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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미학 - 서양미술에 나타난 에로티시즘
미와 교코.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사서 처음 표지를 봤을 때 난 정말 궁금했다. 일단 책 제목이 성의 미학이니만큼 이 그림이 뜻하는 바는 성적인 거라고.. 아마 절대 꽃은 아닐거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은 맞았지만, 너무나 놀랍다. 에로티시즘이 미술에 반영되었을 때 얼마나 교묘하게 가려질 수 있는지...
책 속에 가득한 그림들은 시종일관 내 눈을 즐겁게 했다. 성적인 암시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예술가들은 정말 천재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글 속에 숨기는 것도 놀라운데, 그림 속에 절묘하게 숨겨놓다니. 정말 가려져 살짝 비치는 그 광경들이 사람의 욕망을 부추긴다.
작가도 지적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성의 주제는 '여자'다. 정확히는 '여자의 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 쯤 되겠지만. 남성의 시각에서 본 성일 뿐이다. 이 그림들에는 어김없이 중심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려져 있다. 이 책에 언급되는 그림을 그린 사람들 역시 대부분 남자인데, 그림 자체에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면,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건 밖에 있는 화가 자신이다. 성이라는 화두가 언제나 남성의 입장에서 이야기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게 우습기 그지 없다. '성'은 남자와 여자 둘이서 만들어가는 것이지 남자 혼자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니까. '팜므파탈'이라는 것도 모두 남자의 입장에서 본 아름다운 여자다. 자기들이 유혹에 넘어가놓고서는 여자탓하기 바쁘다. 과거 여자를 정치에 참여시키지 않으려고 할 때는 그토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냉철한 척 하더니. 남자들이여, 그대들의 이성은 다 어디 갔는가. 그저 남자니 여자니 구분짓지 말자. 다 같은 사람인데, 누구나 결점은 있는 법이다. 남자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여자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둘이 같이 있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은 매력적인 주제가 틀림없다. 하긴 제우스의 애정행각만 다뤄도 에로틱한 그림 수만장은 나올테지.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살로메나 롯의 두 딸들 그림은 매혹적이었다. 특히 살로메는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 관능적이면서도 치명적이었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긴 힘들지 않을까.
훔쳐보기는 어딜가나 존재하나 보다. 소위 '관음증'... 몰래 훔쳐보는 것으로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그림들이 소개된다. 이들의 시선은 교묘히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렇게 훔쳐보다간 악티온 꼴이 나기 십상이다. 아르테미스(디아나)의 목욕장면을 훔쳐 본 죄로 갈갈이 찢겨져 죽은 악티온.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쌍한 캐릭터 중 하나다.
청소년 성매매의 원조격인 롤리타... 어린 소녀들에게 집착하는 남성들의 심리는 어떤가. 그들은 그들 내면의 가임여성에 대한 공포를 숨기려는 듯 어린 소녀들만 탐하는 변태가 아니고 뭔가.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는 그리스 시대만 하더라도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들은 소위 멘토격인 어른과 한창 성장기의 소년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아폴론도 멋진 소년을 좋아했을 정도이니, 사람은 오죽하겠나. 그러나 여자의 경우는 달랐다. 실제 동성애자는 아니었지만 동성애자로 오해받았던 사포는 역사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동성애마저 남녀 차별하는 거냐. 화가들 역시 똑같다. 게이는 아름답게, 레즈비언은 추하게. 흠... 도대체 뭐냐.
진중권은 글을 재미있게 쓴다. 그래서 읽는 나도 즐겁다. 하지만 마냥 즐겁게 읽을 수만은 없다. 그는 독자를 편안하게 만들어 놓고는 공격한다. 그가 드러내는 문제의식들은 기습적이다. 그래서 더 흥미가 당기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