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스 리브로엘 갔다. 명색이 대학교 앞에 서점이라고는 달랑 세 개 뿐이다. P대앞은 놀기 좋기로 유명하다. 좀 기분이 좋지 않지만.

어쨌든 리브로도 생긴 지 1년이 좀 넘었다. 있던 서점들이 하나씩 없어져서 상심했었는데 대형서점이 생기니 다행이다 싶었다. 누가 사장이든 나는 책만 있으면 상관없으니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2만원 이상 사서 예전에 나눠 준 쿠폰을 제시하면 북스 리브로 복권을 준단다.. 그래서 냉큼 2만원치 사고 그 복권을 받았다. 벌써 4차례나 그렇게 했다. 어떤 때는 액수가 모자라서 옆의 아저씨가 내 거 받아주기도 했다. 그래서 인형 책갈피 하나랑 컵 세 개를 받았다.^^

어제 또 가서 책을 잔뜩 사서 계산을 하고 복권을 긁었는데...히힛!!

"OK 캐쉬백 5만원" 이란 글귀가 나타나질 않겠는가!!

어찌나 놀랍고 당황스럽던지.. 처음엔 실감이 안 나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랬더니 점원 언니가 열흘에서 보름 정도 있으면 적립이 되니까 확인해 보라면서 여기서 그걸로 책을 살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때의 그 감동이란...

안 그래도 요즘 돈이 없어서 책도 제대로 많이 못 사고 다음 달은 책을 못 사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횡재가 다 있을까...^^

어찌나 기쁘던지 동네방네 자랑 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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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심이 2004-06-1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제가 꼭 당첨된것 같네요..

꼬마요정 2004-06-10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반갑습니다. 처음 뵙네요~
고맙습니다. 제가 이런 운이 있나봐요~^^

물만두 2004-06-1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려요... 이벤트로 방생하시길...

꼬마요정 2004-06-1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찝어놓기만 했던 책들 사야겠지요~^^
 

인간들의 전쟁 트로이...

눈 먼 시인 호메로스가 노래했던 거대한 나라의 낙일(落日)을 주제로 한 영화가 바로 트로이이다. 에릭 바나, 브래드 피트, 올란도 블룸, 다이앤 크루거, 피터 오툴 등이 등장하여 각기 맡은 역을 충실히 연기한 결과,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내내 울었다.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장 부각되는 부분이 트로이 전쟁이다. (빈곤한 로마의 문화를 살찌워주는 역할을 하므로)  그래서 트로이 전쟁이 있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서두로 나선다.

먼저 테티스와 제우스의 관계. 헤라클레스에 의해 해방된 프로메테우스가 감사의 표시로 제우스가 사랑하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장차 제우스를 밀어내는 영웅을 낳음을 알려준다. 덕분에 제우스는 테티스를 다른 남자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인 펠리우스와 결혼시킨다. 테티스가 반항해봤자 제우스를 이길 수는 없는 법. 여기서 남성적,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을 잠깐 엿볼 수 있다. 어쨌든 테티스는 펠리우스와 결혼한다. (펠리우스와의 결혼에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나는데,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도 그런 영웅이 태어났는데, 하물며 제우스의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다음 두번째로 테티스와 펠리우스의 결혼식장. 이곳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한다. 그 결과 화가 난 에리스는 그들에게 불화를 선사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황금사과. 모두가 잘 아는 이 황금사과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황금사과 겉에 쓰여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는 헤라, 아네테, 아프로디테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이 세 여신은 자신들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주장하며 제우스에게 심판을 요구한다. 그러나 여자 꼬시는 것 만큼이나 정치적인 계산이 빠른 제우스는 이 심판을 양치기 소년 파리스에게로 넘겨버린다.

세 번째. 파리스는 누구인가.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막내 아들이다. 헤카베가 파리스를 임신했을 때 신탁이 내려졌다. 만약 아들을 낳으면 그가 트로이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프리아모스는 파리스를 산에 버린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랬듯 살아남아서 양치기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훤칠하고 잘생긴 그는 달음박질과 활쏘기의 명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제우스가 심판을 맡긴 것이다. 여기서 또 다시 제우스의 정치적 계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창 신들과 인간들과의 사이에서 영웅들이 탄생되고 있던 이 시기에 신의 자리를 넘보는 그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전쟁을 획책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일부러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이러한 심판을 맡기지는 않았을까. 의심해볼만한 문제이다. 어쨌든 파리스는 그 판결을 해야만 했다.

네 번째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헤라는 권력을, 아테네는 지혜와 용맹을, 아프로디테는 세계 최고의 미인을 약속했다. 파리스는 미인을 선택했고, 그 결과 헤라와 아테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이 때 세계 최고의 미인은 제우스의 딸인 헬레나였다. 그리스 스파르타에서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던 그녀를 데려오려면 파리스에게 왕자의 자리를 찾아줘야 하는데,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 자리를 찾게 되고,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로 데려온다. 열 받은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 및 예전의 헬레네 구혼자들과 트로이를 공격하고자 한다. 헬레네가 미인인 만큼 처녀적 구혼자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오디세우스도 있었는데, 오디세우스가 제안하여 누가 헬레네와 결혼하든 나중에 헬레네에게 문제가 생기면 연합하여 도와주기로 협약했었다. 그래서 그리스는 그러한 구혼자의 약속 이행 및 아가멤논의 야망, 메넬라오스가 느낀 모욕감 등으로 뭉쳐져 트로이를 공격하려고 한다.  

트로이 영화에서는 신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테티스가 군더더기로 출현하기는 하지만, 그녀가 신인들 별 수 없다. 어쨌든 영화는 보다 현실적으로 전개된다. 철부지 파리스가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데려온 것은 그 일이 메넬라오스를 자극하고 ,아가멤논의 야망에 불을 붙이고, 그리스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할만하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헬레네가 파리스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메넬라오스의 소유물을 파리스가 훔쳐갔다는 그 시대의 가치관이다. 이 전쟁의 원인은 가부장적 사회의 확장이다. 그리스보다 모계사회에 가깝던 트로이가 완전한 가부장적 사회인 그리스에 의해 멸망하는 것은 모계사회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제 전쟁으로 들어간다. 참전을 거부하던 아킬레스가 전쟁 영웅으로서 불멸의 업적을 남기고픈 유혹을 참지 못하고 결국 트로이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아가멤논의 질투에 의해 자신의 전리품이었던 브리세이스를 빼앗긴다. 여기서 자존심을 다친 아킬레스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아킬레스는 인간이 아닌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 전쟁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헥토르의 지휘로 승전하는 트로이군에 맞서 패주하는 그리스군들이 아킬레스를 필요로 하면서 브리세이스가 돌아오고 아킬레스는 처음으로 안정을 향한 갈망을 느낀다. 가정을 꾸려서 오래 살고싶은 마음. 브리세이스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본인은 모르지만) 그는 그리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신화에서 혹시 애인이 아니었을까로 추측하는 파르토클레스가 헥토르에 의해 전사하자, 분노로 제정신을 잃은 아킬레스는 홀로 적진으로 달려가 헥토르와 일 대 일 대결을 펼치고, 결국 헥토르를 죽인다. 아킬레스는 헥토르를 죽인 후 밧줄에 매달아 전차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시체를 욕보이고, 이에 프리아모스는 목숨을 걸고 아킬레스를 찾아간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장한 대목이 아마 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을 맞추며 잠재되어 있던 아킬레스의 인간성에 호소하는 모습. 이 영화에서 손꼽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피터 오툴의 생생한 감정 연기, 아킬레스가 느낀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던- 휴머니즘의 존재 ,  그로 인해 그가 받은 충격, 죄책감, 두려움을 브래드 피트는 잘 나타내고 있었다. 이제 영화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꾀돌이 오디세우스의 계책으로 헥토르의 장례를 위한 12일 동안 거대한 목마를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그리스 장수들이 숨어있다. 그리스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배를 대 놓고 숨어있다. 그리고 프리아모스는 파리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신화에 보면 여기서 라오콘이 등장한다. 목마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다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 의해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까지 모두 죽어버려 트로이인들은 그 목마를 도성으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트로이는 멸망한다.

영화에서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스를 구하고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스 건을 맞아 죽는다. 인간성을 회복한 그를 기다리는 건 유한한 삶의 끝. 바로 죽음이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그런 아킬레스를 화장시키며 조용히 말한다. 내가 여기 있었음을 기억해달라. 헥토르와 같은 시대에 살았음을. 아킬레스와 같은 시대를 풍미했음을.  영화의 끝이다. 영화는 트로이가 멸망된 이후의 일(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과 그리스군들이 돌아가는 일(오디세이아)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안드로마케나 파리스, 헬레나가 무사히 트로이를 빠져나갔을 거라는 암시만 풍긴다. 물론 신화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헥토르였다. 현명한 장수이자 용맹했던 그는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멋진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적이면서 용감하고 명예를 알며, 지혜와 용맹, 미모까지 갖추었으니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닌가.

그런 그가 동생이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에 비겁하게 적을 찌르는 모습은 너무나 비통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헬렌을 돌려보내려고 했을 때 파리스가 삐지자 헥토르는 이야기한다. "사람이 죽는 걸 봤느냐? 사람을 죽여봤느냐? 나는 죽음을 보았고 죽였다. 인간이 죽는 일에는 아름다움도 영광도 없다."

자신의 동생 파리스가 불러 온 재앙으로 트로이가 멸망할 것을,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트로이를,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힘껏 싸웠던 그가 영화에서 보여줬던 당당함과 번민은 나를 울게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헥토르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헥토르의 모습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143분이라는 긴 시간에도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영화에 집중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일주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트로이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remember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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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매일 86,400원을 입금 시켜준다면........

 

매일아침 당신에게 86,400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계좌는 그러나 당일이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 당신이 그 계좌에서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그냥 지워져 버리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그날 모두 인출해야죠!!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습니다. 매일 아침 86,400초를 우리는 부여받고, 매일 밤,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시간은 그냥 없어져버릴 뿐이죠.

잔액은 없습니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어요.

매일 아침, 은행은 당신에게 새로운 돈을 넣어주죠. 매일 밤, 그날의 남은 돈은 남김없이 불살라집니다. 그날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당신이 보게 되는 거죠.

돌아갈 수도 없고, 내일로 연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위해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뽑아쓰십시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는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합니다.

1년의 가치를 알고 싶으시다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세요.

한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세요.

한주의 가치는 신문 편집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일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일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천분의 일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그 육상선수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또한, 당신에게 너무나 특별한, 그래서 시간을 투자할 만큼 그렇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공유
했기에 그 순간은 더욱 소중합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 를 선물(present) 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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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에 정을 준다는 건.. 아름다운 일인 동시에 괴로운 일이다...세상의 모든 이들은 이별을 하며 산다.. 태어남은 곧 만남과 이별의 연속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든 만나고 헤어짐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이는 만나면 즐겁고, 어떤 이는 만나서 괴롭고, 어떤 이는 만나서 나에게 이득이 되며, 어떤 이는 만나서 나에게 손해를 입힌다. 어떤 이는 만나도 아무런 느낌이 없고, 어떤 이는 만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게도 해당되며 심지어 이성이 없는 물체에까지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의 현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들 중 대부분과 헤어졌다. 어떤 헤어짐은 너무나 슬펐고, 어떤 헤어짐은 무의미했으며, 어떤 헤어짐은 기뻤다. 어떤 헤어짐은 나에게 절망을 안겨줬고, 어떤 헤어짐은 나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헤어짐은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책임 질 수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에게 능력이 없다면 부양할 대상을 가지면 안 된다. 나에게 있어서 부양할 대상은 고양이들이었다. 근 4년을 나와 함께 지내던 아이들을 오늘 떠나보냈다.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 이상 돌 볼 능력이 내게는 부족했다. 그 고양이들이 족보가 있는 애완고양이들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도둑고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이제는 모두 내쫓았지만, 나나 우리 가족 모두 마음이 아프다.

집착할 사람이 없어서인가.. 나에게 고양이들은 특별했다.

한낱 미물인 동물과의 헤어짐도 이렇게 아픈데, 사람과 헤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할까... 무수히 스쳐지나는 사람들 중 내가 마음을 열었던 이들과의 헤어짐을 어떻게 견뎌야할까...

한 때 나의 모든 열정을 바쳐서 사랑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의 헤어짐은 무의미했다. 몸은 헤어졌어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헤어진지 벌써 1년이 되었나..2년이 되었나.. 시간은 정처없이 흘렀지만 나와 그의 만남과 헤어짐에는 시간의 흐름이 없다.

다시는
그런
만남이나 헤어짐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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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심이 2004-06-10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친구가 그런말을 하더군요..사람은 사귄 시간, 딱 그만큼 그사람과 헤어진 후에 기억한다고요..믿지않았습니다. 믿고 싶지않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사실이더군요..

꼬마요정 2011-06-2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그렇네요 지금 막상 생각해보니.. ^^
 

얼마전 도올 김용옥 선생이 TV에서 강의하는 것을 봤다. 정말 사기꾼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곳을 여행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내가 판단하는 것이 틀렸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많겠다. 그러나 정말 사람마다 사람을 보는 기준이나 판단은 다른 것이며, 모두가 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없으니, 내가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를 탓하지 말길 바란다. 정말로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

어쨌든 그의 모습을 보며, 예전에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던 봉이 김선달이 생각났다. 그래도 김선달은 양반이지... 대동강 물을 팔아 몇 사람만 손해를 보았을 뿐, 도올의 경우는 사상과 정신을 팔아서 도대체 몇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지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어설픈 지식으로 온 국민을 우롱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예로 호부 6개월 불교 공부를 하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나서는 불교는 심오해서 짧은 시간내에는 알기 어렵다로 시작해서 마치 자신이 부처가 된 양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게 너무 우습다. 어떤 종교든 6개월 공부해서 득도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천국, 극락에서 살겠네..

아.. 이야기가 빗나갔다. 흥분하면 이렇게 된다. 너무 한심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상인이 이윤을 내는 것은 하늘도 허락했다나 어쨌다나 그런 말이 있다. 이윤을 내는 것이 상행위의 목적이므로 당연한 말이라 하겠다. 그러나 요즘 세상의 시장은 마치 도올의 모습같다. 모두 사기쳐서 이윤을 내는 것 같다는 말이다. 철학이나 도덕, 윤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며, 희소성에 입각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경제인이라고 했던가... 요즘 같은 세상에 경제인은 없다. 합리적인 사고..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합리적인 사고인가. 현대의 경제학은 수식과 현상의 관찰, 주기의 변동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외쳤던 마셜은 없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꿈꾸던 마르크스도 없다. 이제는 경제학이 철학이나 사학 등 인문과학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거래를 하면서 신뢰보다는 기회주의를, 모두가 아닌 나만을 선호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인격이나 품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얼마나 나에게 이득이 될까를 먼저 따지는 것 같다. 그것도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리는 듯해서 안타깝다. 물론 나라고 해서 안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조금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나도 생각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생각하고, 모두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웰빙(well-being)이 유행이다. 웰빙이 뭐냐.. 잘 사는 것? 나만 잘 사는 것, 내 가족만 잘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최근에 외치는 웰빙이다.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치닫는 우리 사회가..이제는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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