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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다
'성범죄는 공론화되어야 한다 ②'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다(여성의 시각을 바탕으로)
이제 나는 참으로 꺼내놓고 싶지 않은 내 개인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이유는,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섹스가 여성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 뿐이라는 것과 나아가 '그야말로 성범죄'를 당한 여성의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이런 말 하면 웃을 지 몰라도 어려서 내꿈은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남편의 착한 아내가 되어 사는 것이었다. 물론 그 꿈에는 남편과의 첫날밤을 통해 그의 여자가 되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 내가 무척 좋아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잘 되질 못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몹시 나를 좋아했다. 결국 나는 그의 친구와 사귀었는데,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했다. 여전히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나는 그 남자의 친구가 아무리 나에게 잘해 주어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어느날 밤, 그와 나는 바닷가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날밤의 그는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인간이란 존재의 쓸쓸함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나또한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그는 나에게 오늘밤 함께 있으면 안되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면 함께 있겠다고 했다. 불면 날아갈새라 날 아껴주던 그를 믿었다.
그와 나는 여관에 들어갔는데, 방에 들어서자 마자 그는 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폭력을 가하거나 위협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나와 잠자리를 하고 싶다고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물론 나는 거절했고,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 앞을 막아섰고, 절대로 나를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고,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에게 애원도 해보고 화도 내보아도 그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나는 자꾸 이러면 고함지르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아무리 내가 큰소리로 난리를 쳐도 우리방에 기웃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감금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날뛰는 나를 그가 안았고, 그의 완력에 결국 나는 첫 섹스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섹스의 느낌은 '고통' 이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더더욱 내게 잘해주었다. 나도 이제는 그에게 적응해 보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내 마음 속에서 거부감과 분노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그의 강제가 용납되지 없었다. 결국 그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겠다고 말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는 집에 알리거나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을 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것 같은 날들이었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위 첫남자를, 그것도 날 책임지겠다는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할 때는 나도 이미 어느 정도 각오를 한 게 있었다. 내 인생은 끝났다. 나는 결혼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저런 남자와 살 수는 없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한번만 만나주라고 부탁을 했다. 한번만 만나주면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어느 까페에서 그와 대면해 앉았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올 수 없었다는 그는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 그는 내게 용서를 빌기도 하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달라지지 않자,
"다른 여자들은 순결을 주면 싫어하던 남자도 사랑하고 잘해 준다는데, 넌 어째서 이러냐?"
나는 그에게 내 순결을 준 적이 없다. 그가 빼앗아 갔을 뿐. 그는 날 사랑해서 날 차지하고 그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그런 방법을 썼지만, 내게 그것은 "강간"일 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면으로 그날 일을 생각해 보았다.나 자신을 자책하고 저주하기도 했고, 나자신을 더러운 여자라고 학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친구들의 위로로 조금 상태가 나아지기도 했지만, 그 일은 내게 근본적인 열등감과 우울함을 남겨 주었다. 한동안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보고 다니기도 했다. 갑자기 누가 등뒤에서 날 손가락질 하며 욕을 할 것만 같은 신경쇠약증에 걸려지내기도 했다.
남자란 아예 피하고 살았었다. 결국 잘될 수가 없을 게 분명한데 남자를 만나봤자 상처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나같은 여자를 자신의 애인으로 혹은 아내로 받아주겠어'라는 생각이 나에게 남자를 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이라, 이후에도 많은 남자를 만났다.
좀 생각이 트여 보이고, 정말 날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내 경험을 말하면, 그 사실을 감당 못하고 멀어져 가는 남자들도 많았다. 정말 좋은 남자들도 만나 마음의 상처나 열등감이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신경과민과 불안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그들과 성관계라도 가지게 되면 나는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그들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헤어져 버리곤 했다. 아무리 그들이 오해라고,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 20대는 남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점철되어 있었다. 때로는 나도 잘해 보려고 온갖 애를 써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 의식이 잘못 되었다고, 요즘 세상에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나자신을 힐난하기도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헤어나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는 두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첫경험과 똑같은 바보같은 일을 두번째 하고 만 것이다.
이날 나는 술에 많이 취해 있었고, 여러 사람이 같이 택시를 탔다. 친한 사람도 있어 마음을 놓고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엉뚱한 곳에 잘 모르는 남자와 둘이서 내리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나와 단 둘이 3차를 가겠다고 내 친한 사람보고 내리라고 해서 그 사람은 또 혼자 내렸단다.
그래서, 나는 그만 집에 가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술취한 여자가 혼자 어디를 가냐고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엮이는 게 싫어서 혼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날 혼자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는 남자가 우리집까지 따라 오는 게 싫었다.
그와 길가에서 실강이를 계속 벌이고 있는데, 점점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왔다. 나는 원래 술만 마시면 자는 형이라 취했다 싶으면 곧장 집으로 간다. 그 시간은 원래 이미 집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와 같이 집엘 가는 것도 두려운데, 몸은 점점 늘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관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는 거기도 혼자 내버려 두고 못 간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면, 정말 인간적으로 꼭 약속해 달라고, 양식있는 사람으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확약을 받고 난 그대로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나는 내게 벌어진 상황이 무엇인지 알았다. 또 한번 통탄했지만, 내가 미쳤구나 남자를 믿다니 그런 생각뿐이었다. 다시 한번 나의 어리석음에, 이제는 나자신이 정말 도저히 용서가 안되었다.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치명적인 불신과 상처를 또다시 입었다.
그 남자는 날 계속 쫓아다녔고,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의 실수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남자의 연인이 되었다. 잘 모르는 그가 혹시나 이런 사실을 소문내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을 거란 생각때문이었다. 모르는 남자를 따라 여관에 들어가 자고 나왔다면 누가 날 제정신인 여자로 보겠는가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지금의 내 남편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사이는 매우 삐뚤어진 관계로 발전되었다. 성격도 많이 안 맞기도 했지만, 나는 그에게 지독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가 잘해주고 좋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한번 의견이 안 맞아 싸우면 미친듯이 발작을 하듯 날뛰며 화를 냈다. 게다가 내 어떤 모습도 참아 줄 수 있지만, 헤어지는 것만은 못한다는 남편때문에 나는 거의 내가 노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결혼까지 하고 나서 남편은 많이 진정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감정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결혼 후 나는 섹스 혐오증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임신을 했다는 것과 아이를 낳은 후에는 육아란 핑계를 대며 섹스를 거부했다. 섹스를 안하니 정말 좋았다. 나는 사실 섹스가 끔찍했다. 유학을 떠나오게 되었을 때에는 남편에게 해방된다는 느낌때문에 살 것 같았다.
남편이 어쩌다 이곳을 방문해도 나는 밤마다 남편을 피하기 위해 밤새워 일을 하곤 했다. 어쩌다 같이 자게 되어도 나는 서서히 노골적으로 남편에게 섹스를 거부했다. 이제는 핑계도 없었기 때문에 더이상 피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남편을 싫어하는 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고, 내게 정말 잘해주는 가까운 친구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남편으로 보이는 것은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남편이 아이의 아빠이자, 내 친구이기만을 바랐다.
나는 결혼 후 남편에게 우리의 첫 관계가 강간이었음을 인정하라고 여러번 말했다. 처음에 남편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못한다고 했다. 자신은 정말 좋았고, 또 그래서 결혼까지 했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더 화가 났다. 나는 어떻게 느껴도 상관없단 말인가? 나는 정말 여러번 남편에게 인정을 요구했고, 아주 오랜동안 때로 다투기까지 했다. 결국 남편도 자신의 행동이 내게 상처를 주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제 인식한다.
돌아보면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우리 관계는 제대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처음부터 절름발이 같은 관계로 시작하고 말았다. 물론 지금에는 나도 나에게 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예전에는 증오심으로 굴절된 시각으로 남편을 바라보다 보니 그 사람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정말 모든 게 미웠다. 이런 감정을 극복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서로 자각하고 달라지는 과정 중에 많은 상처를 주고받고 힘든 날들을 보냈다.
내가 이런 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실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이미 여러가지 통로로 이야기 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이야기들은 관념적인 단어들로 나열된 이성적 접근이거나, 실례를 든다고 하더라도 남의 얘기들을 따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것들은 한번 윤색되어 걸러져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 대해 실질적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기껏 직접적으로 얘기한다는 통로가 몇몇 가까운 이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익명으로 인터넷에 올려 고통을 호소하는 정도다. 이래서는 그 고통의 크기를 제대로 알고 인식하기가 힘들다.
사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여성에 속한다. 어쨌거나 날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고 좋은 남자들을 만난 편이라 결국 상처를 회복하거나 정상적인 생활로 서서히 돌아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저 하룻밤의 경험으로 끝나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기도 하고, 이런 상처들에 대해 연인에게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끙끙 앓는 여성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그나마 이런 인간적인 어떤 이해나 교류관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성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들은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까? 그들은 나보다 천배, 만배 더 힘들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앞으로 나서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든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나의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 미끼삼아 나를 괴롭히는 폭력남편도 아니며, 이미 오랜동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서 괜히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는 껄끄러움만 아니라면, 나는 어떤 피해를 당할 가능성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꺼내 놓았다가 이상한 시선이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한 일을 겪었거나, 미혼의 여성이었다면 이야기할 용기가 있었을까? 아마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나마 나라도 나서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고통은 다른 여성들이 겪었을 일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이야기라도 해야만 성에 대해 묻어두고, 덮어두는 일방적인 시선들을 걷어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은 어떤 고통 속에 살고 있을까? 이런 고통도 모자라서 그들이 자신들의 괴로움에 대해 세상에 얘기했을 때 되려 무시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따돌리거나 비난의 시선을 보낼 때 그들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파괴당했을까? 손쉽게 "너도 원했쟎아", 발뺌하고, "니가 처신을 함부로 해서 그래"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들의 분노가 어떠했을 지 나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저며 온다.
여기 내가 올린 것은 내 개인이 겪은 휴유증의 예일 뿐이다. 휴유증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모두 똑같은 휴유증을 겪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은 크기의 고통만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의외로 쉽게 넘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치명적인 상처를 받고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휴유증의 증세도 극단적인 섹스추구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단적 성혐오와 불감증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의 휴유증이든 그 개인이 상처를 이겨보려는 눈물 겨운 고뇌와 노력과 더불어 나오는 "비명"들이다. 이 모든 과정들이 개인이 혼자 치러내기에는 너무 벅찬 것인대도, 대부분은 속으로 삼키고 달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 깊이 깊이 상처가 파고들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여성들은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하지 않을까? 언제나 왜 언론에서만 떠들고, 나오는 담론들은 이런 예가 있는데 어떻다더라로 끝나는 것일까? 왜 자신의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는 것일까?
아무도 내가 세상에 나서서 발가벗기운 채 손가락질을 당하고 뒤에서 쉬쉬거리며 비웃는 꼴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러났을 때, 실질적으로 세상에서 매장당하고 마는 현실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성에 관한 담론은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 이런 일이 엄청나다더라, 이렇다더라 하는 소문으로만 무성해 진다.
드러나지 않은 성폭력의 희생자는 너무나 많다. 특히 가까이서 범죄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적 '강간'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 수다.
때로 남성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무나 오해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내 남편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질 못했다. 그가 고루하고 꽉꽉 막힌 사람도 아니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고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남자인데도 말이다.
그는 내가 그의 연인이 되고, 결혼했으므로 나도 좋게 받아들이고 그냥 추억쯤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간에 혹은 부부 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여성에게 '고통'의 기억일 뿐이다. 다만 적응하기 위해 수위를 조절하고 나름대로 받아들이려 애쓸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어려서의 첫경험에 대해 그 남자친구에게 원망만 가지고 살던 나는 얼마전에야 그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2년쯤 전 우연이 다시 연락이 되어 받았던 메일에 그는 나를 그의 첫사랑으로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첫사랑에게 어떤 시련의 상처를 주었는 지는 알지 못하고 여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당시의 내가 그를 상대못할 남자라 생각하게 만들었는 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그걸 알았더라면, 내 남편이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여서 그런 일을 당하고 증오심을 키웠고, 그 또한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애꿎은 그의 사랑만 박살이 났다.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런 힘든 시간을 안 거치고도 서로 좋은 면을 봐주며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남성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여성이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그 여성에게 "고통"일 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에서라도 일방적인 성행위는 절대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못한다.
사랑을 위해 섹스를 하든,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든 모든 섹스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문제다. 하지만, 여성이 "예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섹스"가 되지만 "노"라고 했을 때 그것은 "강간"이다. 어떤 상황과 어떤 관계에서라도 여성이 "안되겠어"라고 말한다면, 치솟은 열정을 거두어낼 수 있는 남자가 진정한 "힘"과 "능력"을 가진 남자다.
나는 그게 얼마나 힘든 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의 의견을 빌리자면, 대단히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 그걸 해내는 남자는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가.
더불어 다시 한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른바 "성범죄"란 것이 한 인간에 대핸 어떤 고통과 파괴를 해낼 수 있는 폭력인가 하는 것이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인격을 파괴한다. 가히 가공할 수준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폭력을 당한 사람을 우리가 그저 내버려 두어야 하겠는가? 공론화 하고 끄집어 내서 그들을 지켜 주어야 한다. 그들이 여자가 되었든 남자가 되었든. 우리 사회가 당당히 그들을 감싸안고 보호해주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하니리포터 김소연/ ellisabet@bcline.com
편집시각 2002년07월29일10시08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