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참석한 노벨상 시상식에 관한 신문 보도를 읽다 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각 부문 수상자의 시상에 앞서 주최측이 선정 이유를 설명하는데, 보통은 말미에 주최측 발표자가 해당 수상자의 모국어로 한 마디를 곁들이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선정 이유에도 말미에 한국어 문장을 한 마디 곁들이기 위해서 주최측 발표자가 현지의 한국어 번역가에게 의뢰해서 해당 문장의 녹음까지 따갔던 모양인데, 결국에는 발표자가 자연스레 발음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빼버린 모양이다.


표면상으로는 어색한 발음 때문에 수상자나 그 고국 모두에 누를 끼칠까봐 그랬다지만, 제아무리 어색한 발음이라도 외국인이 우리말을 구사하려 애썼다는 사실 자체에 기꺼이 감동하는 우리 정서를 감안해 보면, 설령 '물, 물코기'가 되더라도 그냥 읽는 게 낫지 않았을까.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번번이 잘못 발음되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해서 큰 웃음을 자아냈듯이, 소설가 한강의 노벨상 시상식에 한국어가 곁들여졌다면 제아무리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더라도 일종의 밈이 되어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법하다.


그렇다면 서양인 기준으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로 손꼽히는 중국어의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궁금한 김에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의 시상식을 유튜브로 검색해 보니, 이때에도 역시 선정 이유 말미에는 중국어 문장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자면 노벨상 주최측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같은 서양 언어와 달리 한국어와 중국어를 어렵게 여겼음을 근거 삼아, 마치 세계 문학의 기준인양 자처하는 노벨문학상 역시 서양과 유럽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꼬집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시상식 이후 개최된 연회에서는 사회자인 스웨덴 대학생이 예상 밖의 한국어로 한강을 소개했다고도 전하니, 잘만 하면 '한글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과시할 기회를 놓친 우리 정서로는 아무래도 주최측의 '정성 부족'과 '노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한 번은 수상자가 탁월한 어학 능력으로 주최측을 놀래킨 경우도 있었다. 196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머리 겔만이 그 주인공인데, 영어로 시작한 기념 강연을 중간부터 유창한 스웨덴어로 바꿔 말하는 바람에 객석에서 졸던 국왕도 놀라 깨어났다고 한다.


겔만은 15세에 예일 대학에 입학하고 21세에 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만큼 신동으로 유명했는데, 전공인 물리학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까닭에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서 가져온 '쿼크'와 불교에서 가져온 '팔정도' 같은 명칭을 소립자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 겔만의 행동을 현학적이라고 조롱한 과학자들도 없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절친이자 직장 동료인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파인만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면 겔만이 곧바로 박학다식을 자랑하고, 파인만이 짜증나서 약을 올리면 겔만이 '긁힌'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그래도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면 그 파괴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함께 교수로 재직하던 칼텍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마다 맨 앞줄에 두 명이 나란히 앉아서 까다로운 질문을 번갈아 가면서 던지는 바람에, 발표자의 입장에서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파인만의 탁월함에 반해 '나는 그를 형제처럼 사랑했다'고 회고한 프리먼 다이슨과 달리, 겔만은 항상 저 유명한 동료에게 츤츤대며 경쟁 의식을 불태웠던 듯하다. 어쩌면 쾌활하고 소탈한 성격의 파인만이 열한 살이나 어린 겔만을 항상 동생 취급한 것이 억울했던 것일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비트겐슈타인과 포퍼, 이 나오미와 저 나오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아무리 이쪽이 저쪽을 평생의 경쟁자로 여기고 누르기 위해 애를 쓰더라도, 막상 저쪽이 이쪽을 '아웃 오브 안중'으로 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파인만과 겔만도 그랬다.


어떤 면에서는 '남이야 뭐라 하건'이란 좌우명으로 살아가는 파인만과는 정반대인 겔만의 완벽주의적 성격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볼 수도 있겠다. 문제의 스웨덴어 강연도 거의 완벽하게 마무리했지만, 정작 본인은 발음 한두 개 틀린 것을 두고두고 자책했다 하니까...




[*] 위에서도 언급한 노벨상 수상자 선정 이유만 엮어서 내놓은 책도 있는데, 바다출판사에서 간행한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시리즈이다. 아직까지는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분야의 선정 이유(번역서에서는 '시상 연설'이라고 했다)를 엮은 책만 나왔는데, 한강의 수상을 계기로 조만간 문학상 분야의 책도 나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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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 4대 문학상이라면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노벨문학상,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말라파르테상, 이상문학상이다. 그리고 소설가 한강은 이 네 가지 문학상을 석권한 국내 유일의 작가이자, 아직까지는 세계 유일의 작가로 이미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노벨문학상은 노벨을 기념하려는 바이오, 부커상은 부커를 기념하려는 바이며, 말라파르테상은 말라파르테를 기념하려는 바이고, 이상문학상은 이상을 기념하려는 바이니, 결국 해당 인물 각각의 이상에 버금가는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거니 싶다.


그런데 이 가운데 다소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말라파르테상의 연원인 이탈리아 작가 쿠르초 말라파르테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 각지를 누비며 활동한 이 작가 겸 언론인이 사실 정치 성향으로는 무려 파시스트 겸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분노하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 나가던 사람들이라면 이 뜻밖의 제보에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자인 것도 고약한데, 심지어 파시스트이기까지 했던 사람을 기념하는 상을 받은 한국 작가라면 그 성향 역시 의심스러울 테니.


실제로 말라파르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운동을 적극 지지했으며, 무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한 로마 진군에도 동행했다. 비록 나중에는 파시스트 정부에게 외면 받아 입장을 선회하게 되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예명인 '말라파르테'(Malaparte)조차 "나쁜 편"이라는 뜻으로, "좋은 편"이라는 뜻인 나폴레옹의 성 '보나파르트'(Bonaparte)를 뒤집은 것으로서, 저 유명한 군인 출신 황제의 가문이 과거 '말라파르테'에서 '보나파르트'로 성을 바꾸었던 것에 역행한 행보였다.


이처럼 수상쩍고도 위험천만한 인물인 말라파르테의 대표작이 바로 <쿠데타의 기술>인데, 단순히 문헌 자료만 뒤적인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례를 직간접으로 체험한 현장감이 특징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쿠데타 직관한 썰 푼다'쯤 되려나.


이는 또 다른 대표작 <망가진 세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외관상 논픽션에다가 체험과 상상, 또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는 말라파르테 특유의 창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해서까지 찬반양론이 나온 것도 그래서이다.


<쿠데타의 기술>은 최초의 근대적 쿠데타로 평가된 1799년 나폴레옹의 정권 장악부터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1920년 폴란드의 5월 쿠데타, 1920년 독일의 카프 폭동,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로마 진군 같은 실례를 통해서 쿠데타의 실제 전술을 분석한다.


급기야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인 트로츠키가 이 책의 내용에 '긁힌' 나머지 망명 중에 어렵사리 얻은 라디오 방송 연설 기회에서 할당된 시간 대부분을 말라파르테의 책 내용을 비난하는 데에 사용했고, '그만 하라'는 저자의 전보에 '너나 그만해'라고 응수하기까지 했다.


말라파르테는 이 책에서 히틀러를 '여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나치를 폄하한 것 때문에 뒤늦게 무솔리니의 눈 밖에 나서 탄압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여성 폄하 발언이야말로 히틀러 본인의 악의적 발언보다 더욱 문제가 될 법하다.(그래서 절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기술>은 쿠데타를 모의하는 쪽에게는 물론이고, 반대로 쿠데타를 방지하는 쪽에게도 유용한 자료로 간주되어서, 급기야 일부 국가에서는 책을 비판하고 금지하는 데에 앞장섰던 사람의 유품 중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이 말라파르트의 저작 전반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배치되는 내용을 다수 찾아내고 있으니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방향을 여러 번 바꾸었던 100년 전의 유럽에서 이 책이 큰 관심을 끌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쯤 되면 얼마 전 뜬금없는 비상 계엄 때에도 누군가는 이 책을 참조할 만도 했을 법한데,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였던 그날의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미루어 실제로는 참조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국내 유일의 번역본이 이미 절판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수 정권으로부터 불온 사상 유포자 취급을 받는 소설가에게도 시상한 파시스트 겸 공산주의자 기념상의 유래인 작가이다 보니, 누가 굳이 소개했더라도 애써 외면해 버렸을 법하다.


그렇다면 이번 비상 계엄의 실패 역시 소설가 한강의, 또는 그가 받은 상의 유래인 말라파르테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귀님 눈에는 충분히 그럴 만해 보인다. 물론 무지한 사람들은 그 헛소동도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인 대통령의 오만함이 낳은 실책이라 보는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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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반짜리 일장춘몽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전국은 물론이고 세계까지도 놀래킨 비상 계엄 사태가 진정되자, 이제는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모양이다. 쉽게 말해 준비도 허술하고, 실행은 더욱 허술했으며, 실질적으로 이득이라곤 되지 않은 그런 짓을 무슨 정신으로 저질렀을까?


정치인과 법조인과 평론가와 교수를 망라한 온갖 사람들이 뉴스에 출연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면서 아내 사랑부터 판단 착오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유를 거론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잠정 결론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고 봐야 할 것 같고, 향후로도 아마 규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에 국회의 탄핵안 본회의 상정 표결을 지켜보다 생각이 많아져서 이것저것 책을 뒤적이다, 지난번 사과 가격 폭등에 생각이 나서 꺼내 놓았던 레이 황의 중국사 에세이를 펼쳐 보니 당 현종과 양귀비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대통령 마누라가 문제의 시작이었으니 이번도 경국지색인가.


<사기>에는 주나라 유왕이 애첩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려고 군대를 긴급 소집하는 허위 경보를 수시로 발동했다가 결국 양치기 소년처럼 외면당해 나라가 망했다고 나온다. 비상 계엄 조치도 번번이 딴지 거는 야당을 향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대통령의 변명을 듣고 보니 비슷한 것도 같다. 


하지만 뉴스 보도를 접하다 보니 살짝 의외의 곳에서 이번 사건의 이유가 아닐까 싶은 단서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예정된 노벨상 시상식이다. 현지에서는 벌써부터 각종 행사가 시작된 모양이고,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역시 어제 시상식 참석차 출국한 듯하다.


이상하게도 이 작가는 수상 발표 이후 언론 접촉마저 회피하며 줄곧 침묵을 지켜 왔는데, 그런 까닭에 이번 시상식 참석을 계기로 어떤 입장을 밝히게 될지에 대해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상태이다. 노벨상 시상식 일정에는 수상자의 소감 발표와 강연 행사도 있으니 뭔가 말을 하긴 할 것이다.


외국 언론으로선 도대체 한강이 왜 국내에서 논란이 되는지도 궁금해 할 법하다. 수상 발표 직후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 시위대가 모여 '한강 노벨문학상 시상 철회'를 요구하는 일까지도 벌어졌는데,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라는 기록을 세운 작가에게는 부당한 대우처럼 보이니까.


문제는 한강이 평소처럼 침묵을 지키거나, 아니면 최대한 에둘러 말할 경우에는 그 진의가 잘못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데보라 스미스가 잘 둘러대더라도 한계가 있을 터이니, 작가가 뭔가 말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계기가 꼭 있어야 하기에 결국 정부가 나선 것이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동기 자체가 불가사의한 비상 계엄이지만, 한강의 입을 열기 위한 의도로 실행되었다고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명분 없는 실행으로 온 나라와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고, 신속한 해제를 허락함으로써 불의의 피해를 미연에 예방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한강의 대표작의 이해를 돕기까지 했는데, 소설  <소년이 온다>가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 계엄 선포 직후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데보라 스미스의 명번역으로도 차마 넘어설 수 없었던 문화적 차이조차도 이번 비상 계엄 보도를 통해 극복되지 않았을까.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대통령의 당혹스러운 비상 계엄 선포는 한강이라는 작가가 배출될 수 있었던 한국 특유의 정치사회적 배경이 어떠한지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던 대대적인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K팝과 K영화와 K문학에 뒤이어 K계엄까지도 전세계에 과시한 셈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로맨티스트가 아닐까? 개인적 인연이 없는 한강을 위해서도 이 정도라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더욱 지극하지 않겠는가! 이쯤 되면 한때 그의 손바닥을 장식한 왕(王) 자도 훗날 경국지색의 여러 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리라는 예언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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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온 책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소와당과 서유구에 대한 이야기를 연이어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새삼스레 <임원경제지> 번역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임원경제지> 번역본은 본래 소와당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다가, 지금은 번역을 주관하는 풍석문화재단에서 직접 간행하고 있다.


예전에 풍석문화재단 측에서 올린 해명에 따르면 <임원경제지> 자체가 워낙 방대한 내용이다 보니 출간 작업이 차일피일 지체되었고, 이 과정에서 참여자 일부가 이탈하며 그때까지 번역이 완료된 분량만 소와당을 통해 간행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소와당에서 나온 분량은 훗날 풍석문화재단에서 번역자가 바뀌어 재간행되었다.


<임원경제지> 번역은 2003년에 시작되었지만, 2008년에야 임원경제연구소가 발족하며 사업이 본격화되어, 2009년에 소와당을 통해 첫 번역서가 간행되었다. 이후 2015년에 풍석문화재단이 발족하며 번역서를 직접 간행하기 시작해서 2024년 현재 31책까지 간행되었다. 번역서도 원본처럼 52책이라 하면 5분의 3이 간행된 셈이다.


출간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번역 진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원문 해석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번역료를 선지급하다 보니 돈만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지원을 받았던 <주자대전> 번역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애초에 책상물림들의 돈 관리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돈 이야기를 하고 보니 책값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권당 3만 원씩이니 52책 전권을 사려면 15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웬만하면 헌책이라도 사보려는 나귀님 입장에서도 영 손이 나가지 않는 수준이니, 아무리 대단한 책이라 하더라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가격은 살짝 아쉽기도 하다.


여하간 이왕 생각난 김에 <임원경제지>의 편명과 분량, 간략한 내용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아래 내용은 풍석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나온 다음 게시물에서 가져왔다. http://pungseok.net/?page_id=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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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권 52책. 필사본. 일명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십육지 林園經濟十六志≫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기예와 취미를 기르는 백과전서로 생활과학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113권을 16개 부문으로 나눈 논저로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본리지(本利志, 권1∼13, 13권 6책):밭 갈고 씨 뿌리며 거두어들이기까지의 농사 일반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전제(田制), 수리(水利), 토양지질, 농업지리와 농업기상, 농지개간과 경작법, 비료와 종자의 선택, 종자의 저장과 파종, 각종 곡물의 재배와 그 명칭의 고증, 곡물에 대한 재해와 그 예방, 농가월령(農家月令), 농기도보(農器圖譜), 관개도보(灌漑圖譜) 등에 걸쳐 서술했다.





2.관휴지(灌畦志, 권14∼17, 4권 2책):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을 다루고 있다. 각종 산나물과 해초·소채·약초 등에 대한 명칭의 고증, 파종시기와 종류 및 재배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3.예원지(藝畹志, 권18∼22, 5권 2책):화훼류의 일반적 재배법과 50여 종의 화훼 명칭의 고증, 토양, 재배시기, 재배법 등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다.





4.만학지(晩學志, 권23∼27, 5권 2책):31종의 과실류와 15종의 과류(瓜類), 25종의 목류(木類), 그 밖의 초목 잡류에 이르기까지 그 품종과 재배법 및 벌목수장법 등을 설명하였다.





5.전공지(展功志, 권28∼32, 5권 2책):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과 직조 및 염색 등 피복재료학에 관한 논저이다.





6.위선지(魏鮮志, 권33∼36, 4권 2책):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이른바 점후적(占候的) 농업기상과 그와 관련된 점성적인 천문관측을 논하였다.





7.전어지(佃漁志, 권37∼40, 4권 2책):가축과 야생동물 및 어류를 다룬 논저로서, 가축의 사육과 질병치료, 여러 가지 사냥법, 그리고 고기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과 어구(漁具)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8.정조지(鼎俎志, 권41∼47, 7권 4책):식감촬요(食鑑撮要)는 각종 식품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의약학적 논저와, 영양식으로 각종 음식과 조미료 및 술 등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9.섬용지(贍用志, 권48∼51, 4권 2책):가옥의 영조(營造)와 건축기술, 도량형기구와 각종 공작기구, 기재·복식·실내장식·생활기구와 교통수단 등에 관해서 중국식과 조선식을 비교해 우리 나라 가정의 생활과학 일반을 다루고 있다.





10.보양지(葆養志, 권52∼59, 8권 3책):도가적(道家的) 양성론을 편 논저로, 불로장생의 신선술(神仙術)과 상통하는 식이요법과 정신수도를 논하고, 아울러 육아법과 계절에 따른 섭생법을 양생월령표(養生月令表)로 해설하였다.





11.인제지(仁濟志, 권60∼87, 28권 14책):의(醫)·약(藥) 관계가 주로 다루어져 있으나 끝부분에는 구황(救荒) 관계가 다루어지고 260종의 구황식품이 열거되어 있다.





12.향례지(鄕禮志, 권88∼90, 5권 2책):지방에서 행해지는 관혼상제 및 일반 의식(儀式) 등에 관한 풀이이다.





13.유예지(遊藝志, 권91∼98, 6권 3책):선비들의 독서법 등을 비롯한 취향을 기르는 각종 기예를 풀이한 부분이다.




14.이운지(怡雲志, 권99∼106, 8권 4책):선비들의 취미생활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15.상택지(相宅志, 권107·108, 2권 1책):우리 나라 지리 전반을 다룬 것이다.





16.예규지(倪圭志, 권109∼113, 5권 2책):조선의 사회경제를 다룬 것으로 양입위출(量入爲出)·절생(節省)·계금(戒禁)·비예(備豫) 등을 다룬 것과 무역이나 치산(置産) 등을 다룬 화식(貨殖) 등이 논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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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미국 대통령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연이어 읽은 기억이 난다. 저서나 자서전은 물론이고 측근의 회고록과 리더십 평가서도 제법 나온 상태였고, 심지어 은밀한 사생활이며 에어포스원의 역사에 대한 책까지 의외로 많은 자료가 있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주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이라는 것이었는데,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무려 22년 뒤인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판매 중인 것으로 나온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철 지난 자료가 된 것 같지만 말이다.


부제에 나온 것처럼 당시까지의 미국 대통령 40명 가운데 최악으로 선정된 10인의 약전을 모아 놓았는데, 이 당시의 최악은 탄핵 직전까지 가서야 하야를 선택한 리처드 닉슨으로 꼽혔고,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당시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린 빌 클린턴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지금 와서 다시 검색해 보니, 최근에 와서는 닉슨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는지 오히려 순위가 상승하여 중위권에 진입한 반면, 링컨 이전의 제임스 뷰캐넌을 비롯한 몇몇 대통령과 가장 최근의 (그러나 또다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가 최하위권으로 손꼽히는 모양이다.


닉슨이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촉발된 선거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서 거짓말을 늘어놓아 탄핵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에 못지않게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지지자의 의회 습격 사건을 비롯한 각종 막장 행보 때문이겠고 말이다.


거짓말과 의회 압박이라는 사안 각각만 놓고 보더라도 역대 최악의 대통령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데, 어젯밤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선포되었다가 불과 두 시간 반 만에 국회의 결의안 통과로 싱겁게 끝나 버린 비상 계엄령 조치야말로 이 두 가지 사안의 조합이라 할 만하다.


애초에 그런 조치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일방적인 발표가 나왔다는 것도 뜬금없었는데, 마지막 계엄령으로부터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난 까닭인지 비록 군대가 출동하고 국회에 진입했다지만 예상만큼 기세등등하지는 못하고 흐지부지되었으니 더욱 황당무계한 일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도 묘사되었던 것처럼 애초에 군인 출신 대통령이라면 군대에 대한 장악력이라도 확실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터인데, 병역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고 심지어 현재 지지율이 10퍼센트대인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면 사상 최초 탄핵의 주인공인 박근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차점자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번 계엄령 사태를 계기로 결국 쫓겨나게 생긴 윤석열이 이들 모두를 능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소련 말기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고르바초프를 억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옐친이 시위대를 이끌고 군대를 설득하며 탱크에 올라가 연설함으로써 반란이 진압되고 소련 해체가 가속화되었던 것처럼, 기껏해야 두 시간 반짜리였던 계엄령이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나귀님이 학교 다닐 때에만 해도, 사회 시간에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배울 때에는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덧붙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일어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는구나 싶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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