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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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과학스러워~ 첫 발령 후 몇 년간 과학 교과서 외적으로 읽은 책은 거의 과학 관련 도서이다. 재미있는 물리 여행,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과학잡지Newton, 과학 어쩌구 백과사전 등. 온통 과학으로 쳐발쳐발한 머릿속 세상이 수업의 폭을 넓혀주리라 기대한다.

지나고 보니 나는 넓이와 깊이를 혼동한 듯하다. 당시의 책들은 수업의 깊이에만 기여한다. 수업내용이 풍성해진 건 인문학 도서를 접하면서부터다. 예전에는 나뭇가지만을 보여주었다면 잎도 돋아나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매달린다. 퍼펙트한 수업은 아니지만 스스로 변화의 정도를 인지할 정도로 비유와 예시가 다양해진다.

작가 유시민은 인문학과 함께 과학을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과학에서 출발한 나에게는 반대로 인문학을 일찍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시작부터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확신한다. 수업의 색깔이 훨씬 찬란했으리라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과학을 더 가까이 가져다 놓았으리라고. 나아가 그들 스스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땅따먹기 놀이에서 영역을 넓히려는 자는 경계를 넘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인 공부도 마찬가지다. 과학에서 인문학으로,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바라보는 세상이 넓어진다. 존재의 좌표를 더욱 선명하게 찍을 수 있다.

 

물리학자 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 떠오른다. 양자역학, 화학, 생물학을 거쳐 인간과 사회를 말하는 책이다.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다른 영역들을 넘는 시도가 신선하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과학 이야기이다. 과학의 여러 영역에 대한 개론을 인문학과 연결 지어 비유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연스럽다. 인문학에 대한 이해도 덩달아 깊어진다.

작가가 후기에서 설명한 것처럼 과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세상에 접근하는 방향은 전혀 반대이다. 과학 교양서가 양자역학화학생물학뇌과학인문학 순이라면, 이 책의 순서는 역순이다. 인문학뇌과학생물학화학양자역학 순으로 서술한다. 여기에 영역을 확장하여 우주론수학까지 이어진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거꾸로 재생하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당연하다 여기던 현상과 지식이 당연하지 않은 이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과학자의 교양서는 계단을 보는 느낌이다. 이전 단계를 이해해야 다음 단계를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이 책을 보며 연결된 기차를 떠올린다. 소설의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어느 분야를 먼저 읽어도 독립적이다. 차례에 배열된 순서를 따라가면 생각이 유연하게 흐를 수 있다. 물론 다양한 학문의 목적지는 같다. ‘세상이다.

 

저자는 나와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려면 인문학과 과학 모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장에서는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점을 주목한다. 인문학은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부제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와 관련된 내용은 2장부터 5장까지 걸쳐있다. 2장의 뇌과학에서는 나는 무엇인가를, 3장의 생물학에서는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4장의 화학에서는 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5장의 물리학에서는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유시민 작가의 문장이 주는 매력이 있다. 간결하고 솔직하다. 평소 만연체에 거부감을 느끼기에 명쾌한 그의 문체로 속이 후련해진다. 기본적인 과학 용어를 친절하게 풀이해준다. 독자의 이해를 돕는 배려가 마음에 든다.

본인이 잘 아는 분야에서 상응하는 내용을 찾아 설명한다. 저자가 전공한 경제학의 내용이 많이 등장하여 과학과 인문학을 동시에 공부하는 시간을 보낸다. 경제 법칙과 신경 세포, 칸트 철학과 양자역학, 사물 자체와 현상, 측은지심과 거울신경세포처럼 말이다. 몸과 마음이 합체되어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예시를 접한 기분이다.

 

뉴런과 관련된 문장을 보니 배가 자주 아파 조퇴가 잦던 아이가 생각난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는 데도 반복되는 고통을 호소하던 아이다. 이 책을 보니 꾀병이 아니었겠구나 싶다. 뉴런이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니 말이다. 마음의 아픔이 육체적 고통에 영향을 주었던 거다.

인간과 박쥐는 주관적인 감성 형식이 다르다고 한다. 동일한 사물 자체를 다른 현상으로 인식한다는 내용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생물마다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니까. 눈의 구조만 봐도 동물에 따라 명암만을 인식하거나 일부 색깔만을 인지하는 경우도 많다. 인간도 같은 시공을 공유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건 아닐 터이다.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은 분명 다르다.

본질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도 보인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세상은 원자로 꽉 차 있고, 원자는 모두 텅 비어 있다. 존재와 무를 어찌 구분할 것인가.’,‘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와 같은 문장에서이다.

작가는 인문학에 가장 많은 변화를 준 인물로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을 꼽는다. 내가 사는 곳과 나의 생물학적 기원을 우리 집과 우리 엄마의 진실을 밝혔다라고 일컫는다. 탁월한 비유다. 문장에 깃든 통찰에 감탄한다.

 

이미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지만 인문학적으로 짚어주니 그 의미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모든 생물의 DNA는 똑같이 네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유전으로는 물려줄 수 없어 새로운 개체는 매번 무()에서 시작한다는 내용이 특히 그렇다.

엔트로피 법칙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으며 오래 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고.

너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한 명이야.’ 인문학적 고백은 정신적인 영역을 설명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육체적인 영역을 말할 수 있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의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어.’ 과학 버전이다. 순간, 온 우주의 원자들이 모여 제각기 다른 조합으로 유일무이한 존재가 만들어지는 장면이 스친다. 건조한데 묘하게 뭉클하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인문학의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와 과학의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자신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건조한 T가 인문학자의 시선을 거쳐 F를 품게 된 느낌이다. 2차원으로 누워있던 과학지식을 3D 입체 영상으로 바라보고 나온 기분이다. 조금 더 넓고 다양한 색채를 지닌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된 걸까.

 

P262, 8째 줄: 신계(新界) ~(神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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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유영광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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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하는 위에서 보면 막대 나선 모양이다. 물론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지구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통해 전체모습을 유추할 뿐이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건물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무엇이든 전체를 보려면 대상으로부터의 적정거리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는 일정한 거리에서 주인공의 삶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삶을 객관화할 수 있다. 현실에서 잠시 빠져나와 공감하고 상상하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의 삶에 기준점을 두고 바라보기에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 안에 빠져있을 때 보이지 않던 모습을 발견한다. 이야기의 힘이다.

판타지 소설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은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 여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단둘이 반지하에 사는 여고생 세린. 하나뿐인 동생도 가출 후 소식이 끊긴다. 객관적으로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워 보인다. 주인공은 장마 기간에 열리는 도깨비 상점에 초대받는다. 불행을 팔고 원하는 행복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도깨비가 나눠준 구슬에 자신의 불행을 담아 불행 전당포에 판다. 대가로 금화를 받아 여러 상점을 이용한 다음, 원하는 삶이 담긴 구슬을 득템하는 방식이다. 골드 티켓을 지닌 주인공에게는 미리보기 특혜가 주어진다. 상점 투어에서는 세린이 기대하는 삶의 미리보기와 상점 주인 도깨비들과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고등학생에게 행복해 보이는 삶은 좋은 대학에 가는 거다.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미리 보니 상상과는 다르다. 좋은 대학? 취업이 문제다. 기대한 삶이 아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유명한 회사? 야근이 일상이다.

내 이름으로 된 가게? 경쟁 가게들로 인해 삶이 불안정하다.

편하고 안정된 삶? 답답하다.

자유로운 여행작가? 외롭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 돈 문제로 연결된 현실에 민낯이 드러난다.

? 돈을 버느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어떤 삶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진정한 행복의 본질을 깨닫는다. 세린의 여정에 매번 함께하다 자신이 준 상처로 떠나버린 고양이 잇샤의 사랑을 떠올린다. ‘잇샤만큼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주세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행복의 구슬은 처음에 불행 전당포에 맡겼던 자신의 구슬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질문이다. 문학 작품에도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꾸준하게 담긴다. 결론은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 비슷하게 연결 지으면 카르페 디엠이랄까. 여기에 행복이 있으니 이 순간에 충실하며 현재를 즐기라는 것. 이론은 완벽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수시로 몰아치는 바람에 우리는 자주 흔들린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얼음처럼 딱딱해진다. 시린 마음에 위안을 주는 대상을 찾는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좋아하는 음악, 따뜻한 그림,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 등. 그중 한 가지가 이야기라 생각한다. 과녁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처럼 각기 다른 방식의 이야기가 굳어진 심장의 외피를 깨뜨린다고. 가까이 있던 파랑새로, 어린 왕자의 장미로, 도깨비 구슬로. 한 편의 이야기는 온기 어린 작은 빗방울이다. 잔잔한 빗방울이 마음을 계속 두드릴 때, 심장은 조금씩 말랑해지리라.

몇몇 비유와 표현에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배어 나온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작은 이물질을 오랜 시간 감싸서 아름다운 진주를 만든다는 대왕조개,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는 꽃과 나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메꿔갈 수 있는 구멍 난 양말 같은 인생 등이다. 담백한 문장이 건네는 여운이 짙다.

 

소설 속 도깨비들은 인간에게서 여러 가지 마음을 훔쳐 온다. 중요한 순간에 침착한 마음, 결정하는 마음, 칭찬, 진심이 아닌 칭찬, 포기하고 싶은 마음, 배려, 원망하는 마음, 용기를 주는 말, 남을 무시하는 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속삭이는 말, 엄마들의 잔소리, 다음에 얼굴 한번 보자는 거짓말, 남몰래 흘린 눈물과 땀, 쉬는 날 씻고 싶은 마음, 호기심, 반대로 바꿔놓는 마음, 밤에 잠들려는 마음, 욕심, 자존감 등. 다양한 마음들을 따라가며 내 안에 있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에 디저트까지 깔끔한 코스 요리를 맛본 기분이다. 전개되는 이야기의 분량 안배가 적절하다. 서론, 본론, 결론이 명한 논설문의 소설 버전을 읽은 듯하다. 서론에는 불행해 보이는 주인공의 환경과 도깨비 상점을 방문하게 된 이유, 판타지 세계에서의 규칙을 설명한다. 본론에서는 행복 찾기 여정이 전개된다. 무지개를 염두에 둔 듯하다. 주인공이 방문하는 상점의 수는 일곱 군데이며 원하던 삶에도 일곱 가지 요소를 담는다. 결론에는 미스터리한 냄새를 풍기며 간간이 투척했던 떡밥을 깔끔하게 회수하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선명한 결론을 내린다.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에 흡인력이 있어 가독성이 매우 좋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대도 상상이 될 만큼 역동적이고 동화적이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요소가 있다. 작가는 코스마다 개성적인 도깨비들과 주인공의 교류 과정에서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요. 주인공을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목구멍까지 차올라 찰랑거리던 울음, 온통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 텅 빈 공허로 가득하던 상실, 걸어도 걸어도 발바닥에 찐득하게 붙어오던 의무, 가면처럼 쓰고 다니던 무표정, 한여름에도 한겨울 속에 있던 외로움, 자유롭게 날고 싶은 날개를 아래로 끌어당기던 지긋지긋한 중력, 너무 까마득해 마침표를 찍을 용기조차 내지 못하던 시간.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런 삶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숨 막힐 듯한 관성이다.

불행의 그림자 같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본문을 지나온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천천히 읽는다. ‘당신만의 빛을 찾아주는 무지개 구슬을 주고 싶다는 그의 진심에 울컥한다. 소설의 영어 제목은 ‘The Rainbow Goblin Store ’로 무지개는 상징성을 띤다. ‘비가 거세게 내릴수록 찬란하게 빛나는’ 대상이고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것에 대한 신의 선물이며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의미를 지닌다.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을 통과할 때 만들어진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굴절률이 각기 다르기에 태양 빛이 나누어지는 현상이다. 어떤 이가 무지개 안에 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여러 개의 물방울과 그 위로 내리쬐는 빛만 보이리라.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눈물방울인 듯 물방울만 떠 있을 때 찬란한 무지개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지나온 당신도 나도 지금 무지개 안에 있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가 그 안에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p75, 밑에서 3째줄: 주의를 주위를

p89, 밑에서 2째줄: 하는데 하는 데

p312, 밑에서 3째줄: 쌓인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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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대충 합리적인가 - 인간의 속마음을 풀이한 현실 경제학
조준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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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뭐를 먹을까, 이번에는 어떤 화장지를 주문할까, 내일까지 동네 슈퍼 원 플러스 원 세일이던데. 이미 그 안에 있으면서 경제학은 나와 관계가 없는 분야라 여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하면서, 돈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우면서. 왜 나와는 동떨어진 영역이라 간주한 걸까.

마음은 없으면서 돈으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다니! 이 자본주의적 인간 같으니라고!’ 드라마 속 대화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본과 마음은 정반대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물질만능주의의 극단이 아니라면 마음 가는 곳으로 발걸음이 향하듯 돈을 포함한 물질도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사람은 왜 대충 합리적인가는 경제와 관련하여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를 풀이한 책이다. 경제학의 한 분야인 행동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들과 이론을 소개한다.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며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본질을 성찰한다.

 

경제 분야의 심리학 저서를 읽는다는 착각이 들 만큼 흥미롭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역사, 교육, 예술, 사회적 현상 등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

어떻게 선택하면 더 행복해질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저자는 선택의 목적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학이 성찰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기심과 합리성을 지니며 자기 이해가 잘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이상기체처럼 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현실에서의 경제인은 때때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그럭저럭 합리적인 존재다. 작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정보가 제한적이고 확률적으로 행동하는 게 어려우며 확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러 가지 경제 용어와 실험과 게임이론과 효과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용어는 휴리스틱이다. 주먹구구식 행동, 어림짐작으로 행동하기, 대충 선택하기 등의 의미이다. 여러 사례의 통계를 보면 얼핏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들이 많다. 잘못된 편견, 고정 관념, 이용하기 쉬운 정보를 더 많이 이용한다는 것, 마지막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옳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휴리스틱으로 인해 바이어스라 부르는 편향이 나타난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든지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손실이 두려워 지금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확률이 주어질 때 사람들이 어떻게 전망하며 선택하는가 설명하는 프로스펙트 이론도 흥미롭다. 낮은 확률일수록 위험성을 선호하고 높은 확률에서는 위험성을 회피한다는 것, 이익에 대해서는 위험기피적이고 손실에 대해서는 위험선호적이라는 것, 낮은 확률에서는 확률을 과대평가하고 높은 확률에서는 확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 준거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소비와 관련된 내용은 구체적인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다. 상황에 따라 달리 계산한다는 것, 한계 효용이 나의 소비를 결정한다는 것, 주어진 조건에 따라 선호가 달라진다는 것, 자신이 선택할 때의 선호와 다른 사람에게 팔 때의 가치 평가가 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례들을 보며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마케팅하는 사람이 참고하면 도움이 될만한 이론도 있다. 어떤 대안을 제안할 때 대비되는 다른 대안을 함께 제시하면 내가 원하는 대안을 상대가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유인 효과와 타협 효과까지 읽으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아뿔싸! 가전제품을 고를 때 판매 직원이 보여준 제품들이 의도한 선택을 이끌기 위한 상술이었다니!

한계 효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총효용을 계산하는 과정이 이해가 안 되어 비전공자의 한계를 느낀다. 당최 기초가 없어 인터넷에 나오는 공식에 대입조차 되지 않아 슬그머니 포기한다. 결과 해석만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과학자들은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여 규칙적인 패턴을 찾는다. 무지한 나는 법칙과 원리를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건 주로 자연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줄로만 착각한다. 사회과학도 못지않게 많은 법칙과 원리와 현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경제학에도 많은 수식과 그래프와 확률이 등장하니 수학의 비중도 만만치 않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고 선택의 목적은 나의 행복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하는 선택이 가장 합리적인 이유다. 사례를 제시하는 저자의 질문에 답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나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건네받은 기분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존재인가. 맞아, 맞아! 맞장구치게 되는 원리,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 버린 이유에 대한 가시적인 해석. 대단한 통찰이다.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나도 모르게 받았던 영향을 떠올리며 경제학자들의 열정을 가늠한다. 사람이 대충 합리적인 존재라고 하여 인간의 마음을 읽기 위한 노력도 대충 기울이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지 모른다.

 

 

p47, 2번째 줄: 공짜일가? ~?

p60, 밑에서 2번째 줄: 꼴지 꼴찌

p133, 4번째 줄, p141, 2번째 단락: 프로스텍트 ~펙트

p146, <5-3>제목: 최소극대화 최대극소화

p157, 중간: 1 > 2가 음수가 되면 부등호가 반대가 되어 < -2가 되는 것이다.

1 < 2 ~ -1 > -2 ~

p158, 2번째 단락: 100만원×0.1=10만원 < 200만원×0.8=16만원

100만원×1=100만원 < 200만원×0.8=160만원

v(100만원×0.1) > v(200만원×0.8) v(100만원×1)~

p158, 3번째 단락: v(100만원×0.1) v(100만원×1)

v(-100만원×0.1) v(-100만원×1)

p159, 6번째 줄: 위험에 대해서는 손실~

p186, 밑에서 2번째 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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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1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게 독서하셨네요.

나비종 2023-08-15 22:50   좋아요 0 | URL
배경지식이 없기에 어려운 내용도 있어 책의 내용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 박웅현과 함께한 7번의 북토크 인티N 북톡 1
박웅현.인티N 지음 / 인티N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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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잘 지나왔어, 괜찮아질 거야.

삶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나를 찾는 이들에게 종종 말해왔지만, 반복은 조금씩 나를 지치게 했다. 단지 들어주고 몇 마디 말을 해줄 뿐이건만. 마음이 소모되기라도 하듯 점점 힘이 들었다. 스스로 태워서 내는 열기에 어느 순간 데일 것 같은 느낌이 엄습한다.

괜찮아, 잘 지나왔어, 괜찮아질 거야.

나도 같은 말을 듣고 싶었다. 글자라도 괜찮다라는 문장은 친근한 친구가 건네는 말처럼 따뜻하게 마음을 보듬어주니까. 뻔한 얘기라도 거울을 보듯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적절한 거리에서 다른 온기를 쬐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2022년에 출간된 박웅현의 저서문장과 순간에 관한 7번의 북토크를 엮은 책이다. 1부에서는 책과 삶에 대한 포괄적인 질문 10가지가 담긴다. 2부에는 삶을 향한 구체적인 질문 23가지가 실린다.

제목이 에 관한 문답이라도 내용의 무게중심은 에 있다. 저마다의 삶에서 안고 있는 문제는 고유 명사이겠지만 많은 이들이 안고 있는 보통 명사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삶과 연결되니 당연한 치우침이다.

저자의 말은 한 편의 시로 읽힌다. 적절한 생략으로 만들어지는 함축미와 출렁이는 문장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리듬감이 그의 문장의 장점이다.

 

마을에 현명한 어르신이 계신다면 진지하게 여쭙고 싶은 질문들이 방출된다. 어디서 들어보거나 선뜻 답하기 어려운 궁극적인 질문이다. 그의 문장은 명쾌해서 좋다. 15초 광고처럼 메시지가 명확하다. 애매모호하게 답을 흐리지 않고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다. 저자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 모든 책에서 말하는 좋은 이야기를 가장 짧게 줄이면 지금, 여기.’라는 말, 몸으로 읽는다는 말, 몸을 바쁘게 움직일 때 오히려 머릿속이 비워진다는 말,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라는 말, ‘바람노력이 더해지면 희망이 된다는 말, 좋은 책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자존이라는 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땐 평생 처음 보는 것처럼.’ 마음에 남는 내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삶이 정갈해지는 듯하다.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몇몇 질문에는 나도 비슷한 답을 했을지 모른다. 저자가 말하듯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으니까. 좋은 음악은 반복해서 들어도 좋다. 그의 문장으로 읽으니 나의 답을 확인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모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니 동의하면 받아들이고, 동의하지 않으면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몇몇 전작이 준 저자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 책을 구급상자인 양 한동안 가방에 넣고 다닌다. 언제라도 책장을 펼치면 나를 위로해 주리라. 바람은 곧 이루어진다. 말줄임표의 루프에 빠졌을 때, 책을 향해 마음을 여니 어느 순간 책이 열리며휘리릭 붕대가 날아든다. 괜찮아, 잘 지나왔어, 괜찮아질 거야. 뭉클한 온기가 마음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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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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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보는 지구에 인간은 없다. 도시의 건물도 첨단 과학시설도 없다. 넘실대는 푸른 물결, 황토와 초록의 대지를 바탕으로 하얀 구름만이 소용돌이치며 유영할 뿐이다. 분명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다니! 초속 29.8km 정도로 공전한다는 지구의 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 내 앞에 버젓이 물질이 보이는데 물질의 근원이라는 원자는 99%가 빈공간이라니 환장할 노릇이다.

대학에 비슷한 맥락의 내용이 등장하지만마음이 없다면 그렇다는 의미이니 이 경우와는 다르다. 두 눈 부릅뜨고 마음을 부라려도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보이는 대상이니까.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도덕경에 나온다는()’의 의미 아닌가! ‘()’의 형이하학 버전, 이 세상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은 형이상학 못지않게 신비롭다. 한 존재의 육체와 영혼을 별개로 생각하기 어렵듯 형이하학적 세상은 형이상학과 조화를 이루며 나를 둘러싼다. 도깨비님의 첫사랑처럼 시선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면 세상은 온통 아이러니투성이다. 알쏭달쏭 알랑말랑 애매모호 월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양자물리학자 김상욱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세상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 다른 학문의 영역을 서성인다. 13개의 장에 걸쳐 기본 입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물질로, 분자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사회로 종횡무진한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출발한 세상의 모습은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의 지식을 자연스레 흡수한다. 무생물에서 시작했는데 그를 따라가면 어느 순간 생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계가 허물어진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통섭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다른 영역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 가 떠오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인류 문명에 초점을 두고 과학적 영역을 넘나든다면, 김상욱은 다양한 과학의 영역에서 정의하는 물질에 방점을 두고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 , 가 방대하고 탄탄한 과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인류 문명을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하여 재생하는 듯하다면, 이 책은 기본 입자에서 시작하여 우주까지 진자 운동을 하는 물리학자의 방대한 시선을 보여준다.

 

? 이 책 읽으시네요? 유명하던데. 과학샘이시니까 술술 읽히시겠어요.”

지나가던 지인이 말한다. 물리교육을 전공했다고 하니 으흠~ 여유 있게 이 책을 읽으리라 예상한다. 연애를 글로 배운 인간, 무늬만 과학 교사는 그저 웃는다.

학교 현장은 전공 공부와 다르다. 중학교 과학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각 영역의 기본 개념이 통합된 교육과정이다. 단원별 구분만 있을 뿐 교사는 네 가지 영역을 모두 다룬다. 사범 대학을 졸업했다고 바로 수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첫 발령 후 몇 년간은 교재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전공 영역은 장황해지지 않도록 무엇을 빼야 하나를 고민하고, 비전공 영역은 개론 정도의 지식만을 보유했기에 다시 공부한 기억이 있다.

대륙붕 깊이의 중학교 교과서 지식인으로서는 이 책의 모든 내용에 편안하게 끄덕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용어들은 익숙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막상 설명하라면 주춤거리는 정도랄까.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거다. 이런 이유로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관점을 바꾸기로 한다. 한계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드문드문 흡수하기로 마음먹는다.

 

물리는 물질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물리학의 언어는 수학이다. 물리학자들의 목표는 세상의 물질들이 만드는 규칙을 찾아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거다. 규칙은 보편적이고 단순할수록 좋다.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여 우주의 맥박을 알아내는 게 그들의 로망인 듯하다.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원자가 이 책의 포문을 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존재는 원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가, 물질이, 때론 생명이 만들어지지만 각각의 과정에서는 예측하기 힘든 창발이라는 새로운 특성이 나타난다고. 독립적인 존재들은 원자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창발적 결과물이다.

흙 속에 있는 산소 원자와 내 몸에 있는 산소 원자는 다르지 않다. 아끼는 사람이 죽는다면 그를 이루던 원자들은 세상 어딘가로 흩어질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리학적으로 죽음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재배열이라는 문장이 많은 위안을 준다. 이토록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한 문장이라니!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기작을 화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동공 지진이 일어나지만, 몇몇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다.

첫째, 원자들의 결합 방식과 우주에 존재하는 힘에 관한 설명이다. 이온 결합, 공유 결합, 금속 결합 등 어렴풋이 알던 내용을 확실히 설명해주니 답답하던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다.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주기율표에 담긴 의미와 몇몇 원자들의 특성이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아연이 카드뮴과 같은 에 속하기에 몸에서 화학적으로 유사한 두 물질을 혼동한다는 설명에 소름이 돋는다. 수소, 탄소, 질소, 산소, 염소, 알루미늄 등 여러 원자에 대하여 몰랐던 특성을 알게 된 점도 좋다.

셋째, 산소의 무지막지한 존재감이다. 산소로 코팅된 지구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한다. 다른 물질과 무차별적으로 결합한다는 산소의 특성에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코카콜라 병을 젖병인 양 입에 물고 해맑게 웃는 순백의 CF 전속모델을 떠올린다. 북극곰이 실은 지상 최대의 포식자임을 종종 잊어버리는 인간을 생각한다. ‘산소 같은 여자로 비유할 만큼 무해 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산소에 숨겨진 막강한 속성이 비슷한 맥락으로 겹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는 저자와는 달리 나는 세상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근본적인 세상의 실체는 시험 문제 밖의 영역이었으니까. 대학 4년을 떠올려봐도 딱히 흥미를 느낀 분야도 없다. 세상이 어떤 모습이든 먹고 사는 데 별반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시험을 목적으로 공부한 지식은 머릿속에서 금세 휘발한다. 곰곰 생각하면 지금까지 선명하게 각인되어있는 지식은 별자리, 야생화 등 스스로 알고 싶어서 공부한 분야의 것이다. 자발적인 동기로 쌓은 지식이 아니면 뇌는 가차 없이 메모리를 삭제하는가. 이보다 더 냉철하고 합리적일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김상욱 작가의 순수한 호기심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열정에 자연스레 동화된다.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나를 바라보게 만든다.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 인간인지 마음을 들여다본다.

가장 큰 장점은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이다.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주의 기운이 심장으로 확 스며드는 듯하다. 어느 순간 드넓은 공간으로 도약하여 까마득한 하늘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가장 신기했던 점은 구름의 입체감이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2차원의 구름은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구름 입자가 일렬횡대로 늘어선다는 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3차원의 구름을 상상한다는 건 그 안으로 지나가 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비행기가 구름 속을 뚫고 들어가 구름의 홀로그램이 펼쳐지던 순간은 상상을 뛰어넘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좌라락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입체 카드를 난생 처음 보는 아이가 된다. “우와! 우와!” 절로 감탄사를 뱉어낸 선명한 기억이다.

다른 세상을 경험한 아이는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매직아이의 입체 그림을 보아버린 거다. 땅으로 다시 내려와 고개를 들면 이제는 3차원의 구름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초점이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며 깊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초점이 생겼다. 바라보는 세상이 넓어지면 마음도 덩달아 확장되는 걸까.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우주인이라도 된 듯 깨작깨작 찌질한 일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며 훗~ 지나칠 수 있을 것만 같으니. 형이하학적 도()를 깨달은 기분이다.

 

 

p63, 밑에서 6째 줄: 공기의 80퍼센트가 질소다. ~78퍼센트~

p119, 첫째 줄: 질소는 ~ 대기의 75퍼센트를 이루고 있으니 ~78퍼센트~

p119, 4째 줄: 산소는 ~ 대기의 23퍼센트 ~21퍼센트~

p160, 6째 줄: 충동할 충돌할

p211, 밑에서 6째 줄: 포도당으로 분해 엿당으로 ~

p214, 첫째 줄: 생성물(물과 산소) ~(물과 이산화 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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