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상상력이 과다한 이론이야. 물체가 성장할 수 있다면 질량보존법칙은 어떻게 되고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어떻게 되는 거야? 세상 그 어떤 물질도 질량보존법칙에 따라, 자신의 질량을 증가시킬 수 없어." - P26

"제 생각에 절대신앙은 로봇 문명이 성장하며 생겨난 자아비대 현상입니다." - P215

언어는 개념의 미욱한 상징체계에 불과하다. 또한 언어는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질 수 있으며, ‘절대성‘은 여러 명령에 동등하게 놓일 수 없다.
인간의 발화를 분석하고, 명령의 범주를 한정하고 해석하는 체계가 다시 직원 사이에서 생겨났을 것이며, 그 과정은 법학의 발전과정과 유사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인간의 명령은 법전보다 체계가 없었을 것이므로, 그 해석은 훨씬 더 주관적이었을 것이다. 그 해석을 주도하는 로봇에게 새로운 권위가 부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P238

"나는 어리석은 기적을 바랐다. 기적은 우리가 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움을 거두는 것조차 아니었다."
케이는 듣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기적은 우리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어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증오한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고요." - P278

그 종이 내게 어떤 강제도 할 수 없고 이 마음에 한 점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내가 그들로부터 이 자아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 뒤에야, 비로소 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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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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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하여야만 그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건 인간이 어리석어서일까, 유한의 삶을 살면서 영원을 산다고 착각해서일까. 죽음은 필연적으로 기억과 경험을 미화한다. 그러면서 상실을 받아들이는 건지도. 그래야 새로운 인연의 자리도 생기겠지. 그렇게 잊지도, 잊히지도 않고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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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아씨전 안전가옥 오리지널 29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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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진경(辟邪進慶)은 삿된 것을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벽사아씨전은 삿된 것을 쫓는 아씨의 이야기란 것이겠지. 벽사진경이라고 하면, 처용가가 떠오른다. 신라 시대, 처용이 집에 왔더니 다리가 네 개라... 둘은 부인 것인데, 나머지 둘은 누구 것일까. 알고보니 역신이 처용의 아내에게 반하여 몰래 집에 잠입한 것이었다. 처용은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역신은 그의 너그러움에 감화되어 용서를 빌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 뒤로 처용은 역신을 쫓아낸 벽사의 이미지를 얻어 벽사진경의 의미로 많이 차용되었다. 그런데 역신에게 나쁜 일을 당한 건 부인인데, 왜 처용이 용서를 하는걸까? 역신이니 병이 나서 고통받는 건 부인인데 처용이 왜...? 심지어 막아주지도 못해놓고서는? 


그래서 우리 서문빈이 벽사아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삿된 것들은 약한 쪽을 먼저 공격하기 마련이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은 한을 풀지 못한 채 오도가도 못하고 이승에 묶여 악귀가 되어간다. 삿된 것들은 물론 역신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일수도 있지만, 인간인 경우가 더 많을테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참의 대감의 큰아들처럼 말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임에도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빈의 마음이 너무 반갑다고나 할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여 그에 맞게 억울함을 풀어준 뒤 벌을 내린다든가, 힘이 없어 암흑에 갇혀버린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건 그런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든 제왕의 자질이 아닐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구렁이 업신인 파려와 귀를 보고 몸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굳센 빈과 그런 빈의 정혼자로 다정한 은호와 탐욕으로 지존의 자리를 탐하는 영의정의 딸 채령이 만들어가는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사연들은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거기다 저승을 움직이는 염라대왕, 오도전륜대왕, 송제대왕, 진광대왕까지 등장하여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첫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빈과 불의의 사고로 사랑의 기억을 잊은 은호의 눈부신 성장과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채령과 전륜의 출구 없는 돌진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영상화 되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익선관이든 면류관이든 '관'의 무게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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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2-11 0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처용이 왜 나서서…? 천하의 대인배가 밤늦게 놀러 다니는 동안 가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됐는데요. (화남)

꼬마요정 2023-12-12 14:54   좋아요 0 | URL
그쵸? 뭐 해석에는 부인이 바람이 났네 어쩌네 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벽사의 용도로 처용이 사용되는 데에는 역신이라는 잡귀 때문일테니까요. 처음에 부인의 외도로 몰아가는 해석은 어쨌거나 잘못의 전가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기도 해요. 여튼 여러모로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화나는 일들이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ㅎㅎㅎ(어이없는 헛웃음)

희선 2023-12-11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사가 삿된 것을 몰아내는 거군요 실제로 그런 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사람이 해야 할 일일지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마음도 잘 알아봐주는군요


희선

꼬마요정 2023-12-12 14:56   좋아요 1 | URL
이 책의 신문빈이 그렇더라구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잘 파악해서 기회를 주는 거요. 본인은 싫겠지만 그런 마음이 있어 큰 역할을 맡나 싶습니다. 진짜 실제로 벽사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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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자기 복제자’는 인류가 사라진 뒤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유전적 이탈경로가 바뀐다면 모든 차별들이 사라질까.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는 다 비슷한 존재인데 어째서 구분짓고 차별하고 학살하는 것일까.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다같이 살아가면 좋을텐데. ‘본능’이란 이름으로 범죄를 미화시킬 수 없고, ‘약육강식’이 약자를 마음대로 희생시켜도 된다는 말이 아님을.

그런데 왜 이 책이 허무하다고 하지? 어차피 유전자가 진화하는 데에는 엄청난 세월이 필요하고 우리는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될텐데… 그래서 유전자가 ‘뇌’를 원시수프로 만들어 ‘밈’이 나오도록 한 것일지도. 그래야 더 오래 살아남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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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는 유유히 옛 진나라 땅을 감돌아 굽이 흐르고
황산은 의구히 한나라 궁성을 휘둘러 비스듬히 뻗어 있다.
임금님의 수레는 멀리 황궁의 성문 앞 버들 길로 나와선
각도로 들어 이따금 머리 돌려 상림원의 꽃 떨기를 바라본다
엷은 구름 속 황성엔 한 쌍의 봉황 궐문 우뚝 솟아 있고
비 오는 가운데 푸른 봄나무사이로 수많은 인가가 보인다
이 행차는 봄기운을 타고 절기마다 은덕을 베풀기 위함이요 - P204

결코 임금님 순유(巡遊)하며 경치 감상하려는 뜻 아니라네

渭水自榮秦塞曲 黃山舊繞漢宮斜
鑾輿迴出仙門柳 閣道迴看上苑花
雲裏帝城雙鳳闕 雨中春樹萬人家
為乘陽氣行時令 不是宸遊重物華
(「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

이 시는 왕유가 현종의 순유(巡遊)를 수행하던 중 봉래궁에서흥경궁으로 향하는 각도에서 현종의 춘망지작(春望之作)에 화답한 응제시다. 작품의 첫 2구는 산천의 경색을 빌려 황성 장안의 광활한 형세와 배경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다음 4구는 장안성 자체의 장관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 "엷은 구름 속"(雲裏)2구는 온 천지에 봄기운이 생동하는 가운데 자욱한 운무 속으로 봉황 궐문이 우뚝 솟아 있고, 봄비 속에 싱그럽기 그지없는 나무들 사이로 인가가 올망졸망 정겨운 황성의 성세(盛世) 형상을 묘사하였다. 이는 분명 앞의 예(例)들과 마찬가지로 다분히 ‘성세분식’의 색채를 띤 ‘성세구가’요, ‘가공송덕‘이라고 하겠다.
‘응제시‘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짓는 시이기 때문에 임금의 공유
덕을 칭송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내용이 없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응제시는 그 수사를 한껏 강구하여 문사는 화려한 반면 내용은 공허한 폐단을 면키 어렵고, 심지어 왕왕 아첨의말까지 동원이 되며, 자연히 그 문학적·예술적 가치는 크게 부정된다. - P205

높은 누각에 올라 그리운 고향을 바라보노라니
시야는 다하는데 망향의 정은 아득히 끝없구나
지난밤 꿈속에서 천리 만리 고향이 보였건만
지금은 창 너머로 수많은 타향의 집들을 엿본다
하염없이 나그네 먼 길 가는데 - P237

어둑어둑 저 먼 교외로 석양이 지누나
애원(哀怨)의 정은 머나먼 포구 밖으로 넘칠 제
아득히 한 가닥 연기 외로이 피어오른다.
그대 뛰어난 시작(詩作)은 최상의 재능이건만
고향 가고파 함은 이 하찮은 벼슬아치와 같구나
그리운 고향은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고
구름과 강물만이 온통 하나로 흐릿하여라

[高樓望所思 目極情未畢 枕上見千里 牌中窺萬室
悠悠長路人 曖曖遠郊日 惆悵極浦外 迢遞孤烟出
能賦屬上才 思歸同下秩 故鄉不可見 雲水空如一
(「和使君五郎西樓望遠思歸」)

이는 왕유의 제주 임직(任職)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그의 친구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군(使君) 오랑의 「서루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하다(西樓望遠思歸)」는 시작에 화답한 화시(和詩)다. 시인은 누각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물을 묘사하면서 가슴깊이 이는 환유 생활의 감회를 읊는가 하면, 회재불우(懷才不遇)함에 대한 원망과 실의 고독함에 대한 비애를 아울러 표현하였다.
시인은 당시 제주에 적거(居)하고 있으면서 애끓는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높은 누각에 올라 아득히 바라다보건만 고향 땅은 보이지 않고 망향의 애수만 끝없이 일어 실로 외롭고 슬픈 감회에 젖는다. 고향을 그리는 정이 너무도 애절한 탓에 간밤엔꿈속에서 머나먼 고향을 바라다보았건만 이제 생시(生時)엔 그저 수많은 타향의 집들을 ‘엿보며’ 탄식할 따름이다. - P238

이제 먼길 떠나는 그대를 전송하노라니
더욱 정다운 옛친구가 드물다 느껴지누나
수종(隨從)과 마부조차 고개 돌려보는데
전원의 오두막집엔 사립문 굳게 닫혔어라
집 나서면 으레 타향을 떠돌며 살 것이어니
중도에 두툼한 겨울옷을 마련해 입으소서
장강과 서한수 유역 풍류의 땅을 가며
나그네는 언제 어디서나 발길 돌려 올거나?

送君從此去 轉覺故人稀 徒御猶回首 田園方掩扉
出門當旅食 中路授寒衣 江漢風流地 遊人何歲歸
(「送崔九興宗遊蜀」)

이 시는 왕유가 촉(蜀) 땅으로 유랑 떠나는 최흥종을 송별하며 지은 것으로 달랠 길 없는 석별의 정을 표현하였는데, 온후한 인정이 전편에 가득하다. 시인은 먼저 무한한 고적함에 대한 비애를 토로하고 있는데, 흘러가는 세월 속에 마음이 통하는 벗들이 다 떠나고 서로 우정을 나눌 만한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건만 이제 최흥종이 또 입촉길에 오르려 하니, 애달프기 그지없다. - P258

비낀 석양빛 촌락을 비출 제
구석진 골목으로 소와 양들 돌아오고
시골 노인은 목동이 걱정스러워
지팡이 짚고 사립문 앞에서 기다린다
장끼 울며 보리 이삭 패고
누에 잠들며 뽕잎도 드문데
농부들 호미 메고 돌아오다간
서로 만나 얘기 나누며 헤어지기 아쉽구나 - P294

이를 바라보며 한가롭고 편안함이 부러워
서글픈 마음으로 「식미」시(詩)를 읊조린다

斜光照墟落 窮巷牛羊歸 野老念牧童 倚杖候荊扉
雉雊麥苗秀 蠶眠桑葉稀 田夫荷鋤至 相見語依依
卽此羨閒逸 悵然吟式微

이 시는 왕유가 초여름 해 저물녘의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농가의 한일(閑逸)한 삶에 대한 부러움과 하루빨리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하고픈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은 전편에 걸쳐 전원 생활에 대한 찬미와 동경의 정을 표현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어 농촌의 경물과 농민의 생활이 모두 순박하고 청신함을 물씬 풍긴다. 석양이 지는 강촌에 저만치 소와 양들이 돌아오고, 사립문 앞 노인의 걱정스러우면서도 애정어린 눈길은 멀리 목동을 향한다. 올해도 보리와 양잠의 풍성한 수확이 기대되는 가운데 농부들은 귀가 길에 서로 만나 정담을 나누느라 해 저무는 줄 모른다. 이렇듯 한가롭고 평온하며 안일한 농가의 삶은 바로 시인이 평소 한없이 선망하고 추구하던 바다. 그러므로 그는 "이를 바라보며 한가롭고 편안함이 부러워/서글픈 마음으로 「식미」시를 읊조린다"는 말로 귀전(歸田)은거의 간절한 소망을 토로하였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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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3-12-05 23: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3-12-09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꼬마요정 2023-12-10 10:0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행복하고 따뜻한 주말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