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보들레느와 어울려 다녔던 초대 보헤미안의 한사람 중에 앙리 뮈르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보헤미안답게 가난했으나 많은 꿈을 지닌 커피광이었다. 그가 어느 정도 커피를 마셔댔는지 그의 하숙집 동료였던 쥘 위송은 그에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배가 차도록 물을 마셔야 한다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그 커피광은 마침내 '루돌프와 미미'라는 책을 냄으로써 인기작가의 대열에 올라선다. 그 '루돌프와 미미'의 내용은 오페라로 각색되어 현재까지도 매년 전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공연되어지고 있다. 바로 푸치니가 오페라로 각색한 『라보엠』이 그것이다.
또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는 젊은 시절 '미친 사제'라고 불렸을 만큼 많은 기행을 한 행적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많은 글들 속에 녹아난 커피 예찬론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글들 속의 커피에 대한 예찬은 마치 낯뜨거운 성적 묘사처럼 보여 당시에는 출판 금지되기까지 했었는데, 그는 커피를 일컬어 그의 글을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커피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하찮은 기호 음료에 불과하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음료가 되기도 한다. 그 몇몇 사람들에게 커피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작문에 이르는 영감을 주는 마법의 음료이기 때문이다. 60알의 원두를 헤아려 커피를 끓여 마셨던 베토벤이나 커피 칸타타를 지었던 바흐 이외에도 그러한 실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역사를 뒤적여보면 보다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커피는 '바그다드 왕국'이라고도 불렸던 당시 아프리카와 동유럽의 거대한 제국이었던 사라센 제국에 의해 최초로 농장 단위로 재배되었고, 사라센 제국에 이은 오스만 투르크(현재의 터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 오스만 투르크는 당시 유럽 십자군의 전쟁 대상국이었으며, 그들에게 깊은 좌절과 튤립과 커피의 오묘한 맛을 전해준 나라이기도 했었다. 십자군은 야만의 이민족 국가이자 이교도로 지칭한 이 오스만 투르크(여기에서 투르크란 '도적떼'란 뜻이다)를 정벌하고 교화시키고자 했으나 실제 오스만은 비잔틴 문화를 융성시키고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오스만의 여러 전통을 모방, 유행시킨 동경의 대상국가이기도 했다. 후일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도 그러한 오스만의 문화를 예찬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더 말이 필요할까.
그리고 동인도 회사의 시대로 분류되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융성기에는 그 나라에서 커피가 유행했고,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던 프랑스 전성기에는 프랑스에서 커피가 유행했다.
그리고 현재 세계의 경제와 군사력의 최우위에 있는 미국이 『스타벅스』를 앞세운 커피 시대에 들어섰고,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서는 커피 한 톨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가공해 세계 시장에 팔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역사적 현상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커피의 역할이 그 사회를 깨어나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으로 하여금 건전하고 올바른 사고를 도와줌으로써 그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음료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토불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차(茶)를 마셔야지 커피를 마셔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와 커피는 기능상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현재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 커피를 멀리하라는 발상보다는 개개인의 정신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을 위해 커피나 차를 가까이 하자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원뜻과는 약간의 차이를 갖는 새로운 개념의 "음차흥국(飮茶興國)"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커피나 차를 많이 마셔 사회를 깨어나게 하면 (맑고 좋은 생각들이 많이 모아져)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일컬어 '세상을 바꿀 특별한 음료'라고 말하는 것이다.
커피 리필; 원래의 "음차흥국(飮茶興國)"이라는 말은 임진왜란 때 중국의 장수 이여송이 한 말이다. 지리산 등에서 차를 재배하여 몽고 등 북방족의 훈련된 군마(軍馬)와 바꿔 군력을 강화시키면 나라가 안정되어 부강해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