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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ㅣ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평점 :
나는 우리집을 좋아한다. 작고 낡은 집이지만 늘 햇빛이 잘 들어오고,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들도 가득하고, 커피 머신도 종류별로 있고, 원두도 좋아하는 걸로 갈아두었고, 커피믹스가 먹고 싶으면 커피믹스도 있고, 차가 마시고 싶으면 차도 여러 종류 갖추고 있다(보리차, 녹차, 홍차...). 탄산수도 있고, 간편하게 전자렌지에 돌려먹을 수 있는 핫도그도 6개나 있다. 당연히 차가운 음료도 마실 수 있게 고양이 얼음도 한가득이고, 무엇보다도 귀여운 고양이가 6마리나 있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보일러를 튼다. 얼마나 좋은가. 이러니 밖에 나가기 싫을 수 밖에. 그런데 이렇게 내가 가장 안전하게 느끼고 편하게 느끼는 집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공포가 있을 수 있을까...
20여년 전에 내가 어릴 때 살던 집 맞은 편에 있는 집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영화 <암수살인>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는데, 심지어 울 엄마는 경찰들이 몰려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던 현장에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야 이 사건을 알고 있겠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알아내기 힘들지 않을까?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난 그 건물은 비어 있을까, 누군가 들어왔을까. 전건우 작가의 <누군가 살았던 집>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축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살았던 집을 계약하고 살게 될텐데, 그렇다면 그 집은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 나와 J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가장 가슴 아프고 무서웠던 것은 보증금과 월세가 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나'는 잘못된 투자를 하고 사기를 당하는 와중에 동네 사람들 돈까지 말아먹어 고향에서 몰래 도망쳐 나와야 했다. 과한 욕심으로 타인의 눈에 눈물 나게 했으니 연민이 들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젊은 나이에 독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부동산 가격은 지나치게 높고, 일자리는 한정 되어 있으니 말이다. 저렴하기 때문에 살고 싶지만, 저렴하기 때문에 의심해야 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 이 일은 '귀신'이나 '알지 못하는 존재'가 주는 공포가 아니라 너무 현실적인 '돈'과 '폭력'의 문제가 얽혀 있어 더 무서운 이야기였다.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은 전세 사기 때문에 뜨겁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생 모은 돈과 은행 빚으로 만든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내 줄 수 없게 되자 갭투자로 집을 수백 채, 수천 채 가지고 있는 집주인이 죽거나 잠적하거나 하면서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또 배우자의 외도나 가정 폭력 역시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가는 원인이 되는데, 유진과 혜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혼 후 둘은 특수청소업체를 차려 생계를 꾸려나간다. 정명섭 작가의 <죽은 집>은 집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죽어버리게 되는지, 또 어떻게 살아나는지 보여준다. 유진과 혜영은 서로를 돌보면서 그렇게 고독사한 사람이 있던 집을 청소하거나, 범죄가 있던 집을 청소하거나, 쓰레기가 가득한 집을 청소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에 가득한 고통을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쓰레기 집을 청소하면서 보게 된 악덕 집주인을 벌 줄 수 있게 되는지도. 두 사람이 부디 평안하게 살 집을 마련할 수 있기를, 서로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생계가 위태롭다. 특히나 시간강사의 경우 은행에서는 무직으로 보기 때문에 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10년 전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주변에 공부하는 선생님들 중 형편이 좋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때도 힘들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듯 해서 마음이 아프다. 정보라 작가의 <반송 사유>는 그러한 사정을 담고 있다. 양현은 남편인 오섬이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기까지 산속 외딴 곳의 집에 살게 된다. 주택 구입 대출마저 막힌 상황이라 그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산속 동네라 마당이 넓은데 어느 날부터 양현에게서 이상한 메일이 오기 시작한다. 양현과 오섬이 키우는 고양이 호두가 낚시 바늘 때문에 죽고, 계속 집에서 낚시 바늘이 나온다는 메일에다, 양현이든 그 집을 방문했던 김혜든 성희언니든 그 집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까맣게 나오기까지 한다. 마침내 오섬은 교수가 되나 여전히 그 집에서 이사 나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었다. 돈이 없어 산속 동네의 외딴 집에서 살아야 했으니, 우리 사회에서 돈이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산속 동네 낚시 바늘이 계속 생겨나는 그 집은 도대체 무슨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간병을 하다보면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고 잔인하다가도 이토록 이타적이고 애틋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싶다가도, 하루라도 좋으니 조금만 더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나 돌보는 사람이나 모두 힘들고 아프지만,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서로에게 살아가며 쌓아 온 애정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겠지만. 정해연 작가의 <그렇게 살아간다>는 간병과 그 이후 남은 이들의 그런 이야기이다. 진혜의 아버지는 식도암이었고, 젊어서부터 나쁜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병에 걸려서도 여전히 나쁜 사람이었다.
살아있는 이들의 죄책감은 왜 생기는 걸까. 최선을 다했고,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나쁜 생각을 먹을 때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사실, 병이 아니더라도 사고나 다른 이유로 가까운 이를 잃게 되면 남은 이들은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살아있을 때 해주지 못한 일, 해주지 못한 말,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일,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말들 때문에 말이다. 나 역시 그 때 안아줄걸, 그 때 그 전화를 받을걸, 그 때 그 국수를 줄 걸 그런 후회들을 한다. 그래서 늘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또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진혜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진혜는 계속 악몽을 꾸고, 엄마도 계속 악몽을 꾸는 듯 하다. 집에 누군가 있는 것 같고, 몸이 점점 아파온다. 죄책감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어쩌랴,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을. 마음이 지옥이면 어느 곳이든 지옥이 된다고 하지만, 오래도록 살던 집인데, 그런 기억들이 집에 맺혀 있어 집이 더 이상 편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떠나는 방법 뿐일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