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 호러 - 19세기 영국 고전괴기소설 13선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1
찰스 디킨스 외 지음, 임명익 옮김 / 크로노텍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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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처음 출판된 단편 괴기 소설들을 모아둔 책이라고 해서 냉큼 샀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약탈로 거대한 부를 이룬 이 시기의 영국은 인쇄술도 발달해서 값싼 인쇄물이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많은 장르의 소설들이 출판되었고, 그 중에 괴기 소설도 포함되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알지 못해서 괴이한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과학의 발달로 그런 현상들이 설명 가능해지자 점점 괴이한 현상이나 심령 현상 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잘난 체 하는 상류층이나 중산층 남자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보인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심령 현상에 등장하는 것도 남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17세기부터 법이 지나치게 엄중하여 판사들이 교수형을 자주 선고했는데, 이렇게 교수형을 남발하는 판사를 '교수형광 판사'라고 불렀다. 이 '교수형광 판사'류의 괴담이 조셉 세리든 르파뉴의 <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관한 기술>과 브램 스토커의 <판사의 집>이다. 이런 괴담의 유래는 17세기 실존 인물인 '조지 제프리스'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다보면 <스위니 토드>가 생각나는데, 이 이야기 역시 '교수형광 판사' 괴담류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그 판사들은 모두 기이한 죽음을 당하는데, 죽은 뒤에도 어째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지... 아마도 남은 사람들의 뇌리에 끔찍한 그들의 행각이 남아 두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찰스 디킨스의 <황혼 무렵에 읽을 것>은 여행 시중꾼들들이 풀어놓는 이야기이면서, 그 이야기를 들은 화자인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는다. 영국 새신부 이야기 하나, 영국 신사 제임스 이야기 하나 이렇게 둘이지만 결은 같다. 새신부는 꿈에서 본 남자 때문에 겁 먹고, 제임스는 동생이 죽기 전 동생의 영혼을 보면서 겁 먹는다. 그나저나 이야기가 끝난 후 다섯 명의 시중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인간이 아니거나 있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인간을 보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많다. 그 중에 강렬했던 것은 헨리 제임스의 <식>이었는데, 귀신과의 로맨스인지 아니면 질투에 사로잡힌 여자의 집착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을 터. 나는 귀신과의 로맨스에 한 표를 던졌지만, 아마 다르게 읽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그 당시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중엔 여자가 많았다. 유산 상속 1순위는 직계 남자였고, 직계 여자는 친척 남자보다도 순위가 낮았으니. 게다가 교육도 여자에겐 사치였다.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의 <귀퉁이 그림자>를 보면 그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만약 이야기 속 마리아가 부친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면 베스컴네에서 그렇게 살지 않았을테다. 그리고 스케그 영감이 그 방에서 지내보지 그랬나.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이 섞여 비극적 결말로 끝나버린 이야기라 가슴 아팠다. 


싸게 나오거나 흉가로 소문난 집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소문은 끊이지를 않는다. 로다 브로턴의 <19세기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나 샬롯 리델의 <열린 문>이나 이디스 네즈빗의 <등신대의 대리석상>이나 허버트 조지 웰스의 <붉은 방>이 그런 류의 이야기이다. 각각은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붉은 방>은 귀신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존재가 범인이라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촛불이 계속 꺼지는 건, 이유가 있겠지. 어쨌거나 저렴한 집은 이유가 있었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고, 늘 그렇듯 희생자가 있었다. <등신대의 대리석상>은 좀 안타웠던 게 소문을 믿지 않더라도 아내와 함께 있어야지 어째서 그 교회까지 혼자 걸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홀린 것일까, 객기일까. 어릴 때 초등학교에 하나씩 있던 괴담과 비슷한 이야기였다.


죄 지은 자가 결국은 벌을 받게 되는 건 좋지만, 그 과정이 으스스하기 때문에 괴담이 되기도 한다. 벌을 주는 이가 인간이 아니거나, 벌을 주는 방식이 저주이거나 하니까. 거트루드 베이컨의 <교령회장>에서는 인간말종이 어떻게 몰락하는 가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방식으로. 로사 멀홀랜드의 <헐리벌리 저택의 신들린 오르간 연주자>에서는 방탕한 나쁜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저주 받아 오르간을 떠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밸런트레이 귀공자>도 생각나는 이 이야기는 나쁜 놈이 지 혼자 안 죽고 새로운 희생자를 찾았다는 점에서 그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 수 있다. 그 놈이 망친 인생이 한 둘이 아니다. 아멜리아 에드워즈의 <착각이었을까>도 희생자가 가해자를 따라다니면서 그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거트루드 베이컨의 <고르곤의 머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메두사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이야기를 하다 말고 끊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한 게 괴이한 것인지, 메두사 머리가 괴이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래서 누가 살아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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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26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네요. 호러는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 필진을 보니 왠지 땡기네요. 나중에 함 읽어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3-12-26 17:44   좋아요 1 | URL
저는 호러를 좋아해서 샀는데, 필진이 좋더라구요. 이야기들이 짤막짤막해도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이한 이야기들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요.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어요^^
 
삼개주막 기담회 4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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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삼개주막 기담회도 4권이 나왔다. 3권에서 연암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 온 선노미는 그 곳에서 겪은 끔찍한 사건 때문에 조선으로 돌아왔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정당방위였다고는 하나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선뜻 삼개주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선노미는 정처없이 헤매는데, 헤매는 와중에도 기이한 일들은 일어났다.


우생 스님의 도움으로 암자에 머물게 된 선노미는 그 곳에서 <지옥도>를 본다. 앞서 나왔던 배우자를 보지도 않고 그릴 수 있었던 화가의 아버지가 그린 것 같았다. 박현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자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은 악인들이 가득한 곳인가, 사람들이 겉은 온화한 미소로 위장한 채 속은 시커먼 짐승이 되어 한 소녀를 유린하는 것을 알게 된 박현은 <지옥도>를 그린다. 그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들이 벌을 받을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선노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죄책감과 반성. 이미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고 털고 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암자를 떠난 선노미는 밤에 추위를 피해 서낭당에 들었다가 사당패를 만났다. 그 곳에서 덕임과 길상을 알게 되고,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는다. 여전히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선노미는 뜻밖에도 세진을 보게 된다. 세진은 선노미가 삼개주막에 있을 때 만났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사실은 진짜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을 키웠다는 과거를 마주하자 과거 속에 갇혀 버린 도령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지만 길상도 세진도 선노미도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진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선노미는 사당패를 떠난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기 위해. 아직은 못 간다 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렇게 돌아갈 듯 못 돌아가면서 떠도는 선노미는 '보름달 마귀'를 만나게 된다. 앞서 나왔던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 실행하게 만드는 '가면'을 만난 것이다. 지금 봤으면 싸이코패스라고 진단받았을 놈이 '가면'을 만났으니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범죄가 일어난 산을 지나다가 범인으로 몰릴 뻔한 선노미는 오작인인 병오를 만나고 같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다시금 삶과 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추악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기에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추고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다시금 길을 떠나게 된 선노미는 어느 주막에 들렀다가 반월댁의 눈에 든다. 아들을 잃었다는 그녀는 선노미에게 일을 주고 주막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역시 주막에는 여러 사람들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이한 사건들도 함께 나타났다. 무용은 사람들의 능력을 사고 파는 신기한 장사치이다. 혹시나 여러분도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함부로 자신의 능력을 팔거나, 다른 이의 능력을 사지 않길 바란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니까. 만기는 남들보다 냄새를 잘 맡는 능력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난 삼아 그 능력을 팔았다가 죽을 뻔 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되돌리려고 했다가 끔찍한 능력을 사고 만다. 이 이야기의 말미에 배우자의 그림을 그려주는 노인이 나온다. 그 노인의 선택은...


선노미의 고뇌와 방황을 이해해 준 반월댁은 선노미에게 집으로 갈 것을 권한다. 그리하여 선노미는 다시 방랑길에 오르는데, 때는 겨울이라 오돌오돌 떨던 선노미는 우연히 기방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 곳에서 앞서 만났던 사당패를 만나게 되고, 기생 연홍과 친분을 쌓는다. 가장 인기가 많은 기생인 연홍에게도 사연이 있었고, 그 기방에서 겨우 살아가는 퇴기인 홍매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인간의 탐욕과 추악함이 빠지지 않는다. 역시 사연은 누군가의 욕심이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것이고, 누군가의 눈물로 만들어진 누군가의 웃음인 것이다. 다 불타버렸으면. 홍매가 강도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풀면서 선노미와 덕임은 다시금 생에의 의지를 다진다. 아, 이 이야기에서는 타내를 만나다. 선노미의 첫사랑이자 엄마인 분이의 정인 말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 버렸지만, 선노미의 고백에 중요한 말을 남겼다. 네 인생을 살아,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렴.


기방을 떠난 선노미는 어느 마을에서 종훈을 만난다. 선노미에게 언문을 가르쳤던 그는 그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잠시 지낼 수 있게 된 선노미는 차돌이를 알게 된다. 하지만 가정사에 개입하기 어려웠던 그는 전전긍긍 계속 주변만 맴돌았는데... 그 때 이랬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이라는 말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계속 매여있다면 앞으로 갈 수 없으니까. 그 때 하지 못한 일을 지금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나마 죄 지은 자가 합당한 벌을 받게 되면 그나마 한이 풀리지 않을까. 그러면서 차돌이 남긴 낙서, 그림들을 통해 이야기로 위로 받았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선노미 역시 위로 받는다. 이제 돌아가야지.


인연은 그렇게 돌고돌아 선노미에게 돌아왔다. 앞서 만난 이야기들이 그를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끌어냈고, 청나라를 다녀오게 했다면, 이번에 만난 이야기들은 방황의 끝에서 그를 잡아 줄 이야기들일지도 몰랐다. 결국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일테니. 

"무서운 건 귀신이나 마귀가 아니다. 인간이 제일 무서워"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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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5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미야베 미유키 소설 미시마야 변조괴담이 생각나게 하기도 하네요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일을 겪기도 하는가 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 또 나올 것 같네요 자기한테 있는 게 소중하죠 사람은 거의 그걸 모르고 다른 걸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꼬마요정 님 성탄절 마음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꼬마요정 2023-12-25 14:07   좋아요 1 | URL
네 5권도 나올 것 같아요. 선노미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서 겪는 일들이거나, 집에 돌아가서 겪는 일들이겠죠? 이런 이야기는 시리즈로 드라마로 나오거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일본도 기이한 이야기들 많아서 재미있을 것 같아요.

희선 님 성탄절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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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은 혼자 죽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죽음의 순간, 죽음이 찾아 온 순간은 오롯이 혼자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은 '고독사'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고독사'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어떻게든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로 바뀌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으나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한 때 존경했던 선배와 연락이 끊어진 건 오래되고, 여동생의 눈치를 보느라 집을 나와야 하고,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해서 부모님 눈치를 봐야 하고, 자식의 죽음 때문에 죄책감을 가슴에 끌어안고 사느라 기억이 오락가락하게 되고, 돼지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하는 등의 사연을 보면 사람들은 섬 같았다. 지나치게 연결되면 불편하고 지나치게 고립되면 쓸쓸해지는 그런 섬들... 사실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 지를 몰라 서투르게 다가가서 상처 받고, 상처 받기 싫어 아예 벽을 만들어버리고, 외로워서 벽을 부수고 싶지만 부수는 방법을 모르게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섬들 말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단 한 순간의 경험이 왜곡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어른이 되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처 받고 배신 당해서 쓸쓸해졌을 수도 있고, 그 순간에 정의롭게 행동하지 못해서 두고두고 마음의 짐을 안고 살게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를 중얼거리는 마음도, 누군가를 찌를까 걱정되어 연필을 뭉툭하게 깎는 마음도, 우는 판다 인형탈을 뒤집어 써야지만 울 수 있는 마음도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독사 워크숍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만난 QR코드를 통해 '심야코인세탁소'에 접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채널을 받게 되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채널을 꾸며간다. 누군가는 의자를 뛰어넘고, 누군가는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누군가는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한다. 누군가는 사연을 상상하여 부고를 써 주기도 하고, 서툰 솜씨로 어려운 곡들만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들을 꾸준히 해내면서, 각자의 고통을 '농담'으로 승화하면서 회복탄력성을 길러가는 이들... 예전에 받지 못한 관심을 받고, 스스로 그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게 되고, 정의롭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안고 있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릴 만큼 끔찍한 상실을 경험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상처 받아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찾아오는 위안에 위로받을 수도 있고,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고장난 듯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우는 판다'와 '라이프가드'의 사연이 가장 가슴에 남았는데, 어쩌면 나에게 가장 소설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할머니, 나 계속 이렇게 형편없이 살아도 될까?
할머니는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근사한 일은 그걸로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형편없는 일로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도 괜찮다고.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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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님의 완벽한 복수 네오픽션 ON시리즈 17
강엄고아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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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범이라서, 반성문을 써서, 공탁금을 걸어서, 앞으로의 삶이 창창하여 등등의 이유로 수많은 범죄자들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거나 지은 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선고 받기도 한다. 성범죄나 마약, 음주운전 등 아주 죄질이 나쁜 경우에 특히나 더 그런 면이 잘 보인다. 어쩌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낌새가 보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한 편으로는 속이 후련할 수도, 한 편으로는 씁쓸할 수도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인간이 살면서 언제 정의로운 사회가 있긴 했나 싶긴 하면서도 사적 복수가 문제 해결 방법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명당'이라는 당집을 차리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복수를 돕는 채명. 그녀는 고등학생 때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명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에서 조선시대 귀신인 막순을 만나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더랬다. 그러면서 만난 귀신들은 각기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가득 안고 있었고, 빙의의 형태로 복수를 실행했다.


하지만 죽은 자는 죽었다고 깨닫거나 모든 것을 자명하게 알게 되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대로 범인을 판단하기도 했고,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결국 사적 복수는 또다른 희생자를 낳고 또다른 원한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완벽한 복수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닐 것이다.


명의 오빠인 민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려 했으나 동생인 명을 위해 경찰이 되었다. 그런 다정한 오빠인 민과 명이 도와 준 복수가 이루어진 곳의 관할 형사들인 경욱과 규영, 명의 당집이 있는 사주, 점술 거리의 많은 무속인들이 하나가 되어 이런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사적 복수가 아닌 공적 처벌 및 교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온다면, 피해자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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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2 0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이 있다 해도 그걸 반대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군요 죄를 지은 사람이 제대로 벌을 받는다면 피해자가 좀 나을 텐데... 복수한다 해도 돌아오는 건 별로 없기도 하죠 복수가 다른 원한을 낳고, 그런 거 알아도 그만두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소설에서 봤지만... 실제로도 그런 사람 있을지...


희선

꼬마요정 2023-12-23 10:25   좋아요 1 | URL
그쵸 복수한다고 원한이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만 못 두는 사람이 소설에만 있으면 좋겠네요. 날이 너무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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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하고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워서 술술 넘어간다. 생각보다 빨리 다 먹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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