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책을 읽고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간 읽은 책이 많지는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한 번에 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한 번에 정리는 안 될 것 같다.
앞에 읽은 책 내용도 다 까먹어버리니까.
나와 남편은 둘 다 무협을, 아니 정확히는 '김용'을 좋아한다. 특히 사조삼부곡은 둘 다 좋아하는데 나는 <의천도룡기>를 제일 좋아하고 남편은 <사조영웅전>을 좋아한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녹정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다시 읽더니 나이가 들어서인지 위소보 좋다면서 신기해 하는 중이고...
책으로만 읽으면 무술이라는 게 상상이 잘 안 가서 드라마나 영화로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나랑 남편은 달랐다.
나는 주구장창 1986년판 <의천도룡기>만 팠고, 남편은 주구장창 1994년판 <사조영웅전>을 팠다.
그런데 이번에 2017년 <사조영웅전>과 2019년 <의천도룡기>가 우리 부부의 마음에 꼭 들고 만 거다. 같은 감독이 찍었는데, 조연들은 좀 겹치기도 해서 더 반갑기도 하고 영상미나 연출이나 출연 배우들 연기나 너무 마음에 드는거다. 물론 <의천도룡기>의 경우 뒤로 갈수록 '조민'의 매력이 떨어지는 아주 커다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둘이 발작적으로 사조삼부곡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라마 보고, 책 보고 둘이서 대화 하고...
그동안 서로 김용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의천도룡기> 얘기만 주구장창 하고, 남편은 <사조영웅전> 얘기만 주구장창 해서 그런갑다 했는데, 이제 신나게 <사조영웅전>과 <의천도룡기>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물론 <신조협려>도 좋은데, 그건 드라마가 음... 그러니까.. 아... 그렇다.
둘이 해맑게 웃으며 누구 무공이 제일 뛰어날까, 개방의 사조는 누굴까, 의천도룡기로 세대가 내려오면서 무공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황룡유회로 길거리 낙엽 다 쓸면 편하겠다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드라마에서
나는 <사조영웅전>에서는 황용과 황약사가 제일 좋았고, <신조협려>에서는 곽정과 양과가, <의천도룡기>에서는 장무기와 조민, 양소, 장취산이 제일 좋았다.
남편은 <사조영웅전>에서는 황용과 홍칠공을 좋아했고, <신조협려>에서는 황용과 양과를, <의천도룡기>에서는 소소, 조민, 주지약을 좋아했다. 김용도 소소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소소의 어디가 좋은걸까. 마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따라다니면서 시녀처럼 챙겨주는 게 좋은걸까? 그런 여자가 어디 있나... 엄마도 그렇게 못할텐데.
어쨌든 그러다보니 어디 글을 쓸 틈이 없었다. 둘이서 예전에 버린 초판본 영웅문 아깝다, 아니 중고 가격이 너무하다, 그래도 사야 하나... 이러고 있다.
내공 쌓으면 코로나19 정도는 가볍게 물리칠 수 있을까, 역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해, 아니야 구음진경은 차갑잖아, 고묘파 내공도 그렇고...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반려자를 만나서 행복하다.
아주 다른데, 찰떡 같이 맞는 구석이 있는 건 정말 오묘한 일이다.
사조영웅전이나 의천도룡기에 대해서는 아마 좀 더 있어야 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