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던 장마가 되돌아오기 직전, 무려 35도에 달하는 무더위 속에 에어컨도 없는 집구석에 앉아 있노라니, 지금이야말로 <파리, 텍사스>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영화도 진즉에 봤고, 음반도 여름마다 챙겨 들었지만, 샘 셰퍼드의 대본을 영한대역으로 간행한 번역서는 오래 전에 사다만 놓고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폭우가 쏟아지기에 뭔가 또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 싶더니만, 습기를 먹어 여기저기 무너진 책더미를 수습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무더위가 돌아와서 다시 한 번 그 영화와 음반과 대본 이야기를 하기에 제격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가능하다면 오래 전부터 벼르던 '나스타샤 킨스키 5종 세트' 이야기까지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가장 의아한, 그렇기에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은 바로 그 제목일 것이다. 이건 미국의 지명 표기법에 따라 "텍사스 주 파리"를 나타내는데, 영화에서는 가정 파탄 이후 홀로 떠돌아다니던 주인공이 바로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 땅을 사 두었던 것으로 언급된다. 정작 실제로 나오지는 않는 그 실존 지명이 맥거핀 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 표기에 대해 설명하려고 보니, 문득 이와 유사하게 제목을 번역한 미국 소설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로 셔우드 앤더슨의 연작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인데, 이것 역시 "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라는 가공의 마을을 가리킨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줄곧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귀님도 각별히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번역서도 여러 권 갖고 있는데, 혹시 새로운 번역이 더 나왔나 궁금해서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 선집이 최근에 나온 모양이다. "숲속의 죽음"과 "계란"처럼 여러 차례 이런저런 단편 선집에 수록되었던 작품뿐 아니라, 나귀님도 처음 보는 작품들이 여럿 들어 있으니 흥미로워 보인다.


그런데 새로 나온 번역서에서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표지다! 앞표지에는 글자 장난질만 쳐 놓았고, 제목과 저/역자명 같은 필수 정보는 뒤표지에만 들어 있으니, 혹시 제작 과정에서 실수로 앞뒤가 바뀌기라도 한 것은 아닌가 궁금할 지경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나귀님 혼자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 내친 김에 셔우드 앤더슨의 장편 번역서 두 권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보았다. 양쪽 모두 분량이 많지 않다 보니 다른 작품과 함께 수록되는 바람에 골수 팬을 제외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법하다. 여하간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이외의 작품이 오랜만에 나왔으니 반갑기는 반가운데, 도대체 저놈의 표지는 왜...


(1) 가난한 백인 농부(Poor White, 1920):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외)>(셔우드 앤더슨 지음, 한명남 & 김병철 옮김, 주우세계문학 39, 주우, 1982) 수록.


(2) 어두운 청춘(Dark Laughter, 1925): <인간희극 / 어두운 청춘>(윌리엄 서로이언 & 셔우드 앤더슨 지음, 이호성 옮김, 세계문학전집 8, 을유문화사, 1964 초판; 1976 14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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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물론 제목부터 낯간지러우니 나귀님으로서는 굳이 볼 이유가 전혀 없는 작품이기는 한데 (차라리 그 시간에 <마법소녀를 동경해서>를 한 번 더 보겠다!) 인터넷과 유튜브는 물론이고 뉴스에서도 다들 그 이야기뿐이니 자연스레 귀동냥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유튜브 쇼츠로 본 장면 중에서도 한 가지만큼은 상당히 흥미로웠으니, 바로 한국 민화의 내용을 재해석했다는 까치와 호랑이 캐릭터였다. 특히 퍼런 몸뚱이에 누런 안광으로 사뭇 위협적이게 등장했다가 어째서인지 얼빠진 행동만 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우스웠는데, 민화의 해학적인 묘사처럼 퉁방울 눈과 뻐드러진 송곳니 때문에 해외에서도 인기라고 한다.


이쯤 되니 문득 까치호랑이 민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고 할 법한 작품을 발굴한 사람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를 오랜만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00년에 타계한 민속학자 조자용이 바로 그 사람인데, 이전부터 민화와 민속에 대한 연구로 종종 이름을 접했지만 자세한 이력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어느 일본인의 책을 통해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한국의 마지막 표범>이다. 저자 엔도 키미오(遠藤公男, 1933년생)는 분단 상황에서 각각 북한과 남한에 머무르며 철새를 연구하다 서로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된 조류학자 원홍구와 원병오 부자의 이야기를 다룬 <아리랑의 파랑새>의 저자로도 유명하고, 최후의 한국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한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도 저술했다.


그중 표범 책은 호랑이에 비해 줄곧 폄하되던 저 맹수가 1960년대까지도 나타났다는 기록을 접한 저자가 1980년대에 한국을 직접 방문해 관련 장소와 인물을 취재하는 과정을 그렸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조자용의 도움을 얻어 1965년 표범을 포획한 사람을 직접 만나러 가는 내용을 다루었는데, 이 과정에서 저 민속학자의 이력이 자세히 소개된다.


조자용(1926-2000)은 이북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남해서 미군 부대의 하우스보이를 거쳐 미국에 유학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귀국해서 건설회사 대표로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그러다 하루는 취미인 골동품 수집을 위해 시내 고물상에 들렀다가, 당시 초등학생인 딸 에밀레가 구석에 놓인 까치호랑이 민화를 마음에 들어 해서 사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히 구입한 물건이 오늘날에는 까치호랑이 민화 중에서도 최고작으로 손꼽히게 되었으니, 초등학생 어린이의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해야 할 법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에밀레는 불과 열두 살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머지않아 조자용도 건강 악화로 사업을 정리하고 딸의 이름을 딴 '에밀레 박물관'을 설립하여 민속학 연구에 몰두했다 한다.


1967년에 조자용이 발굴한 까치호랑이 민화는 이후 '에밀레박물관 소장품'으로 알려졌지만,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어느새 '호암미술관 소장품'으로 소장처가 바뀌었다. 2000년을 전후해 조자용 부부가 모두 타계하고 박물관도 문을 닫으며 매각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최초 발견자인 '에밀레'의 이름과는 연관성이 없어져 살짝 아쉽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나귀님도 수년 전 엔도 키미오의 책을 통해 조자용의 이력을 알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박물관도 폐관하고 저서도 절판되어 더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최근 다시 살펴보니 그 사이에 <조자용 전집>도 간행되고, 인터넷에도 관련 추모글과 연구 논문이 여럿 게시되었기에 반가웠지만, 까치호랑이 발굴 비화는 없는 듯해 아쉬운 마음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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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더미를 뒤지다 보니, 지난번에 사다 놓은 아도르노의 <신극우주의의 양상>이라는 얄팍한 책이 나온다. 제목이 그럴싸해 보여서 혹시 최근의 한국 상황에 대입해 볼 만한 내용이 나오는지 궁금해 뒤적여 보았는데, 원래 1967년의 강연을 재간행한 것인 데다, 역사적 맥락이 다른 까닭인지 충분히 아전인수할 만한 내용까지는 찾지 못해서 유감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조금 뒤적이다가 식탁에 놓아 두었더니, 바깥양반이 약속 있다며 밖에 나가면서 '오, 아도르노' 하고 냉큼 집어가기에, 나중에 들어오면 무슨 내용이더냐고 물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이후로 며칠이 지나도록 가방에 넣고 돌아다니기만 하지 정작 펼쳐보지는 않은 모양이어서 아쉬웠다. 혹시나 싶어 다시 뒤적여도 역시나 딱히 마음에 드는 구절은 없었다.


아도르노며 벤야민이라면 한때 바깥양반이 이것저것 뒤적여 보던 모양인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솔직히 그걸 한 번 보고 제대로 다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문화적 차이이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가 어느 글에서 호프만스탈을 언급하고 지나갔을 경우, 그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호프만스탈 책을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니.


그나마 호프만스탈은 유명 작가이니 미미하나마 번역서가 있기라도 하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도통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두루뭉실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건 독자뿐만 아니라 번역자도 마찬가지여서, 애초부터 번역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문장이라면 독자로서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도르노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유독 많았던 듯하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의 비교적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미니마 모랄리아>의 경우, 우리말 번역본은 최문규(2000)와 김유동(2005)의 2종이 있지만, 둘 중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어서, 종종 문맥을 따라가는 것조차도 벅찬 흔적을 보여준다. 예전에 바깥양반 어깨 너머로 훔쳐보다 발견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테오도르 슈토름의 소설을 인용한 다음 구절이 있다.



미니마 모랄리아(224쪽): 


"'같이 걸을래, 리자이?' 그녀는 검은 눈으로 나를 못 믿겠다는 듯 쳐다보았다. '걷자고?' 그녀는 느리게 대꾸했다. '그래.' '왜 그래, 어디 가려고?' '천 가게에! 너 새 옷 사고 싶지 않니?' 나는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가, 그냥 내버려 둬!' '아니, 단지 천 조각, 천 조각만 리자이!' '물론, 인형을 입힐 천 조각만, 그건 비싸지 않을 거야!'"



한줌의 도덕(238쪽):


"'리자이, 산책할까?' 그녀는 까만 눈으로 나를 못 믿겠다는 듯 쳐다보았다. '산책하자고?' 그녀는 느린 말투로 반복했다. '정신차려! 도대체 어디로 갈려구?' '엘렌크람머로! 너 새 옷 사고 싶지 않니?' 나는 바보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소리내어 웃었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둬! - 아니야, 그냥 헝겊 조각만 사지!' '헝겊 조각을, 리자이?'" - '물론이지! 인형을 입히기 위해서는 헝겊 조각만으로 족하지. 그것은 비싸지 않을 거야!'"



아무리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해당 구절의 출처라는 슈토름의 소설 <폴란드인 포펜스펠러(Pole Poppenspäler)>의 독일어 원문을 찾아서 내용을 확인해 보니, 양쪽 모두 화자와 대사를 잘못 연결해 놓은 경우에 해당했다. 알기 쉽게 두 사람의 대사를 희곡처럼 배열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꽁냥꽁냥 대화였다.



소년: 같이 좀 걸을래, 리자이?

소녀: 걷자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소년: 너 어디 가는 건데?

소녀: 천 가게에!

소년: 너 새 옷 사려고?

소녀: 가, 귀찮게 하지 말고! 하여튼 그건 아니야, 단지 천 조각만 사려는 거지.

소년: 천 조각만, 리자이?

소녀: 물론, 인형 옷 만들 천 조각만, 그건 비싸지 않을 거니까!



결국 김유동 번역은 문맥을 완전히 놓쳤고, 최문규 번역도 일부 문맥을 놓쳤기 때문에 오역이 나오고 말았다. 물론 리자이가 인형 옷을 사건 강아지 옷을 사건 아도르노의 전체 주장, 또는 사상을 허물어트릴 만큼 중대한 실수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문제는 아도르노의 문장에서 이런 인용이나 언급이 빈번하다 보니, 번역자의 헛다리도 빈번하게 나온다는 거다.


그러니 기껏 번역서를 한 권 읽고 나서도 과연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건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 제목을 김유동과 최문규 모두 "순교자의 소나타"라고 오역했는데, 그 제목의 유래인 베토벤의 2중주는 원래 프랑스의 바이올린 연주자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한 작품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듯 "크로이처 소나타"라고 해야 맞다.


음악에 문외한인 독자가 읽었다면, 혹시 어느 순교자에 대한 종교 음악인가 하고 오해하지는 않을까. 결국 번역자의 한계로 인해 독자의 한계가 자연스레 생겨난 셈이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일단 아도르노를 제대로 이해하는 번역자/연구자가 나온 다음에나 독자도 그 혜택을 입을 법하니, 당분간은 두 권 모두 절판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상책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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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책이 새로 나온다기에 오랜만에 지적질하러 들렀다가, 알라딘 광고에서 <헬터 스켈터>라는 책을 발견했다. 만화는 이미 나왔으니 혹시 '그 책'인가 싶어 클릭해 보니, 정말 맨슨 패밀리에 관한 논픽션이었다. 예전에 어느 헌책방에서 페이퍼백 원서를 구입하며, 이런 책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번역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내용까지는 아닌 데다,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책이니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 제법 시간이 걸렸을 법한데, 과연 무슨 이유에서 이 책을 간행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몇 년 전에 타란티노 영화에 맨슨 패밀리가 나왔다고 하던데, 그때 맞춰 나오려다 사정상 밀린 것인지, 아니면 영화나 기타 이슈와는 별개로 기획된 결과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또 출판사가 '글항아리'이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번역과 편집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출판사이니, 이번 책에 대해서도 반가움보다는 아쉬움, 또는 의심이 앞서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수전 손택의 책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던 '이후'도 글항아리와 유사하게 기획에는 뛰어나지만 번역과 편집, 심지어 제본마저 허술했다는 거다.


짐작컨대 <해석에 반대한다>를 구입한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커버는 너무 얇아서 군데군데 찢어지고, 하드커버의 책등과 면지를 연결하는 부위의 천도 너무 얇아서 본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까닭에 '겨드랑이 터진' 꼴이 되고 말았다! 오타와 오역의 경우에는 손택의 일기 두 권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서도 특히 두드러졌다고 기억한다.


손택의 번역서는 이제 이후에서 간행을 포기한 모양인지 월북으로 옮겨서 재간행되려는 모양인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번역과 편집이 뛰어난 출판사까지는 아니다 보니, 북펀드 페이지에 올라온 저자의 약력에서부터 오류가 들어 있다. 아직 책이 나오지는 않은 모양인데 과연 그대로 간행될지, 아니면 뒤늦게라도 실수를 알아채고 수정할지 기다리며 지켜봐야 되겠다.


대신 미리보기로 살펴본 <헬터 스켈터>에 대해서는 오역을 하나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토요일 동이 틀 때까지 집 안에서는 다른 소리들이 들렸다"(16쪽)라는 문장인데, 범행 당시 총소리와 비명을 들은 사람도 많았지만 출처를 알지 못했다는 설명 중에 갑자기 "집"이라 하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원문을 살펴보니 "시간"(hours)을 집"(house)로 오독한 듯하다. 


물론 사소한 오역일 뿐이다. 설마 이거 하나 틀렸다고 해서 저 두꺼운 책에서 구구절절 설명된 맨슨의 악행을 선행으로 잘못 이해할 독자는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나귀님이 새로 나온 책을 직접 들춰보기도 전에 품은 의심, 즉 글항아리에서 이미 간행한 이전의 책들에서 나타났던 오류를 토대로 생겨난 불신도 어느 정도 정당화되지 않을까 싶다.



[*] 나귀님이 수집한 맨슨 패밀리 관련 자료 중에는 샤론 테이트의 부검을 담당한 일본계 미국인 검시관 토머스 노구치의 회고록도 있는데, 제목은 살짝 낯간지럽게도 <마릴린 먼로는 죽어서도 아름다웠다>(토마스 T. 노구찌 지음, 정해경 옮김, 무당, 1995)이다. 저자는 담당 구역에 할리우드가 포함된 관계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의문사한 유명 연예인 다수를 부검하는 특이한 이력을 쌓게 되었는데, 저 유명한 마릴린 먼로를 비롯해서 존 벨루시, 재니스 조플린, 윌리엄 홀든, 나탈리 우드가 대표적이었다. 먼로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사망 원인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다 보니 노구치 역시 원치 않은 주목을 받았던 모양인데, 나중에는 본인도 이런 반사적 광영을 즐기게 된 모양인지 홀든과 우드의 의문사 원인에 대해 언론에 언급했다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나. 언제 돌아가셨나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1927년생, 현재 98세로 아직 살아 계시다기에 신기한 일이다 싶어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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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인가, 알라딘에서 '멤버십 등급 유효기간이 7일 남았다'면서, 플래티넘 자격을 유지하고 싶으면 물건을 얼마어치 더 사라는 통보 문자가 날아왔다. 필요한 책이야 늘 장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으니 언제든 주문하면 그만이지만, 이상하게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하다 보니 결국 다음 주부터는 알라딘 회원 등급이 플래티넘에서 일반으로 떨어졌다.


구매 이력을 살펴보니 알라딘에 가입해서 첫 주문은 2001년이었고, 이후 매년 서너 차례 정도만 주문하다가, 2008년에 중고샵이 생기면서부터 말 그대로 하루 걸러 한 박스씩 주문하면서 등급이 오른 듯하다. 중고샵 개장 이후로는 한 번도 플래티넘 등급에서 내려온 적 없는 나귀님이니, 자그마치 17년 만에 (햇수로는 18년인가) 일반 등급으로 내려오는 셈이다.


등급 하향의 이유는 알라딘 통보 문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구매액이 크게 줄어서, 3개월 합산 30만 원이라는 플래티넘 자격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간에 비싼 책들을 몇 권 샀기 때문에 20만 원 기준 골드 등급이나 10만 원 기준 실버 등급은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적립금으로 결제한 것은 구매액으로 치지 않는 모양이어서 급전직하를 겪게 된 듯하다.


구매가 줄어든 까닭은, 뭐, 작년 이맘때 쓴 글에서 구구절절 적어놓은 바와 다르지 않다. 우선 최근 들어 알라딘 중고 물품이 '가격은 업, 품질은 다운' 추세이다 보니 딱히 장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설상가상 중고 상품 품질 문제 때문에 고객센터에 항의하는 등의 우여곡절까지 겪다 보니, 이제는 아예 안 사고 마음 편한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기 때문이다.


고객센터에 마지막으로 항의한 내용도 진짜 웃긴다. 우주점에서 '상급'인 책을 하나 구입했는데 하드커버의 겉표지가 없었다. 품질 판정 기준에 따르자면 겉표지가 없으니 '중급'인데, 애초부터 그렇다고 표기했으면 나귀님으로서도 굳이 살 이유까진 없는 책이었다. 결국 알라딘 측의 과실이므로 무료 반품을 신청했더니, '그건 표지가 아니라 띠지'라면서 거부한다!


띠지란 수상 실적이나 영화 개봉 같은 홍보 사유가 있을 때 추가하는 부속품인데, 문제는 해당 도서의 겉표지가 띠지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표지 역할을 하는 '띠지형 표지'라는 점이다. 당장 그 종이를 벗기면 바코드도 없어져 구매조차 불가능한데, 그게 '띠지형 표지'이지 어떻게 '표지형 띠지'냐는 것이 나귀님의 주장이었지만, 고객센터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갑론을박을 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어 문득 '현타'가 왔다. 알라딘에서 툭하면 들먹이는 핑계마냥 중고 책의 품질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품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생길 때에도 이를 감안해서 유연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터인데, 지금의 알라딘은 오로지 정해진 시스템 내에서만 해결하려 하니 융통성이라곤 없다.


1만 원짜리 배달 음식을 팔아도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군소리 없이 환불하는 것이 대세라는데, 알라딘은 무려 2만 4천 원짜리 물건을 잘못 팔아 놓고 2천 5백 원 반품 비용을 부담하기 싫어 자기네는 잘못이 없다며 발뺌한 셈이다. 나귀님이야 반품 요청도 기껏해야 연간 서너 번 수준이고, 그나마도 이번처럼 뭔가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니 악질 고객도 아닐 텐데.


역시나 배달 음식에 비유하자면, 식당 잘못으로 환불하는 상황에서 배달비 2천 5백 원을 물어주기 싫어서 발뺌하다 고객이 영영 발을 끊게 했다면 과연 현명한 걸까? 문제의 고객으로 말하자면 2만 4천 원짜리 메뉴를 매일 한 번씩 무려 17년간 꾸준히 시킨 호구인데도 말이다! 설령 억울한 면이 있어도 그냥 물어주고 손님을 붙잡는 게 식당에도 낫지 않았을까.


결국 나귀님은 문제의 책 반품 비용 2천 5백 원을 직접 부담하고 차액만 환불받았으며, 그때 이후로는 알라딘 중고 물품 구매 시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자칭 '상급'이어도 품질을 장담할 수 없고 환불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중급'은 사실상 '품질무보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보니, 가뜩이나 중고 판매가도 오르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구매도 줄어들었다.


물론 구매를 줄였어도 꼭 필요한 책은 구입하다 보니 플래티넘 회원 자격도 '알라딘과 헤어질 결심' 이후 무려 1년 넘게 지속되었지만, 예전처럼 당장 긴요하지 않아도 싼 맛에 한두 권씩 더 고르는 중고샵 특유의 소비 패턴에서는 확실히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사고 싶은 책이 있어도 가격이나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망설이다가 결국 놓치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알라딘의 회원 등급이 오른다고 해서, 그 명칭의 유래인 귀금속마냥 휘황찬란한 혜택이 따라오는 것까지는 아니다. 예전에는 더 많았던 혜택이 점차 줄어든 것인지 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신간 도서, 극장, 커피 할인 쿠폰뿐이라서 나귀님처럼 새책 안 사고 영화 안 보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알라딘 회원 등급제도 사실상 유명무실하지 않나 싶다. 마치 '최상급'과 '상급'과 '중급'의 가격 차이가 기껏해야 2백 원 남짓이라 역시나 유명무실해진 알라딘 중고 품질 등급처럼 말이다. 알량한 쿠폰 할인 대신 무료 반품이나 받아주었더라면, 하다못해 충분히 일리 있는 이의 제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더라면, 나귀님도 지금처럼 불매까진 안 갔을 텐데!


물론 알라딘 입장에서야 나귀님 같은 잔챙이 손님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26주년 구매 기록으로 다시 살펴보니, 그간 나귀님의 구매액은 (앞서 말했듯이) 하루 평균 2만 4천 원쯤에 불과했으니까. 월간 1백만 원도 못되고, 연간 1천만 원도 못되며, 구매 회수 역시 "백만 번 산 고양이"에 비하면 딱히 많이 산 것까지는 아닌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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