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
김유정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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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물과 바람, 구름을 다스리는 상서로운 존재다, 동양에서는. 그리고 이무기가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면 마침내 용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용이 대학원에 다닌다면? 그것도 100년 동안이나 말이다. 미래창조인공지능융합과학 파트에서 공부하는 7년 차 방장인 은진은 어느 날 교수님으로부터 날벼락 아니 용을 맞았다. 100년 전부터 이 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인간과는 시간 개념이 다르다는 그 존재는 문학부나 법학부, 생물학부 등을 다녔더랬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름도 어려운 미래창조인공지능융합과학부로 들어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용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존재, 자연현상 중 물과 관련된 것들을 부릴 수 있는 존재였다. 용의 기원 중 하나가 토네이도, 용오름이라는 설이 있는 걸 보면 더 더욱 그렇게 느낄 수 있는데, 이런 자연현상이 이제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금 세상에서 용은 어떤 존재일까. 


김유정 작가는 <용의 만화경>에서 용이란 존재를 또 다시 상서롭고 초현실적인 존재로 그려놓았다. 인간은 태고적부터 자연현상이든 그 무엇이든 이해하고자 했고,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들을 만들어 왔다. 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명이 안 되면 그것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3차원을 넘어선 존재인 용은 여전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용이 있으니 이무기도 있었다. 물론 옛 이야기에서 나오는 그런 이무기는 아니었지만. 욕심이 많아 여의주를 두 개 물고 있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아니라 애초에 용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좀 마음이 아프다고나 할까. 그런 존재들과 함께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된 은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이 충족될 날이 올까 싶지만, 그래도 이런 다정한 존재들이 함께라면 좀 더 따뜻한 미래를 꿈꿔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김이삭 작가의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이다. 1849년, 프랑스는 청나라로부터 상하이에 있는 땅을 빌렸다. 임대료는 없었다. 이 조계지는 1943년 일본 괴뢰정부 왕징웨이 정권에게 넘어가면서 사라졌다. 영화 <무명>이 왕징웨이 정권 시기의 이야기인데, 외세의 침입으로 인한 남의 나라 분열이나 내 나라 분열이나 열불 터지는 건 비슷했다. 하지만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은 뭔가 좀 더 상큼했다. 요즘은 좀비가 대세인데, 여기는 '강시'가 나온다. 명나라가 망하자 남쪽으로 도망쳤던 리쯔는 300년이나 지나 되살아났다. 그리고 '양놈'을 먹으며 살아간다. 옛 상해(라오상하이)에서 식인자(아니, 리쯔는 강시니까 식시자인가)는 강시인 리쯔만이 아니었다. 저 먼 나라 영국의 뒷골목에서 살인을 일삼던 잭 더 리퍼 같은 이도 있었고,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을 잡아 샤오롱빠오로 만드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탐욕이 부패한 위정자들에게 고통받던 이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짓밟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갔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하며. 약자들의 연대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따뜻했다. 그 연대가 곧 바스라진다 하더라도 연대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으로 남을만큼.


세 번째 이야기는 한켠 작가의 <어느 날, 잔멸치>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겪은, 겪고 있는, 겪을 끔찍한 무기력증을 겪는 (소)진의 이야기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서울에 살 수 있을만큼 여유를 가지지 못한 그녀는 경기도에서 출퇴근을 해야 했다. 왕복 4시간은 사람을 지치고 지치게 했다. 다니는 회사에서 자신이 속해 있던 사업부가 해체되면서 자신의 설자리가 막막해진 진은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안주로 나온 잔멸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처절한 눈빛이 자신과 닮아서였을까, 주머니에 넣어 온 잔멸치는 다음 날 인어가 되었다.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아무것도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딱 한 달만 병원 신세 질 정도로만 다쳤으면 하고 바라고 차라리 죽으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었다. 작고 무능하고 초라해서 아무도 자신을 바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은 한없이 진을 갉아먹었다. 누군가는 승진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느낌. 하다 못해 일도 잘 못한다는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잔멸치들이 떼를 지어 있는 모습은 멋진 벨루가보다 빛나고 아름다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잔멸치 인어는 진과 같은 높이에서 머리를 빗겨 주었다. 화려함이나 소박함이 멋짐의 기준이 아니듯, 진이 자신만의 모습을 찾고 삶의 의지를 회복하였으면 좋겠다. 삶은 계속되니까.


네 번째 이야기는 이필원 작가의 <남극노인>이다. 처음엔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비튼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병약한 소년이 신기한 소녀를 만나고 죽어서 소녀를 순장해 달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따뜻한 존재와의 조우를 다뤘다고나 할까. 


밤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남극성을 찾을 수 있을까. 옛 이야기에 남극노인이 나타나면 그 시대는 태평성대하다고 했다. 또 남극성의 화신으로 사람의 수명을 다룬다고도 했다. 옥순이 할멈네 손자인 '나'는 곧 죽는다고 했다. 병약하여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고, 맞벌이하는 부모는 '나'를 계속 볼 수 없어 잠시 할머니에게 가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곧 죽는다는 생각으로 삐뚤어진 아이였다. 할머니는 모든 병은 신이 준 것이라며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린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건 오래된 홍살문 아래에 있던 이상한 누나였다. 그 누나가 만져주자 메스껍던 속이 나아지고 열이 내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귀한 손님이라고 반겨주었다. 가을, 겨울을 그 누나와 함께 보냈고 또래가 없던 '나'는 아마 많은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내내 태평하거라.... 마법 같은 주문은 따뜻했다. 세상이 모질어도 어딘가에서 동앗줄이 내려오는가 보다. 그러니 부디 남은 생은 행복하기를. 지금 이 세상에도 남극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주면 좋겠다.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남극성처럼.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박부용 작가의 <유령 열차>이다. 우리는 3차원에서 산다. 차원이 하나씩 더해지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고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4차원만 해도 우리는 이해하지도 구현하지도 못한다. 흔히들 4차원의 축은 '시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4차원에서는 시간이동이 자유롭다고.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 한 남자의 지식추구라기보다는 탐욕에 가까운 욕망이 불러 온 참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클락스빌'에 사는 아서는 자신의 실험을 위해 '나'를 불렀다. 부유한 저택에서 아서는 아내인 오렌시아와 살고 있었고, 나는 그 곳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며 아서의 이야기들을 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는 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네 번째 차원에 대한 연구가 지지부진함을 드러냈다. 나는 아서에게 4차원은 보통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던졌다. 아서는 흥미를 가졌고, 어쩌면 그 말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됐는지도 몰랐다. 시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서 태어났는가.


오렌시아가 육교에서 사라진 날 이후, 아서는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원하는 물품을 적어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적어 낸 물품은 그 사람들의 거실에 정확하게 '나타났고', 처음에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자신의 집이 침입당했다 생각했기에. 하지만 점점 사람들은 이 '유령열차'가 배송해 주는 시스템에 적응했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을 얻을 수 있어 편리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세금 역시 유령열차가 걷었고, 공장 역시 유령열차가 운영했다. 이제 마을에서 사람은 일을 하지 않았고,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나'는 불안감에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 신문에서 '클락스빌'을 연상시키는 글을 읽고 말았다. 다시 돌아간 그곳은 처참했다. 보이지 않는 기차에 '치인' 사람들, 보이지 않는 기차가 '치고' 간 건물들... 시간축의 기원은 어디였을까. 그 처참함의 시작은 아서의 탐욕이었을지 몰라도, 끝은 살고자 몸부림치는 생명력이었을지도.


여섯 번째 이야기는 전견 작가의 <잠자는 종이 여왕의 궁전 아래에서>이다. <천일야화>에서 셰헤라자드는 죽지 않기 위해, 술탄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장장 천 일하고도 하루 동안 이야기를 한 끝에 술탄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고,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쉴 새 없이 말하는 통에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나'는 걷다가 우연히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들어갔다가 그 곳이 헌책방임을 알게 된다. 헌책방 주인은 '나'에게 헌책방에서의 규칙을 알려주고 사라졌다.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잠들어 있는 소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꿈에서 깨어나게 되고 그러면 세상이 멸망한다 했다. '나'는 계속 이야기를 했고, 소녀는 잠꼬대로 이야기를 평가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재미없고 형편없는 이야기로 귀결되었고, 그런 평가를 들은 '나'는 내 이야기를 멈추고 책방에 있는 책을 집어들고 읽어주었다. 또 다른 일은 어떤 책무리에 물을 주는 일이었는데, 이틀에 한 번씩 주지 않으면 내 손목만 나뒹굴게 될 거란 말을 들었던 터라 '나'는 잊지않고 꼬박꼬박 물을 주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손님이 와서 책을 사 갔다. 물론 남편한테 줄 거라고 했다. 당연히 물을 줘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했다. 그 뒤에 남자 손님이 와서 아내한테 줄 거라고 책을 사 갔다. 남자도 당연히 물을 줘야한다는 말은 필요없다 했다. '나'는 두 손님 모두 다시는 보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막내 동생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진짜 말이 많았던 녀석인데, 같은 이야기를 엄마한테 한 번, 아빠한테 한 번, 나한테 한 번, 작은 누나한테 한 번 하고 난 뒤 벽에도 하고 곰인형에게도 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진짜 이렇게 말이 많아서 어쩌나 했는데, 지금 내 남편도 참 말이 많고, 여전히 내 동생도 말이 많다. 둘은 서로를 보고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혀가 잘리지 않는 이상 말을 그칠 수 없는 광대처럼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고, 점점 지쳐갔다. 그동안 누구도 듣지 않아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계속 들으니 이야기가 고갈된 것이다. 정말로 소녀가 잠이 깨면 세상이 망할까봐 '나'는 열심이었다. 


헌책방에서의 알바는 꿈이었을까.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세상에서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 세상이 꿈이 아니고서 무엇이겠는가.  


일곱 번째 이야기는 김선민 작가의 <장갑들>이다. 환경미화원들로 이루어진 비밀단체가 구두들로부터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청소'가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은 건 언제부터일까. 옛날에는 집안 청소는 평민들은 스스로 했고, 양반들은 노비들을 부렸다. 현대에 와서도 집안일은 엄마가 했고, 작은 회사에서는 막내들이 했다. 좀 더 큰 회사에서는 청소용역을 고용하기도 했고. 점점 청소용역업체를 고용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게 된 건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순자 씨는 건실한 남편을 무너진 백화점에서 잃고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청소일을 시작했다. 성실한 그녀는 남자 화장실을 청소할 때 자신을 지우는 법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밀대 걸레 등 청소용구와 일체화 된 그녀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순자 씨는 마침내 '어머님'의 선택을 받았다.


두 번째 이야기였던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의 연대가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망한 나라의 평범한 백성이 '강시'가 되어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 '신녀(창녀)'들과 음식점 주인이 연대하여 살인마나 착취하는 양놈들에게 대항하는 모습이 장갑들의 저항과 겹쳐졌다. 청소할 때 사용하는 장갑들이 사용자의 한과 억울함, 화를 빨아들였고, 선택받은 순자 씨는 그 장갑들을 정화했다. 구두들의 대장인 데스크는 시스템 속에 자리잡은 부조리와 착취를 강요했고, 장갑들은 저항했다. 부패와 분열은 어느 집단에서나 일어난다. 하지만 어디에나 희망은 있었다. 큰 일을 위해 작은 일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았다. 부디 그들의 저항이 순탄하기를.


여덟 번째 이야기는 이나경 작가의 <다수파>이다. 확률은 얼마나 정확할까. 나의 선호도가 모두의 선호도를 대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수파는 옳을까. 수도 그룹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모든 항목에서 다수파를 선택한 아빠 오상식은 신기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아버지를 담당한 사람은 최한기. 한기 아저씨와 아빠는 이 프로젝트의 대장인 그룹의 삼남이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면서 이 일을 잃게 되었다. 


아빠는 언제나 다수파였다. 아빠가 선택한 것이 곧 다수가 되었다. 아빠는 수학여행을 떠난 나에게 시킨대로 가만히 있어라고 했다. 결국 나는 돌아가지 못했다. 아빠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반성 없는 참사는 비슷한 참사를 거듭해서 부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참사들을 맞이할까. 정말 다수파가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다수파인 척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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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02 0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말해야 하다니 힘든 일이네요 본래 말이 많았다고 해도 그걸 일로 하면 힘들 것 같습니다 꼬마요정 님 동생분도 말이 많고 남편분도 말이 많군요 그래도 재미있다면 괜찮을 듯합니다


희선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 - 고단한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부처의 인생 수업
그랜트 린즐리 지음, 백지선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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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지만 얻고자 노력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훌륭한 스승님과 훌륭한 가르침과 나 자신의 의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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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생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2
듀나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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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순정만화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외숙모가 재밌다고 집 옆에 있던 만화방에서 빌려 준 책이었는데, 그 책이 한승원, 김동화 작가님의 <사랑의 에반제린>이었다. 그 뒤로 순정만화의 늪에 빠진 나는 닥치는 대로 읽다가 엄마한테 걸려 여러 번 혼이 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화책을 읽는 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참 읽다보니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고, 작품도 생겼다. 내가 충격 받았던 작품들은 제법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르미안의 네딸들>이었다. 당시 그리스 신화와 역사를 좋아하던 터라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완결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정말 충격 받았다. 아니, 왜? 여기서?


신일숙 작가님의 작품을 계속 찾았더랬다. <사랑의 아테네>나 <아르미안의 네딸들>, <리니지>, <라이언의 왕녀> 등등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 또 충격적인 작품인 <1999년생>이 있었다.


한참을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이 왔을 때, 입에서 비명을 안 지르고 본 내 나이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순정만화라고 다 로맨스만 있는 건 아니었고, 다 지고지순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리더십도 있었고 배짱도 있었고 무력도 있었다. 이미 그녀는 여왕이었고 장군이었고 전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시련은 로맨스 뿐만 아니라 동료애에서 비롯되기도 하였다. 


사랑에 흔들리는 건 여자라고 편향된 시각이 존재한다지만, 저 먼 시대 달기나 포사 때문에 나라 망하게 한 사람도 있으니까. 소중한 상대를 두고 협박하는 건 어느 시대, 어느 성별에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은 지났지만, 그 당시에는 미래였던 시간대인 20세기 말. 어느 날 갑자기 우주에서 외계인이 쳐들어왔고, 지구는 속절없이 당하다가 그들이 추위와 초능력에 약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특히초능력의 경우 1999년에 태어난 이들이 가진 초능력에 특별히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에 태어난 이들 중 뛰어난 초능력을 가진 이들은 갑자기 외계인과의 전쟁에 군인으로 투입되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전투에 내몰린 그들 중 크리스 정이 있었다. 특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그녀는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멕시코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로페스 교관이 있었다. 


이야기는 크리스와 로페스의 악연, 아니 자헬 킬레츠와의 악연이 절정으로 이끈다. 그러한 이유로 크리스는 그 사건 이후로도 지금까지 고통 받고 고통을 주고 있었다. 2023년생이 자라서 19살이 되던 2042년까지도 말이다. 


듀나 작가의 <2023년생>은 가루다 팀이 외계인 수석 중 한 명인 에이바 플래너건을 습격하다 캡틴인 수린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구인들은 이제 외계인 군단의 행성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 가장 유력한 위치를 찾았다. 그곳은 '지옥'이라 불렸다. 캡틴을 잃은 가루다 팀은 충원이 필요했고, 다국적인들로 이루어진 팀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지옥'에서의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게 되는데...


에이바 플래너건을 제거하면서 이제 남은 수석은 자헬 킬레츠 정도였다. 외계인 군단은 자신들의 군대가 죽어도 지원군을 보내거나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전히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지구에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퍼져 있었고, 전후 시기를 저울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든든한 아군이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처치곤란일 초능력자들의 처분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들의 힘만 믿고 민간인을 괴롭히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성폭력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10대들을 전쟁에 투입하는 건 옳은 일일까. 과거 소년 십자군처럼 어른들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버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들의 힘을 '살육'하는 데 써야 했다. 비록 외계인이라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누군가의 생명을 꺼트리는 일은 참혹할 터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통제하기 힘든 대상이 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초능력자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초능력을 제어할 기술이 필요했다. 일전에 로페스가 사용했던 알코올이 든 목걸이처럼 말이다.


성폭력과 살인을 자행한 이들은 강철불사조 팀이었다. 그들은 교수대에 매달리는 대신 전투에 투입되었고, 이제는 여성 군인들에 대해 음담패설을 나불거렸고, 외계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학살했다. 화가 난 가루다의 예류가 가해자인 이동수를 잡으러 가면서 자헬 킬레츠의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렇게 수석들의 이름이나 외모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외계군단의 방해가 있었지만, 팀은 '지옥'으로 향했다. 과연 그들은 왜 지구를 침략했으며, 왜 그렇게 크리스를 괴롭혔을까. 예측한 장소에 '지옥'이 있을까.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들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외계군단과의 전쟁이 끝난 후 지구는 어떤 모습을 지닐까. 어떤 체제를 구성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할까. 큰 전쟁 하나가 끝나고 또 다른 다툼은 없을까. 인간은 다투기 좋아하는 존재라 또 어떤 꼬투리를 잡아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할지 모르겠다. 살육의 전장으로 내몰았던 초능력자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은 그저 꿈일 뿐인 걸까. <삼체>에서도 그랬지만 우주의 질서란 하나의 재앙을 또 다른 재앙으로 덮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르네상스> 독자들에게 그 반전은 폭탄과 같았다. ‘그 에피소드‘는 <르네상스> 독자들이 순정만화에서는 안전하게 여기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규칙을 깨트렸다. 허겁지겁 앞의 에피소드로 돌아간 독자들은 이 작업이 독자들의 눈앞에서 뻔뻔스럽게 윙크를 던지며 무자비하고 치밀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오직 그 결말만을 위해 달려온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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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22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화책을 많이 보진 않았는데, 고등학생때 한참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유행했던 생각이 납니다. 저도 짜증내면서도(모두가 여주인공을 좋아해!) 아주 재미있게 보았지요. 원수연 만화도 재미있게 봤고 이미라도 재미있게 봤는데, 꼬마요정 님이 언급하신 <아르미안의 네딸들>.은 ㅋ ㅑ- 주옥같은 문장이 거기 나오지요.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꼬마요정 님의 리뷰 덕에 추억 돋습니다. 아, 저는 순정만화 조금 보다가 ㅋㅋㅋ 학원물로 이동하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오늘 우리는>, <반항하지마> 이쪽으로다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꼬마요정 2024-11-25 09:31   좋아요 0 | URL
오오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진짜 오랜만에 듣습니다 ㅋㅋ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블루> 도 있었고… 전 김혜린 님의 <비천무>랑 강경옥 님의 <별빛속에>랑 황미나 님의 <엘 세뇨르>랑 신일숙 님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이랑 이미라 님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장하리라!!! 마음 먹고 성인이 되자마자 사모으기 시작했답니다 ㅎㅎ 아 맞다!! 클램프도 엄청 인기였죠. <동경 바빌론>이나 <x> 정말 재밌었는데… ㅎㅎ

소년 만화는 저 <용비불패>, <열혈강호>, <니나 잘해>, <아일랜드>, <신암행어사전>, <최유기> 이런 거 좋아했어요 ㅎㅎㅎㅎㅎ

감은빛 2024-11-28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은 게임 제목으로 유명한 [리니지]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김진 작가와 신일숙 작가는 소년만화만 주로 보던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어요. 그러고보니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도 이젠 게임으로 유명하네요.

듀나 작가의 소설들을 좀 읽었는데, 어쩐지 작품별로 편차가 크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꼬마요정 2024-11-29 18:35   좋아요 0 | URL
김진 작가님의 <바람의 나라>도 정말 명작이었죠. 결국 완결이 안 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ㅠㅠ 무휼과 세류, 청룡과 주작이 생각나네요. 유리왕이 제일 맘에 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절한 해명태자도 생각나네요... 그나저나 옛날판으로 23권까지인가 모았었는데, 얼마 전에 곰팡이 때문에 다 버렸거든요. 가슴이 아픕니다.ㅠㅠ

듀나 작가의 소설들은 말씀처럼 편차가 있는 듯 합니다. 저도 어떤 작품은 너무 좋은데 어떤 작품은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거든요. 이 책은 재미있게 봤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 - 기이하고 아름다운 열세 가지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히가시 마사오 엮음, 김소운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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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도 움직이라고 우는 소리에

 무덤이 움직이고

 가을바람 밤새도록 불어

 새벽이 희미하게 밝았도다

 초저녁에 꾼 꿈의 흔적을 보니

 잡초가 무성하게 새벽이 밝았도다.' (p.9)


1904년 경 나쓰세 소세키가 썼다는 <귀신이 곡하는 절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신체시의 일부이다. 이 절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시였다. 그리워하던 이를 떠나보내고 쓴 시일까, 사랑을 잃고 쓴 시일까, 지나는 길에 그저 빗소리와 곡소리를 듣고 쓴 시일까. 김소월의 <초혼>처럼 처절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내 기분 때문인걸까 생각했다. 죽음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가 없다. 무덤이 움직일만큼 울어도, 밤이 지나지 않도록 붙잡고 싶어도 결국 새벽은 오고 떠난 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피눈물이 흐를 정도로 미친듯이 울어서 얻을 수 있는 건 남은 이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무덤이 갈라지는 일(양산백과 축영대 설화 혹은 영화 '양축') 뿐이다. 날이 밝으면 세상은 어제와 같을 뿐, 나만 슬픔에 잠겨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환상문학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서양 작가인 찰스 디킨스나 코난 도일이 매료되었던 유령이 아니라 동양 작가인 그가 생각하는 요괴나 귀신은 어떤 존재이며, 그것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이 기담집은 총 13가지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긴 봄날의 소품>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 일부를 발췌한 장도 있다. 신체시도 있고, 짧은 이야기들이 엮어져 있기도 하고, 아서 말로리의 <아더왕의 죽음>이나 세익스피어의 <멕베스>나 <해로가>와 같은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중 <취미의 유전>의 경우 러일 전쟁 승전 후 기차역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좀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시절 때문이리라. '만세'의 의미를 생각하며,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드러내놓고 비판하지도 않으면서 친구였던 '고'를 떠올린다. 러일전쟁에서 죽은 친구 '고'와 '나'가 알지 못한 고의 여자와 고의 어머니 이야기이다. '유전'이란 단어보다는 '족보'나 '계보'가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취미로 알아 본 계보 혹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계보 추적 이야기가 좀 더 우리에게 와 닿을 것 같다. 그리고 취미라고는 하지만 결말이 제법 다정해서 기억에 남았다.


<열흘 밤의 꿈>은 말 그대로 꿈 이야기이다. 꿈에서 여인은 자신이 죽은 뒤 100년을 기다리라고 한다. 꿈에서 자신의 아이는 눈이 멀었다. 꿈에서 원수를 만나고 배에서 높이 뛰어 물로 뛰어든다. 꿈에서 100년 전에 죽인 원수를 만나고 여자에게 납치된 쇼타로를 구하지만 구하지 못한다. 꿈은 환상이고 무의식이다. 


<긴 봄날의 소품> 중 몇 가지 이야기를 발췌하여 실었는데, 그 중 '고양이 무덤'이 기억에 남았다. 살아있을 적 고양이의 신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죽고 나니 난리법석을 떠는 모양새가 쓸쓸했다. 무덤에 좋아하던 밥을 가져다 둔들, 좋아하던 장난감을 놓아준다 한들 더 이상 그것들을 먹고 놀 고양이가 없으니 말이다. 죽은 뒤에야 비로소 관심을 주었으니, 하찮은 보상을 던져주고 죄책감을 덜 것인가, 애초에 무언가를 돌본다는 자신의 모습이 흡족해서 애정을 쏟는가. 인간이란 참 이상한 생명체임이 틀림없다.


<하룻밤> 속 여인은 누구일까. 그저 개미인가, 환상인가. 수염 없는 남자와 수염 있는 남자와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여자는 같이 있었을까, 같이 있었다는 환상일까, 그저 한 명이었을까. 졸린 사람들의 중첩된 세상일까. 아니면 그저 하룻밤의 꿈일 뿐인가.


<환청에 들리는 거문고 소리>는 제법 괴담 같은 이야기이다. 무슨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과 연락이 닿지 않는 여인과 갑자기 몸이 아픈 남자와 개 짖는 소리, 그리고 할멈. 그렇게 사람은 소문과 생각에 홀리고 어쩌면 모든 것은 너구리의 짓일지도 모른다. 


<런던탑>은 나쓰메 소세키가 런던에 있을 때의 경험을 살린 이야기이다. 권력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한 구절을 불러온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렇게 에드워드 5세와 동생 리처드의 슬픈 사연이, 까마귀들의 날개짓이, 알아보지 못할 낙서를 읽어내는 여자가 저 구절과 만난다. 나쓰메 소세키가 만난 유령들은 그에게 몽환을 선사했고, 집주인은 잔인하게도 그 환상을 깨부수었다.  


<환영의 방패>는 지극한 사랑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섬기는 자가 어쩔 수 없이 주인을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배신해야 할 상대의 딸과 어떻게 사랑을 이룰 것인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그 '환영의 방패'에 답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답이 될까.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끝없이 불타오르다가도 끝없이 어둠이 이어지고 검은 연기가 자욱한 그 세계에 모든 것을 남기고. 어쩌면 윌리엄과 클라라 둘 모두를 남기고.


<해로행>은 아서 말로리의 <아더왕의 죽음>을 모티브로 쓴 글이다. '해로가'는 만가(輓歌. 죽은 이를 애도하는 시가)이다. 랜슬롯과 기네비어를 위한 만가인가, 아더를 위한 만가인가, 랜슬롯을 사랑했던 여인들을 위한 만가인가. 끝내 성배를 조우하는 임무를 자신의 아들인 갤러해드에게 빼앗긴 랜슬롯과 다음 왕을 선택할 수 있는 지위를 잃은 기네비어는 각기 다른 곳에서 평생을 참회하며 지내야 했다.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아더는 배신자 모드레드에게 치명상을 입고 모르가나가 다스리는 아발론으로 떠났다. 


<맥베스의 유령에 관하여>는 정말 말 그대로 <맥베스>에 나온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맥베스는 덩컨에 이어 뱅쿠오를 죽인 후 유령을 두 번 만나는데, 이 유령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를 말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두 번 나타난 유령이 모두 뱅쿠오라고. 확실히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며, 맥베스의 배경인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소세키 요괴 구절 모음집>은 말 그대로 소세키가 언급한 요괴글들을 모아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요괴를 만났을까? 그들이 말하는 텐구나 설녀를 만났을까? 해골을 두드려 본 제비꽃은 누구일까. 


스산하고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아 요괴에게 홀린 것인지, 소세키에게 홀린 것인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기와지붕에서 새는 빗물 소리 고즈넉하고
슬픔 가득한 내 몸에 저승의 죽은 이가 왔도다. - P7

무덤도 움직이라고 우는 소리에
무덤이 움직이고
가을바람 밤새도록 불어
새벽이 희미하게 밝았도다
초저녁에 꾼 꿈의 흔적을 보니
잡초가 무성하게 새벽이 밝았도다. - P9

아무리 큰 태산이라도 작은 카메라 속에 담기고, 수소도 식으면 액체가 된다. 목숨을 건 달콤한 사랑을 한 점에 응축시킬 수 있다면-그러나 평범한 사람에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강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윌리엄 뿐이다. - P270

무시무시한 쓰나미가 지나가자마자 닥친 장마
비 한 모금 마시고 객실을 빠져나가는 반딧불이인가 - P331

3
해골을 두드려본 제비꽃인가

9
인형 홀로 움직이는 긴 낮인가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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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4-11-17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열흘 밤의 꿈(그때는 ‘몽십야‘)라는 이름으로 묶인 단편집 되게 인상깊게 읽었었던 기억입니다. 환영의 방패도 되게 재밌었구요. 그때 그거 읽고 판타지 단편 써서 수업 과제로 제출했는데 B받고 좌절....

꼬마요정 2024-11-18 11:22   좋아요 0 | URL
음.. 교수님 많이 옛날분이셨을까나요. 저 그 판타지 단편 궁금합니다. 올려주시면 무조건 A+ 드립니다!!
 
라이프 트렌드 2025 : 조용한 사람들
김용섭 지음 / 부키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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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이어져 온 트렌드들이 어느새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은 듯. 이제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기후위기와 끝나지 않은 전쟁, 트럼프의 당선이 우리의 삶에 끼칠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거기다 AI의 영향력까지 더해 우리는 보다 개인적이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꾸려가게 될 것이다. 개인은 움직이지 않아도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면 어느새 알지 못하는 곳에 다다른다. 돌아보면 알게 될 그 곳은 어디일까.

2013년에 시작한 이 책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내 2025년에는 ‘조용한 사람’들이 욕망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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