유모였는데, 머드스톤이 둘이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해서 자주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머드스톤은 겨우 열 살 정도인 데이비드를 아주 질 나쁜 기숙학교로 보내버렸다. 치사하고 치졸하고 비열한 머드스톤은 데이비드를 포악하고 말 안 듣는 아이로 말했고, 학교에서는 데이비드 등에 '깨무니까 조심하시오'란 벽보를 매달도록 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동행하는 어른이 없어서 웨이터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그저 교장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많이 맞기도 했다. 


머드스톤에게 학대 당해 시름시름 앓다 클라라는 세상을 떠났고, 데이비드는 머드스톤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머드스톤&그린비'에서 일하게 되면서 미코버 아저씨네서 살게 되었다. 하숙집 주인인 미코버는 채무자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데이비드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제일 처음 나왔던 베시 고모님에게 가기까지, 데이비드의 시간은 너무 비참하고 안타까웠다. 겨우 열 살짜리가 겪어야 했던 일들이 너무 가혹하여 머드스톤이 증오스러웠지만, 더 안타까운 사실은 당시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흔했다는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썼다. 물론 자신의 다른 책들에도 그 경험들이 녹아 있지만, 이 책만큼 자전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실제로 디킨스는 금요일에 태어났고, 미코버 아저씨는 디킨스의 아버지가 모델이며, 세일럼 기숙학교는 디킨스가 다니던 학교가 모델이고, 머드스톤&그린비에서 일했던 것은 디킨스가 열 두살 때 다니던 공장의 일을 가지고 왔다. 


데이비드가 패거티 유모에게서 은화 열 냥을 빌려 베시 대고모님께 가는 길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길이었다. 순식간에 열 냥을 강탈당한 뒤 옷을 팔아가며 밥을 먹고, 노숙을 하면서 걸어야 했던 데이비드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데이비드를 보며 나 역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데이비드가 하얀 공백으로 가득한 유년기라는 표현을 썼다면,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까맣게 기억한다. 까만 와중에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들이 드문드문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스테이지와 쉐도우처럼. 냄비 뚜껑부터 라디오까지 다 분해하는 장면이 기억나고, 밥 안 먹어서 발가벗겨진 채 쫓겨난 일이 기억나고, 여섯 살 때 혼자 버스 타고 수영장 가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사람이 많아 못 내려서 다음 정거장에 겨우 내려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머드스톤이 데이비드에게 했던 것처럼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말들이었다. 내 성적이 좋은 건 하필 그 시험에 다른 애들이 시험을 못 쳤기 때문이고, 시킨 대로 안 하면 무조건 여상에 가야 할 것이고, 니가 무슨 글을 쓸 수 있냐며 하던 말들 말이다. 무슨 일이든 일단 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되기에,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께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베시 고모님이 머드스톤에게 퍼붓는 말들이 좋았다.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당신이 하는 말을 들엇는데 그동안 당신이 어덯게 굴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소, 솔직히 말해서 당신과 대화하는 자체가 이렇게 역겨운데? 그래요, 당신은 처음에 정말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굴었겠지! 불쌍하고 어리석고 순진무구한 아기는 그런 남자를 처음 보고. 참으로 다정하게 행동하며 숭배하는 남자. 남자는 아기 아들을 덮어놓고 예뻐했겠지...... 다정하고 부드럽게! 친아들처럼 보살피겠다고, 그러니 장미정원에서 함께 살자고 했겠지. 그죠? 흥! 어서 나가요, 어서!" (p.344)


"그래서 불쌍하고 귀여운 멍청이를 -이렇게 부르는 걸 하느님, 용서 하소서!- 확실하게 장악한 다음에는 멍청한 여자와 그 아들을 그동안 충분히 학대하지 못한 몫까지 덧붙여서 여자를 훈련하기 시작했겠지, 그죠? 새장에 가둔 불쌍한 새처럼 상처를 주고 당신 가락에 맞춰서 노래하도록 가르치는 식으로 미혹에 빠뜨리며 생명력을 조금씩 앗아갔겠지!" (pp.344-345)


"머드스톤 선생, 당신은 단순한 아기한테 폭군으로 군림하면서 심장을 갈가리 찢어발겼어. 그 애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였어. 내가 잘 알아. 당신이 그 애를 보기 훨씬 전에 내가 보았거든. 그런데 당신은 그 애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을 이리저리 활용하며 상처를 주어서 죽인 거야. 당신이 그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통해서 위안을 느낀 건 사실이야. 당신은 그걸 당신 앞잡이와 함께 최대한 활용했어."(p. 345)


데이비드가 베시 고모님께 오기 전에는 그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웨이터에게 조롱을 당하고, 학교에서는 가련한 선생님 편을 들어줄 줄도 몰랐고, 이기적이고 거만한 선배를 멋지다고 좋아했다. 교장 선생님은 기분 따라 애들을 학대했고, 하숙집 주인은 채무를 잔뜩 지고는 돈 한 푼 갚지 않으면서 피해자인 척 불쌍한 척 행동했다. 심지어 돈이 없어서 미코버 아저씨는 교도소에 가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갔다! 교도소 독방은 월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나보다. 그나마 패거티 유모 가족이, 특히 사랑스러운 에밀리가 데이비드에게 안식처를 줬는데, 자주 볼 수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사회상은 어째서인지 그리 멀지 않은 때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지 신기했다. 불과 5~60년 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 안에 있는 온갖 부조리하고 가혹하고 비참한 일들을 해결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전쟁이란 참혹한 일부터 시작해서 개발이나 독재 등을 통해 누적된 사회의 아픈 기억들은 여전히 모두의 집단 무의식에 남아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데이비드는 베시 고모님을 만났고, 안식처를 얻었고,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새롭게 가게 된 학교는 점잖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있었고, 함께 살게 된 위크필드 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여전히 어리지만, 그래도 많이 배웠고 풋사랑도 하게 됐다. 이제 데이비드는 열 일곱이 되었고, 세상을 구경할 준비가 되었다.


'고통은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이다.  

 나는 고통을 겪으면서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러지고 깨졌지만, 훨씬 멋진 모습으로 태어났다.' 라고 찰스 디킨스는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나 역시 내가 겪은 고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여전히 용기를 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또 그 기억 때문에 어떤 일들은 그다지 힘들지 않기도 하다. 어쩌면 찰스 디킨스의 저 말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졌다라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 할라치면 아주 많은 말들을 할 수 있을테니까.


우리 사회가 겪은 그 고통들이 우리 개개인을 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각자 개인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데이비드가 베시 고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사회 안전망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자, 이제 데이비드의 다음 이야기를 읽으러 가야겠다. 더 이상 그가 힘들지 않기를, 사랑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절대로 치사한 사람이 되지 말고,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고, 절대로 잔인하게 굴지 말렴. 세 가지 악덕을 조심해, 트롯, 그럼 나는 너한테 언제나 희망을 품을 거야. - P361

하지만 나는 네가 육체를 단단하게 다진 만큼 정신적으로도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주 단단하고 훌륭한 사람, 의지가 뚜렷한 사람, 결단성 있는 사람, 단호한 사람. 강인한 사람, 트롯..... 합당한 명분 외에는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도 영향을 안 받는 강인한 사람.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해.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렇게 살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야.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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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9-29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 코퍼필드 저는 찍먹 수준으로 권마다 체험판으로 읽었는데 재미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디킨스의 글빨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추석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3-09-30 00:01   좋아요 2 | URL
정말 디킨스는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1권의 유년 시절이 너무 가슴 아팠는데, 이후의 삶은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서곡 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락방 2023-09-29 1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너무 읽고 싶네요. 사야겠어요. 불끈!!

꼬마요정 2023-09-30 00:01   좋아요 1 | URL
아아 얼른 사세요!! 그리고 다락방 님의 리뷰를 들려주세요^^
 

여름이 지나간다 싶더니, 벌써 추석입니다. 연휴가 긴 건 좋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더 추워지기 전에 다녀왔습니다, 북다이제스터 님 추천인 '변가네 옹진냉면'에 말이죠. 북다이제스터 님 고맙습니다!!



백령도까지는 거의 9시간이 걸리지만 인천까지는 반의 반도 안 걸리니까요. 9월 20일... 이미 가기로 되어 있기에 가긴 했는데 그 날.... 태풍도 아닌데 비가 미친듯이 왔습니다. 식당에 앉았는데 안전문자가 오네요, 돌풍 조심하라고. 날씨가 그러해서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냉면 가격이 착하네요. 까나리액젓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면 말하라고 해서 당당하게 달라고 했더니, 직원분이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ㅎㅎㅎ




부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친 메밀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육수는 일반 평냉보다는 좀 달달한 편이었구요. 둘이 잘 어울려서 맛있게 먹었어요. 그리고 까나리 간장을 조금 넣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어요.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더라구요. 약간 엔쵸비 파스타 느낌도 나고, 쥐포 생각도 났어요. 남편은 못 먹겠다고 해서 저만 넣어먹었습니다. 


여기 다녀왔다니까 주짓수 도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동생이 해병대 출신인데 백령도에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긴 시간 들여서 갈만큼은 아니지 않냐고 ㅋㅋㅋ 그런데 반가워하더라구요. 


이 날 비가 오는 바람에 냉면 먹고 여의도 더 현대 서울 갔어요. 테일러 커피랑 에그 슬럿이랑 소금집 가서 또 먹었습니다. 소금집에서는 잠봉뵈르 샌드위치 몇 개 포장했구요, 에그 슬럿은 입에 안 맞았구요, 테일러 커피는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초록초록한 공간들을 구경하고 메종 마르지엘라 향수 팝업에서 향수를 샀는데, 마침 직원분이 부산분!!! 샘플 하나 더 받았답니다. ㅎㅎ 


9센티미터짜리 힐을 신고 만 오천보 걸었네요. 어쩐지 발이 아프더라... ㅋㅋㅋ



이번 연휴에 읽을 책들을 샀는데, 왜 샀는지 잠깐 생각했습니다. 집에 읽을 책이 많은데 말이죠? 왜 샀지??


 <딩씨마을의 꿈>을 읽고 너무 좋아서 옌롄커 책 샀어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북으로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좋아서 종이책을 사야 하나 고민 중이구요. <일광유년>도 한 마을에서 대를 잇는 가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길어야 마흔까지밖에 못 사는 병에 걸린 마을 사람들이라는데... 도대체 무슨 저주 같은 병이길래,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런 병에 걸린 걸까요. 



이 책은 <발자크와 바느질 소녀>를 읽고 궁금해서 산 책입니다. 두 권짜리인데, 1권이 900쪽이나 되네요. 이번 연휴에 다 읽지는 못 할 것 같고... 올해 안에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띠지에 이 책에 대한 찬사가 어마어마합니다. 난리네요. ㅋㅋㅋ 온갖 시련 고난을 극복하고 대작곡가로 성공한다는데, 그 고난과 시련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길래 쪽 수가 이렇게 어마어마할까요? 



바람돌이 님 리뷰 보고 산 책입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얇아요!! 한국 작가이기도 하고요. 표지가 너무 귀여워요. 지금 우리의 가족 제도를 들여다보는 책이라고 하니 좀 열도 받겠지만 그게 현실이니까요. 내 머리 속 생각 혹은 내가 가진 상식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한 요즘인데 괜찮을 것 같아요.




생각이나 판단할 여지도 없이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에 흥분했다가 다시 다른 사건으로 이동하는 게 일상인 것 같은 요즘. 그 즉시성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좋은 점을 살리지는 못하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안타까워요. 스쳐지나가기만 하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고 분노만 남게 될테니까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는 지점이 있어서 사게 됐네요. 얇지만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세상에, 쉬운 게 없어요!!! (그러니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지도...)



벌써 또 한 해가 지나가네요. 이 책이 벌써 나오다니... 2023년도 이제 입에 붙는가 하는데, 2024년이 다가옵니다. 빠르기도 하지...

올 가을은 올드 머니룩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올드 머니는 내년 대표 트렌드인가 봅니다. 미묘하게 바뀌는 트렌드들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또 어떤 경향성이 사람들의 삶을 이끌게 될까 궁금하네요.



정보라 작가 책이니까 샀습니다!!! 말이 필요없죠!!

(너무 말이 없나...)







두 권이라도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ㅋㅋㅋㅋ




커피 한 잔 드실래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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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8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28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3-09-28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 크리스토프 저도 전에 관심 생겨서 펼쳤다가 관둔 책입니다 ㅎㅎ 즐독하시길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3-09-29 00:53   좋아요 2 | URL
아아... 사실 책이 오고 살짝 후회했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혹시 모르죠, 저랑 잘 맞을지도요... 제발... 그러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희선 2023-09-29 0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냉면만 드시러 백령도까지 가신 건가요 그렇게 오래 걸려서... 대단합니다 냉면이 맛있어서 다행이네요 책도 사시고, 꼬마요정 님 연휴 동안 편안하게 보내시고 책 즐겁게 만나세요 고양이들은 여전히 귀엽네요


희선

꼬마요정 2023-09-30 00:03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아니요... 백령도까지는 너무 멀어서 슬퍼했는데, 북다이제스터 님이 인천에 백령도 스타일 냉면이 판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인천에 있는 옹진냉면에 먹으러 갔답니다. ㅎㅎㅎ 냉면 맛있었어요!!!

고양이 귀엽지요? ㅎㅎㅎ 희선 님도 연휴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Falstaff 2023-09-29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 크리스토프> 명작입니다. 전 이거 읽다가 울었어요. 흑흑흑.
할아버지와 손자 장면에서... 얼른 읽어보셔요!
서양 고전 음악을 좋아하시면 더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꼬마요정 2023-09-30 00:06   좋아요 1 | URL
아앗, 그렇게 감동적인가요? 얼른 읽어보겠습니다. 너무 궁금하네요!!
서양 고전 음악은 아는 게 별로 없지만은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ㅎㅎㅎ
 
유괴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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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변하기도 하지만 진짜 변하는 인간은 드물다. 반성하는 인간 역시 드물다. 똑똑하면 뭘하나 염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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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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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자크의 소설을 찍먹한 게 많다. 일단 <나나>는 표지에 이끌려 펼쳤는데,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덮었다. <골짜기의 백합>은 재미가 없진 않았고 나폴레옹이 또 망친 것 같은 소년의 이야기가 나와 궁금하기도 했는데, 책 정리 하다가 없어졌고 다시 찾았을 때는 선뜻 읽어지지가 않았다. <어둠 속의 사건>도 몇 장 읽다가 꽂아두고, <나귀 가죽>도, <미지의 걸작>도 <13인당 이야기>도 모두 고이 모셔두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웠다. 만약 모든 것이 금지되고, 읽는 자유를 빼앗기고, 미래마저 불투명해진다면, 페터 한트케나 알랭 로브그리예나 조셉 콘래드의 책이라도 얼마나 재미있을까...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과 인간성을 볼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심지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라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게다가 중국어는 뜻글자이다 보니 번역하면 책 쪽수가 그닥 많지 않은가 보다. 이 책에 나온 책들 중 <장 크리스토프>를 검색했는데, 1권만 900쪽이던데... 


1966년 어느 날, 마오쩌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대혁명이란 사건을 일으킨다. 뭐, 나라를 대변혁하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대약진 운동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어갔기에 환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권력도 지켜야 했고. 그리하여 학교가 문을 닫았고 책들이 불탔고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쫓겨났다. 젊은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도록 하게 하는 하방운동 또는 재교육으로 불리는 이 일은 현재의 중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이 책의 두 주인공에게도 일어난 일이었다.


나와 뤄는 겨우 열 일곱, 열 여덟이었고 부모님이 의사라는 이유로 완전 시골깡촌으로 재교육 받기 위해 내려오게 된다. 그 곳에는 시계조차 없는, 현대 문명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었고 둘은 촌장 등 농민들의 감시를 받으며 매일 밭을 간다. 그들이 유일하게 해방되는 시간은 도시로 가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때이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돌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그 영화를 이야기로 들려줘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그들은 마치 세헤라자드가 된 것마냥 이야기를 보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같이 농촌으로 쫓겨 온 시인의 아들인 '안경잡이'에게 서양고전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봉사의 딸인 바느질 처녀가 등장한다. 어째서 그녀에게는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바느질 처녀는 참으로 매력적인 인물인데 말이다.  


'안경잡이'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민요를 수집해야 하고, 뤄와 나는 그를 도와주는 대가로 소설책 한 권을 빌리기로 한다. 그들이 받은 책은 발자크의 <위르쉴 미루에>이다. 이 책을 읽고 전율하는 두 사람... 나는 이 책의 일부를 겉옷 안감에 필사하고, 뤄는 바느질 처녀를 훌륭한 숙녀로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이념들은 그들의 삶에 겉도는 부유물일지도 모른다. 녹아들지 못하고 그저 겉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뤄가 말라리아에 걸리자 바느질 처녀는 약초를 붙여주고 네 명의 무당을 불렀다. 20세기 분서갱유라 불리는 이런 사건 자체도 말이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젋은 지식인들을 재교육하려고 농촌에 보냈는데, 현실은 무당이 병을 치료하고, 금서인 문학책들이 인간 세상을 알려준다니... 


이야기는 빠르고 재미있게 전개되어 순식간에 다 읽었다. 재미있었고, 웃겼다. 바느질 처녀 덕분에 발자크의 책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녀를 그렇게 변모시킨 그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죽지 않고 돌고 도는 모양이다. 


읽다보니 궁금한 점이 있었다. 뤄와 내가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재봉사의 옷과 모자를 빌렸는데, 그 때 모자의 색깔이 녹색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녹색 모자나 녹색 머리 장신구는 배우자의 바람을 뜻하는 게 아닌가? 특히 남자가 녹색을 착용하면 오쟁이진 남편이란 말을 듣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가 재봉사에게 밤마다 들려주던 <몬테크리스토>의 이야기 중에, 마을 촌장에게 들키기 직전 '백작이 검사의 딸과 막 사랑에 빠지려는 순간'이란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빌포르의 딸인 발렌타인과 사랑에 빠지는 건 모렐의 아들인 막시밀리앙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이야기는 조금씩 비틀려서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지금 중국은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낸다고 하는데 이제는 농촌에도 현대문물이 가득할테니 이렇게 책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일은 드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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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9-18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 모자가 그런 뜻이 있었군요?
이 책 제목은 참 많이 들어본 것 같아요.
근데 첫 단원에 열거하신 작가들은 좀 지루한 작가들이에요? 저 작가들의 책도 읽어본 게 없네요?^^;;
요정 님은 늘 느끼지만 정말 다양한 분야의 다독가세요.

꼬마요정 2023-09-21 15:54   좋아요 1 | URL
책 제목 유명하죠? 저도 이제 읽었네요. (근데 전 옌롄커가 더 좋아요^^)
중국 갈 때 녹색 모자는 안 쓰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페터 한트케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로 노벨학상을 받았어요. 저는 이 작가의 <어느 작가의 오후>를 읽었는데 음... 무슨 말일까? 그랬죠 ㅋㅋㅋㅋ
알랭 로브그리예 책은 <질투> 하나 읽고 있는데요, 아마 몇 년째 읽고 있기만 해요 ㅋㅋ 도대체 진도가 안 나가서 절반 정도 읽고 그냥 그 페이지입니다. ㅋㅋㅋㅋ
조셉 콘래드는 단편은 좀 나았는데요, <암흑의 핵심>은... 음.. 아실 것 같아요. ㅋㅋㅋ

저는 그냥 이것 저것 궁금한 게 많아서 시도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9-21 17:08   좋아요 1 | URL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전 한 권도 읽어보질 못했네요.^^;;
저도 궁금해지는데 언젠간 시도해 볼 시간이 오겠죠.ㅋㅋㅋ
열심히 시도해 봅시다.^^

꼬마요정 2023-09-21 17:50   좋아요 1 | URL
책나무 님이 더 대단하신걸요. 요리도 잘 하시고 ㅎㅎㅎ
우리 함께 열심히 시도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