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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노트 Death Note 4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death note.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해서는 안 될, 아니 인간의 손에 절대 닿아서는 안 되는 '생살부'. 이것은 한명회가 수양대군의 참모로 활약하며 만들었던 그런 종류의 생살부가 아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노트.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히면 반드시 죽고 만다. 현재까지 나온 만화의 내용으로 볼 때 딱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나는 두 권 이상 사망시간을 다르게 하여 한 사람의 이름을 적되, 그 사망시간의 차이를 0.06초 이내로 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경우, 사신이 구해주는 것. 뭐, 둘 다 아주 어이가 없긴 하다.
이야기는 류크라는 사신이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인간계에 이 노트를 떨어트리는 바람에 시작된다. 그 노트는 말 그대로 주우면 임자. 하필 머리가 너무나도 좋은 라이토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라이토는 이 노트를 이용해 악인들에게 신의 심판을 내린다. 그리고 반복되는 범죄자들의 죽음에 의혹을 느낀 세계 경찰 및 각국 경찰, 그리고 비밀의 L은 수사를 시작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라이토와 L은 목숨을 건 추리게임을 시작하는데...
한 번 손에 들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만화. 긴장과 여유가 적절히 섞여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불쾌감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신.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존재. 왜 그들은 인간을 죽이는가. 사신들은 death note에 아직 수명이 남은 인간의 이름을 적어 그 인간이 죽으면 남은 수명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영원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자신들에게 수명을 제공할 도구인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들은 존재하는거지? 수명을 연장하면서 끝없는 권태에 몸부림치면서 말이다. 그들의 목적은 살아있는 그 자체인가. 그런 존재가 왜 필요하지?
라이토. 자신은 '정의'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에 고집불통.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극단적으로 인간등급제 따위를 신봉할 만한 인물이다. 보장된 미래와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death note를 이용하지만, 곧 자신이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존재라는 얼토당토 않은 자만을 한다 그러다 결국 L에게 붙잡히느냐 마느냐의 싸움이 되어버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기 싫어하고 계산적인 성품을 가진 그는 처음 몇 사람을 죽였을 때는 괴로워했지만, 점점 자신을 정당화하고 급기야는 죄없는 사람마저 살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L. 아직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고독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범죄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기 은닉에 철저하며, 그간 100% 사건을 해결해 왔다. 커다랗고 공허한 눈, 다크서클, 이상한 자세. 라이토와는 상반되는 이미지이지만, 결국 극과 극은 통한다고 라이토나 L이나 성격은 비슷하다.
이렇게 괴상망측한 캐릭터들의 장난에 혹은 대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당하고 희생당하는 것이 못견디게 추악해 보였다. 또한 천재적인 재능이란 다름아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좋은 머리 덕에 라이토는 살인광이 되었고, L은 머리 싸매고 범죄심리나 파헤치며 몸조심 해야 하니 말이다.
그들에게 따분하기 그지없을 세상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치열한 전쟁터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뭐, L은 살인마 라이토를 잡으려고 하는 착한 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눈에 L은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인다. 라이토나 L이나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는 생활들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을 터. 호적수를 만난 이 상황은 목숨을 건 짜릿한 도전이자 삶의 활력을 주는 신선한 쾌감일 것이다.
점점 자극적인 소재에 흥미를 느끼는 나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