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네가 말하는 내 이름도 듣고 싶고...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는 연, 네 목소리도 듣고 싶거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렇게 안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자신의 손가락 아래서 벌어졌다 닫히는 입술을 가륜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연이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다."당신을..."가륜이 소리내어 록흔의 입술을 읽어내렸다."당신을."....눈물이 고여 침침한 눈을 하고 록흔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사랑해요, 나의 천자."가륜의 손가락이 록흔의 입술선을 덧그렸다."사랑해요, 나의 천자."..."내 작은 연, 너를 사랑한다."-47-48쪽
""그거 아나?""예...?""넌 웃으면 정말 예쁘다. 햇살처럼 웃지. 내 맘속 얼음장까지 다 녹아버리거든.""...."말문이 막혔다. 이게 현실인 걸까? 천자와 마주 앉아서 서로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들을 주고받는 게 정말 현실인 걸까? 꿈을 꾸고 있는 듯해서 록흔은 힘을 주어 눈을 깜박여보았다."그래서 난 봄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 이미 봄의 맛을 알아버린 동장군은 눈이 돌았단다. 록흔."-190-191쪽
고타마는 말했다. "내가 이런 굴레로부터 벗어나, 태어남이 없는, 늙음이 없는, 아픔이 없는, 죽음이 없는, 슬픔이 없는, 부패가 없는, 최고의 자유를 찾으러 나선다면 어떨까?" 그는 이런 "없는" 상태를 전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태인 닙바나라고 불렀다. 고타마는 마치 우리가 불을 끄듯이, 인간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정열, 애착, 망상을 '끌' 수 있다고 확신했다.-40쪽
아무리 그래도 오디세우스와 부하가 표류했다는 곳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관능적인 지중해, 그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뛰어나며, 기후가 온난하고 온갖 산해진미가 넘쳐나는데다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 뿐일 수 있겠습니까. 만일 표류지가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이나 납빛으로 넘실거리는 북쪽 바다였다면 저 역시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었다고 믿었겠지요. 게다가 남편의 이야기에는 증인이 한 명도 없습니다. 부하들은 식인종인지 외눈의 거인인지가 먹어치웠다거나 해서 이타카에 돌아온 사람은 오디세우스 혼자뿐이었으니까요. 사실은 칼립소인지 키르케인지 하는 여자들에게 정신이 홀려 고국에 돌아올 생각이 사라졌던 게 틀림없습니다. 저로서는 트로이 함락이라는 큰 위업을 마치고 바로 귀국할 마음이 사라진 오디세우스가 부하들과 함께 지중해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귀가가 늦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기상천외한 표루기도 한눈 팔다 돌아온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목마의 계략을 떠올릴 정도의 남자입니다, 오디세우스라는 남자는. 그렇게는 해도 10년이라니,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의 한눈 팔기입니까.-2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