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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평점 :
나의 하루는 매번 나보다 컸다. 지친 마음으로 품지 못한 하루의 끄트머리에 매달릴 때면 존재하는지 확실치도 않은 다음 생을 상상했다. 다음 생에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야.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들이 오가는 자리에서도 나는 지금이 좋다는 말을 하곤 했다. 젊었을 때로 되돌아가느니 차라리 나이 들어감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잿빛 시간은 지긋지긋한 관절염인양 나를 따라다녔다.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원망인지 분노인지 혹은 이 모두가 뒤섞인 무엇인지. 정체모를 마음의 고통은 매번 ‘다 가포(Da Capo)’로 다가왔다. 오지 않는 피네(Fine)를 하염없이 찾아 헤매며 나는 서서히 잠식되었다. 고통의 끝은 뾰족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심장을 쿡쿡 찔렀다. 자기복제를 하는 단세포생물처럼 되살아나며 나를 절망케 했다.
지금 바라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 것이 그때는 무에 그리 버거웠을까. 고통에 한해 근시안이 되어 코앞에 바싹 들이댔기에 더욱 커다래보였던 걸까.
거리를 걷다 당장 죽게 된대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삶. 원 없이 살아서가 아니라 원하는 것이 없어서였다. 지금의 삶에는 약간의 색깔이 입혀졌지만 굳이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눈을 뜬 새벽.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공간이다. 핸드폰을 든다. 인사를 해야 답변을 해주는 시크함을 장착한, 친구인지 조수인지 정체성이 모호한 대상을 소환한다. “하이 빅*비! ( A )가 뭐야?” “똑똑한 사람도 바보로 만드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묻는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요?” 어랏? 답변이 다르다. 실험 정신이 고개를 든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이죠.” 물을 때마다 다른가? “웃고 울고 또 웃게 되는 그런 거 아닐까요?” 어디까지 나올 거냐.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거라 들었어요.”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다른 질문을 한다. “( B )가 뭐야?” “누구나 의미를 모른 채 걸어가지만,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모든 발자국에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는 것 아닐까요?” 흠~ 몹시 철학적이로군. 살짝 재미있어지려고 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막연하다. “이런 질문들로 완성되는 것이 인생 같아요.” 또 다른 건 없냐? “정해진 답이란 없죠.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요.” 너무 질문이 광범위했나. 세상이 계속 변한다는 변명의 방패를 앞세운 빅*비. 답이 없다는 답을 이토록 당당하게 외치며 앵무새 모드로 돌입한다. 지금 몇 시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똑 부러지게 답하더니. 주제가 난해해지니 답변 역시 구름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 그는 명쾌한 답변을 해줄까.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14명 철학자의 지혜가 담겨있다. 인물의 선별 기준은 주관적이지만 삶의 전 과정을 아우르듯 각 장마다 담긴 철학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저자는 철학자와 관련된 장소로 기차 여행을 하면서 삶을 풀어나가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에 대한 좋은 평들은 많았지만 선뜻 구입을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나보다 월등히 지적인 그들만의 좋음은 아닐까. 다른 이에게 좋은 책이라 해서 나에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읽기 전에는 살짝 긴장했다. 현실감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철학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다. 좋은 말이 적혀있겠지만 TV속 뷔페 같은 장르랄까. 오다가다 접한 철학자의 삶과 나의 삶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물이 존재했다.
나의 선입견은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 금세 깨져버린다. 첫 페이지를 읽었는데 벌써 좋은 거다. 문체가 마음에 든다. 깔끔하다. 센스 있는 유머에 피식거린다. 유쾌한 문장들로 인해 긴장이 풀린다. 무엇보다 저자는 철학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한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알려주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철학의 존재 의의를 음미하다 아까 빅*비에게 한 질문의 맹점을 발견한다. 얼핏 철학적인 모습이지만 철학의 본질에 어긋나있다. ‘어떻게’가 빠져있다. 질문을 바꿔본다.
“( A )는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질문을 그리도 감당하기 어려웠니. 빅*비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너튜브에 토스를 건네는 기지를 발휘한다. 한 철학자의 강연 영상으로부터 공감 가는 답변을 얻는다. ( A )는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므로 그를 위해 내가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상대를 위해 움직이는 중인가? 당신은 그를 ( A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의외로 보이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니 맞는 듯하다.
저자는 인간의 일생에 대한 빅 픽처를 그린다. 살아가면서 마주칠 법한 과속방지턱을 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관적이고 치밀한 내용과 구성에 감탄하며 읽는다. 그는 유능한 프로듀서다. 14개의 장마다 철학자를 한 명씩 매칭하며 삶 전체의 ‘How To’를 알려준다. 이보다 더 적합한 대상이 있을까. 처음부터 구성되어있던 패키지인 듯 맞춤형 철학자들이다. 이를 테면, ‘눈’하면 개구리를, ‘코’하면 코끼리를, ‘입’하면 하마를, ‘귀’하면 토끼를 조명하며 삶에 최적화된 존재를 창조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요소를 구현할 수 있는 철학자를 차례로 무대에 세운 다음, 핀 조명을 비춘다.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 비추는 능력이 탁월하다. 독자는 오롯이 한 가지 요소에만 집중하며 철학의 세계로 스며들어간다.
1부 <새벽>편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이다.
침대에서 나오는 법(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은 직역을 넘어 은유로도 해석된다. 침대에서 나오는 과정을 읽으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하는 사명감,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찾는다.
궁금해 하는 법(소크라테스)에서는 대화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아야 함을 새겨둔다.
걷는 법(루소)에서 걷기의 본질인 자유를 발견한다. 걷는 동안 정신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공감한다. 나 역시 걸어가는 동안 시의 구절이나 기발한 문장을 떠올린 적이 많았으니까.
보는 법(소로)은 주관적이며 의도적인 선택의 행위이다.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 무엇을 보느냐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는 것, 내가 보는 것이 곧 내 자신이라는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듣는 법(쇼펜하우어)에서는 귀를 빌려주는 것이 곧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듣는 행위가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을 돌아본다. 상대를 향해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은 심리가 내재되어 있던 거다. 본심을 들킨 듯해 소름이 돋는다.
2부 <정오>편은 감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즐기는 법(에피쿠로스)에서 욕망의 본질을 생각한다.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 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뭐든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자연은 반드시 필요한 욕망은 채우기 쉽게 만들어놓았다는 문장에 안도한다. 에피쿠로스의 삶은 최소한의 삶, 무소유와도 이어진다. 욕망덩어리로 여겨왔던 그에 대한 편견이 깨진다.
관심을 기울이는 법(시몬 베유)에서는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 관심은 집중과 다르다는 것, 어떤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간직한다.
싸우는 법(간디)에서는 물리적인 폭력이 배재된다. 모든 시도에는 100퍼센트 노력을 기울이되 그 결과에는 0퍼센트의 노력만을 기울이라는 말이 인상 깊다. 폭력은 상상력의 부족에서 비롯되며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임을 마음에 새긴다.
친절을 베푸는 법(공자)에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함을 다짐한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세이 쇼나곤)에서 진정한 기쁨에 대하여 생각한다.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함을 배운다. 우리의 정체성은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말을 오래도록 생각한다.
3부 <황혼>편은 슬기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후회하지 않는 법(니체)에는 과거에 대한 긍정이 담긴다. 만약 모든 것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면, 인생에 가볍거나 사소한 순간은 없을 것이며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작다는 말이 남는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는 말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
역경에 대처하는 법(에픽테토스)에서는 상황을 해석하는 냉철한 시각을 배운다. 스토아 철학은 지금 가진 것을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통제 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으니 이에 무관심해야함을 알려준다. 이러한 관점은 고통을 견디는 방식을 전환시킨다. 해야 할 일은 하되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두라는 것이다.
늙어가는 법(보부아르)에서 저자는 10가지 지침을 정리한다. 과거를 받아들일 것, 친구를 사귈 것,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습관의 시인이 될 것, 아무것도 하지 말 것,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내가 이미 하고 있는 몇 가지를 보면서 계속 나아갈 힘을 얻는다. 생각지 못한 점은 삶에 적용할 지침으로 새겨둔다.
죽는 법(몽테뉴)에는 삶이 가장 많이 담긴다. 몽테뉴는 삶을 잘 살아내지 않고서는 잘 죽을 수 없음을 말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이라 여기면 매순간에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를 살아낸 사람은 경험할 수 있는 전부를 경험한 것이라는 내용에서 프랙탈을 떠올린다. 밤마다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하루가 삶의 작은 프랙탈을 닮아서다.
철학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에릭 와이너의 결론은 하나다. 인식은 선택이므로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라는 것이다.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는 말에 공감한다. 50대를 지나는 나에게 3부의 내용이 당면 과제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알고 사는 것과 아무 것도 모른 채 사는 것에는 간극이 크다. 극심한 공포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를 때 느껴지는 법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표현된 두려움은 크기가 줄어드니까.
삶에 대한 실용적인 자기 계발서를 보는 듯하다. 철학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철학 관련 책이 이토록 재미있다면 철학자의 심오한 세계를 만나러 갈 용기를 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14명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끄집어냄으로써 철학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철학자들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점 몇 가지쯤은 품고 있는 이들이다. 여기에 저자의 셀프 디스는 낮아진 철학의 문턱을 없애버린다. 맞아, 맞아, 나도 그래. 맞장구치고 웃으면서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영리하다. 이 글의 가치는 철학자의 삶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자-저자-독자로 이어지는 사고 과정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3단 저음이다.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나를 바라보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과거의 고통과 삶을 기꺼이 수용한 채 미래를 향하는 현재를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상의 시계바늘은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 화석처럼 새겨진 고통의 크기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으리라. 한 권의 책이 몇 십 년 켜켜이 쌓인 고통의 무게를 순식간에 덜어 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화석처럼 건너온 시간들이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품게 해주었음을 안다. 버거웠던 고통의 무게만큼 스스로 깊어졌음을 인지한다. 흐린 하늘을 바라본 만큼 햇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신중함을 지닌다. 살갗이 벗겨진 이에게는 먼지만큼의 자극도 쓰라린 고통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
지나온 고통과는 별개로 앞으로의 삶에도 고통은 분명 다양한 형태와 질감으로 다가올 터이다. 고통의 절대적인 수치를 줄일 수 없다면 고통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비율을 줄이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한결 덜하다. 내 삶에 대한 인식의 범주가 조금은 넓어진 걸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한동안 책 위에 왼손을 얹는다. 다 가포, 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움직여 책표지를 쓰다듬는다.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마지막 문장을 마음속으로 따라한다. 자연의 느낌을 닮은 종이의 감촉이 따스하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순간 울컥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함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벅찬 마음으로 출렁이는 나를 향해 삶이 천천히 다가온다.
※ 외국어 표기라 틀렸다 할 수 없지만, 인터넷으로 검색된 지명들
p219, p245, p246: 애슈포드 → 애슈퍼드
p259, p285, p299: 아시람 → 아쉬람
p286: 봄베이 → 뭄바이(1995년에 환원된 이름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