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실이 보이지 않는 장님들의 집단이나 마찬가지라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모두 하늘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자유로운 판단력이 없다는 말이 아니오? 그리고 그러다보면 좋은 일을 기뻐하고 악한 일을 미워하는 정의도 없어질테고, 그렇다면 선하고 악함을 구별하는 자유 의지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세상이 잘못되어 나가는 탓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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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우리는 해변에 앉아 하늘에서 불타고 있는 거대한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태양은 무엇이며 왜 저렇게 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도련님의 가슴에 대고 물어보세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고요한 가운데 자기 마음에게 물어볼 줄 아는 사람에겐 많은 것들이 분명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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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8-0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나요? @ㅁ@

꼬마요정 2004-08-0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미있습니다. 물론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읽은 부분까지는 재밌어요~~^^
곧 다 읽으면 리뷰 올릴게요~~^^*

데메트리오스 2004-08-0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읽어보긴 했는데 재밌네요. 다만 역사소설보다는 역사책을 더 좋아하는 지라 카르타고의 역사에 대한 책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요.

꼬마요정 2004-08-06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역사소설은 역사서와는 확실히 다르니까요.. 저도 카르타고를 좋아합니다. 특히 한니발을 좋아했죠...그리고 이 책을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그도 인간이더라구요~^^
 

사실 성배는 없다. 성배는 단지 모험을 위한 하나의 물질적 핑계에 불과하다. 성배는 우리 자신을 찾는 일이다. 존재의 외적 형태와 내용이 일치한 상태. 성배는 인간 행위의 첫 번째 문명적 행위, 무엇인가 그릇에 담기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형태 만들기, 이 원초적인 열망은 가장 높은 수준의 존재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고대의 솥과 중세의 성배, 그리고 현대의 사발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사발을 들고 서 있다. 그 사발은 대충 깨어진 막사발이다. 나는 그 사발을 사랑한다. 사발이 내 상처투성이 존재와 똑 닮았으므로. 나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퍼먹을 수도 있고, 머리에 뒤집어 쓸 수도 있다. 나는 신화가 지극한 물질의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오래 꿈꾼 자들이 고통스러운 탐색의 끝에 발견하는 '있는 없음'이다. 그렇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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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함이 있고,
정해진 뒤에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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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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