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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섬들의 지도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 / 눌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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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이란 설명이 붙은 책. 지도책을 보며 전체를 상상하는 작가는 ‘동경은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 때 얻는 만족감보다 훨씬 더 크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지도책에 나오는 섬들은 수많은 사연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섬에 얽힌 사연을 볼 때면, 내 상상은 너무나 순진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스터 섬은 경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매쿼리 섬에 홀린 견습 사관 헨리 엘드는 결국 펭귄 떼의 희생양이 된 것 같고, 생폴 섬에서 물라토 한 명은 결국 먹혀버린 것 같다. 티코피아 섬에서는 일정 인구 수 이상이 되면 성인들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태어난 아이들을 살해한다. 섬은 결코 낙원이 아니었다. 안노본이란 섬은 방문한 내역은 있으나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공개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주민들과 방문자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마 유쾌한 일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섬들은 매력적이다. 있지만 없고, 어디 속해 있는 것 같지만 그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남은 건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을 지닌 인간’의 시도 뿐. 그리하여 아마 고프 섬처럼 재앙이 가득한 곳을 만들게 된다. 인간을 따라 밀항한 쥐는 이 섬의 동물들을 다 잡아 먹었다. 헬리콥터는 독이 든 미끼를 뿌려댄다. ‘세계에서 가장 교란이 덜 된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p.62)

인간이 사는 세상의 대부분이 오로지 집이라는 섬으로 바뀐 비자발적 고립의 시기에 내가 또다시 《머나먼 섬들의 지도》에 몰두하고 싶게된 것도 당연하다. 고립을 뜻하는 단어 ‘Isolation‘은 라틴어로 섬을 뜻하는 ‘Isola‘에서 유래하였고 뜻도 ‘섬이 되다‘이다. 나는 다섯 개의 섬을더 찾아냈다. 이 섬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지만 야생과 경작, 단절과 연결,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 있는 섬들의 혼종성의 핵심으로 인도한다. - P9

실상은 이렇다. 오늘날 그 여정이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인간은 항상자기 종족의 흔적과 마주하게 마련이다. 주인 없는 미지의 땅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새로운 시작 또는 대안적인 사회 형태라는 섬과 관련한 악명 높고 유명한 꿈에 필수적이었는데, 이로 인해 영원히 사라지고말았다. - P11

경험적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섬은 축복받은 곳이자 자연의 실험장이다. 다시 말해, 섬에서만큼은 연구 대상을 애써 제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외부에서 침입한 동물에 의해섬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멸종되거나 전염병으로 주민들이 죽어나가기전까지의 이야기다. - P27

가장자리 따위는 없는 둥근 지구의 어디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에덴동산은 없다. 멀리까지 탐험해 상상 속 괴물들을 지도 밖으로 쫓아냈지만, 대신 스스로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 P29

섬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섬 덕분에 유명해진다. 섬을발견한 일이 마치 창조와 관련된 업적인 것처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있어서, 지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이 이름 덕분에 비로소 어떤 장소가 존재하기라 - P29

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세례식과 마찬가지로 발견자는 발견물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섬을 단지 먼 곳에서 보기만 했거나, 그 섬이 오래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는 이름 있는 땅이라 해도 말이다. - P30

섬에 깃발을 꽂는 일이 끝나면, 지도를 제작할 차례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장소가 태어난다. 이 바다 너머의 땅은 점령되고 소유당하며, 정복 행위가 지도 위에서 다시 반복된다. 어떤 섬이든 먼저 정확한 위치가 측정되고 표기된 다음에야 비로소 현실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된다. 모든 지도는 식민 지배라는 폭력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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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3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정말 흥미로운데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요정님이 인용하신 구절을 읽어보니 역사적으로 보존해야 할 소중한 섬들이네요 ㅎㅎㅎ

기온 이상으로 빙하가 점점 녹아서 섬들 부터 잠긴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한국도 겨울 같지 않은 11월인데 ,,,,

꼬마요정 2022-11-24 00:39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사람들이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터전을 해치지 않았으면 했답니다. 기온 이상 때문에 큰일입니다. 점점 피부에 와 닿으니 더 무서워지네요. 지금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갇혀서 못 내려와서 한반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시베리아 고기압이 힘을 못 쓰게 되고, 중국 온도도 올라가서 우리나라로 부는 바람이 따뜻하고... 평년 기온이 5도나 높다고 하니까요ㅠㅠ 큰일입니다. 모기도 아직 많아요....ㅠㅠㅠㅠ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4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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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그런 방법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책은 '복수'의 방법보다 그 '복수'란 것을 하게끔 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는 게 훨씬 편한 일일 것 같다. 개인인 '리 앤더슨'의 슬픔은 끔찍하게 차별 받는 '흑인'의 슬픔이 되고, 개인인 '리 앤더슨'의 복수는 그저 개인의 복수가 되어버리는 동시에 흑인이라는 인종을 대표해서 흑인은 잔인하다는 편견을 부추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다, 이 장르에서 그런 선의는 베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저 리의 행동을 따라가며 그에게 어떤 명분도 없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안타깝고 화가 나지만 무덤에 차마 침을 뱉지는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을 좋아한다. 여전히 그 몽환적인 세계에서 서서히 터져가고 터질 수 밖에 없는 거품들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리는 흑인이지만 외모는 백인이고, 백인이 갖고 싶어하는 탄탄한 몸을 가졌다. 하지만 형과 동생은 달랐고,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동생은 백인에게 살해 당한다. 그저 백인 여성과 사랑했다는 이유로. 형은 체념하지만 리는 달랐다. 리는 동생의 죽음을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여 백인 여성들을 유혹했고, 백인 남성들과 어울렸다. 그의 현재 우선 목표는 부유층 백인인 애스퀴스 가문의 자매들이다. 애스퀴스 가문의 자매를 선택한 건 상류층이라는 이유도 있다. 미천한 흑인이 저 높은 계급의 여성들을 취하는 것이 훌륭한 복수라는 것이다. 그녀들을 처리하고 나면 다른 백인들도 죽이고, 상원 의원도 죽이고, 백인 편에 붙은 흑인들도 죽이고... 동생을 위해 복수한다고 하지만 글쎄, 그렇다면 애초에 동생을 죽인 그 백인 여자의 부모를 죽였겠지. 


루는 리를 원했지만 그가 흑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아주 역겨워한다. 죽이고 싶다고 할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니고, 집안을 망하게 한 사기꾼도 아닌 그저 흑인이라는 이유로. 어린 여자애까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뿌리 깊게 박힌 인종차별은 어디서부터일까. 하지만 루가 살해당한 건 그녀가 인종차별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백인이자 여성이기 때문이다. 리는 백인 여성들을 유린했고, 백인 남성인 덱스터에게는 순종했다. 덱스터가 계획에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게다가 리는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다.


그렇게 자신이 당한 차별을 그대로 행하면서 복수를 입에 올리는 리 앤더슨. 그에겐 강간, 폭력, 살해가 복수를 완성하는 방법인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알량한 연민이 드는 건, 인종차별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차별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그 차별이란 것이 리의 동생이 겪었던 그런 참혹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보다 작다 한들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리에게 연민을 느끼다가도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리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그저 재미있게 읽고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의 행동이 거듭될수록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마음 속 불편함이 커질수록 리는 불한당이 되어버리고 마침내는 알량한 연민마저 거둬들이려고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그 연민을 버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냥 차라리 백인들 무덤에 침이나 뱉지, 그랬다면 더 동정했을텐데. 그런 동정 따위 필요없다 하겠지만.


서문에서 설리번은 백인만큼이나 '냉혹한 흑인'을 상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연히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증명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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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9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이 제목을 진중권씨가 패러디해서 책을 낸적이 있었죠. ㅎㅎ 그래서 처음 듣는 작가인데 제목은 아주 익숙하네요. 그런데 내용은 진짜 엽기적이라는 느낌에다 주제도 심각하네요.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서 위키백과를 찾아갔더니 이력도 진짜 독특한 작가! 오늘도 요정님덕분에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또 한명 알고 갑니다

꼬마요정 2022-11-20 09:34   좋아요 1 | URL
프랑스 누아르의 고전이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세월의 거품>이 좋아서 이 책 읽은 거거든요. 진중권씨가 제목을 패러디 하면서 오만 무덤에 침 뱉기, 침 안 뱉기가 유행이었죠? ㅎㅎㅎ 이 책은 읽는 내내 기분이 나빠서 그게 목적인 장르인가? 생각했습니다. 영화 <무드 인디고>의 원작 소설인 <세월의 거품>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coolcat329 2022-11-20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작가는 전혀 모릅니다.
리도 냉혹한 사람인데 그가 겪은 또 다른 차별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마지막 문장도 의미심장하군요.

꼬마요정 2022-11-20 09:39   좋아요 0 | URL
영화 <무드 인디고>의 원작인 <세월의 거품>을 쓴 작가예요. 우리나라엔 번역된 책이 별로 없더라구요. 리가 겪은 건 흑인이라는 인종차별입니다. 근데 본인은 아주 많은 차별을 해요. 그게 진짜 복수일까요, 아니면 리의 본성일까요?

잠자냥 2022-11-20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으로 읽었는데 굉장히 불쾌했던 기억이 나네요…. 꼬마요정 님이 말씀하신 그런 부분 때문이었어요. -.-

꼬마요정 2022-11-20 09:43   좋아요 1 | URL
저도 읽으면서 참 기분이 나빴어요. 보리스 비앙이 백인은 나쁘고 흑인은 착하다 이 공식이 싫었던 건지, 흑인이든 백인이든 같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목도… 왜 저렇게 지었을까 궁금했구요.
 
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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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류가 '신화'라는 이름으로 신이든 자연이든 섬기던 때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보면 눈 깜짝할 사이일지도 모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염원이 모여 신이 된 영물(靈物)들은 이제 인간에게 잊혀져 사라지거나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고, 인간은 그 영물(靈物)의 자리를 과학 또는 또 다른 신에게 맡긴다. 


두겸은 오월중개소의 중개인이다. 골동품을 주로 취급하는 오월중개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거래한다. 경성 한 가운데에 있는 찻집 '티 하우스 1'의 주인 역시 오월중개소에 물건을 넘겼다. 청나라 광저우의 번창한 상점에 걸려 있었다던 세화(歲畵)를 비싼 값에 구해 가게에 걸어놓았는데, 하필 그 그림의 눈길이 손님들을 내보낸다니 말이다. 그리고 두겸은 또 신기한 인연을 만난다. 토지신과 그 토지신이 데리고 있는 인간의 혼령인 고오. 고오는 아들 귀한 양반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반골이라는 이유로 여자로 길러졌다. 고오의 아버지는 문중의 뜻에 따라 작은집에서 태어난 아들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으려고 했으나 그 아들이 후사 없이 죽어버리자 스물네 해를 여자로 살게 했던 고오를 다시 남자로 살게 해서 후사를 잇고자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고스란히 겪으며 지켜보던 고오는 자신의 배필이 정해졌다는 발표를 하는 날, 문중 어른들을 한 방 먹인다.


"저더러... 이 돼먹지 못한 집안을 대표하는 말씀입니까?"란 말을 하며 탈피를 하여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더 놀랍고 황당한 일은 집안 사람들이 고오가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집안의 대가 끊겼다는 것에 더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집안이 무엇이길래, 숱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한을 빨아들이는 것일까. 반골을 낳아 집안의 죄인이 된 고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과연 죄인인가. 왜 아들만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것인가. 그야말로 고오의 반격은 순간은 통쾌하였다. 그러나 고오 대신 종손이 되었던 주오의 아내인 은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로 태어나 남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한 이에게 고오의 반란은 배부른 투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시대 여자의 존재 이유는 남자를 낳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일까. 그러니 망했지.


 그렇게 여자가 된 고오는 또 다시 집안의 도구가 되어 지랄병에 걸린 조 씨 가문의 차남 기와 혼례를 올린다. 고오는 기에게 자신의 지참금인 땅을 주고 자유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세상은 추악했다. 남녀를 떠나 그저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고오는 또 다시 좌절을 만났다. 계급은 착취와 함께 고오를 압박했다. 땀 흘려 수확한 농산물은 7할이 양반의 곡식 창고로 들어갔다. 그런 불평등을 견딜 수 없었던 고오는 양반의 창고를 털었지만 연인과 이별해야 했다. 고오의 거침없는 성격과 올곧음, 용기는 그 시대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웠을테니까. 그런 식으로 몇 번의 인연들과 헤어지고 문득 고오는 남편인 '기'를 찾아갔다. 그리고 기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주가 된 기는 소작료를 싸게 하여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세상에게 버림 받았다. 그리고 고오는 기의 복수를 하고 죽음에게마저 반항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죽음을 유예하던 차 토지신에게까지 느껴진 것이다. 고오의 사정을 알게 된 토지신은 그렇게 고오의 사연에 감응하여 고오의 저승길을 가려준다.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 둘이겠는가. 두겸이 어찌해서 이렇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지, 저 우물 안에서 사람들의 어둠을 먹던 용이 될 상이었던 치조는 어쩌다가 신령한 뱀에서 산산조각이 난 인간 모양이 되었는지 하는 이야기들도 있고, 신령한 힘을 가진 영물을 우물에 넣어 나쁜 기운을 잡아 먹게 하여 인간 세상을 정화하려 했던 비구니는 어쩌다가 흑화하여 복수만을 외치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오월중개소에서 일하는 유호의 고향에서 일어난 일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가. 귀가 큰 나그네 신이 가진 비밀은 또 얼마나 참혹한가. 개갈촌 사람들의 그 비정함과 이기심은 더럽다 못해 썩은 오물 그 자체였으며, 어린 아이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화를 풀던 수일의 새아빠는 또 얼마나 비겁했던가. 사고로 떨어져 죽은 정덕재의 몸을 빌어 사람 행세를 하던 샘의 사랑은 또 얼마나 아스라한가... 그에 비하면 담비 동자의 사연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절에서 보살님들이 담비에게 다정하여 담비 동자라 부르며 보살펴 주었더랬다. 보살님들이 너무 좋은 담비 동자는 보살님들을 힘들게 하는(?) 부처란 작자가 맘에 안 들어 불상을 부수고는 벌벌 떨며 두겸을 찾아 온 것이다. 두겸은 웃으며 보살님들께 사실을 말하라고 하고 그렇게 불상을 부순 사건은 마무리가 된다. 


이야기는 늘 그렇다. 태평성대한 세상은 잠시 뿐이고, 늘 난세(亂世)에 어려운 시절이 가득하다. 그런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난세를 만드는 욕망에 충실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추악한 인간들 때문에 상처 받은 이들이 복수에 매몰되고 마는 그런 슬픈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그 슬픔의 끝은 슬픔이 아닌 희망이다. 나락에 떨어져도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 살아있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내 상처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은 마음... 이런 마음들이 결국은 저 추악한 것들을 이길 것이라는 그런 희망.


세상은 변하고 변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자연스럽게 변화에 휩쓸려 변화를 따라가는 이가 있다. 혹은 그 변화 때문에 사라지는 이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말과 간절히 바라는 바를 들어주던 많은 존재들은 다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이 어쩌면 치조처럼 우리와 공생하는 법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제발 그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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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7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소설인데 꼬마요정님 리뷰를 읽다보니 일본 소설같은 느낌도 많이 드네요. 웹툰이 원작이라서 그런 느낌인걸까요?

꼬마요정 2022-11-17 22:39   좋아요 0 | URL
오 그런가요? 일제강점기가 배경이긴 하지만 전 한국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드라마나 영화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 시네마틱 노블 1
오누이 외 지음 / 스토리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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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인류애가 사라져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자신이 돈이 많다고, 자신이 덩치가 크다고 등등의 이유로 자신이 옳다며 상대를 눌러버리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내 주위의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그냥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동조하거나, 방관한다면 인류애가 과자 부스러지듯 바사삭 사라지지 않을까. 우리는 분명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런 순간을 한 번 이상 만났을 것이다. 


이 책은 유래 없는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간, 계속 발전해 온 과학 기술이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던 '인류애'란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미래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야기는 오누이 작가의 D - 1 이다. 2024년 세상은 '라섹(라스트 세컨드)'을 맞이한다. 2024년 7월 2일 한국 시각 오전 4시 37분 13초. 이 시각은 인류가 경험한 마지막 시각이며 이를 '라섹'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때가 되면 세상은 정확히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 이 현상을 '프리즈'라고 한다. 프리즈는 공전, 자전, 생명체의 생사여부까지 모두 하루 전으로 되돌린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라섹을 맞이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축적되는 것은 인간의 기억 뿐이다.


수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자기계발서 그 자체라고 할만큼 자기를 '계발'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파이어족 그러니까 조기은퇴가 목적이었기에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만을 목표로 돈을 벌었다. 연애? 그런 건 사치이자 돈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라섹이라니? 더 이상 통장엔 잔고가 늘지 않는다. 아니, 은행 자체가 쓸모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폭음, 마약, 폭력, 절도 등의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심지어 프리즈가 일어나기 직전에 몸에 불을 붙인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수미는 새벽에 조깅을 하다가 프리즈를 맞이했다. 온전한 하루를 살 수 있는 수미는 이 시대의 금수저가 되었다. 수미와 같은 회사에 다녔던 기훈은 슬프게도 라섹이 일어나기 하루 전 아파트 창문 사이에 끼인다. 그러니까 그는 매일 창문에 끼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그를 수미가 발견하고 꺼내준다. 하지만 프리즈가 일어나면 다시 창문에 끼이게 되는 기훈은 수미가 오지 않을까 겁이 난다.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만약 이 프리즈가 끝이 나고 라섹 이후의 시간이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제 세상은 프리즈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프리즈를 끝내고 싶어하는 디프로스터로 나뉜다. 디프로스터가 이 프리즈를 끝내면 직전에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디프로스터는 이 프리즈를 끝낼 '냉장고'를 끄겠다고 선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냉장고'를 끌 수 없도록 디프로스터를 방해한다. 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흐르지 않는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꿈꾸던 인간에게 내려진 이 영원 아닌 영원 같은 이 시간은 행운일까? 과연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우리 안의 '인류애'는 휴머니즘은 어떤 선택을 하라고 할까?


두 번째 이야기는 정현욱 작가의 유어라이프이다. 2080년대에 사는 예연은 기자이며 피임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시대 젊은이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해서 출산율은 제법 높은 편이었고, 인구절벽도 없다. 그런 시대 예연은 우연히 '유어라이프'라는 2045년에 유행했던 게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자신의 할아버지 및 노인 세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시대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2040년대에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자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부양 의무가 지나치게 무겁다는 사실에 노인 세대를 경멸하고 비난한다. 거의 배설 수준으로 욕을 하던 어느 순간, 정부에서는 복지 차원에서 영양제를 지급하고, 유어라이프라는 게임이 유행하고, 그리고 인구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여기에 무슨 음모론이 있는 것일까?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영양제에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악나스트로마이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청년 세대에게 지급하는 영양제에는 '스트루모릭아펜'이 들어있다. 향정신성 약물로 의욕을 고취시켜 주어 개발 초기에는 우울증 치료제로도 쓰였다는 그 약물 주입 이후 출산율은 올라갔다. '유어라이프'라는 게임은 어떤 식으로 작동해서 이 게임에 빠진 노인들을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도록 했을까.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뇌에서 일어나니까 호르몬을 조절하면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가? 우리와 로봇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이런 인구 조절 계획이 타당한 것일까? 누구를 위한 것일까? 


세 번째 이야기는 김지원 작가의 사람도 아닌데이다. 이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어떤 물건을 검색하면 내가 사용하는 sns든 유튜브든 곳곳에서 그와 관련된 광고를 보여준다. 나의 성향에 맞춰진 알고리즘... 음악도 무작위로 재생한 후 마음에 안 드는 음악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재생목록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채워진다. 만약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성격들로 이루어진, 내가 반할만한 외모와 성격으로 이루어진 안드로이드가 나를 유혹한다면 나는 흔들리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W>를 보면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과 사랑에 빠진다. 그가 현실 세계의 사람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 이야기 역시 유사하다. 해주는 남편인 김진오와 이혼 소송 중이다. 김진오는 바람을 폈고, 이혼을 요구한다. 김진오가 바람을 피운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성향에 맞춰진 안드로이드...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주고, 내 단점을 보듬어주고, 대화가 통하고... 이런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뿌리칠 수 있을까? 나중에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맞춰진 존재가 사람이든 안드로이드든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지 않는 관계가 노력해도 안 맞아서 파국을 맞이하는 관계보다 나은 것인지, 애초에 내게 맞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네 번째 이야기는 황모과 작가의 배내똥 거래소이다. 이 이야기 역시 정말 가슴이 시리다. 인간 세상은 거듭해도 강자와 약자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나 보다. 인분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친환경 바이오' 회사들은 늘 인분을 찾았다. 회사들이 동네마다 '배내똥 거래소'를 설치했고, '배내똥'으로 판명나면 비싼 값을 쳐 줬다. '배내똥'은 메탄가스 발생 비율이 높은 고품질 똥을 일컫는 말이다. 식용으로 재가공한 폐휴지 조각으로 만든 파스타를 먹고 닷새나 묵혀 만든 똥은 급식이 없는 겨울 방학을 나게 할 훌륭한 돈벌이었다. 다만 이 똥을 만든 예율은 아직 어리고 영양가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할 나이라는 게 문제랄까. 최저임금이 낮아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유연한' 시대에 예율의 아빠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유민과 유민의 엄마와 의기투합하게 된다. 유민의 엄마가 소개시켜 준 직장은 무인편의점이다. 무인편의점에서 사람이 무슨 일을 할까 싶지만, 고장이 난 기계를 고치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그동안 사람이 기계 안에서 기계인척 기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신해 일하는 기계를 대신해 일하는 사람이라... 커서 돌고래가 되고 싶다는 유민의 소원 역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거대한 수족관에서 돌고래 인형 속에 사람이 들어가 헤엄치는 세상... 예율이 바라는 모든 이가 바나나똥을 누고,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가능할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배명은 작가의 선샤인은 저 너머에이다. 이 시대의 결혼 정보 회사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어디 접속하면 아바타처럼 내기 좋아할 만한 장소에서 조건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다. 이를테면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면 등산을 하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난다든지, 미술을 좋아하면 전시회가 만남의 장소가 된다든지 말이다. 혜주는 우연히 이 회사의 이용권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녀는 0과 1 사이의 어떤 오류로 인해 프로그램에 갇히게 된다. 혜주는 계속해서 장소가 바뀌며 사람들을 만나는데 문득 자신의 포장 가격은 얼마인지 궁금해진다. 이 흐릿한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 현실 세계나 가상 세계나 인간을 상품화하고 서열을 매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살면서 인류애가 바스러지는 순간이 있다면 인류애로 가득 차 세상이 아름다워보이는 순간들도 있다. 우리의 삶은 그런 것이리라. 내가 기대하는 것과 실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 그 사이 추악한 것들도 보지만 아름다운 것도 보겠지. 그래서 세상은 균형을 맞춰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아름답다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테니까. 하지만 아름다움을 모르게 된다 하더라도 끔찍하고 추악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모두가 인류애로 가득 찬 세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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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이야기들이 전부 참신하네요. 읽어보고싶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출발하는 책이 내용 전체도 어떨지 막 궁금해져요.

꼬마요정 2022-11-15 23:1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정말 참신하다 생각하고 읽었답니다. 우리나라 작가라서 그런지 과학소설이 좀 더 현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달까요.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만만한 철학 -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12가지 이야기
미하엘 쾰마이어.콘라드 파울 리스만 지음, 이지윤 옮김 / 재승출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다. 이 책은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어서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 때 아트리덴 가문의 저주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괴테의 <이피게네이아>를 읽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웠다. 또 얼마나 새롭고 흥미로운 관점을 알려줄까 기대했다. 


이 책은 동화, 신화, 성경 등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 모두 12가지의 이야기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한다. 호기심, 노동, 폭력, 복수,욕망, 비밀, 자아, 아름다움, 장인정신, 권력, 경계, 운명 각각의 이야기들은 모두 짧지만 강렬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 여차저차한 이유로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금기는 두려움과 호기심이란 모순된 감정을 불러 일으켰고, 거기엔 복종하거나 반항하거나 두 길 뿐이다. 뱀의 유혹은 어쩌면 인간 내면에 깊이 잠들어 있던 어떤 욕구와 맞아떨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초의 죄는 무엇일까? 금기를 어긴 것이 최초의 죄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인가, 아니면 죄란 씨앗이 애초에 인간에게 있었기에 금기를 어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금기는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문이고, 인간은 그 문을 열 능력이 있으나 열어서는 안 되며, 결과는 그 문을 열어야만 알 수 있다. 모든 공포 영화가 호기심에서 시작하듯, 인류의 타락 역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저 문을 열고 싶다, 궁금하니까.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일까? 키에르케고르는 선악과 사건의 주된 의미가 먹으면 죽는다고 말한 신은 처음부터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려움과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어떤 가능성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자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혼란에 빠트린 질문이 '인간성이란 본디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저지른 죄악은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이고, 금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외부의 규범에 기준을 맞춘 것이라고. 신은 자유와 자아, 책임과 같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몰랐을 개념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금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도덕은 깨달음을 완강히 부정했다.(p.23) 그래서 니체는 모든 도덕의 첫째 계명으로 '깨닫지 마라'를 꼽았다고 한다. 


인간이 금기를 깨트리고 얻은 것은 인류와 세상이다. 이제 낙원은 사라졌다. 그 낙원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헤겔은 원죄 사건의 결과로 인간이 비로소 영혼을 획득했으며 어울리지 않던 에덴 동산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원죄 사건을 통해 얻게 된 지각 덕분에 오직 그 지각 덕분에 인간은 사실상 신과 같아지게 되었다고 말한다.(p.24) 낙원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인간은 그 호기심의 대가를 치를만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 노동에서는 다이달로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시파에의 의뢰를 받아 나무로 아름다운 암소를 만들고, 미다스 왕의 의뢰로 미로를 만들고, 아리아드네에게 그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들 이카로스와 미로에 갇히자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그 곳을 탈출하는 그 다이달로스 말이다. 다이달로스는 선악이나 도덕에 구애 받지 않고 오로지 의뢰인의 요구에만 맞춰 무언가를 만든다. (자신이 이만큼 잘 만들 수 있다는 허영과 이기심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며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제시하고 비판한 도구적 이성의 예시라고 말한다.(p.39) 또한 이카로스의 추락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에 대한 오만과 맹신은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 임무가 맡겨지면 기술적 해법을 찾지만, 경고를 무시한 채 명령만을 따르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할 수 있다. 시스템은 있을 때 지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폭력이다. 슬픈 소녀는 그 슬픈 눈을 들어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슬픈 눈망울로도 얻을 수 없다면 눈물을 흘리며 울어 버린다. 결국 그녀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주위가 황폐해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슬픈 소녀가 흘린 눈물은 연민, 관심, 공감, 호기심 등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소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하지만 슬픈 소녀가 원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악하다는 것도 알고 악함을 다스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악의로 가득 찬 슬픔은 폭력적이었다. 연민이라는 선의가 악의에게 잡히면 결과는 무참하다. 단지 선한 일을 하려 했을 뿐인데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연민은 어떤 감정보다도 기만적일 수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 연민 밑에 깔려 있는 악의를 찾아낼 수 있을까?


네 번째 이야기는 복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로 손꼽히지 않을까. 신을 기만한 탄탈로스로부터 내려오는 그 저주는 수많은 피를 뿌리며 오레스테스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사법제도라는 점이 의외였다.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에게 복수한 오레스테스에게 열린 법정에서 배심원 중 모든 여성은 유죄에, 모든 남성은 무죄에 투표했다. 표수는 동수, 이제 최종 판결은 아테나가 내리게 된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아테나는 모든 아버지는 모든 어머니를 우선한다며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비록 법률이 부당하다 해도 그저 복수로 점철된 난폭한 부당함보다는 낫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욕망이다. 어린 시절을 아주 유복하게 보낸 에기디우스 성인은 꿈에서 베드로 성인에게 이끌려 단테의 지옥에 다녀온다. 지옥을 보고 온 에기디우스는 모든 육체의 안온함을 버리고 고통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 고통을 향한 욕망만이 에기디우스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에기디우스는 무엇 때문에 고통 속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것일까. 고통을 극복해가는 모습에 욕망을 느끼는 것일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함일까? 고통은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으니까. 에기디우스 성인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오직 신만이 알지도 모른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비밀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네 전설과도 비슷하다. 구미호가 변신해서 막내딸 노릇을 하며 집안의 가축들을 잡아먹고, 가족들마저 도륙하는 이야기 말이다. 여기는 늑대 입을 가진 딸인데, 존재마저 감춰진 막내딸이다.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가 죽고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들 중 일곱 째만이 살았는데,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을 피해 도망가서 뭔가 라푼젤 같은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와 결혼하기 전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가 혼자 살아남아 다시 결혼 할 여자에게로 도망치지만 묘한 상태로 남게 된다. 한 쪽은 여동생에게 잡히고 다른 한 쪽은 결혼 할 여자에게 잡힌 상태. 그 어렵고 가혹한 모습을 보던 달이 말한다. "견뎌라" 비밀은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는 자아에 관한 것이다. 크리스티앙의 속내라는 이 동화는 신기하다. 크리스티앙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려는 남자를, 가족이 탄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바람을, 자신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느끼고, 맛보고, 냄새를 맡고, 현재를 보는 능력을 허리띠와 식칼과 바람과 과거, 미래에게 줘 버린다. 그런 뒤 과연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오롯이 자신 안에서 자아를 찾았을까 아니면 자신만의 환상에서 사는 것일까. 그런 감각들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여덟 번째 이야기는 아름다움이다. 아테나 여신은 아울로스라는 관악기를 만들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는데 막상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은 추하기 그지 없어져서 아울로스에 저주를 내린 뒤 버린다. 그런데 하필 아울로스를 주운 게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였다. 원래 추하게 생겼기에 부르는 중에 추해지는 건 상관없고, 오히려 불기만 해도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니 신이 난 마르시아스는 자신이 아폴론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결국 아폴론과 시합해서 진 마르시아스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예술은 아름답지만 모든 면이 아름답지는 않다. 아름다움이 발현되기까지 들이는 노력이나,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마치 물 밑에서 백조가 발버둥치는 것과 비슷하다. 신화가 계속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신들이 너무 잔혹하다. 그래서 아름다운걸까.


아홉 번째 이야기는 장인정신이다. 지그프리트와 미메는 훌륭한 장인들이다. 세상을 보고 싶었던 지그프리트가 대장장이 집단에 들어오게 되고 미메는 그를 가르치며 불가능한 것만 같은 과제를 내 준다. 시행착오 끝에 미메를 뛰어넘게 된 지그프리트는 대장장이로 인정받게 되지만, 다른 대장장이들의 질투로 용의 계곡에 들어서게 되고, 자신이 만든 그물로 용을 물리친다. 하지만 용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기에 홀로 살아남은 보리수 나무는 그에게 복수한다. 마치 아킬레스처럼 용의 기름으로 온 몸이 갑옷을 입은 것처럼 되었으나 보리수 나뭇잎 하나가 등에 붙어 그의 약점이 된 것이다. 화살로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그 곳. 그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현대에서 장인이 더 이상 대접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 이 이야기와 잘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 계속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과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교훈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 번째 이야기는 권력이다. 욥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필 신과 루시퍼의 내기에 걸려서 온갖 고초를 당한 그는 끝까지 신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는 더 큰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내기로 인해 고초를 받은 건 멀쩡하던 소 떼, 양 떼, 식구들이 아닌가... 욥은 살아있지만 그를 괴롭히기 위해 나머지는 다 죽었다. 나에게 욥의 이야기는 너무 폭력적이라 좋아하지는 않지만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가 되기는 하였다. 신이 만든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까. 절대권력은 선도 악도 없다. 그저 절대적인 힘만을 행사할 뿐이다. 하지만 신에게는 대항하지 못해도 인간이 인간에게는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혹은 자연에게 행사하는 권력에는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열한 번째 이야기는 경계에 관한 것이다. 익시온과 아스클레피오스는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에 있는 이들은 그 경계를 넘어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신이 아니다. 익시온은 얼마 전에 읽은 보리스 비앙의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리와 겹쳐졌다. 복수를 위한 복수인가, 자기를 과대포장하여 생각하는 것인가.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자를 살려냈기에 신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나 신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공평한 죽음이라는 것을 파괴했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은 경계인가 종점인가. 죽음이 종점이라면 아스클레피오스는 종점을 뒤로 밀어낸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대부분이 80살까지 사는데 소수의 특권층만 300살까지 산다면 어떨 것인가. 하데스가 말한 '모두가 아니면 아무도'란 원칙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경계를 소수에게만 개방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그리고 모두에게 해당하는 종점을 소수를 위해 폐지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이다.(p.199)


열두 번째 이야기는 운명이다. 운명하면 오이디푸스가 떠오르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다이다. 유다는 여러 면에서 오이디푸스와 닮았다. 처음에 정해진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살면서 내가 선택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끝이 정해져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길로 간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선택할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다른 선택을 한 인생의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 끝이 왔을 때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제목은 만만한 철학이었으나, 어느 이야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깨달은 자에게는 그 깨달음의 대가를 빠짐없이 받아내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 P25

시스템이 무너진 다음에 경고를 떠올리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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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7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이 만만하다는 말을 달고 있는 것부터 뻥치고 시작하는거죠. ㅎㅎ
그래도 꼬마요정님 소개를 보니 재밌게 읽을 수는 있을거 같아요. ^^

꼬마요정 2022-11-07 22: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뻥이었어요 ㅎㅎ 재미는 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ㅎㅎㅎ ㅠㅠ

scott 2022-11-13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리뷰 읽다 보니 이 책은 동화, 신화, 성경 속에 나오는 호기심, 노동, 폭력, 복수,욕망, 비밀, 자아, 아름다움, 장인정신, 권력, 경계, 운명이라는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와 고민, 고난 등이 전부 들어가 있네요
절대 만만하지 않은 인생철학이 담긴 책인 것 같습니다 ^ㅎ^

꼬마요정 2022-11-14 14:0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이렇게 인간 세상 모든 문제와 고민과 고난이 다 들어있는데 심지어 두껍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만만하다네요? 저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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