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작가나 작품의 전집이나 세트 중에는 책등에 이미지를 집어넣어서 책장에 나란히 꽂았을 때에 장식으로서의 가치를 높인 경우가 있는데, 가끔은 고가의 한정판 말고 일반 단행본 중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사용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체홉에 관해 끄적이고 나니 범우사의 체홉 선집 역시 책등에 저자의 얼굴은 넣은 경우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책장에서 꺼내 본 김에 기념으로 사진을 한 번 찍어 올려본다. 



예전에 푸른숲에서 나왔던 김성동 소설집 역시 저자의 얼굴을 책등에 넣은 경우였기에 역시나 사진을 찍어 올려본다. 


그 외에 문학동네에서 나왔던 최인호 단편 전집도 책등에 저자의 얼굴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좀 흐릿하달까, 선명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굳이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사실은 귀찮...) 


저자의 얼굴이 아닌 이미지로는 예전에 고려원에서 나왔던 테즈카 오사무의 <붓다> 책등에 와불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라든지, 비교적 최근에 나온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에서 책등에 SF다운 이미지가 있었던 (그러나 중간부터 생겨난 것이어서 제1권 초판을 구입한 독자는 책등이 그냥 하얄 거다) 것도 기억이 나는데, 역시나 굳이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역시나 귀찮...) 


외국의 경우에는 해리 포터 신장판 박스 세트도 이런 디자인을 만드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의 책에서도 시시껄렁한 팬시용품 나눠주지 말고 책 자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많았으면 좋겠다.(하지만 결론은 또 플라스틱 쓰레기 나눠주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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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햇볕도 괜찮아 보이고 비 예보도 없기에 시트 한 장 손빨래 해서 옥상에다 널었더니 십 분도 안 되어서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걷으러 올라갔다가 물에 빠진 나귀님이 되어 내려왔다.


그래도 소금 가마 짊어지고 나가지 않은 것이 어디냐고 나름 럭키덩키를 시전하다 보니, 마치 언제 그랬느냐고 약올리는 듯 구름이 싹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햇볕이 다시 쨍쨍해진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로렌 레드니스의 책 제목처럼 "아주 기묘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같은 작가의 <방사성>을 구입하고 호기심이 생겨 덩달아 구입한 책이었다.


두 권 모두 그래픽노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만화책의 형식보다는 오히려 그림책의 형식에 더 가까워 보이므로, 차라리 성인용 그림책이라고 분류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주, 기묘한 날씨>는 제목에도 드러난 것처럼 추위, 비, 안개, 바람, 열, 하늘, 일기예보 등 날씨와 관련된 주제에다가 다양한 일화를 곁들여서 쓴 개별적인 에세이를 총12장에 걸쳐 수록했다.


감성적인 내용 대신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하여 여러 사람과 사건의 흥미로운 면모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나귀님 구미에 딱 맞는 느낌이었다. 웃음기를 뺀 빌 브라이슨이라고나 할까.


<방사능>은 "마리와 피에르 퀴리의 사랑과 결별"이라는 부제로 알 수 있듯이 퀴리 부부의 전기이며, 그 사이에 원자폭탄이며 체르노빌 같은 다른 여러 사건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방식이다.


두 권 모두 말미에 인용 출처를 정확히 표시하고 추가 설명까지 덧붙인 것을 보니, 차라리 저자가 뛰어난 글재주를 살려 본격 논픽션에 집중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귀님이 보기에는 그림책 두 권 모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그림'이란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럭키로렌쯤 되면 비난이 아니라 극찬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좋아하지 않을까...



[*] 그나저나 <방사성>은 오타도 있고 오역도 있다. <아주, 기묘한 날씨>는 번역이 무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 약력에서 저자의 전작 두 권의 제목과 부제를 뒤섞어서 <세기의 소녀, 도리스 이턴 트래비스의 생애>, <방사능과 지그펠드 폴리스의 마지막 살아 있는 별, 마리와 피에르 퀴리>, <낙진과 사랑 이야기>라고 마치 세 권처럼 옮긴 황당한 오역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자세히 뜯어 보면 또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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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에서 미쉬나 번역서를 부록 포함 전7권으로 간행한다기에 신기한 일이다 싶었는데, 나중에 다시 검색해 보니 유대교 연구자인 백석대학교 변순복 교수의 미쉬나 번역서가 역시나 부록 포함 전7권으로 간행된 상태였다. 그것도 후자는 올해 4월 출간, 전자는 8월 출간이라 불과 4개월 사이에 번역본이 2종이나 나오는 셈이다.


한쪽은 단독 번역이고 다른 한쪽은 공동 번역이지만, 애초에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없는 원저의 특성상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뚝딱 작업이 이루어졌을 리는 없고, 최소한 수년의 노력이 들어갔을 법하다. 그러니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지, 아니면 나귀님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알 길 없는 학계의 어떤 경쟁의 결과물인지 궁금해진다.


이미 갖고 있는 허버트 댄비와 제이콥 뉴스너의 영역본을 꺼내 뒤적여 보니 양쪽 모두 900페이지와 1100페이지에 달한다. 히브리어 원문까지 덧붙이면 충분히 지금처럼 전7권 3천 5백 페이지, 또는 전7권 5천 2백 페이지에 달하는 번역본이 나올 법도 해 보인다. 미쉬나만 이 정도이니 게마라까지 합치면 수십 권에 달할 듯하다.


생각난 김에 정리하자면 (나귀님도 종종 헛갈리는데) 토라(오경)에 포함되지 않은 랍비들의 구비 전승, 즉 구전 토라가 미쉬나이고, 이 미쉬나에 대한 주석이 게마라이다. 예를 들어 미쉬나에서 어떤 규례가 나오면 게마라에서는 그 규례에 대한 여러 랍비의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된다.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쳐서 탈무드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탈무드>라고 하면 마빈 토케이어라는 미국인 랍비가 저술한 책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일본에 오래 살았던 저자의 경력을 감안하면 원저 자체가 일본어로 저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 수록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아마 탈무드 가운데 게마라에 나온 일화에다가 기타 전승의 내용을 보충한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 들어 몸이 하나에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를 알려면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뿌리고 반응을 살피라는 우화를 보자. 탈무드 게마라에는 장자 대속의 규례와 관련된 예제로 샴쌍둥이에게 한 사람 값을 받을지 두 사람 값을 받을지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만, 정작 뜨거운 물을 뿌린다는 내용까지는 없다.


반면 탈무드의 기반인 미쉬나는 다양한 규례를 모은 것이다 보니 배경 지식 없는 일반 독자로서는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토케이어의 책 같은 재미를 기대했다면 더욱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앤 카슨이 인용한 "워낙에 좁아서 여러 번 해도 늘 처음 같은 암컷 영양의 음문" 비유도 미쉬나가 아니라 게마라에만 나온다.


미쉬나 자체는 여섯 권, 심지어 영역본의 경우처럼 단권에 담을 만큼 분량이 적은 편이지만, 게마라까지 합치면 상당한 분량이어서 토케이어는 탈무드를 빌려달라는 이방인 친구에게 "자동차를 가져와서 싣고 가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회고한다. 탈무드 자체가 서적 수십 권 분량이라, 그 무게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랍비만 읽는 전문 서적이다 보니, 이방인 중에는 탈무드를 일종의 마도서로 착각한 경우도 있었다. 최근 나온 나치 시대의 일상사 가운데 하나에도 '유대인은 탈무드라는 악마의 책을 본다'는 독일인의 증언이 나와서 쓴웃음을 자아내는데, 따지고 보면 탈무드를 처세서로만 여기는 우리나라의 통념도 오해이긴 마찬가지다.


탈무드를 익힌 유대인 랍비의 뛰어난 언변에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혀를 내두른 바 있다. 한 번은 그가 대중 강연을 마치자마자 젊은 보수파 유대인 랍비 둘이 찾아와 다짜고짜 물었다. "전기는 불입니까?" 유대교의 율법에서는 안식일에 불 사용이 금지되었으므로, 전기가 불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답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과학에 전통을 맞춰가는 대신 전통에 과학을 맞추려는 대놓고 시대착오적인 태도에 흥미를 느낀 파인만이 이런저런 질문으로 상대방을 모순에 빠트리려 시도했지만, 두 랍비는 수천 년의 전통을 무기 삼아 마치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잘도 빠져 달아났다고 전한다. 결국 파인만도 랍비 앞에서는 꼼짝없이 항복을 선언했다 하던가.


그나저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로 논란이 지속되는 지금, 유대교 랍비 전통의 정수인 미쉬나가 간행된다는 점은 살짝 아이러니하다. 결국 미쉬나란 기존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수 없는 각종 돌발 상황을 가정하고 유연한 해결을 모색한 결과물인 듯한데, 어째서 지금 이스라엘은 맹목적인 원칙만 고수하는 것일까.


유대인의 이방인 혐오증은 구약성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었지만, 이와 반대로 미쉬나에는 평화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가난한 이방인에게도 배려하라는 등의 유연한 조언들(예를 들어 나쉼/기틴 5.8)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이스라엘이 드러내는 오만과 탐욕이라면 미쉬나가 아니라 하느님이 와도 못 말릴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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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김민기 타계 소식을 접했다. 대학로 학전 소극장 폐관을 둘러싸고 연초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더니만, 이미 그때부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언론 보도에서 '아침이슬의 김민기' 대신 '학전의 김민기'라고 나오는 것이 낯설기도 했다. 내가 처음 접했던 시절만 해도 차마 제목을 말할 수 없었던 그 노래의 지은이로 통했으니까.


일설에는 자신의 다양한 행보가 무시되고 오로지 그 노래의 작자로만 기억되고 평가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고도 하던데, 어쨌거나 간에 '아침이슬의 김민기'는 이미 역사의 일부분이다.


그나저나 뭐든지 웬만하면 책으로 때우는 나귀님이다 보니, 김민기도 음반은 갖고 있지 않은 대신 책은 하나 갖고 있다. 그의 노래와 극본을 한데 엮은 <김민기>(김창남 엮음, 한울, 1986)이다.


김민기의 노래를 비롯한 당대의 금지곡 대부분이 풀려난 것은 딱 1년 뒤인 1987년의 6/29 선언 직후였으므로, 이 책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정작 거기 수록된 노래 대부분은 여전히 금지곡이었다.


편저자 서문을 봐도 이 책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음반 대신 노래책의 형태로 사실상 구전되던 김민기의 작품의 정확한 악보와 가사를 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첫 음반이 복각되고, 새로운 음반이 녹음되고, 새로 작곡한 곡들이 발표되는 등의 변화도 있었는데, 그런 내용은 초판으로부터 무려 35년 뒤인 2020년에 간행된 증보판에 반영된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노래보다도 오랜 세월 지켜 온 그의 침묵에 대해 더 관심이 가는데, 과연 사후에 가서는 과도한 정치색이 배제된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지 기다려 보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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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의 최초 원문 완역인 이미숙 번역본이 서울대출판부에서 1-2권만 간행되고 절판되어 아쉽더니만, 3-6권이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번역 총서로 속간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절판된 1-2권을 외면하고 3-4권부터 간행하며, 소명출판 번역 총서 디자인을 그대로 따르는 까닭에 판형과 표지도 싹 달라졌다는 점이다.


알라딘 포함 주요 서점에는 판형 정보도 잘못 기재된 것처럼 보인다. <겐지 이야기> 3-4권은 152x223cm라고 나오지만, 기존 총서 디자인을 따랐다면 152x232cm일 것이다. 소명출판 총서로 나온 <역주 악서 6>은 152x232cm, <알무타납비 시 선집>은 152x223cm라고 나오지만, 나귀님이 직접 재 보니 양쪽 모두 152x232cm였기 때문이다. 


서울대출판부의 <겐지 이야기> 1-2권이 152x223cm이니, 소명출판의 <겐지 이야기> 3-6권과 나란히 꽂으면 높이 차가 1센티미터나 되고, 디자인도 달라 상당히 볼품없어질 것이다. 예전의 학술진흥재단(한국연구재단의 전신) 번역 총서는 출판사가 달라도 판형과 표지를 통일시켜 그나마 나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출판사마다 제멋대로다.


이런 식의 일관성 없는 총서/전집 간행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예를 들어 지난번에 나귀님이 언급한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을 보라) 이번 사례는 총서/전집도 아닌 작품 하나를 쪼개면서도 들쑥날쑥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받을 만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연구재단 번역 총서에서 이런 사례가 처음까지도 아니란 점이다.


예를 들어 에드먼드 스펜서의 <선녀 여왕> 전6권도 1-2권이 나남, 3-6권이 아카넷에서 나오면서 판형과 표지가 달라졌다. 세창출판사에서 나온 짓펜샤 잇쿠의 <동해도 도보 여행기> 1-2권도 실제로는 원저 3-8권만의 번역이고, 원저 1-2권은 해당 번역자가 소명출판에서 먼저 간행한 <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에 있어서 따로 사야 한다.


물론 번역자의 사정이며 출판사의 사정이며 기타 등등의 사정으로 인한 변경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관계자 누구도 독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았다는 점은 꽤나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운동화 한 켤레를 주문했는데 제작사의 사정으로 사이즈와 디자인이 변경되었다며 짝짝이 물건이 도착하면 기분이 어떻겠나?


어떤 면에서는 한국연구재단 번역 총서가 이름 그대로 상업 출판이 아니라 세금 먹는 묻지마 출판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즉 지원금을 받은 대가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우선이지, 번역이나 편집의 품질이라든지 나귀님 같은 하찮은 독자놈의 기분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봐야 맞을 것도 같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귀님으로선 책을 이따위로 망쳐 놓은 관계자들에게 부디 평생 쇼핑 망하라는 악담이나 남기고 싶다. 예를 들어 운동화 한 켤레건 양말 한 켤레건 간에, 사는 물건마다 항상 짝짝이로만 배달되길 기원하고 싶은 것이다. 기껏 책을 사고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 독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그 정도는 겪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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