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반 라디오 대신 DMB 라디오의 음악 방송을 자주 듣는다. 진행자의 설명도, 청취자의 사연도, 심지어 협찬 광고도 없이 (물론 정시마다 캠페인이 하나씩 방송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음악만 나오기 때문에 배경 음악 삼아 틀어놓으면 딱이다. 가끔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아예 이걸로 배경 음악을 까는 모양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한 가수의 앨범 전곡이 연이어 나오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서 팝이나 재즈나 클래식 등 장르가 바뀌기도 하니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은데, 한 가지 단점은 가끔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 나오더라도 정작 진행자나 선곡표가 전무한 까닭에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그 제목이나 가수를 알 길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궁리하다 네이버 앱의 음악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봤는데, 이게 요즘 노래는 비교적 잘 맞히는 반면에 예전 노래는 도통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한 번은 (세상에!) 아나 토렌트의 영화 <벌집의 정령>의 주제가인 듯한 노래가 나왔는데도 인식을 못해서 놓쳤다!(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까마귀 키우기>의 주제가였다!)
다행히 네이버 앱에서 노래를 인식해서 검색 결과를 정확히 내놓은 덕에 처음 알게 된 곡도 있는데, 예를 들어 신승은의 "답답함"이나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이 그러했다. 인디 가수나 언더 가수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흔히 접하지 못하던 음악이다 보니 오히려 더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네이버 앱으로 음악 검색을 하고 나면 맨 아래에 요즘 인기 있는 노래를 세대/성별로 구분해 놓은 목록이 나온다. 한 번은 거기서 뜬금없이 AK-47이라는 단어를 무려 제목으로 사용한 노래를 발견하고 의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0대에서만 압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모양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찾아서 가사까지 확인해 들어 보니, 솔직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내용까지는 없고 일종의 말장난, 또는 부조리를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힙합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단지 그 장르에서 종종 내세운다는 과시나 자랑의 일환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AK-47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신경 쓰였던 까닭은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 가운데 하나인 소련제 소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발명가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딴 정식 명칭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a)의 약자가 AK이고, 47이란 숫자는 그 제작년도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마침 나귀님은 최근에 이 무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들춰보던 참이었다. 작년에 광활한우주점에서 책을 하나 주문하려다가 배송료 지우려고 다른 책을 찾다 보니 호비스트에서 간행한 칼라시니코프 관련 화보집이 두 종이나 있었다. 마침 AK-47에 관한 단행본도 두 권이 있어서 졸지에 관련서를 네 종이나 구입하게 되었다.
사실 AK-47과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환기하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 나폴리 범죄 조직 카모라에 대한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논픽션이었다. <고모라>의 한 장에서 카모라 고위 간부들 일부가 이 무시무시한 총기를 개발한 장본인을 워낙 우상시하는 까닭에 정기적으로 값비싼 선물을 보내며 친목을 다진다는 설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AK-47의 장점은 종종 가격이 저렴하고, 조작이 손쉬우며, 고장이 드물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래서인지 범죄 조직은 물론이고 무장 반군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되어서, 한때 국제적인 문제로 주목을 받은 소년병들이 들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집으로 가는 길>의 표지에도 그 소총이 나온다).
약간 과장하자면 흙이나 물이 들어가도 멀쩡하고, 규격 외 탄환을 사용해도 발사된다니, 정말로 '흠좀무' 하다고 해야 맞겠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어깨를 나란히 한 미국의 M-16이 오작동을 줄이기 위해 틈새를 좁혀 촘촘하게 설계된 반면, AK-47은 소련의 낙후된 생산 기술을 감안해 틈새를 넉넉히 준 것이 장점이 되었다던가.
생전의 칼라시니코프는 자기가 개발한 총이 일신의 이익보다 조국의 이익에 이바지했다며 자랑스러워했던 듯하며, 간혹 그 무기의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칼도 쓰기에 따라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거나 한다'는 원론적/중립적 태도를 고수했다고 전한다. 물론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을 법하다.
다만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을 끝까지 고수했던 칼라시니코프도 매우 당황했을 때가 있었다고 전한다. 냉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서 유진 스토너를 만났을 때의 일인데, AK-47의 맞수인 M-16이 하나 팔릴 때마다 그 발명가가 대략 1달러씩 로열티를 받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자료마다 설명이 약간씩 다르다. 우선 마쓰모토 진이치의 <역사를 바꾼 총 AK47>에는 칼라시니코프가 스토너의 행운을 부러워하지 않고 끝까지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나오는 반면, 래리 캐해너의 <AK47>에는 그가 상당히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으로 이후 수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테트리스>의 발명자가 소련 출신이라서 저 게임의 세계적인 흥행에도 딱히 이득을 챙기지 못했듯, 칼라시니코프도 자신의 발명품으로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명예를 챙겼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 사후 10년이 지나 AK-47이란 노래까지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면 또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