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직녀
 

 



  天上(천상)의 牽牛織女(견우직녀) 銀河水(은하수) 막혀서도,
一年一度(일년일도) 失期(실기)치 아니거든,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슨
弱水 가렷관듸,
오거나 가거나 消息(소식) 조차 쳣는고."

허난설헌 <규원가> 결사 부분 (기다림, 한탄의 심정)


 

 


●약수(弱水) : 옛날 중국에 신선이 살던 고장에 있었다는 물 이름. 길이가 삼천 리가 되며 浮力(부력)이 약해서 기러기 털도 가라앉는다 함. 더구나 사람은 건너지 못한다는 물. 이별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로 많이 등장


옥황상제의 미움을 산 두 남녀, 견우와 직녀. 옥황상제는 "이제부터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서 베를 짜고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살도록해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용서를 빌었지만 옥황상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대신 일년에 딱 한번 음력 칠월 칠일 한 번 만날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칠석날입니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을 기다려 만나기 위해 나왔을 때에는 은하수가 두 사람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까마귀와 까치들은 너무 불쌍해 곧 서로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이 다리가 바로 오작교입니다.

칠월 칠석날에는 주로 비가 오거나 흐린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칠월 칠석 무렵은 바쁜 농사 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더위도 한풀 꺽이는 때라 여름 내내 입었던 옷을 빨아 햇볕에 말렸는데 칠석날 옷과 책을 말리면 일 년 내내 좀을 먹거나 상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칠석날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인들은 술잔을 교환하면서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또, 집집마다 우물을 퍼내어 청결히 한 다음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두고 칠성제를 지냈답니다. 음식으로는 밀국수, 밀전병을 해먹고 잉어를 재료로 음식, 증편을 만들거나 복숭아, 수박으로 과일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견우직녀 신화를 다시 보자

북한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는 귀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견우와 직녀신화를 벽화로 그린 것이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염소 만한 크기의 소를 끌고 견우성을 향하여 떠나고, 직녀성이 자미원 밖에서 견우를 배웅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고구려시대의 견우와 직녀 천문도를 의인화하여 그린 천문도이다. 우리는 이 천문도를 봄으로써 고구려시대에 칠석날 칠석제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칠석날은 인류의 조상인
나반(那盤)이 천하(天河-은하수)를 건너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한단고기 太白逸史 三神五帝本紀) 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서 단판을 지어야 할 일이 있다.

장마를 그치게 하는 일이 그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다. 그는 담판을 끝내고, 그 징표로 소 한 마리를 받아서 이끌고 은하수를 건넌다. 음력 칠월 초승에 장마가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견우는 땅에서 인류의 조상이 된다. 그를 배웅하는 직녀는 땅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만(阿曼)이다. 그는 후대에 와서 최초의 문명인인 마고(麻姑)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반이 칠월칠석날 은하수를 건너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가?

옛날에는 천기의 순환주기를 1 월 ∼ 6 월, 7 월 ∼ 12 월 둘로 보았다.
첫 주기는 1 월에서 6 월까지인데, 이때 천기가 왕성하다.
이 기간이 시작되는 섣달 아침에 달이 뜨고, 정월 초하루에 음과 양이 만난다. 왕(旺)한 천기는 6 월에 가서 극(極)에 달한다.
이때 하늘의 수문(水門)이 열리고 거대한 빗줄기가 땅을 향하여 퍼붓는다. 이것이 6 월 장마이다.

두 번째 주기는 7 월 ∼ 12 월인데, 천기가 왕성하지 못하다고 보고 이를 폐(廢)하다고 하였다.
폐한 천기는 7 월에 시작하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달이 뜨므로, 이때를 시작의 시기로 보았다.
이 날
나만이 천하를 건너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지루한 6 월의 장마 기운이 사라진다.

칠월칠석은 이렇게
나만을 통하여 장마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날이다.         (글) 古潭 노중평


은하수 나라에는 아름답고 착한 직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천상에서 지상 사람들의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베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옷감은 누가 입게 될까? 아무쪼록 선한 이웃들이 입었으면 좋겠는데.........'

직녀는 베를 짜면서 생각했습니다.

직녀의 고운 마음씨는 그녀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냇물을 길어 올리던 직녀는우연히 소를 몰고 가는 견우라는 목동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직녀여,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은 천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오."

"아니옵니다, 견우님. 견우님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옵니다."

그 날부터 두 사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났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만 갔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맡은 일들을 게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날 며칠, 지상의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을 해댔습니다.

"아니, 직녀는 베도 안 짜고 뭐하는 거야? 이러다가 얼어 죽겠어."

"어허, 참 옷도 없는데 식량까지 바닥났으니 완전 거지신세로구먼. 견우가 소와 양을 거두지 않아 고기도 못 먹으니....."

천상에서 사람들의 생활을 굽어보던 옥황상제님은 크게 노여워하며 두 사람을 불러들였습니다.

"어찌 그렇게 경거망동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  너희가 일을 하지 않으면 지상의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정녕 몰랐더냐!"

견우와 직녀는 감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으로 귀향보내졌습니다. 직녀는 서쪽 별로 견우는 동쪽 별로 보내졌습니다. 매일 같이 만나던 두 사람에게 이 보다 더 큰 형벌은 없었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하루하루가 슬프기만 했습니다.

"견우님, 제 말이 들리면 대답해 주세요."

직녀가 말했습니다.

"직녀여,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소?"

견우가 불렀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두 사람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딱하게 여겨 일 년에 한 번만은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날개가 없는 견우와 직녀가 별과 별을 지나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직녀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으며 가깝게 지내던 까마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우리가 다리를 만들어 드릴께요."

까마귀들은 서로의 깃털을 부리로 물어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까마귀 다리위에서 만난 두사람은 서로를 얼싸 안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이 날은 사람들은 칠월 칠석이라 부릅니다. 음력 7월 7일 밤에 만나기 때문이죠. 이 날은 두 사람의 눈물 때문에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옵니다. 또한 까마귀들이 모여 만든 다리를 오작교라 부르는데, 까마귀들의 머리가 벗겨진 것은 다리를 만들 때 깃털이 뽑혀졌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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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 있어서 밥을 같이 먹는 이유

미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가보면 한 진열장에 '일심단선(一心團煽)' 이라는 원형의 한국 부채가 하나 전시되어 있다.

1871년 신미년 강화도 광성포대에서 있었던 한·미 전쟁때 노획해간 전리품 가운데 하나다. 부채살 줄기마다 가느다랗게 이름들이 적혀 있었는데 전투에 임하기 전 부대 단위로 이 일심단선에 각자의 이름을 적고 일심사생(一心死生)을 맹약하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선 일심배(一心杯)라는 커다란 술잔에 술을 담아 순배(巡杯)로 돌려 마시고 또 일심반(一心飯)이라 하여 이날만은 밥그릇 없이 한솥밥을 나눠 먹음으로써 일심동체의 맹약을 다지고 확인했다.

이 일심선, 일심배, 일심반의 정신적 구속 때문인지 미 해군측 기록에 의하면 그 전투에서 구현된 공생공사의 우리 병사들 정신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한 사람의 패주 없이 전원이 포대에서 옥쇄(玉碎)하였고, 부상당하여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의 예외 없이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한 것이다.

부상당한 병사 가운데도 미군의 총부리를 끌어 가슴에 대고 쏘아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는 눈물겨운 종군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집단을 일심동체로 구심(求心)시켰던 것은 한잔 술에 더불어 입을 대는 순배를 하고 한솥밥을 더불어 먹었던 의식에 있었다. 곧 나눠 마시는 한잔 술이 한국인에게 술 이상의 뜻이 있듯이 나눠 먹는 한솥밥도 밥 이상의 뜻이 있었다.

개화기 때 6 조에서의 점심은 으레 오시(五時)부터 신시(申時)까지 계속되었다. 지금 시간으로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상을 물려 밥을 먹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식사 유형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판서, 참관 등 당상관(堂上官)이 맨처음 먹고 나면 그 상을 물려 정랑(正郞), 좌랑(佐郞) 등 당하관(堂下官)이, 다시 그상이 물려져 아전이, 아전이 물려 종들이 먹고 보니 그만한 시간이 소요했던 것이다.

속칭 '네 물림 상'이라 불렀던 이같은 물림유형은 계급 사회의 비인간적 차별 행위로만 봐서는 안된다. 한솥밥을 물려가며 그 모두가 나눠 공식(共食)함으로써 상하의 일심동체를 다지는 한국인의 집단 영위의 슬기가 식사 형식에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윗 사람은 물림을 배려해서 오히려 종들만도 못먹게 마련이다. 이에 벼슬아치를 송덕(頌德)하는 상투적인 문구 가운데 양상수척(讓床瘦戚)이라 하여 "상물림으로 얼굴이 메말라 수척해지고…" 운운하는 대목이 생기기까지 했다.

따라서 한솥밥을 먹고 안먹고는 한국인에게 큰 뜻을 지녔었다. 이를테면 법도 있는 집에서는 첩(妾)을 들이면 첩에게 한솥밥을 먹이지 않고 시앗(妾)솥이라 하여 솥을 따로 두어 따로 밥을 지어 먹였던 것이다.

떠돌이 행상인들이 사랑에 묵으면 끼니 때 반찬은 차려도 밥만은 내질 않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역시 한솥밥이 갖는 정신적 플러스 알파 때문이다. 그래서 행상인들은 '단지밥' 이라 하여 손수 단지에 밥을 지어 먹고 다녔다.

가족을 우리나라에서 식구(食口) 혹은 식솔(食率)이라 부른 것도 바로 한솥밥이 갖는 정신적 유대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수작(酬酌) 이나 한솥밥이 산 사람 사이의 연을 확인하는 공식 문화라면 비빔밥은 살아 있지 않은 조령(祖靈)과의 연을 확인하는 공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조령에게 바쳤던 신주(神酒)를 나눠 마시는 음복(飮福) 절차 역시 젯상에 올렸던 갖가지 음식을 골고루 한데 섞어 비빔밥으로 나눠 먹는 절차이며, 또 그 제수를 이웃 친척과 나눠 먹는 이바지 절차로 신인공식(神人共食)을 한다.

<월인석보(月印釋譜)>에 보면 이바지는 곧 신령에게 바친 음식을 뜻하였는데 그것은 연이 닿는 사람끼리 나눠 먹는 음식이란 뜻으로 진화한 데서도 신인공식 문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비빔밥은 신인공식의 제사 절차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신령이 내려와 드셨던 그 모든 찬을 골고루 한데 비벼 먹는 것 이상으로 보다 철저한 공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삿날 자시(子時)를 기다리지 못해 곧장 잠들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제사 비빔밥을 남겨 두었다가 꼭 먹이곤 하였는데 그것은 신인공식에서 아들 놈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전통적 의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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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신라 제8 대 아사달 이사금(서기154-184)때 일이었다. 동해 바닷가 조그마한 오막살이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 연오랑은 가난하지만 부지런한 어부였다. 그는 아침밥만 먹으면 바다로 나가, 고기를 낚거나 조개를 캐거나, 미역을 따며 하루종일 일을 했다.

남편이 이렇게 바다에서 하루 종일 해가 지도록 일하는 동안 ,아내 세오녀는 밭을 매거나 길쌈을 했다.세오녀의 배 짜는 솜씨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줄 정도로 꼼꼼했다.  이렇게 연오랑과 세오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정답게 살았다. 어느 날 아침 연오랑은 늘 하듯이 낚시대를 들고 고기를 낚으러 바다로 나갔다.

연오랑은 해변을 거닐며 낚시하기에 알맞은 곳을 찾다가 거북처럼 엎드려 있는 바위하나를 발견하여 신을 벗어 놓고 그리로 올라가 낚시대를 드리웠다. 그런데 그날 따라 고기가 통 잡히지 않았다.

"그거 참 이상하다. 오늘은 고기들이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지?"

점심때까지 헛손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기우뚱했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바위가 통째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웬일이람?"

연오랑을 태운 바위는 둥실둥실 해뜨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이 연오랑의 머리 위에 바짝 붙어 따라 오고 있는 것이었다.  연오랑을 실은 바위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쏜살 같이 푸른 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점심을 지어놓고 남편을 기다리던 세오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연오랑이 다녀오지 않자 근심이 되어 바다로 나갔다.

"오늘은 낚시를 하겠다고 했으니까 저 바위 쪽으로 갔을 텐데."

세오녀는 모래를 밟으며 남편이 자주 가는 바위가 있는 해변가로 갔다. 그러나 남편의 모습은 거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오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남편을 불렀으나, 아무데서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곳에 나란히 놓여 있는 신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아무리 보아도 남편의 것이 분명했다.세오녀는 바위를 다 훑어보았으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어? 저 바위는 꼭 거북이가 엎디어 있는 것 같은데!"

세오녀가 신을 벗어 놓고 그 바위에 오르자, 이번에도 바위가 둥둥 떠내려가기 시작했다.세오녀를 태운 바위는 점점 빨라지면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흘러갔다.

한편 머리에 해를 이고 동으로 흘러갔던 연오랑은 이윽고 어떤 섬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일본의 서쪽 해안이었다.  당시 일본은 채 나라를 이루지 못해 부락마다 싸움이 심했다. 전체를 휘어잡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판국에 연오랑이 바위를 타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온 손님을 보자.

"저 분은 하늘에서 오신 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들의 왕으로 받들자."  하며 연오랑을 환영했다.

일본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임금이 된 연오랑은 마음이 무거웠다. 신라에 두고 온 아내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한 신하가 바삐 달려오더니 연오랑에게 아뢰었다.

"서쪽 해안에 거북 바위를 탄 왠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연오랑이 나가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세오녀였다.그리하여 세오녀는 일본의 왕비가 되었다.  연오랑이 일본을 다스리게 되면서 일본에는 태평세월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신라에는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연오랑과 세오녀는가 떠난 이후 신라에는 해도 뜨지 않고 달도 뜨지 않았다. 또 곳곳에서 여우가 나타나 사람들을 놀리고 도망갔으며, 갑자기 도독이 날뛰었다.  아달라 이사금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변에 고심 하다가 점장이를 불러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점장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 나라에 갑자기 이런 괴변이 일어나는 것은 얼마 전까지 해와 달의 정기를 지닌 두 분이 함께 동해안에 살고 있었는데, 그 분들이 한꺼번에 왜국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라임금은 그 말을 듣고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연오랑에게 그 사정을 하소연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연오랑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나라로 와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이 시켜서 한 일이므로 내가 도로 신라로 돌아 갈 수 없는 일이오. 그러나 신라라면 바로 내가 태어난 나라이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소. 여기 내 아내가 짠 비단이 있소. 이것을 줄 테니 이것을 제물로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다시 해와 달이 나타날 것이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아뢰자 아달라 이사금은 제단을 차려 그 위에 세오녀가 짠 비단을 올려놓고 ,해와 달을 다시 보게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제사가 끝나자 아닌게 아니라 사라졌던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나 온 누리를 밝게 비추었다.세오녀의 정성이 깃든 비단이 하늘을 움직였던 것이다.  해와 달을 되찾은 신라 사람들은 그 뒤로 동해 벌판을 영일(迎日) 이라고 불렀으며,비단을 제물로 바치고 제사 지내던 곳을 도기야 (都祈野)라고 했다. 지금의 영일군 오천면 도구동이 바로 그곳이다.

아달라 이사금은 貴妃庫라는 이름의 창고를 짓게 하고는, 해와 달을 불러낸 신비한 비단을 거기에 보관시켰다. 지금은 그 귀비고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日月池라는 커다란 못이 남아 있는데, 신라 사람들은 가뭄이 들거나 병이 나돌면 으레 이 일월지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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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교경전 '숫타니파타' 중에서
- 법정스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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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7-1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님의 소설이 생각나는군요...참 인상깊은 구절이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꼬마요정 2004-07-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감정을 느끼되 거기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욕심이 나되 그것을 다룰 줄 알며 집착이 생기되 그것을 잠재울 줄 아는 그런 삶...

플레져 2004-07-1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에 시선을 너무 많이 두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던 요즘입니다.
그때 그때 위안을 삼는 구절이 있는데, 한때 "혼자서 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했던 적이 있어요. 다시 한 번 그때 처럼...
퍼갈게요.

꼬마요정 2004-07-1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 같아요~~^^*
 

게자리(Cancer) / 6.22 - 7.22


  게자리는 사자자리와 쌍둥이자리 사이에 있는 황도 12궁 가운데 하나로 점성학에서는 황도 12궁의 제 4표지로서, 6월 22일경부터 7월 22일경까지의 기간을 관장한다.
게자리(Cancer)는 그리스 신화의 가장 뛰어난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의 발에 밟혀 죽은 불쌍한 게의 별자리로 전해지고 있다.
 



 게자리

헤라클레스가 에우리테우스 왕의 속박에서 풀려나기 위하여 12가지의 고역을 겪었다. 그 중 두 번째가 네메아 계곡의 괴물 히드라(Hydra)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아르고스 지방에는 히드라라고 하는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 있었다. 그 지방은 원래 물이 귀한 지방이었는데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어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게 되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사랑하는 여인 아뮈모네를 위하여 샘을 파게 해 주었는데 그것을 아뮈모네의 샘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괴물 히드라가 나타나 그 샘 근처에 살면서 물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였다. 괴물 히드라는 네메아의 사자와 마찬가지로 튀폰과 에키드나의 소생으로써 몸은 하나인데 뱀 모양의 머리가 아홉이었으며 머리를 잘라도 잘린 곳에서 또 하나의 머리가 소생하는 불사의 존재였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잡기위해 네메아 계곡에서 무려 30일에 걸친 대 혈전을 벌였고, 전세는 헤라클레스가 우세였다. 이때 헤라클레스를 미워했던 헤라여신이 괴물 히드라를 돕기 위해 게(Cancer) 한 마리를 보냈다.
게는 여신의 명령에 따라 히드라와 싸우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발가락을 물었는데, 결국은 그의 발에 밟혀 한쪽 발이 부러진 채 죽고 말았다.

헤라는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 불쌍한 게에 대한 보답으로 그 시체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가 되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쪽 다리를 잃은 불쌍한 게의 시체는 하늘에서도 어두운 별들로 꾸며졌기 때문에 밝은 별들 틈에서 잘 보이지 않는 채로 지금까지 쓸쓸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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