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에 <구름 도감>이란 것이 있기에 뭔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어린이용 그림책인 모양이다. 구름 좋아하는 나귀님이라서 관련서를 이것저것 사 모으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전문적인 내용까지는 아닌 듯하니 그림은 예쁘지만 일단 꼬맹이들한테 양보하는 게 낫겠다.


다만 북펀드 광고에 나온 샘플 페이지를 토대로 한 가지 지적하자면, "안개모양 층운" 페이지에 나온 '판구'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반고'라고 적어야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국 신화에 나온 거인 반고(盤古)를 중국어 발음대로 로마자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간 수집한 구름 관련서가 지금도 나오나 궁금해 검색해 보니 의외로 절판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한 권으로 읽는 구름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름 사전>,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 등이 그러했다. 조만간 보고 처분하려 했는데 아까우니 좀 더 갖고 있을까.


그래도 구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이후에도 구름 관련서가 의외로 많이 나왔다. 우선 구름감상협회의 대표라는 기상학자 개빈 프레터피니의 책이 세 종류나 나와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구름물리학>이라는 전문 서적도 나와 있던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뒤적여보고 싶다.


구름 책을 검색하다 보니 <땅에서 구름까지>도 나오는데, 이건 사실 자동차 공학 관련서이다. 언젠가 박완서 딸의 에세이에서 자동차 고치러 정비소 갔더니 그 책이 탁자에 놓여 있기에, 무슨 신앙 서적인가 궁금해 펼쳐 보니 공학 서적이라 당황했다는 일화가 나온 적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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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란마 1/2> 애니메이션을 새로 제작한 모양이다. 루미코의 개그 코드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나귀님이라 원작도 이미 전권 소장에 수차례 정주행한 데다가, 넷플릭스에서 <던전밥>과 <이세계 삼촌>을 재미있게 봤으니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신작 애니메이션이 과연 어디까지 표현할지, 또 어디까지 용인될지가 새삼 걱정스럽기도 했다. 널리 알려졌듯이 원작 만화의 핵심은 저주로 인해 찬물에 닿으면 여자로 변하고 더운물에 닿으면 남자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이상 체질이다.


무술을 연마하느라 맨몸일 때가 많은 소년이 여자 몸으로 변하고서도 평소처럼 웃통을 벗고 돌아다녀 모두를 경악시키고, 화가 난 약혼녀의 옷을 빌려 입고서는 가슴이 꽉 끼고 허리가 헐렁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아 분노를 사는 등의 어이없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사춘기 청소년의 성과 신체에 대한 호기심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부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잠재 코드를 찾아낼 수도 있는 작품인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구판 애니메이션이 불건전하다며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기도 했다.


물론 여자로 변한 주인공의 가슴이 수시로 노출되고, 여자 속옷을 훔치고 다니는 변태 할아범도 나오니, 과연 일본 청소년 만화의 표현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는 것도 사실인데, 과거에는 그저 웃기자고 만든 설정도 지금은 자칫 논란이 되기 쉽겠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란마 1/2>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공개 이후에 유튜브에 올라온 분석 영상을 몇 가지 보니 구판 애니메이션에 비해 수위를 낮추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인 듯하다. 결국 일종의 검열이 작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불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왜 영상물에서 살인 묘사에는 관대한데 성 묘사에는 가혹한지 모르겠다는 누군가의 불만도 떠오르는데, 사실 현재의 검열은 그 자체로 모순점이 적지 않다. 단순히 미디어를 순화해서 인간을 교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검열 당국도 인간을 잘 모르고 있는 셈이다.


검열의 이런 모순이 가장 잘 드러난 최근의 사례는 경기도 교육청의 한강 작품 유해 도서 선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내용상 청소년에게 어울리지 않아서라고는 하지만, 바로 그 작가가 노벨문학상씩이나 수상했으니 경기도 교육청으로서도 상당히 머쓱하지 않겠나!


나귀님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된 한강의 소설은 상당히 기괴한 내용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올드보이>와 <기생충> 같은 해외 영화제 수상작과 묶어서 K-그로테스크라는 장르의 의의와 육성에 대해서도 한 번쯤 고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경기도 교육청의 한강 작품 유해 도서 지정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입시일 것이다. 아무리 유해 가능성 농후한 내용이라도 국내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니, 이쯤 되면 당장 올해 수능부터라도 문제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가장 확실한 예상 문제라서 필독서로 지정해도 부족할 법한데 오히려 금지한다니, 당장 한 문제가 아쉬운 수험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불만 가득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차라리 교육부에서 한강 작품은 출제하지 않겠다고 미리부터 못을 박아 놓든가.


아이러니한 점은 오래 전부터 입시 문제에 사용된 필독서 중에도 청소년에게 유해해 보이는 내용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김동인의 "감자"인데, 한쪽은 원나잇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한쪽은 무려 성매매와 살인에 대한 내용이다!


'필독서'라는 명칭 자체도 의문이다. 언제부턴가 이른바 청소년 필독서 목록이 돌아다니던데, 수십 년 전에만 해도 없었던 풍조다. 문학평론가 김우창만 해도 <수레바퀴 아래서>가 필독서라는 것을 몰랐으며, 70세가 되어서야 처음 읽어보았다고 회고했을 정도이니까.


한편으로는 만초니의 <약혼자들>을 학교에서 필독서로 접하기 전에 읽어보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었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회고를 기억할 필요도 있다. 어찌 보면 필독서 지정이야말로 한 작품을 순수하게 읽지는 못하게 만드는 족쇄일 수도 있을 테니.


한강 작품의 유해 도서 논란을 계기로 문화 전반의 검열 문제도 생각해 볼 만하겠다. 최근 화제가 된 게임 분야 국정 조사에서 나온 누군가의 발언처럼, <오징어게임>이 진짜 게임이었다면 제작자가 에미상 수상은커녕 구속되었을 것이라는 일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부 주도의 검열이 없어지더라도, 온갖 불편러에 의한 인민재판식 검열은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이쪽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으니 과연 실효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수능이라고 한다. 과연 한강 문제는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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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라는 책이 있기에 솔깃해서 클릭해 보았더니 나오미 클라인의 책이었다. 영어권 이름이니 '네이오미'라고 표기해야 맞을 것 같은데, '아이자이어' 벌린을 굳이 '이사야' 벌린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성서의 표기법인 '나오미'가 굳어진 듯하다. 물론 그 이름의 유래를 감안하면 오히려 성서의 표기법이 히브리어 발음에 더 가깝겠지만.


특이하게도 클라인의 이번 책은 또 다른 '나오미'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바로 미국의 저술가인 나오미 울프인데, 국적과 외모부터 정치 성향이며 저술 내용까지도 상이한 두 사람을 대중이 종종 혼동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뜨끔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나귀님 역시 클라인의 지적처럼 두 명의 '나오미'를 종종 헛갈렸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최악의 오역본 중 하나인 저메인 그리어의 책에서 나오미 울프의 역시나 오역된 인용문을 접하고는 '이 여자가 그 시꺼먼 책 쓴 사람인가?' 생각했었고, 거꾸로 나오미 클라인의 다른 신간을 접하고는 '이 여자가 그 해럴드 블룸한테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했다가 흡혈귀 딸년이라고 역공을 당했다는 사람인가?'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원래 좌파 진영에서 경력을 시작한 울프가 머지않아 우파, 그것도 극우 진영으로 선회해서 클라인과는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인터넷이며 SNS를 통해 두 명의 '나오미'가 지속적으로 혼동되고, 울프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면 클라인까지 덩달아 대중에게 욕을 먹는 지경에 이르자, 클라인이 먼저 이 문제를 고찰하러 나섰다.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의 이른바 '부지깽이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는 쪽이 승리하게 마련이니, 결과적으로는 먼저 눈을 깜박인 클라인 쪽이 패배한 셈이 아닐까. 예를 들어 '어둠의 아이유'가 마구 날뛰는 상황에 진짜 아이유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란 그저 침묵을 지키는 것밖에 없어 보이니 말이다.


물론 서문에 인용된 필립 로스의 말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소롭고, 가소롭다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딜레마의 상황이기는 하다. 그래서 클라인도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프의 좌충우돌 행적을 뒤쫓으면서도, 온갖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섭렵하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왜 이걸 듣고 있는 걸까' 하고 종종 현타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대중이 유명인을 혼동하는 경우에는 대개 뭔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아이자이어 벌린을 처칠이 어빙 벌린으로 오인한 것은 진짜 착각이었겠지만, 슈바이처가 아인슈타인으로 오인된 사례나, 브루노 마스가 저스틴 비버로 오인된 사례나, 앤 머리가 (언젠가 콘서트에서 직접 소개한 일화처럼) 티나 터너로 오인된 사례가 그렇다.


앞자리 이름만 비교적 흔치 않다는 점만 같을 뿐, 외모와 성향과 발언이 천양지차인 클라인과 울프를 혼동하는 것은 대중의 무지와 무심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정확하고 섬세한 구분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법전' 스님이 기고한 개고기 반대 글조차도 오랜 세월 동안 '법정' 스님의 글로 오인되었듯이 말이다.


여하간 클라인은 자신의 도플갱어, 또는 분신으로 간주되는 울프가 곳곳에 남긴 행적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추적했는데, 이 과정에서 각자가 속한 좌파와 우파의 현재 상황까지도 도플갱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즉 좌파가 뭔가를 주장할 때마다 우파는 일종의 도플갱어를 만들어내서 상대편의 주장을 '반사'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귀님이야 서문 외에는 아직 읽은 것이 없으므로 클라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 보면 언제부턴가 좌파가 우파의 미러링에 꼼짝달싹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도 한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가짜 뉴스인데, 기껏 팩트체크를 해 놓으면 유포자는 '아니면 말고' 하는 무책임한 입장을 고수하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에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무기는 최신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었는데, 어느새 SNS와 유튜브로 우파가 대거 진출하면서 온갖 가짜 뉴스를 퍼트리게 되자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좌파도 종종 어떤 사안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았지만, 우파는 대놓고 가짜 뉴스를 퍼트려서 훨씬 더 대박을 터트렸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클라인이 울프와 확연히 구분되는 '그 나오미'가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좌파인지 진보인지 하는 세력도 지금에 와서는 우파인지 보수인지 하는 세력과의 확실한 차별화에는 실패한 것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중의 눈에 충분히 혼동할 만해 보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통에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좌파고 우파고 진보고 보수고 간에 도덕성이라는 높은 가치를 버리고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민낯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경우에는 주디스 슈클라의 지적처럼 위선이 잔혹성보다 더 큰 문제인 것처럼 과장되고, 결국에는 인간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낳아 이번 미국 대선처럼 극우 부활의 온상이 될 테니까.


여하간 도덕성을 회복하려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터인데, 코로나 후유증에 각종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부동산부터 사과값, 배추값, 치킨값, 배달료에 이르기까지 난리인 한국 경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좋아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좌파의 약세와 우파의 득세를 단순한 도플갱어 전략 하나로만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 나오미 울프는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 선동가이고 기회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 모양이다.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을 때 의외로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했다는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록 블룸이 울프[쓰고 보니 여기서 또다시 이 나오미와 저 나오미를 헛갈렸다! '클라인'이 아니라 '울프'가 맞다]와의 부적절한 접촉을 한사코 부정했지만, 주위의 증언에 따르면 저 문학비평가는 실제로 제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사생활 면에서 제법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는 점이다.


[**] 그나저나 책 소개에서 언급한 "영국에서 부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여성문학상 논픽션" 수상 실적은 살짝 낯간지럽다. '여성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 자체가 1996년에 제정되어 역사도 짧을 뿐더러, <도플갱어>가 수상한 '여성논픽션상'(Women's Prize for Nonfiction)은 2023년에야 신설되어 나오미 클라인이 제1회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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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무난히 당선되었다. 지난번 암살 시도 모면 이후에 승리는 사실상 따 놓은 당상이 아닌가 생각했던 나귀님이었으니 그저 무덤덤했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의 당선에 깜짝 놀란 듯한 여론이 대부분인 것 같으니 우스운 일이다.


지난번 한국 대선 결과는 윤석열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못해서였던 것처럼, 이번 미국 대선 결과 역시 트럼프가 잘해서가 아니라 바이든이 못해서였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경제와 외교부터 본인 건강 문제까지 거듭된 실책으로 패배를 자초한 셈이다.


의외라 여겨지는 한편으로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트럼프 집권 2기를 전망하는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다. 십중팔구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양쪽에 대한 원고를 모두 준비해 두었다가 결과 발표와 동시에 간행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후보의 저서나 전기를 간행할 경우에는 패배 시의 위험 부담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운 좋게도 당선자의 책을 간행했다면 대박이겠지만, 낙선자의 책을 간행했다면 완전 쪽박일 수밖에 없으니.


때로는 어떤 인물이 당내 경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관련서를 냈다가 쪽박을 차는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2016년의 버니 샌더스였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한 권도 아니고 전기와 자서전까지 합쳐서 무려 다섯 권이 나왔다!


카멀라 해리스도 의외로 자서전이 2021년에 일찌감치 번역되어 있었는데, 알라딘 판매지수를 보니 대선 특수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십중팔구 해리스 당선과 함께 출간될 예정이었다가 이제 흐지부지되어 버린 국내외 저자들의 책도 한두 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번 집권 1기에 간행된 저서가 여러 권이라서 이제 굳이 다시 나올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집권 2기를 전망하는 시의적인 책들이 여럿 나오는 모양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성격상 앞으로 뭐가 될지는 닥쳐봐야 하겠다.


그나저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귀님도 트럼프 초선 때에 <불구가 된 미국>이라는 저서를 하나 사다 놓긴 했었다. 동네 헌책방에 갔더니 여러 권 쌓여 있기에 살펴보니, 뒤표지에 무려(!) 로버트 레드포드의 추천사가 들어 있기에 신기해서 사왔던 거다.


알고 보니 레드포드의 추천사는 어느 토크쇼에 나와서 한 돌려까기였는데, 그걸 트럼프가 잽싸게 가져다가 마치 그 배우의 진심인 척 써먹은 것이라 한다. 훗날 트럼프의 대표 전략으로 자리잡은 가짜 뉴스 생성 및 유포의 선례 가운데 하나였던 셈일까.


물론 나귀님도 트럼프를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나 구경이나 하자 싶어 구입하기는 했지만 막상 시간을 투자하기는 아까워서 책더미에 파묻고 내버려 두었는데, 결국에는 책을 버리기도 전에 트럼프가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진즉 내다버렸더라면 트럼프 2기라는 대참사도 없었을지 몰랐겠다 자책하며 이번에는 진짜로 버리려고 책더미를 뒤지니, 트럼프 책 밑에 깔린 존 맥케인 자서전이 문득 눈에 띈다. 이번 대선 결과에 아마 저 양반도 무덤에서 홱 돌아눕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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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시인선으로 새로 나온 책을 알라딘 첫화면에서 광고하기에 살펴보니, 표지에 들어 있는 저자 캐리커처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거칠다 못해 뭔가 어수선한 느낌마저 주는 과거 시인들의 얼굴과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마치 다른 시리즈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당연히 그린이가 달라진 까닭일 것이다.


구글링해 보니 이와 관련된 설명은 이미 10년 전 <동아일보> 기사 "문지의 얼굴이 다양해졌다"(2014년 1월 20일자)에 나와 있었다. 1977년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 첫 권인 황동규 시집부터 캐리커처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무용평론가 김영태와 시인 이제하가 번갈아 담당하면서 이 시리즈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300번대 후반부터 그린이가 다른 캐리커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데, 나귀님이 뭔가 달라진 느낌을 확연히 받게 된 것은 2023년에 나온 <홈 스위트 홈>이라는 시집부터였다. 문지 시인선은 맞는데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기존의 크로키와는 딴판인 만화풍의 저자 캐리커처가 들어 있기에 세대차이를 느낀 거다!


최근에는 출판사 대신 저자가 직접 그린이를 선정하기도 하는 모양이고, 드물게나마 초판의 캐리커처가 재판에서 교체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최근 각광을 받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시집이 그런 경우였다. 2013년에 나온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초판에는 원래 작가의 지인인 한국화가가 그린 캐리커처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재판의 캐리커처는 작가의 동생이 그린 것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책 표지의 저자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초판 캐리커처가 초상화 느낌이라 그 시리즈의 다른 표지화와 이질적이라는 지적을 출판사와 독자로부터 받아서라고 저자가 직접 해명했다.


초판은 사실적인 정면 얼굴 묘사인 반면, 재판은 측면 얼굴 윤곽만 나오고 눈코입은 사라진 것이 특징이다. 물론 더 단순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시리즈의 다른 표지화와의 유사성을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나 지인이 첫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이 교체의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기존 표지화와 너무 이질적인 초상화라서 곤란했다면 굳이 수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초상화의 수록이건 교체건 간에 결국 저자의 승인을 거쳤을 터인데, 작품이나 제목 선정에서 의견이 달랐어도 출판사보다는 작가가 최종 권한을 가질 터이니, 결국 캐리커처의 교체 역시 출판사보다 작가의 뜻일 수 있다.


풍경화와 달리 초상화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오히려 불만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유명 화가가 그린 초상화를 영국 정부로부터 선물받았지만, 노쇠한 모습을 너무 잘 묘사했다는 이유로 못마땅해 한 나머지 불태워버린 처칠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한강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자기 얼굴의 사실적 묘사가 싫었을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저자인지 지인인지 독자인지 출판사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해서 결국 교체한 캐리커처를 담은 초판본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는 오히려 희귀본 대접을 받는다는 점이다. 개정판이 나오면 초판 정보를 비공개하는 특성상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중고샵에 판매가 150만 원에 올라온 매물이 있다!


여하간 나귀님이야 최근 나온 시집의 표지에 실린 만화 그림체 때문에 처음 인식한 변화이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추세라니 나만 몰랐던 것인가 싶다. 물론 달라진 것은 표지화만이 아니어서 내용도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나귀님이야 국내시를 평소 안 읽으니 이것도 편견이라면 솔직히 할 말은 없고...



[*]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문지에서 절판 시집 재간행 시리즈인 문지시인선 R인가 하는 것을 간행하면서 유하의 <무림일기>를 내놓았기에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가, 그 말미엔가 수록된 "기획의 말"을 읽으며 진저리를 친 기억이 난다. 그냥 '좋은 시집이 절판되었기에 아까워서 다시 냈다'고 하면 그만인데, 무슨 이유에서 현학적이다 못해 부조리하게까지 느껴지는 글을 이런저런 외국 문헌의 출처까지 줄줄이 거론하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적어 놓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의도 밤하늘에 별님과 달님이 맥주 마시며 노닥거린다는 황당무계한, 또는 터무니없게 발랄했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던 어느 시의 한 구절을 수십 년 뒤까지 종종 떠올리는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요즘 시고 시론이고 간에 뭔가 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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