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동업자인 투자가 찰리 멍거의 글을 엮은 책이 번역된 모양이다. 주식이나 투자와는 영 거리가 먼 나귀님도 그 이름은 알 정도이니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가. 심지어 이번에는 그 책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는데, 왜냐하면 제목이 무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이기 때문이다.


버핏의 서문에도 나왔듯, 이 제목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경제 분야의 책이니 저 유명한 식민지 지식인의 베스트셀러 시리즈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는 현명한 투자 관련 조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을 법하다. 


프랭클린이 간행한 책은 다가올 한 해의 주요 절기와 일출 및 조석의 변화 같은 기상 정보를 제공하여 향후 일정에 참고할 수 있게 만든 실용서였다. 영어로는 Almanac이고 우리말로는 '연감'이나 '책력'으로 옮기는데, 오늘날 가장 비슷한 것을 찾자면 매년 새로 사는 '다이어리'가 아닐까.


프랭클린은 이처럼 한 해 계획에 사용할 '다이어리'를 간행하면서 내용을 더 알차게 꾸미기 위해 창작 및 인용 금언을 군데군데 양념으로 첨가했는데, 특유의 재치 넘치는 내용 덕분에 본편보다 양념이 더 유명해지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733년부터 1758년까지 매년 개정판이 간행되었다.


연감 자체는 총26권에 달하지만, 거기서 프랭클린이 직접 쓴 내용이라야 사실상 서문과 금언뿐이기 때문에, 사반세기 분량을 엮어서 간행한 단행본조차도 아주 두껍지는 않다. 나귀님이 가진 번역본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장명혜 옮김, 동천사, 1994)도 신국판으로 290페이지에 불과하다.


이 번역본은 금언을 지나치게 의역해서 원문과 동떨어지게 만든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에서 프랭클린이 쓴 서문과 금언과 기타 내용을 연도별, 즉 판본별로 배열했다는 점이 확실한 장점이다. 즉 주제별로 배열한 다른 번역본보다 더 원형에 가깝다.


최초인 1733년 연감의 서문에서는 명목상의 저자 리처드 손더스, 즉 '가난한 리처드'가 아내의 바가지를 견디지 못해 살림에 보태고자 연감을 편저했다고 설명하는데, 이듬해인 1734년 연감의 서문에서는 작년에 책이 잘 팔려 살림이 나아졌다 하며, 이후 저자의 근황이 매년 업데이트된다.


1733년 연감의 60가지 금언 중에는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겁다", "말이 많으면 실천이 적다", "살기 위해 먹지, 먹기 위해 살지 말라" 등이 유명하고, 나중의 판본에는 "생선과 손님은 3일이 지나면 악취를 풍긴다"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같은 친숙한 금언도 등장한다.


찰리 멍거의 책에도 이와 유사한 금언이 있는지 궁금해 알라딘 미리보기를 살펴보았지만, 각종 서문과 약력과 회고만으로도 분량이 넘쳐서 그가 실제로 썼다는 글까지는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구매자들의 언급을 보면 이 책이 오래 전부터 이 분야의 고전으로 대접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다른 저자들의 성공 비법서를 보면서도 느낀 바이지만, 세상이 다 아는 '찐' 부자들은 경영 위기, 주가 폭락, 이혼 소송, 구치소 수감, 가족 및 동업자와의 갈등,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건사고로 분주한 상황에서 어째서인지 어중간한 부자들만 각종 비법을 설파하고들 있다.


물론 찰리 멍거 정도라면 확실히 '찐' 부자 축에 속한다 하겠고, 투자가로서의 명성도 대단할 뿐만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 나온 책을 생전에는 영어 이외의 언어로는 번역조차 못하게 했었다니, 대부분 한때의 유행에 불과한 각종 '부자들의 조언'과는 어딘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볼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런 '부자들의 조언'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체스터턴이 당대에 인기인 각종 '부의 복음'을 꼬집으며 지적했듯, 마치 '빨리 달려서 높이 뛰어오르면 된다'는 높이뛰기 선수의 조언과도 유사하지 않을까.


즉 아무리 훌륭한 조언을 마음에 새기더라도, 정작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 책의 1장에 나온 찰리 멍거의 약력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일단 그는 하버드 출신 변호사였고, 학부 시절에는 물리학을 공부했고, 공군 복무 시절에는 칼텍에도 다녔다.


숫자와 법률에 통달했으니 어마어마하게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 잘난 사람도 친구 겸 동업자 워런 버핏 옆에서 2인자를 자처하며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 했다는 점을 보면, 최소한 '겸손'이라는 나날이 보기 드문 미덕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에 '가난한 찰리'는 가난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던 셈이고, 사실상 투자가로 성공하기 이전부터 넘사벽의 자질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으니, 그의 책을 읽는 독자로선 뭔가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생각에 살짝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난한 리처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비록 1733년 연감의 서문에서는 돈 안 벌어오면 "서재의 책과 골동품"을 싸그리 불태워 버리겠다는 아내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애처롭게 호소하지만, 당시 식민지의 경제 여건상 사치품이었던 책이며 골동품을 잔뜩 보유한 지식인이 '찐' 가난뱅이일 수는 없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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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알라딘 중고매장에 필요한 책이 두 권이나 있어서 주문하려 했더니, 양쪽 모두 2만 원 미만이어서 꼼짝없이 배송료를 물게 생겼다. 각각 5천 원짜리 한 권과 7천 원짜리 한 권만 더하면 무료 배송이 가능하니 조금만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양쪽을 오가며 분야별로 살펴보는데, 이건 30분이 넘어도 살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책이 아예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 괜찮아 보이면 가격이 너무 비싸고, 반대로 가격이 적당해 보이면 품질이 중급 이하라, 어느 쪽도 선뜻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뿐이다. 결국 일전에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다른 책과 함께 세 군데 매장에서 각각 한 권씩만 주문하고 말았다.


알라딘 중고 상품이 계속해서 '가격은 업, 품질은 다운' 추세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지랄발광하는 나귀님인데, 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던 오늘과 같은 주문만 보아도 현재의 상황은 상당히 기묘한 데가 있어 보인다. 헌책방이라면 싼 맛에 여러 권 구입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제는 한 권을 구입하는 것마저 망설여지는 거다.


출판사에서도 책값을 점차 올리는 추세이다 보니, 새책의 절반 가격으로만 잡더라도 중고 상품 중에서 나귀님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묵직한 것들은 1만 원 대를 오락가락한다. 오늘처럼 1만 원대 중반의 책을 하나 구입하려면, 배송비를 지우려고 다른 책을 고르려 해도 여차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바람에 3만 원에 육박하게 마련이다.


어떤 면에서는 알라딘 중고매장이 끝도 없이 늘어나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점점 더 쓸 만한 책들이 한데 모이지 못하고 산재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늙은 나귀님 한 마리가 '책, 책, 사방에 책이 있지만 / 살 만한 책은 하나도 없었네' 하며 남의 결혼식장 앞을 서성이며 헌팅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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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양반이 피곤해서 일찍 자겠다며 자리에 눕기에 옆에서 스탠드 켜 놓고 엎드려 책을 보는데, 잠을 자기는커녕 또 휴대전화로 무슨 미드를 보고 있다. 그것도 고함과 욕설과 비명과 쿵쾅쿵쾅 삐융삐융 소음이 요란해서 잠이 오기는커녕 싹 달아나야 맞겠다 싶은 것을.


뭐냐고 물었더니 <주노> 아이가 나오는 무슨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지난번에 얼핏 보니 무슨 말하는 침팬지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는 황당무계하고도 피칠갑하는 작품이던데, 잠잘 거라면서 그런 흉칙스러운 드라마를 잘도 보고 있구나 싶어 한심했다.


잠시 후에는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오기에, 혹시 그거 지금 배경이 1980년대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지금도 종종 라디오에서 나오는 명곡이기는 하지만 발표 당시의 연도는 1980년대 중반이었으니, 혹시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장치인가 싶었던 거다.


내가 들은 노래는 카트리나앤드더웨이브스의 "워킹온선샤인"이다. 당시의 많은 팝송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예전에 <쇼비디오자키>에서인지 DJ 김광한이 해외 신곡이라면서 그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도 좋았지만 뮤비도 꽤 인상적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노래가 시대 배경을 설명한 경우라면, 지난번 바깥양반이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에 나온 노래를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결혼 전 썸 타던 시절이었는데, 돈까스를 먹었나 어쨌나 하는 대목에서 흐르던 노래가 11월의 "착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11월"은 밴드의 이름이다. "착각"과 "머물고 싶은 순간"이라는 노래로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 연주하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중간에 서남용 비슷한 외모의 멤버가 한 명 있었던 것이 이채로웠다) 지금 확인해 보니 2집까지만 내고 해체해 사라진 모양이다.


"착각"은 1990년에 나온 곡이니 <무빙>에서도 아마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만난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귀님이야 그때도 바깥양반이 옆에 누워 휴대전화로 보던 드라마의 소리만 듣고 있었으므로 구체적인 맥락까지는 잘 모르지만.


<무빙>은 다음 웹툰에서 연재할 때에 완결까지 꼬박꼬박 챙겨보았는데, 강풀의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설정 면에서 제법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후의 후속작이나 다른 작품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라마로 각색되면서는 몇 가지 설정과 인물을 추가한 모양인데 (그중에는 헌책방 사장님도 하나 있었나 그랬다) 나중에 전체 줄거리 요약본을 살펴보니 그냥 군더더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제법 인기를 끌어서 디즈니 채널 가입자가 상당히 늘어났다니 묘한 일이다.


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착각"을 부른 밴드의 이름이 "11월"인 것은 바로 그 달에 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바깥양반이 <무빙>을 보던 때가 봄이라서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듣던 차였는데, 봄이 한창인 5월에 듣는 11월의 노래라 생각하니 희한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1월이라 겨울의 문턱에 가까워졌다. 벌써 열 달이 지나갔는데 올 한 해도 딱히 한 것 없이 어영부영 보내는 것은 아닌가 자책만 들고 있다. 이렇게 또 쓸데없는 글을 써서 수요 없는 공급을 하느라 시간과 전기만 낭비하면서 말이지...



[*]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11월"이라는 동명의 인디 밴드도 있던데, 위에서 언급한 "11월"과는 다른 밴드로 보인다. 여하간 내가 아는 "11월"의 음반은 1집과 2집을 합친 편집본만 등록되어 있는 듯한데, 이거... 예전에 나왔을 때 해당 가수들의 동의 없이 음반사에서 멋대로 나온 편집본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그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 전집을 상당히 싸게 팔았는데도 굳이 사지는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거라도 사 놓을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하다. 물론 아쉬운 대로 유튜브에 가 보면 "11월"의 1집 음반을 누군가 올려놓은 것이 있기는 하다마는...



[**]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인지 구스따보 구띠에레스인지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결국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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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프랑시스 퐁주의 시집이 알라딘 중고로 올라와 있기에 살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은 한 달쯤 전에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중고 영어책이 하나 있는데, 배송비 내기가 아까워서 차일피일한 참이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함께 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구매하려고 보니 두 권 합쳐도 2만 원이 넘지 않아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절판본이어서 중고로 구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11월 쿠폰도 나오고 했으니 배송비 내고 구입해 버릴까 싶기도 했고...


혹시 함께 구매할 만한 무슨 만화책이나 그런 저렴한 중고가 있나 검색하다 보니, 웬일인지, 이번에는 에마누엘 레비나스 전집 가운데 한 권이 역시나 알라딘 중고로 올라와 있다. 예전 같으면 덥석 구입했겠지만, 요즘은 알라딘 중고에 어지간한 놈이 나와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며 심드렁한 상태이니 마음이 크게 동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레비나스라면 나보다 바깥양반이 더 열심히 읽은 저자인데, 그나마도 최근에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모양이니 굳이 사야 할까...


그래도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사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게 헌책방의 불문율이니, 세 권 합쳐 3만 원에 육박하여 원래 생각한 2만 원대를 훌쩍 넘기는 상황임에도 일단 로그인이나 해 볼까 하다가, 먼저 화장실 갔다 오고, 누가 와서 초인종 눌러서 나가 보고, 왜 아직 안 나가느냐고 바깥양반에게 잔소리 하고 기타 등등을 하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퐁주와 레비나스 모두 다른 누군가가 이미 구입해서 품절 상태였다. 살짝 아쉬우면서도 오히려 시원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프랑시스 퐁주의 시집을 굳이 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의 시를 담은 번역서를 서너 권쯤 갖고 있기는 한데, 딱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타성적으로 구입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솔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가운데 한 권을 맨 처음 샀던 것 같은데, 사실은 워낙 책이 안 팔리다 보니 영풍문고에서 재고를 할인하기에, 이건 또 뭔가 싶어 궁금한 김에 싼 맛에 하나 구입했을 뿐이었다. 한 번 구입하고 보니, 오, 이건 아는 사람이다 싶어 다른 중고도 구입했고...


중고 서적 중에는 워낙 많이 팔려서 흔한 것도 있지만, 거꾸로 워낙 안 팔려서 흔한 것도 있는데, 내 기억으로 프랑시스 퐁주는 한때 후자, 즉 중고보다는 처치곤란의 재고 취급을 받는 저자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앞서 말한 솔의 세계시인선 중에서는 미겔 에르난데스,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니카르노 파라 등이 재고 떨이 판매 코너에서 퐁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은 이미 다 팔렸는지 찾아볼 수 없었고...


이번에 놓친 책은 제목이 <사물의 편>이었는데, 제목이 비슷하다 싶어 지난번에 랭보 전집 꺼내면서 이것저것 꺼내 찍은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청하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가운데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읻다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책이 금방 절판되고 또 금방 재간되고 하던데, 확인해 보니 <사물의 편>도 오늘 본 것은 초판본이 아니라 표지가 달라진 재판본 정도 되는 모양이다. 조만간 삼판본도 기대해 볼 법하겠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알라딘 구매가 뜸한 이유는 (막상 쓰고 보니 살짝 찔린다. 어제 영등포점에서 구매하여 배송된 롬브로소와 로티 번역본과 구텐베르크 시대 서적 유통에 관한 번역본이 뒤늦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것도 4만 원 가까이 되는 가격이어서 살까말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 최근에 신용카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제휴 카드의 사용 기한이 만료되면서 새로 발급받으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존 제휴 카드는 대부분 발급이 중단된 상태이다 보니...


결국 자주 가는 은행에서 그냥 아무 카드나 하나 발급받아 쓰고는 있는데, 예전 카드처럼 간편결제를 쓰려고 하니 뭘 또 휴대전화로 앱을 깔아서 인증을 하고 뭘 누르고 하라기에, 에이, 그냥 쓰지 말자, 귀찮다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다 보니, 결국 신용카드 쓰는 게 복잡해지고 귀찮아져서 자연스레 알라딘 구매도 줄어든 셈이다. 마트나 다이소에 가면 기계에서 계산하니 오히려 편한데, 이놈의 휴대전화 앱 인증인지 나발인지는 그저 복잡하고 귀찮아서 웬만하면 기피하게 된달까...


여하간 알라딘 제휴 카드가 줄줄이 사라지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회원에게 주는 혜택도 슬금슬금 사라지는 것 역시 어떤 쇠퇴의 징후는 아닐까 싶기도 한데, 중고 물품 가격을 슬금슬금 올려서 결국 나귀님 빡치게 만든 것도 결국에는 비슷한 맥락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겠다. 그 와중에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은품이라는 미명으로 만들어 적립금 받고 팔아먹는 것을 보면, 현재의 알라딘이야말로 책 판매하는 것 빼고는 다 잘 한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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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안전 점검 나왔다고 전화가 왔기에 들어오시라 해서 부엌으로 안내하고, 늘 그렇듯이 집안이 지저분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서 마루에 나가 있었더니, 마침 틀어 놓은 뉴스에서 배우 김수미의 사망 소식이 나왔던지 점검원이 문득 '김수미 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한다.


그렇잖아도 일찌감치 바깥양반에게 문자로 소식을 들었는데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나귀님이었는데, 점검원 양반 말을 듣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꽤 충격을 받았던 모양인가 싶었다. 일단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최근 건강 이상설도 있었다고 하니 크게 이상한 일까지는 아닐 텐데.


한편으로는 나귀님이 그 배우를 각별히 좋아하지는 않아서일 수도 있다.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이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튀는 역할을 많이 맡게 되고, 나중에 예능에 진출하면서는 노골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내세우다 보니, 어느새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닐지.


워낙 튀다 보니 김수미라면 주연 잡아먹는 조연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 영화 첫 주연작으로 기록된 <화순이> 역시 <새아씨>라는 MBC 드라마에서 동명의 조연, 즉 주인공 곁을 지키는 주책바가지 몸종으로 나왔다가 폭발적 인기를 끌어 제작된 일종의 스핀오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유명한 배역인 <전원일기>의 일용이 어머니 역시 상당히 튀는 인물이었다고 기억한다. 드라마에서는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심술궂은 행동으로 뭔가 실수를 저지른다거나, 또는 소문을 퍼트린다거나 해서 매번 문제를 만들어내거나 악화시키는 역할을 종종 담당하지 않았나 싶다.


김수미라면 의외로 서점과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년 전인 2003년에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에 '일용엄니책방'을 개업했기 때문인데, 기사를 검색해 보니 본격적인 서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북카페였던 모양이다. 종종 그 앞을 지나며 광고 현수막을 본 기억이 난다.


서갑숙과 박원숙을 필두로 연예인의 고백 에세이가 인기를 끌던 시절에 김수미도 비슷한 책을 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알라딘에는 중고로만 등록되어 있을 뿐이다. 대신 요리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을 개작한 듯한 요리책이 여러 권 나와 있으니 어엿한 저자라 해도 무방하겠다.


다만 말년에 들어서는 연기보다는 다른 활동이 빈번해지며 종종 구설수에 올랐으니 안타깝다. 특히 식품 사업에 관여했다가 품질 관리 실패로 두고두고 악평을 얻으면서 좋은 이미지가 많이 깎여나갔는데, 동료 배우인 김혜자가 도시락으로 신조어까지 생기며 추앙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딱 한 번 김수미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고 느꼈을 때도 있었다. <전원일기>의 한 회에서 김회장네 먼 친척 조카인지 사돈인지 하는 남학생이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시무룩한 상태로 머리를 식히러 시골을 찾아왔는데, 마침 일용 엄마가 옛 기억을 돌이키며 늘어놓는 긴 독백을 듣게 된다.


쉽게 말해 아이 딸린 과부가 먹을 것이 없어서 누가 버린 술지게미를 주워 먹었는데, 나중에는 모자가 술에 취해 '에미도 비틀비틀, 새끼도 비틀비틀' 하는 웃픈 광경이 펼쳐지게 되었다는 거다. 드라마는 이런 격려 아닌 격려를 들은 남학생이 심기일전해 시골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전원일기>에서 역시나 추레하게 나왔던 김혜자와 고두심이 훗날 다른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 반전 매력으로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간 반면, 김수미는 탁월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화순이와 일용 엄마 같은 감초 역할로만 소모되다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문득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고인의 최근 건강 악화는 뮤지컬 <친정엄마>의 출연료 체불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라 한다. 본인은 <전원일기> 못지않은 대표작으로 여겨 애착을 보였다지만, 결국 연기에 대한 열성이 오히려 최후를 앞당긴 셈이니 아이러니하다. 인생은 무엇이고 연기는 또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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