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쏘우Ⅱ LE (2disc) [dts] - Oh Yes, There Will Be Blood
대런 린 보우즈만 감독, 도니 월버그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쏘우1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케이블 방송에서 해 주는 걸 중반부부터 보았는데, 그것도 쏘우2를 먼저 본 후였기에 반전이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쏘우1에서는 동기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을 실험쥐마냥 게임에 몰아넣는 그 이유가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여기서 밝혀졌다.

영화에서 친절하게 그 동기를 설명할 때 나는 순간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혐오스럽기 그지 없는 이유가 아닌가.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해서 남의 삶에 참견할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권리를 그에게 주었단 말인가. 생명의 고마움이라고? 정말 너나 잘하세요란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자신의 생명이 줄어가는 것이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을 강제로 게임에 참여시키는 건 어떤 관점에서 보건 타당하지 않다.

그건 단지 자격지심과 끔찍한 이기심일 뿐이다. 그는 신이 아니다. 신이라해도 그런 식으로 인간을 시험해서는 안 되는데... 자신의 삶을 타인이 결정한다는 건 그 자체가 살아있음을 포기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너무 잔인하다. 게임에 억지로 참가하게 된 8명은 지나치게 잔인한 방법으로 하나 둘 살해된다. 직쏘는 갇혀있는 8명의 심리를 정교하게 분석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몰고 간다. 직쏘, 데쓰노트 쓰냐?

결국 혼자 죽기 싫어 물귀신처럼 여러 명 저승길에 동반하게 하려는 심보가 아니고 뭘까.

미국 공포영화가 추구하는 공포는 '잔인함'인 듯 하다.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살인 사건이 귀신보다 더 무섭나보다. 그래, 사람보다 무서운 게 없다지만 이런 공포는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는다. 그저 자극적일 뿐. 살인에 이유란 없다. 그저 거기에 있었다는 거, 하필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인과율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공포영화. 그래서 권선징악도 인과응보도 없다. 무분별한 도살자와 처절한 희생자만 있을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실물
와카츠키 치나츠 감독, 오구리 슌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토요일 밤, 오랜만에 남매 3명이서 옹기종기 모여 봤다. 겁증도 많으면서 유독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막내와 가족과 함께가 아니면 공포영화를 거의 즐기지 않는 둘째와 어떤 공포영화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 이렇게 세 명은 밤 12시 불을 끄고 이 영화에 주목했다.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막내는 중간 중간 놀래놓고선 하나도 안 무섭네..라는 반응. 둘째는 무섭다.. 앞으론 뭐 안 주워야지..라는 반응. 나는 하.. 일본공포영화 다시는 안 본다.. 지루하다..는 반응.

예쁘장하게 생긴 우리의 주인공 '나나'는 동생 '노리코'와 함께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병문안을 가던 중 노리코의 친구 '타카시'를 만난다. 타카시는 정말 바보같이 귀신에게 끌려가는데, 예고편에서 나온 장면이라 그런지 식상했다. 하여간 귀신도 참 너무하다. 하필 타카시를 데려갈 게 뭐람. 어린 애를 말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창창한데...

나나와 같은 반인 카나에는 남자친구 시게루로부터 지하철에서 주운 팔찌를 선물로 받는다. 물론 샀다고 거짓말한 시게루의 말을 믿은 카나에는 그 팔찌를 예쁘다며 팔에 차지만, 그 날 이후 죽을 때까지 카나에는 그 팔찌를 풀지 못했다. 시퍼렇게 멍이 든 팔을 보고 있으니 마치 동화 빨간구두가 생각났다. 발목이 잘릴 때까지 춤을 멈추지 못했던 그 불쌍한 여자애 이야기 말이다. 거기서 모티브를 딴 게 아닐까 싶던 찰나, 시게루가 열차사고로 죽는다. 어린애는 그냥 막 끌고 가더니 다 큰 애는 끌고 가기 힘들었는지, 죽여서 데리고 가네.. 카나에 역시 귀신이 밀어붙여서 죽여버린다.

벌써 세 명이 우연히 주운 물건 때문에 죽었다. 왜 일까.. 왜 물건을 주우면 죽는걸까? 영화 속에서 귀신은 시종일관 '돌려줘...'를 외친다. 아니, 뭘 돌려달라는 건지 말을 해야 돌려주지.. 말을 안 하고 무턱대고 돌려달라면, 누가 알아듣고 돌려준단 말인가. 귀신도 참 어이없다.

나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고들 속에서 동생인 노리코를 잃어버린다. 심장이 약한 엄마에게 말 못한 채 노리코를 찾는 나나. 필사적인 그녀 앞에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고, 의문은 서서히 풀려가는데...

일본 공포영화는 일상을 추구한다. 영화들 대부분이 자주 쓰는 물건들이나, 자주 접하는 것들이다. '링'이 그랬고, '착신아리'가 그랬다. '주온'이나 '검은 물 밑에서'는 집과 관련된 공포영화였다. 그리고 주로 심리적으로 공포감을 형성하려고 한다.

모순적으로 소재는 일상성을 추구하지만,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미국 호러물 '13일의 금요일밤'에서 제이슨이 단순히 그 장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살해했듯, 일본 공포영화에서도 그 물건을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영화 말미에 가면 왜 죽였냐는 물음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들은 '그냥' 죽였으니까. 복수도 심판도 아니다. '그냥'

이 영화에는 야차녀가 나온다. 물론 다 잘라먹고 왜 야차녀를 봉인해 둔 듯한 신전 같은 게 있는지, 정확히 그 야차녀를 모시던 곳인지 봉인한 곳인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야차녀는 자신의 공간에 꾸역꾸역 시체들과 원혼들을 쌓아놓을 뿐이다.

그래. 물건을 주우면 꼭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하자. 이 영화가 내게 준 교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