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 피곤해서 일찍 자겠다며 자리에 눕기에 옆에서 스탠드 켜 놓고 엎드려 책을 보는데, 잠을 자기는커녕 또 휴대전화로 무슨 미드를 보고 있다. 그것도 고함과 욕설과 비명과 쿵쾅쿵쾅 삐융삐융 소음이 요란해서 잠이 오기는커녕 싹 달아나야 맞겠다 싶은 것을.


뭐냐고 물었더니 <주노> 아이가 나오는 무슨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지난번에 얼핏 보니 무슨 말하는 침팬지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는 황당무계하고도 피칠갑하는 작품이던데, 잠잘 거라면서 그런 흉칙스러운 드라마를 잘도 보고 있구나 싶어 한심했다.


잠시 후에는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오기에, 혹시 그거 지금 배경이 1980년대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지금도 종종 라디오에서 나오는 명곡이기는 하지만 발표 당시의 연도는 1980년대 중반이었으니, 혹시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장치인가 싶었던 거다.


내가 들은 노래는 카트리나앤드더웨이브스의 "워킹온선샤인"이다. 당시의 많은 팝송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예전에 <쇼비디오자키>에서인지 DJ 김광한이 해외 신곡이라면서 그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도 좋았지만 뮤비도 꽤 인상적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노래가 시대 배경을 설명한 경우라면, 지난번 바깥양반이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에 나온 노래를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결혼 전 썸 타던 시절이었는데, 돈까스를 먹었나 어쨌나 하는 대목에서 흐르던 노래가 11월의 "착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11월"은 밴드의 이름이다. "착각"과 "머물고 싶은 순간"이라는 노래로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 연주하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중간에 서남용 비슷한 외모의 멤버가 한 명 있었던 것이 이채로웠다) 지금 확인해 보니 2집까지만 내고 해체해 사라진 모양이다.


"착각"은 1990년에 나온 곡이니 <무빙>에서도 아마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만난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귀님이야 그때도 바깥양반이 옆에 누워 휴대전화로 보던 드라마의 소리만 듣고 있었으므로 구체적인 맥락까지는 잘 모르지만.


<무빙>은 다음 웹툰에서 연재할 때에 완결까지 꼬박꼬박 챙겨보았는데, 강풀의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설정 면에서 제법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후의 후속작이나 다른 작품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라마로 각색되면서는 몇 가지 설정과 인물을 추가한 모양인데 (그중에는 헌책방 사장님도 하나 있었나 그랬다) 나중에 전체 줄거리 요약본을 살펴보니 그냥 군더더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제법 인기를 끌어서 디즈니 채널 가입자가 상당히 늘어났다니 묘한 일이다.


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착각"을 부른 밴드의 이름이 "11월"인 것은 바로 그 달에 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바깥양반이 <무빙>을 보던 때가 봄이라서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듣던 차였는데, 봄이 한창인 5월에 듣는 11월의 노래라 생각하니 희한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1월이라 겨울의 문턱에 가까워졌다. 벌써 열 달이 지나갔는데 올 한 해도 딱히 한 것 없이 어영부영 보내는 것은 아닌가 자책만 들고 있다. 이렇게 또 쓸데없는 글을 써서 수요 없는 공급을 하느라 시간과 전기만 낭비하면서 말이지...



[*]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11월"이라는 동명의 인디 밴드도 있던데, 위에서 언급한 "11월"과는 다른 밴드로 보인다. 여하간 내가 아는 "11월"의 음반은 1집과 2집을 합친 편집본만 등록되어 있는 듯한데, 이거... 예전에 나왔을 때 해당 가수들의 동의 없이 음반사에서 멋대로 나온 편집본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그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 전집을 상당히 싸게 팔았는데도 굳이 사지는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거라도 사 놓을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하다. 물론 아쉬운 대로 유튜브에 가 보면 "11월"의 1집 음반을 누군가 올려놓은 것이 있기는 하다마는...



[**]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인지 구스따보 구띠에레스인지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결국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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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프랑시스 퐁주의 시집이 알라딘 중고로 올라와 있기에 살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은 한 달쯤 전에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중고 영어책이 하나 있는데, 배송비 내기가 아까워서 차일피일한 참이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함께 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구매하려고 보니 두 권 합쳐도 2만 원이 넘지 않아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절판본이어서 중고로 구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11월 쿠폰도 나오고 했으니 배송비 내고 구입해 버릴까 싶기도 했고...


혹시 함께 구매할 만한 무슨 만화책이나 그런 저렴한 중고가 있나 검색하다 보니, 웬일인지, 이번에는 에마누엘 레비나스 전집 가운데 한 권이 역시나 알라딘 중고로 올라와 있다. 예전 같으면 덥석 구입했겠지만, 요즘은 알라딘 중고에 어지간한 놈이 나와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며 심드렁한 상태이니 마음이 크게 동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레비나스라면 나보다 바깥양반이 더 열심히 읽은 저자인데, 그나마도 최근에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모양이니 굳이 사야 할까...


그래도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사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게 헌책방의 불문율이니, 세 권 합쳐 3만 원에 육박하여 원래 생각한 2만 원대를 훌쩍 넘기는 상황임에도 일단 로그인이나 해 볼까 하다가, 먼저 화장실 갔다 오고, 누가 와서 초인종 눌러서 나가 보고, 왜 아직 안 나가느냐고 바깥양반에게 잔소리 하고 기타 등등을 하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퐁주와 레비나스 모두 다른 누군가가 이미 구입해서 품절 상태였다. 살짝 아쉬우면서도 오히려 시원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프랑시스 퐁주의 시집을 굳이 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의 시를 담은 번역서를 서너 권쯤 갖고 있기는 한데, 딱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타성적으로 구입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솔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가운데 한 권을 맨 처음 샀던 것 같은데, 사실은 워낙 책이 안 팔리다 보니 영풍문고에서 재고를 할인하기에, 이건 또 뭔가 싶어 궁금한 김에 싼 맛에 하나 구입했을 뿐이었다. 한 번 구입하고 보니, 오, 이건 아는 사람이다 싶어 다른 중고도 구입했고...


중고 서적 중에는 워낙 많이 팔려서 흔한 것도 있지만, 거꾸로 워낙 안 팔려서 흔한 것도 있는데, 내 기억으로 프랑시스 퐁주는 한때 후자, 즉 중고보다는 처치곤란의 재고 취급을 받는 저자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앞서 말한 솔의 세계시인선 중에서는 미겔 에르난데스,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니카르노 파라 등이 재고 떨이 판매 코너에서 퐁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은 이미 다 팔렸는지 찾아볼 수 없었고...


이번에 놓친 책은 제목이 <사물의 편>이었는데, 제목이 비슷하다 싶어 지난번에 랭보 전집 꺼내면서 이것저것 꺼내 찍은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청하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가운데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읻다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책이 금방 절판되고 또 금방 재간되고 하던데, 확인해 보니 <사물의 편>도 오늘 본 것은 초판본이 아니라 표지가 달라진 재판본 정도 되는 모양이다. 조만간 삼판본도 기대해 볼 법하겠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알라딘 구매가 뜸한 이유는 (막상 쓰고 보니 살짝 찔린다. 어제 영등포점에서 구매하여 배송된 롬브로소와 로티 번역본과 구텐베르크 시대 서적 유통에 관한 번역본이 뒤늦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것도 4만 원 가까이 되는 가격이어서 살까말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 최근에 신용카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제휴 카드의 사용 기한이 만료되면서 새로 발급받으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존 제휴 카드는 대부분 발급이 중단된 상태이다 보니...


결국 자주 가는 은행에서 그냥 아무 카드나 하나 발급받아 쓰고는 있는데, 예전 카드처럼 간편결제를 쓰려고 하니 뭘 또 휴대전화로 앱을 깔아서 인증을 하고 뭘 누르고 하라기에, 에이, 그냥 쓰지 말자, 귀찮다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다 보니, 결국 신용카드 쓰는 게 복잡해지고 귀찮아져서 자연스레 알라딘 구매도 줄어든 셈이다. 마트나 다이소에 가면 기계에서 계산하니 오히려 편한데, 이놈의 휴대전화 앱 인증인지 나발인지는 그저 복잡하고 귀찮아서 웬만하면 기피하게 된달까...


여하간 알라딘 제휴 카드가 줄줄이 사라지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회원에게 주는 혜택도 슬금슬금 사라지는 것 역시 어떤 쇠퇴의 징후는 아닐까 싶기도 한데, 중고 물품 가격을 슬금슬금 올려서 결국 나귀님 빡치게 만든 것도 결국에는 비슷한 맥락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겠다. 그 와중에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은품이라는 미명으로 만들어 적립금 받고 팔아먹는 것을 보면, 현재의 알라딘이야말로 책 판매하는 것 빼고는 다 잘 한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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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안전 점검 나왔다고 전화가 왔기에 들어오시라 해서 부엌으로 안내하고, 늘 그렇듯이 집안이 지저분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서 마루에 나가 있었더니, 마침 틀어 놓은 뉴스에서 배우 김수미의 사망 소식이 나왔던지 점검원이 문득 '김수미 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한다.


그렇잖아도 일찌감치 바깥양반에게 문자로 소식을 들었는데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나귀님이었는데, 점검원 양반 말을 듣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꽤 충격을 받았던 모양인가 싶었다. 일단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최근 건강 이상설도 있었다고 하니 크게 이상한 일까지는 아닐 텐데.


한편으로는 나귀님이 그 배우를 각별히 좋아하지는 않아서일 수도 있다.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이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튀는 역할을 많이 맡게 되고, 나중에 예능에 진출하면서는 노골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내세우다 보니, 어느새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닐지.


워낙 튀다 보니 김수미라면 주연 잡아먹는 조연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 영화 첫 주연작으로 기록된 <화순이> 역시 <새아씨>라는 MBC 드라마에서 동명의 조연, 즉 주인공 곁을 지키는 주책바가지 몸종으로 나왔다가 폭발적 인기를 끌어 제작된 일종의 스핀오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유명한 배역인 <전원일기>의 일용이 어머니 역시 상당히 튀는 인물이었다고 기억한다. 드라마에서는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심술궂은 행동으로 뭔가 실수를 저지른다거나, 또는 소문을 퍼트린다거나 해서 매번 문제를 만들어내거나 악화시키는 역할을 종종 담당하지 않았나 싶다.


김수미라면 의외로 서점과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년 전인 2003년에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에 '일용엄니책방'을 개업했기 때문인데, 기사를 검색해 보니 본격적인 서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북카페였던 모양이다. 종종 그 앞을 지나며 광고 현수막을 본 기억이 난다.


서갑숙과 박원숙을 필두로 연예인의 고백 에세이가 인기를 끌던 시절에 김수미도 비슷한 책을 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알라딘에는 중고로만 등록되어 있을 뿐이다. 대신 요리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을 개작한 듯한 요리책이 여러 권 나와 있으니 어엿한 저자라 해도 무방하겠다.


다만 말년에 들어서는 연기보다는 다른 활동이 빈번해지며 종종 구설수에 올랐으니 안타깝다. 특히 식품 사업에 관여했다가 품질 관리 실패로 두고두고 악평을 얻으면서 좋은 이미지가 많이 깎여나갔는데, 동료 배우인 김혜자가 도시락으로 신조어까지 생기며 추앙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딱 한 번 김수미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고 느꼈을 때도 있었다. <전원일기>의 한 회에서 김회장네 먼 친척 조카인지 사돈인지 하는 남학생이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시무룩한 상태로 머리를 식히러 시골을 찾아왔는데, 마침 일용 엄마가 옛 기억을 돌이키며 늘어놓는 긴 독백을 듣게 된다.


쉽게 말해 아이 딸린 과부가 먹을 것이 없어서 누가 버린 술지게미를 주워 먹었는데, 나중에는 모자가 술에 취해 '에미도 비틀비틀, 새끼도 비틀비틀' 하는 웃픈 광경이 펼쳐지게 되었다는 거다. 드라마는 이런 격려 아닌 격려를 들은 남학생이 심기일전해 시골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전원일기>에서 역시나 추레하게 나왔던 김혜자와 고두심이 훗날 다른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 반전 매력으로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간 반면, 김수미는 탁월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화순이와 일용 엄마 같은 감초 역할로만 소모되다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문득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고인의 최근 건강 악화는 뮤지컬 <친정엄마>의 출연료 체불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라 한다. 본인은 <전원일기> 못지않은 대표작으로 여겨 애착을 보였다지만, 결국 연기에 대한 열성이 오히려 최후를 앞당긴 셈이니 아이러니하다. 인생은 무엇이고 연기는 또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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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무슨 국내 저자 책이 표절이라 해서 절판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는데, 뒤늦게 궁금해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 돌베개에서 2023년 7월에 간행한 윤여일의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라고 나온다. 


그런데 어떤 내용을 다룬 책인가 궁금해서 알라딘에서 제목으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는다. 혹시 제목을 잘못 썼나 싶어서 이번에는 저자명으로 검색해 보니 죽내호 번역서까지 포함해서 여럿 나오는데 그 책만 없다.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윤여일 + 1990년대"로 통합 검색해 보니, 국내도서에 2건이 있다고 나오지만 막상 클릭해 보니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책 1건만 나온다. 이쯤 되니 알라딘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닐까 싶었다.


확인차 구글에 들어가서 "윤여일 + 1990년대"로 검색해 보니, 교보문고며 예스24 같은 서점의 해당 상품 링크가 줄줄이 나오고, 심지어 출판사인 돌베개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책 정보 링크까지도 줄줄이 검색되었다.


의외로 알라딘의 해당 상품 링크도 검색되기에 눌러보았더니, 어째서인지 "비공개 상태입니다"라는 팝업창만 뜨고 접속되지 않는다. 결국 알라딘에서 해당 상품에 접근하지 못하게 뭔가 조치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품을 판매하거나 말거나가 판매자인 서점의 재량이라면, 상품 정보조차 공개하지 말지도 서점의 재량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표절 논란이 생긴 책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 지우는 게 낫다고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보나 예스 같은 다른 서점, 심지어 출판사인 돌베개조차도 그 책에 대한 정보만큼은 그냥 남겨두는 상황에서, 유독 알라딘만이 비공개 조치라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점은 유난히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알라딘은 이전부터도 이런 식으로 절판본의 서지 정보를 말살하는 조치를 줄곧 취해 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훈의 <공차는 아이들>인데, 매그넘 사진을 곁들인 초판본은 알라딘에서 아예 없는 책 취급을 받는다.


이 책은 원래 월드컵 기념으로 나온 매그넘 축구 사진집에 김훈이 일종의 감상문을 덧붙인 방식으로 간행되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나중에는 국내 작가의 사진과 김훈의 글을 결합한 다른 책이 같은 제목으로 나왔다.


알라딘에서 <공차는 아이들>로 검색하면 국내도서로는 나중의 책만 검색되고, 먼저 나온 매그넘 사진집은 누군가가 올린 중고로만 검색된다. 하지만 중고 상품에 걸린 링크를 통해 사라진 책으로도 거슬러 갈 수 있다.


김훈 + 매그넘의 <공차는 아이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445


결국 서지 정보를 완전 말살한 것이 아니라 검색이 불가능한 비공개로 돌린 셈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라딘에서 의도적으로 그랬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단순히 구판과 신판의 구분 목적이라 보기에는 뭔가 미심쩍다.


이런 선례를 감안했을 때, 유독 알라딘만 윤여일의 표절 도서를 비공개까지 하며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다른 서점이나 심지어 출판사보다도 뭔가 더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는 아닐까?


혹시 북펀드나 강연회나 사인회처럼 뭔가 요란한 이벤트를 통해 저자 띄워주기에 공모하고 나서 제 발이 저려서 그랬던 걸까? 하지만 그런 홍보에 가장 열을 올렸을 출판사 돌베개도 태연한 상황이니 더 이상스럽다.


상식적으로 출판사보다 서점이 저자와 더 밀착되었을 리는 없으니, 결국 알라딘의 판단 착오라고 봐야 맞을 법하다. 절판 공지와 판매 중지만 하면 그만인 사안을 과대평가한 까닭에 기록 말살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결국 알라딘의 행동은 어떤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담당자가 오버해 저지른 실수라고 봐야 맞을 것 같다. 물론 표절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책 취급을 하는 것은 무리이며, 어쩌면 사실 왜곡이기도 하니까.


흔히 말하듯 '알아서 기었다'고도 할 수 있을 터인데, 최근 중고 품질 이슈로 알라딘과 첨예한 대립각을 일방적으로 세워 왔던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이라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다.


평소에 잘못을 먼저 저질러 놓고도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던 양아치 놈이 뭔가 더 큰 일에 휘말렸다 싶자 남들 모두 멀쩡히 서 있는데 혼자서만 잽싸게 엎드려 버린 셈이 되었으니 우습지 않을 리가...



[*] 글을 올리고 나서 다시 보니 뭔가 허전해서 죽내호 책이라도 몇 권 집어넣으려고 알라딘 상품 넣기에서 검색해 보니, 어찌 된 일인지 여기서는 문제의 표절작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가 버젓이 검색된다. 뒤늦게라도 접근 금지 조치가 해제된 것인가 궁금해서 내 페이퍼에 집어넣고 나서 클릭해 보니, 역시나 이전처럼 비공개 경고창이 뜬다. 결국 상품 검색은 막았지만 서재의 상품 추가 검색은 막지 않았던 셈이니, 이래저래 손발이 맞지 않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알라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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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책에 대한 책들'만 모아 놓은 옥탑방 구석 책장을 뒤졌더니 <채링크로스 84번지> 번역서와 원서가 나온다. 마침 얼마 전에 개정판이 나온 것 같기에, 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려고 꺼내 왔는데, 초판본인 번역서를 펼치자마자 군데군데 오역 표시가 눈에 띈다.


나귀님 역시 번역서를 통해 처음 만난 작품이기 때문에 일부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했어도 오역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하다가, 나중에야 헌책방에서 (가격표를 보니 신고서점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한 듯하다) 입수한 페이퍼백과 비교해 보니 예상 외로 오역이 많아 실망하고 말았다.


애초에 분량 자체가 많지 않은 책이다 보니 빈번한 오역이 더욱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로는 서적이나 인물에 대한 무지가 원인이고, 또 한편으로는 번역과 편집 과정에서의 부주의가 원인이다. 특히 그냥 옮기면 되는데도 굳이 머리 굴리다 틀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서점에 보낸 첫 번째 편지(1949년 10월 5일)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저는 '희귀 고서점'이라는 말만 봐도 기가 질리곤 하는데, '희귀' 하면 곧 값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희귀 고서적에 취미가 있는 가난한 작가입니다."(9쪽)


그런데 이 번역문은 저자의 의도를 독자에게 잘못 전달하고 있다. 왜냐하면 "희귀 고서점"과 "희귀하면"과 "희귀 고서적에 취미가 있는"으로 옮긴 영어 단어는 각각 antiquarian booksellers(고서점)와 antique(골동)과 antiquarian taste in books(고전을 좋아하는)이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원문에도 없는 "희귀"라는 단어를 굳이 집어넣어서, 마치 저자가 희귀본 수집가라도 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실제로는 베스트셀러나 대학 교재만 취급하는 뉴욕의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고전을 런던에서 중고로라도 구해 읽으려는 열성 독자일 뿐이다.


즉 저자의 말은 희귀본 수집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고전을 읽으려다 보니 중고로 구할 수밖에 없는 독자의 고충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야만 바로 뒤에 나오는 하소연(우리 동네에서 고전은 고가의 희귀본 아니면 학생들이 보는 교재밖에 없다)과도 아귀가 맞는다.


영화에서는 원작에 없는 장면을 추가해서 저자의 처지를 더 명료하게 보여준다. 즉 저자는 당시 베스트셀러인 노먼 메일러의 <나자와 사자>가 잔뜩 쌓인 신간 서점에 가서 영국 고전이 있는지 문의했다가 '뉴욕엔 그런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직원의 답변에 짜증을 내며 나온다.


또 원문 그대로 옮기면 되는데도 굳이 머리를 굴리다가 틀린 사례로는 세 번째 편지(1949년 11월 3일)에서 고서점에서 보내준 책의 상태가 너무 좋다며 감탄해 마지않는 대목에 나오는 "스티븐슨은 너무 훌륭하여 제 누런 골동품 책장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12쪽)를 들 수 있다. 


결국 '이렇게 귀하신 책이 이렇게 누추한 곳에'라는 뜻이지만, "누런 골동품 책장"이라면 뭐가 문제일까 싶어 의아한데, 사실 이건 "오렌지 담는 나무 궤짝으로 만든 책장"(orange-crate bookshelf)의 오역이다. 즉 과일 가게에서 주워 온 상자로 만든 책장이라 초라하다는 거다.


지금이야 종이 상자와 스폰지 완충재가 일반적이지만, 예전에는 과일을 나무 상자에 담고 쌀겨 등을 넣어 완충재로 사용했다. 영화에서도 저자의 책장은 나무 상자 두 개를 옆으로 세워 놓고 판자를 얹는 식으로 층층이 쌓은 모습이어서 "누런 골동품 책장"과는 영 거리가 멀다.


또 하나 황당한 오역을 지적하자면 1950년 11월 1일 편지의 한 대목을 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어쩌다 잘못해서 두 권이 겉장이 떨어져 나간 것뿐입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포장지 값으로 우리에게 1실링을 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초판본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위의 인용문은 저자가 보낸 항의 편지에 대한 서점 측의 답변 가운데 일부다. 서점에서 보낸 소포를 뜯다 보니, 그 포장지가 신문지 같은 싸구려 종이가 아니라 웬 고전 서적의 낱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서를 취급하는 서점에서 왜 책을 훼손하느냐며 노발대발했던 거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위의 인용문은 오역이다. 제대로 옮기자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어쩌다 표지가 떨어져 나간 낱권이 두 권 들어와서 그랬습니다. 설령 우리가 단돈 1실링에 팔겠다 하더라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절대 구입할 리가 없는 품질의 낱권이었거든요."


결국 하자 있는 물건이라 헐값에도 안 팔릴 터이니 (물론 알라딘 같으면 "상급"에 판매했겠지만!) 아예 판매불가능한 제품이라 판단되어 책을 찢어서 포장지로 재활용했다는 뜻이다.(예전에 어떤 출판사에서도 폐기 도서를 조각조각 잘라 홍보용으로 무료 배포한 적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오역 사례 이외에도 인명을 착각한 경우, 동음이의어를 잘못 이해한 경우, 번역어를 잘못 선택한 경우, 기타 누락과 오독의 사례까지 여러 가지 오류가 있다. 가볍게 뒤적여도 문제가 많았으니, 작정하고 살펴보면 뭐가 더 나올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아무리 오역이 있다 한들, 채링크로스 84번지가 킹스크로스역 9와 3/4 승강장으로 바뀌는 일이야 없을 것이고, 뉴욕의 여성 작가와 런던의 서점 직원들이 주고받은 편지 묶음이 졸지에 이퇴계와 기고봉이 주고받은 사단칠정론에 대한 편지 묶음으로 바뀔 리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인상적인 소재에 훈훈한 내용이라도 빈번한 오역으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번역서라면, 과연 독자는 이 작품을 '읽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번역자와 출판사 모두 저자의 말마따나 "천벌 받아 마땅한 짓"(15쪽)을 20년째 계속하는 셈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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