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흐르는 새벽엔
느린 대화를 나누고 싶다

아는 이들과
나누지 못한 마음을
날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뿌리부터 얽힌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슬픔을 슬픔으로
이 순간의 눈물만
보여도 되는 이와

아픔을 아픔으로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
따뜻한 몇 글자
건넬 수 있는 이와

천천히 나누는 대화로
시린 새벽을 건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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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공간 빽빽한 글자 속에 

모래알처럼 부스러지는 시간을

치열하게 담았겠지


한동안은 마냥 앞만 보고 달렸겠지

드라이아이스 마냥 가라앉는 한숨 쉬며

종종 땅을 보고도 터벅터벅 걸었을 거야

 

까진 무릎 사이로 서글펐던 시간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너에게

지금 나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존재 자체로 의미인 우리에게

무의미한 순간은 없다고 봐

뒤늦게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일 뿐


지금은 멈춤이 다가온 순간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하는 건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일

 

낮아진 시야로 끊어져 보이는 길도

일어서면 여전히 이어져 있을 거야

설령 다른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도


길은 언제나 만들어진단다

시간의 오선지를 따라 삶의 길을 만드는 건

꾹꾹 찍어가는 자신의 발자국이니까



*결이 고운 나의 조카에게,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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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시간 너머
희미해진 미소 끝에
날선 감각만이
오롯이 남아버렸나

진공을 헤엄치듯
소리가 그리워
어둠 속을 헤매이듯
눈빛이 그리워
까슬한 감촉이라도
쓰다듬고 싶은데
감기 걸린 코끝마냥
달아나는 향기라니

바삭거리는 마음에
심장이 따끔거려
메마른 시선으로
세상을 더듬다보면
들숨에 빨려들어오는
물컹물컹한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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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탁자
둥그스름한 곡선을
소박하게 흐르는 윤기
잔잔한 감촉을
방금 머금은 커피
부드러운 메아리를

작은 호흡 나지막이
들려주고 싶다
어스름 하루 끝에
떠오르는 그대에게
심장 언저리 간질거리는
하늘거리는 설렘을

한 줌의 오늘을
자그마한 세상을
가벼운 향기로움을
그만큼의 무게로
담아내야 하는
투명한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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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현실 편 : 철학 / 과학 / 예술 / 종교 / 신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2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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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줄 알았다. 나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나. 움직이는 생명체를 제외하면 아무리 둘러봐도 고정되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대상들이 다르게 인식이 된다니. 하긴 나무를 바라보더라도 어떤 이는 줄기를, 다른 이는 꽃을, 가지 끝을, 밑둥의 생채기를, 한들거리는 잎을, 탐스러운 열매를 바라보며 각기 다른 생각에 잠길 수가 있으니 맞는 말인 듯싶다.

사람마다 다른 관심사를 2차원적인 뇌 안에 그려 넣은 뇌 구조 그림이 기억난다. 감각이든, 사고이든 무언가를 인지하는 것은 뇌이므로 뇌에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요소가 다르다면 각자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고 느끼는 나의 세상에는 오롯이 나 혼자만 존재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나를 기준점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p364)’ 그렇다.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도 있고, 어느 쪽을 어떤 감정일 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날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 취사 선택한 세상을 들여놓는 것이다.

 

채사장의 책을 읽어갈수록 다른 세상이 가느다란 펜으로 그려진 정밀묘사처럼 다가와 신기했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등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다룬 책이다.

각각의 영역을 크게 세 가지의 태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오로지 한 가지만 존재한다는 절대주의,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상대주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회의주의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의 영역들이 빛의 삼원색처럼 단순히 세 가지로만 분류되지는 않겠지만, 채도와 명도를 아우르는 커다란 아우트라인으로 묶어서 이해하니 대략적인 체계가 잡히는 느낌이다.

다섯 가지 영역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분야는 신비이다. 삶과 죽음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공감 가는 문장들이 특히 많았다. ‘나의 주관적 세계로서의 의식을 이해하는 순간, 세계는 나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신비로서 다가온다.(p364)’ 이런 이유로 각자의 삶은 매 순간 신비로운 경험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이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인 이유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국민 윤리 시간에 흘려들었던 철학 사조와 관련 철학자들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다른 이의 관점에서 본 과학의 역사도 신선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 설명되는 현대의 양자역학은 대학 다닐 때 배우면서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아 아쉬웠다. 과학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여러 요인 중 하나이다.

예술 분야는 미술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수록된 그림이 컬러풀하여 미술관을 둘러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잠시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엎치락뒤치락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도전이 흥미롭고도 감동적이었다. 음악 분야도 서술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에 매력을 느끼고 그 분야에 몸담고 싶은 나로서는 작가가 문학을 예술로 구분한 점이 새삼스럽게 좋았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었지만, 종교를 설명하는 부분은 성경을 몰라 식물백과사전을 보는 듯해 쏟아지는 용어를 감당하기에 다소 벅찼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결정은 책임을 동반하므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니. ‘어떤 삶을 선택해도 괜찮다. (중략) 결정은 당신이 하면 된다.(p57)’ 멈추고 싶은데 계속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삶.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삶. 그게 자유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결국 스스로 내 안으로 끌어들여 느끼는 감정인 거다. 내가 마음을 꽃밭으로 만들고, 지옥으로 만들고, 깊은 바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공간이 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산다.(p372)’

나는 침해받지 않는 온전한 하나의 우주를 소유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자다.(p378)’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하는 나만의 마음, 우주까지 품을 수도 있는 마음을 상상하니 갑자기 영혼이 확 넓어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고독하면서도 벅차서 유리창 밖 세상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p138, 마지막 줄 : 대에 대해

p189, 2번째 단락 첫 줄 : 고양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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