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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알라딘에 들어왔더니 "매국노 안 되려고 샀어요!"라는 의아한 광고 문구가 검색창에 뜨기에 클릭해 보았더니, <최태성의 365 한국사 일력>이라는 물건이 툭 튀어나온다. 이게 도대체 뭐라고 매국노 운운 하는 것인가 궁금한 한편으로, 혹시 이것도 최근 유행하는 어떤 인터넷 밈의 일종인가 싶어 구글링해 보았더니, 결과적으로는 한국사에 무지한 사람이 "국사 매국노"로 자조 섞인 표현을 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인 모양이고, 이후 Yes24의 독자평에도 같은 맥락에서 "매국노 안 되려고 구매합니다!"라는 것이 있어서 대강 그 맥락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눈치 없는 나귀님이 (이것도 뭐 눈치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속어가 있기는 하던데) "매국노"의 문자적/사전적 의미만 알고 있다 보니 문맥을 잘못 이해한 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인터넷을 한참 뒤져야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특정 밈을 굳이 광고 문구로까지 사용할 필요가 꼭 있었는가 하는 볼멘 소리를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상품의 주된 구매자 층에게라면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거두절미하고 광고 문구로 사용해 버리면 뭔지 모르는 나귀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딱 오해할 만한 소지가 충분히 있어 보이니 말이다.


마침 어제 뉴스에까지 보도된 민주당 현수막 관련 논란도 이와 유사한 맥락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니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니 하는 표현도 어쩌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또 다른 인터넷 밈이거나, 또는 그 파생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매국노 안 되려고 샀어요!"처럼 거두절미 상태에서 불쑥 내놓으니 공연히 오해와 반감만 부른 것은 아닐까. 급기야 박원순과 조국부터 시작해서 문재인과 이재명과 윤미향과 김남국까지 잊고 싶은 이름들이 줄줄이 소환되었으니 자승자박이라 하겠다.



[*] 오전에 "매국노" 운운 하는 내용으로 글을 한 편 써서 올리기는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원래는 민주당 현수막 사건과 엮어서 이야기하려다가 깜박하고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채 중언부언하다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 하나 끄적여 본다. 뭔가 하려고 일어났다가 다른 일만 하고 도로 앉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역시 세월의 흔적인가 싶다.(그러고 보니 지금 이 글도 브라우저를 175% 확대한 상태에서 쓰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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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광고에서 "조너선 크레리"의 신간이 나왔다기에 다른 책이 뭐 있나 저자 이름을 클릭해 보니 이전에 나왔다고 기억하는 책은 검색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궁금해서 뒤져 보니 구판에서는 저자명이 "조나단 크래리"라서 그런 모양이다. JONATHAN CRARY라고 영어로 검색하면 둘 다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알라딘에서도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왜 그냥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


역시나 알라딘 첫화면에서 광고하는 "루시 R. 리파드"도 마찬가지여서 "루시 R. 리퍼드"로 나왔던 책은 검색되지 않고, 심지어 LUCY LIPPARD라고 영어로 검색하면 문제의 신간만 검색되지 않는다. 이것도 광고만 할 게 아니라 좀 제대로 검색되도록 손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이 방면의 본좌인 ROGER SCRUTON도 아직 한꺼번에 검색이 되려면 멀었으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라딘에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 ROGER SCRUTON의 경우, 이전에 지적했던 것처럼 "스크루턴"과 "스크루튼", "스크러턴"과 "스크러튼"이 혼재되어 있어서 모두 한꺼번에 검색이 되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나마 손을 보았는지 "스크루턴"으로 검색하면 "스크러턴"도 함께 나오고, "스크러턴"으로 검색하면 "스크러튼"도 함께 나오지만, "스크러튼"으로 검색하면 "스크러턴"은 함께 나오지 않고, "스크루튼"으로 검색하면 "스크루테이프"와 "동물 의사 닥터 스쿠르"까지 나와서 사오정이 되어 버린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의 해당 저자 항목에 나온 발음 표기에 따르면 ROGER SCRUTON은 "로저 스크루턴"이라고 해야 정확한 모양이다. 일해라,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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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과 홉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연히 책은 아직 오지 않았다) 거기서 주인공의 주요 공격 대상은 또래 여자친구인 수지(Susie)와 베이비시터인 로잘린(Rosalyn)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나마 베이비시터는 월등한 신체 조건으로 꼬맹이 캘빈을 종종 제압하지만, 동갑내기 수지는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캘빈이 수지에게 거는 장난은 대부분 이유 없이 자행하는 것이니 만큼, 요즘 분위기에서는 이 만화 속 꼬맹이조차도 개저씨에 한남충 소리를 듣고도 남을 것 같지만, 사내아이들이 종종 관심을 표현한답시고 계집아이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거는 것이야 예전부터 왕왕 있었던 일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짜증나고 황당하겠지만.


언젠가 김필원 프로에서 (이 양반 요즘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한 청취자가 보낸 사연 중에, 어린 시절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노심초사하다가 나름대로는 관심을 끌어 보겠답시고 버스에서 졸고 있는 여자아이 눈 밑에다가 물파스를 발랐다가 이후로는 완전히 미친 놈 취급을 받고 외면당했다는 게 있었다.


당시 방송 중에는 진행자며 청취자 모두 웃음이 터졌다는 반응이었고, 나 역시 듣다 말고 웃음을 터트리기는 했지만 막상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을 터이니 딱히 웃음이 나올 리는 없었을 것도 같다. 심지어 진짜 성범죄의 경우조차도 "장난"으로 둘러대어 유야무야되는 불합리한 경우도 십중팔구 있었을 터이니까.


다만 예전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 보면, 세상을 살다 보면 (앞서 캘빈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에피소드처럼) 뭔가 내 뜻대로는 풀리지 않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이른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의 상황이라든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의 상황이 있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만사를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고, 지혜는 뒤늦게야 찾아오니 훗날에 가서야 예전 일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흔히 말하는 인생 n회차가 되면 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상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일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늘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수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작년엔가 구입해서 뒤적이다가 안방 머리맡에 놓아둔 책더미 밑에 깔려 있던 <인사이드 세른: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풍경>이라는 책의 기묘한 표지에 나온 또 다른 "수지"가 생각난다. 그 연구소의 이론물리학자 존 엘리스의 사무실 모습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종이로 만든 해골이 책장에 걸려 있는 것이다.


해골의 가슴팍에는 I spoke bad about SUSY 라는 종이 명패가 걸려 있는데, 번역하자면 "나는 수지(SUSY)를 안 좋게 말했습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SUSY란 Supersymmetry, 즉 "초대칭"의 약자인데, 해당 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물리학자 박인규는 권말에 붙인 해제에서 이 해골과 명패의 내용에 담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 앨리스의 연구실에는 해골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해골은 목에 종이 하나를 걸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I spoke bad about SUSY’라 적혀 있죠. ‘SUSY’는 초대칭이론(supersymmetry)을 말합니다. ‘존 엘리스가 초대칭이론에 악담을 했다’는 것인데, 결과는 두고 봐야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엘에이치시(LHC)에서 초대칭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열화당의 인스타그램 홍보 게시물 중에서. https://www.instagram.com/p/BjVsvn8AcVe/?hl=fr)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박인규의 설명과는 정반대가 되어야만 정확할 것만 같다. 존 엘리스야말로 SUSY의 지지자인데 왜 그가 SUSY에 대해서 악담을 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 해골은 "SUSY를 악담하는 자의 최후는 이러할 것"이라는 뜻으로 존 엘리스가 걸어 놓은 일종의 경고 표시라고, 아울러 명패의 내용은 곧 죄목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심슨 가족>의 오프닝에서 매번 바트가 학교 칠판에 "앞으로는 00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자기 죄목을 반성문 삼아 쓰는 처벌을 받는 것과도 유사한 상황인 셈인데, 막상 존 엘리스와 그의 물리학적 입장에 대해서 분명히 잘 알고 있었을 법한 한국인 물리학자가 해골과 명패에 대해 전혀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는 것은 뭔가 좀 신기하다.


문제의 초대칭 이론은 아직까지 가설이라서 CERN에서 실험을 통해 입증 노력을 하고 있다는 모양인데, 일각에서는 여러 차례 실험에도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 이론의 옹호자인 엘리스가 자기 연구실에 가짜 해골까지 걸어 놓으면서까지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일 수 있겠다.


엘리스의 "수지" 애호와는 달리 캘빈은 "수지"에게 항상 적의와 경멸만 드러내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둘이 앞에서는 서로를 욕하다가 뒤돌아서서는 미소짓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 에피소드도 있었던 듯하니, 그들의 다툼과 장난도 그들 (또는 "저자") 나름대로는 이른바 꽁냥꽁냥의 한 가지 형태라고 봐야 맞을 듯하다.(최소한 물파스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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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과 홉스" 박스 세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추석 연휴에 "하인라인 단편 전집" 박스 세트가 알라딘 중고샵에 네 질이나 올라와 있기에 그중 한 질을 구매한 이야기도 살짝 꺼내야 할 것 같다. 역시나 할인율이 높지 않아서 살짝 고민했지만, 어차피 사게 될 것이니 조금 비싸더라도 그냥 지금 눈 딱 감고 사버리고 치우자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지난번 시공사의 선집이 의외로 금세 절판된 것 때문에 뒤늦게 아쉬웠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고... [*]


그나저나 하인라인 단편 전집은 막상 받아 보니 비닐도 뜯지 않은 완전 새것이어서 횡재한 셈이 되었지만 (나머지 세 질 구입한 사람 소리 질러!) 앤 카슨이 말한 사슴의 음문도 아닌 주제에 너무 꽉 끼는 박스에서 책을 꺼내 보니 한 가지 의아한 대목이 있었다. 박스 세트 정가는 20만 원으로 나온 반면 각 권은 2만 4천 8백 원이어서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낱권으로 사면 20%나 더 비싼 셈인 건가 싶다.


최근에는 북펀드다 뭐다 해서 출간 전에 예약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그런저런 사정으로 간행되는 과정에서 낱권과 세트의 가격 차가 발생한 것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드커버를 씌워놓아서 두꺼워 보일 뿐 실제로는 300페이지도 안 되는 책들도 일괄적으로 2만 4천 8백 원이니, 보기에 따라서는 과도한 가격이라고 볼멘 소리를 낼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흔히 말하는 장르 독자 등쳐먹기의 또 다른 사례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아작 출판사의 간행물이니 살짝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이놈의 출판사는 원래도 번역/편집이 한심한 수준이었던 데다 (코니 월리스 단편집에서는 디킨스/디킨슨을 혼동하기도 했고, 할란 엘리슨 단편집에서는 "리츠 호텔만한 다이아몬드"를 "리츠 크래커만한 다이아몬드"로 오역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무식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나중에 모 작가와의 분쟁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보아 돈도 잘 안 주는 모양이니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하인라인 단편 전집도 번역/편집은 제대로 되었을까 살짝 미심쩍었는데, 예상대로 그중 제7권을 꺼내서 단편 하나를 읽다 보니 몇 가지 오역/오타가 눈에 띈다. 시오도어 스터전도 자기 단편 속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언급했던 "금붕어 어항"이라는 작품인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레이브스 박사가 통에 연결된 줄을 끊었다. 두 사람은 보기 흉하고 다루기 힘든 그 통을 도르래를 연결하려 낑낑댔다"(67쪽)


그런데 앞뒤 문맥을 보면 보트에 고정한 통 모양의 관측 장비를 손으로 들어서 바다에 던져 넣으려는 대목이므로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맞다. "그레이브스 박사가 통을 고정한 줄을 끊었다. 두 사람은 보기 흉하고 다루기 힘든 그 통을 들어올리느라 애를 먹었다." 위에서 "도르래를 연결하려"라고 오역한 부분의 원문은 get a purchase on, 즉 그냥 "(손으로) 붙들다"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보트 담장 장교"(65쪽)라는 희한한 직책도 나온다.


하인라인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아동성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듯한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작이 의외로 용감하다고, 또는 무모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시공사의 걸작선 가운데 하나인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는 역자 후기에서 이 문제를 직격하고 있던데, 그렇게까지 내용이 불편했다면 왜 굳이 그런 작품을 골라서 번역/간행했느냐는 반문도 가능해 보인다.(당연히 그게 내용의 전부가 아니니까 그랬겠지!)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에서도 하인라인의 작품 속 여성 비하라든지, 아동 성애라든지, 근친상간이라든지 하는 쟁점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독자가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오히려 단점 때문에 간행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드며 히틀러의 책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판에 지금 와서 하인라인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그렇게 되면 오이디푸스 희곡은 뭐고, 구약성서는 또 뭔가?)


사람들의 사고와 풍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니, 페미니즘이건 맑시즘이건 그루초맑시즘이건 간에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일시적 통념을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양 휘둘러서 만사를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프로불편러들이야말로 자기 시대의 지배적 사고방식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솔직히 박정희 시대의 반공주의자들과도 사실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지...?




[*] 비슷한 사례로 베틀북의 로알드 달 걸작선이 있는데, 절판 직후에 다섯 권 가운데 세 권인가는 예전 강/정영목 번역본의 재간행으로 또다시 나온 반면, 한 권은 아예 다른 번역본이 나왔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처음에는 아동서와 어른서(?) 모두를 내는 출판사이다 보니, 이 선집에 수록된 "마누라 바꿔먹기"(?) 단편 같은 경우에는 애들이 보기에 좀 뭐해서 금방 절판시켰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조만간 나온다는 일부 작품의 영화화 때문에 다시 한 번 판권 확보 경쟁이 벌어진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 진실은 저 너머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베틀북의 걸작선이 작품 수는 가장 많았고, 강/정영목 번역본의 초판본이나 재간행본 모두에는 없는 것도 있었다. 뭐가 뭔지 궁금해서 네 가지 판본의 수록 작품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가 있긴 한데, 언제 한 번 올리려다 안 올리고 이렇게 구구절절 말로만 떠들고 있다. 예전에 과레스끼의 신부님/읍장님 단편 시리즈도 비슷한 목록을 만들었는데 컴퓨터가 맛이 가는 바람에 자료를 날려버린 기억도 난다. 민서/서교 번역본을 대조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는 귀찮아서 다시 하게 될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 기회가 되면 올려 보든가 아니면 말든가. 누가 딱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여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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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바람에 바깥양반 아침 먹여 내보내고 나서 어젯밤 주문하려다가 못한 중고매장 만화책 더하기 역사책이 생각나서 (달랑 두 권인데 2만 5천 원이어서 배송료가 면제되니 좋은 일인가, 아니면 한심한 일인가) 알라딘에 접속해 혹시 그 사이에 더 올라온 물건이 있나 기웃거리다 보니 "캘빈과 홉스" 박스세트가 벌써 중고로 나와 있다.


잠시 고민했다. 신간이라 중고 할인율도 높지 않은데 굳이 지금 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전에 원서로 몇 권 갖고 있다가 결국 다 처분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새삼스레 다시 읽어볼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여친과 베이비시터를 겨냥한 주인공의 작중 행동을 보면 요즘 기준으로는 딱 여혐에 한남충에 개초딩 소리를 들을 것도 같고...


그래도 결국 주문 버튼을 누르게 된 까닭은 오래 전에 읽었지만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그중 한 장면 때문이다. 하루는 캘빈 가족이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집에 도둑이 들어서 쑥대밭이 되어 있다. 아들 앞에서는 비교적 침착했던 부모였지만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서는 자기네가 당한 끔찍한 일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몸서리친다.


이 대목에서 캘빈의 아버지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내뱉는 독백이 있다.(지금 구글링해 보니 이 장면의 스캔본이 여럿 나오는 것으로 보아 나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이 제법 많았던 듯하다). 자기가 어렸을 때에는 어른이 만사를 다 알고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꼭 그렇지도 않더라는 거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절대권력에 무소불위인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이지만 실상은 그들 역시 수많은 한계 앞에서 매일같이 좌절하게 마련이니,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다른 무엇보다)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정체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가정이 약탈당했다는 사실 앞에서의 무기력과 자괴감을 토로하는 대목인 셈이다.


어린 시절에 읽었다면 느낌이 또 달랐겠지만, 이미 원서를 구입해서 읽었을 당시에는 "벼르고 벼르다 다 자랐소"인 상황이어서인지, 캘빈의 갖가지 몽상이며 개초딩 짓보다도 오히려 어머니의 곤경과 아버지의 자괴감 쪽에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흔히 말하듯 둘리보다 고길동이 더 불쌍해 보이면 이미 어른이 된 것이라니까.


여하간 거의 20여 년 만에 다시 (이번에는 번역서로) 읽게 되는 셈이니, 과연 이번에는 해당 장면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피너츠>를 완전판으로 처음부터 읽으면서 놀랐던 최근의 또 다른 경험처럼 (찰리 브라운이 이렇게 왕따를 당했을 줄이야!) 이전에는 놓쳐 버렸던 또 다른 행간의 의미라도 발견하게 되려나...



[*] 그나저나 책소개/보도자료에서 원서 출판사를 "유니버설 맥밀"이라고 잘못 적었던데, "앤드류스 맥밀 유니버설"(Andrews McMeel Universal)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파 사이드, 캘빈과 홉스, 딜버트 같은 만화 시리즈는 물론이고 <블루 데이 북>처럼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많이 펴내는 출판사로 기억한다.(그나저나 딜버트 작가도 최근 들어 구설수에 휘말리며 단숨에 나락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딜버트 애니메이션 가운데 하나인 "끼"(the Knack)를 지금도 가끔 한 번씩 찾아보곤 하는데, 특유의 냉소적 풍자를 마음에 들어 했던 독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래저래 씁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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