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나비종 (나비종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06 Sep 2026 06:11:17 +0900</lastBuildDate><image><title>나비종</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8496114112889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나비종</description></image><item><author>나비종</author><category>독후감</category><title>평범은 힘숨찐 비범이다 -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초판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17400275</link><pubDate>Sun, 19 Jul 2026 17: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abijong/174002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5359&TPaperId=174002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85/8/coveroff/k8821353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5359&TPaperId=174002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돌이킬 수 없는 약속 (초판본)</a><br/>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02월<br/></td></tr></table><br/>갈수록 어려워지는 단어가 있다. 치우침 없이 평평하고 널리 두루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글자, '평범(平凡)'이다. 두 글자 합쳐봐야 고작 8획의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 명사는 이토록 단순한데, 삶에서 동사로 구현될라치면 이만큼 까다로운 글자도 드물다. 평범은 선이 아니라 점에 가까운 걸까. 외줄타기 광대가 수시로 잡아야 하는 무게 중심처럼 방심하다가는 순식간에 균형이 깨지니 말이다.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평범한 삶을 꿈꾼다. '많은 욕심 부리지 않아요. 그저 나날이 평범한 일상이면 좋겠어요.' 평범을 꿈꾸는 나 역시 종종 이런 말을 한다. 한데 '평범'을 곱씹을수록 문장 안의 '그저'라는 말이 어색해진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이고 좋은 삶은 유토피아에 가까울 정도로 도달하기 어려운 상태인지 모른다. 섬광인 듯 순식간에 머물다 지나가니,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하리라.야쿠마루 가쿠의 추리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무카이도 평범한 삶을 꿈꾸는 인물이다. 15년 전의 과거를 버리고 진중한 동료와 레스토랑의 공동 경영자로 새출발한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그는 지금 행복하다. 작가는 주인공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평범한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죄를 지은 사람이 평범한 삶을 꿈꾸어도 되는 거냐고.  &nbsp;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보이는 법칙이다. 문제는 이 룰이 종종 깨어진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는 어이없게도 죄와 벌이 비례하지 않는다. 많은 작가가 이러한 불합리함을 소설에 투사한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대가로 19년간 복역했던 상황처럼. 야쿠마루 가쿠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죄와 벌'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소설 속에서는 죄를 지은 인간들이 등장한다. 놈놈놈 시리즈를 보는 듯 나쁜 놈들이다. 뭐 이런 노무시키들을 봤나! 분개하다 보면, 만만치 않은 놈이 또 나온다. 사람 닮은 짐승이라 여겨도 될만하다. 이들을 응징하는 건 정당한 행위일까. 작가는 '올바른 형벌이 내려지지 않는 세상과 사법 현실에 대해' 절망한 인물의 심정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죄를 저질렀지만, 시간이 흘러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용서의 범주에 허용되는 죄의 상한선은 어디까지일까.인간의 본성은 뭐라 정의하면 될까. 성선설에 가까울까, 성악설에 가까울까. 장발장을 보면 성선설이 맞는가 싶다가도, 사회 면을 통해 보도되는 촉법소년들의 죄상을 보면 성악설이 맞는가 싶을 때도 있다. 아니면 선함이나 악함은 '선천성'에 가까울까. MBTI로 구분되는 성격처럼 타고난 기질 중 하나일까. 다만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고 맹자나 순자가 공통적으로 지향한 것처럼, 교육을 통해 선함을 지키거나 악함이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닐까.  &nbsp;  선과 악은 절대적인 가치라 여겨왔다. 착한 건 착한 거고, 나쁜 건 나쁜 거니까. 한데 경험과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갈수록 혼란스러워진다. OX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각보다 많아서 오히려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A에게 나쁜 사람이 B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는다. 부분적인 모습으로 한 사람의 전체를 규정짓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고.드라마 &lt;김부장&gt;의 주인공 김부장은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제목이 주제를 관통한다. 최부장이나 소부장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성을 붙인 데는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바람이 담긴다. 자발적인 평범함이다. 힘숨찐의 능력은 사람이 깔리는 위기의 순간에 마차를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한 장발장처럼,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발휘된다.소설 속 주인공 무카이의 역린은 딸이다. 딸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종횡무진하는 아빠 김부장의 모습에 그가 겹쳐진다. '예전의 나는 단지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 여러 나쁜 짓을 해 왔지만, 지금의 나는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배우 소지섭이 연기하는 김부장은 선한 걸까, 악한 걸까. 그의 손에 쓰러진 이들의 관점에서는 악한일 수도 있으니 애매하다.  &nbsp;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원제는 '서약(誓約)'이다. 일상적인 약속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 말이다. 주인공은 15년 전에 서약에 가까운 약속을 한다. 장발장 역시 미리엘 주교 앞에서 '평생 정직하고 선하게 살겠다'고 서약한다. 이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 반면, 무카이의 서약은 '독자의 목줄을 죄는 장편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주인공의 목줄을 죈다.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로코를 지향하는 드라매니아에게 드라마 &lt;김부장&gt;은 그리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홍보 내용도 아빠의 부성애와 안경 쓴 아저씨들만 잔뜩 나오는 데다 제목까지 평범하니 우연히 1화를 보기 전까지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드라마를 이끄는 건 궁금의 향연이라 했던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그다음 전개가 또 궁금해서, 어제의 나는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까지 하고야 만다. 몰입감에 엄지척한다.근래 접했던 소설 중에 이토록 강한 몰입감을 안겨준 작품이 있던가. 소설계의 &lt;김부장&gt;을 보는 듯 380쪽을 완독하는 데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는다. 주인공의 갈등과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전개에 흡인력이 있다. 외국 작가의 소설이라는 생각을 잊을 정도로 번역 또한 자연스러워서 가독성이 좋다. 엔딩까지도 깔끔한 디저트를 먹은 듯 개운하다. 낭비되는 복선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nbsp;  이름까지 의미를 담아 설정한 점도 좋다. 두 가지가 생각난다.하나, 주인공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이름 'HEATH'이다. 소설 속에서 히스는 '스코틀랜드 황무지에서 군생하는 키 작은 식물'을 의미한다고 언급된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피어나는 식물처럼 강인함을 상징하며 섬광처럼 빛나는 희망을 보여준다.둘, 등장인물의 이름 '고헤이'이다. 고헤이는 한자로 '공평(公平)'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주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미래에 얼마만큼의 빛이 내리쬘지' 초조해했던 주인공 무카이는 고헤이에게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빛은 보이는 거야.'라는 말을 건넨다. 이는 작용과 반작용의 문학 버전이 구현되기라도 하듯 고헤이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로 되돌아온다. '노력하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빛이 보일 거예요.'라고 말이다.책날개와 뒤표지에 소개된 내용만 리뷰 작성에 사용하려고 노력한 나를 스스로 칭찬한다. 잠시 언급한 책 속의 문장도 미스터리의 열쇠가 되지는 않으니 스포 사수에는 성공한 듯하다. 이 글의 빅픽처는 궁금증을 유발하여 책장을 펼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라고. 책을 완독한 다음, 나의 리뷰를 다시 접하면 평범한 느낌이 조금은 특별해질까. &nbsp;&nbsp;  &nbsp;  삶에서 '평범'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빛이다. 장발장의 소망은 그저 전과자라는 낙인 없이 딸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이건만, 김부장의 소망은 그저 간첩이라는 낙인 없이 딸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이건만, 무카이의 소망 역시 그저 사랑하는 가족과의 평범한 삶이건만. 세상은 '그저'를 거저 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우주계에서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도가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된다는 규칙 말이다. 청소하지 않고 가만히 둔 방이 어질러지는 게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내버려둔 방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기현상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거저 얹어지는 질서는 없다. 인간의 의지가 작용해야 한다.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빛이 보인다는 야쿠마루 가쿠 작가의 다독임을 믿는다. 평범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평범의 속성은 '힘숨찐 비범'인지도 모른다. 수시로 삶의 균형을 맞추며 주변과 나를 돌아보고 노력해서 얻어내는 상태이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비범한 고수인가.당신은 지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진정한 고수가 맞다. 다만 여기에서 안주하면 균형은 금세 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역시 평범이라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삶을 똑바로 응시하려 한다. 빛은 보려고 하는 이의 눈에만 스며들어올 수 있으니.<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85/8/cover150/k8821353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850872</link></image></item><item><author>나비종</author><category>독후감</category><title>터치 바이 터치 - [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17374105</link><pubDate>Sat, 04 Jul 2026 2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abijong/173741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39667&TPaperId=173741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00/66/coveroff/89544396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39667&TPaperId=173741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a><br/>마르틴 그룬발트 지음, 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02월<br/></td></tr></table><br/>제목만으로 그저 좋았다. 가사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떠올리기만 해도 좋은 노래, &lt;Touch by Touch&gt;다. 디스코 리듬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발라드를 좋아하던 시기였으니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한 단어 때문이다. 'kiss'라는 단어만 보아도 몽글몽글했던 고딩의 갬성은 'touch'라는 단어에 제대로 저격당한다. 오랜만에 유튜브를 찾아 추억의 80년대 팝송에 포함된 노래를 듣는다.여전히 내용은 모르지만, 굳이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노래가 전해주는 느낌을 그저 받아들이고 싶어서이다. 여전히 좋다. 당시의 기억이 각인되어서인지 듣는 순간 살짝 두근거린다. 반복해서 들으니 뭉클하면서 찡한 느낌이 크다. 갓 따낸 복숭아 같은 설렘보다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에 가까우리라. 40여 년 흘러간 시간이 건네주는 선물일까.커피 맛을 음미하듯 '접촉'이란 말을 속으로 발음해 본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마음으로 찍은 스냅 사진인 양 두 가지 장면이 선명하다. 하나, 아파트 앞 공터를 서성이는 엄마 등에 업혔던 장면이다. 4살 아기를 덮고 있던 올리브색 털스웨터가 기억난다. 온몸을 감싸던 느낌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둘, 공중목욕탕에서 나를 안은 엄마가 머리를 감겨주시던 장면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가슴이 얼굴에 닿았던 감촉이 마냥 좋았다.  &nbsp;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나는 접촉을 좋아했던 듯하다. 20대 초반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 풍문으로 들은 세 종류의 사랑에 심취했던 시기였다. 간혹 철학에서 언급되는 아가페, 에로스, 플라토닉 러브 말이다. 당시에는 플라토닉 러브가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정신적인 사랑이야말로 순수함의 결정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한다. 접촉의 위력을 몰랐던 시절이다.'세상이 어떻게 니맘대로 되니!' 흔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마음과 현실의 속도는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접촉을 갈구하던 시기에 현실은 마음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사랑을 글로 배우는 인간에 빙의하여 접촉과 관련된 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들인다. &lt;터치&gt;,&lt;몸의 일기&gt;,&lt;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gt;이 이런 목적으로 사들인 책이다.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었기에 보유만 했다.당신은 운명적인 만남을 믿는가! 세상이 동화 같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몇몇 만남은 존재하는 듯하다. 사람에 대해서도, 책에 대해서도 말이다. 2019년 3월에 구입한 책을 7년도 더 지난 지금, 불현듯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뭘까. 접촉과 관련된 책 중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예전에 받았던 편지의 문구처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운명' 같은 끌림이었을까.  &nbsp;  &lt;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gt;은 촉각에 관한 실험 결과가 기록된 책이다. 원제는 'Homo Hapticus'로, '햅틱(Haptik)'은 인간과 동물의 촉각 체계와 이를 통해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의 특성을 연구하는 영역이다. 저자 마르틴 그룬발트는 심리학, 산업 심리학, 생물학, 철학을 전공하고 '햅틱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심도 있게 다룬다.제목만 보고 MBTI의 F식 전개를 연상한다면 낭패를 본다. 극강의 T를 시전하는 연구 보고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책 표지 윗부분에 있는 문구,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이 이 책의 정체성에 가깝다. 책에 의하면 인간의 촉각 작용 방식이 사고, 감각,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촉각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중학교 3학년 과학 '자극과 반응' 단원에서 등장하는 감각 기관이 생각난다. 교과서에서는 눈, 귀, 코, 혀, 피부 등 인간의 오감과 관련된 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다룬다. 그중 시각의 비중이 가장 크며 청각이 두 번째 분량을 차지한다. 드라마 캐릭터로 치면, 눈은 남주, 귀는 서브남주, 코와 혀는 조연 정도랄까. 피부는 다만 거들 뿐인 지나가는 행인 1 정도로 엑스트라에 가깝다. 두 달만 더 일찍 읽었더라면 수업의 방향이 달라졌을 텐데.  &nbsp;  무지는 무시를 불러온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은연중에 교과서 분량에 비례하여 피부 감각을 무시한 나를 반성한다. 인간의 기관 중에 피부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 생명체의 빅픽처였던 거다. 저자는 서문에서 촉각이 시각이나 청각에 비하여 여전히 대중적 인식이 낮은 점을 말하며, 인간은 촉각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생사를 가른다는 말은 너무 과하지 않나. 처음 든 생각은 책 속에 제시된 연구 결과를 보며 서서히 바뀐다.'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에 걸맞게 저자의 글은 태아로부터 출발한다. &lt;1장: 촉각, 최초의 감각&gt;에서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오감 중 촉각이 가장 먼저 발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태아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본능적으로 접촉을 통해 안정감을 찾는 행동이라고 한다.&lt;2장: 스킨십은 아이에게 밥이다&gt;는 신생아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조건으로,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촉각 체계와 적절한 신체 자극을 말한다. '같은 종의 동물들이 가까이에서 몸을 부대끼고 살 때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수유할 때도 아이가 젖에 주는 자극이 엄마의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비로 이어져 생리적 상태뿐 아니라 감정과 인지적 상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거다.  &nbsp;  &lt;3장: 자극이 있는 일상&gt;에서는 신체의 움직임에도 촉각의 영향력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피부, 관절, 힘줄, 근육에 존재하는 자극의 수용기들이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이다.&lt;4장: 느끼는 자에게 변화가 생기리니&gt;는 촉각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룬다. 자기 접촉은 심리적 상태를 흥분에서 평정으로 되돌린다는 문장에서 드라마 &lt;사이코지만 괜찮아&gt;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린다. 여주인공이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을 때, 남주인공은 스스로 다독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두 팔을 교차하여 스스로 안아주는 방식이다.적절한 신체 접촉을 통해 '인체의 약국'이 작동할 수 있다고 한다. 무생물을 접촉하는 순간조차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놀랍다. 거칠고 차가운 물질을 접했던 피실험자들은 부정적 반응을, 부드럽고 따뜻한 물질을 만졌던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니! 뜨거운 홍차와 푹신한 소파를 상대에게 제공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틱 반응을 보이던 아이를 잠시 안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괜찮다' 토닥거리며 안아주었던 게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있었던 거다. 어떤 감각이나 말도 신체 접촉처럼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 없음을 강조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nbsp;  '자극과 반응' 단원에서 중추 신경계를 가르치면서 연수의 중요성을 어필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대뇌, 소뇌, 간뇌, 중간뇌, 연수, 척수 모두 중요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중추는 연수라고. 연수는 호흡, 심장 박동 등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대뇌를 다치면 기억을 잃거나 팔다리를 못 쓰게 될지언정 죽지는 않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눈이 멀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촉각에 이상이 생기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lt;5장: 만약 촉각이 사라진다면&gt;에서는 촉각과 관련된 의학적인 질병을 다룬다. 용어들이 생소해 개론적인 의학서적을 보는 기분이 들지만, 촉각 이상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은 제대로 수긍할 수 있다.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을 나열하면, 아토피 피부염 등 피부 질환 치료제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 해당 신체 부위를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한다는 다발성 신경병증은 접촉과 온도 자극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것, 촉각 민감성의 둔화로 당뇨병성 족부병변이 생긴다는 것, 선천적 무통증은 땀 분비와 온도 조절 능력의 문제로 생긴다는 것, 우측 두정엽의 통합 능력 장애로 좌측 신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지각하는 '니글렉트 신드롬'이 발생한다는 것, 알츠하이머병성 치매를 초기 진단할 때 촉각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 왜곡된 신체 환상과 거식증을 햅티미터라는 촉각 검사 장치로 연구하고 네오프렌 소재의 옷을 개발하여 치료를 시도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nbsp;  &lt;6장: 햅틱 디자인과 뉴로마케팅&gt;에서는 질병뿐 아니라 제품의 마케팅에도 촉각을 적용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인간의 신체가 '만물의 척도'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이 인체를 근거로 만들어짐을 일깨운다. 칫솔에 적용되는 구강의 해부학적 구조라든지, 손의 구조가 반영된 가위 손잡이 구멍의 직경, 자동차 핸들의 직경, 다리미의 손잡이, 어린이용 자전거의 핸드 브레이크 같은 제품을 예로 든다.더 나아가 기업들은 촉각 체험이 시각적인 인상보다 사용자의 판단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볼펜 판매대 옆에 필기감을 체험할 수 있는 종이가 매달려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던 거다. 같은 굵기의 볼펜이라도 각자 선호하는 필기감은 다르니까. 직접 써보고 제품을 선택하게 만든 건 매우 영리한 영업 전략이리라.자동차 핸들의 감촉에서 출발한 변화는 주방기기, 종이, 가구, 휴대폰, 신발, 옷, 화장품 등의 분야로 확대된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햅틱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발표한다. 인간의 촉각 체계의 요구와 기능성의 관점에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전략으로 선택된 '뉴로마케팅'이 급부상하는 이유도 인간이 촉각적 광고 문구에 민감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기업들은 이제 제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을 때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쌓여 구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이용한다.  &nbsp;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과제들을 소개하는 &lt;7장: 앞으로의 연구 과제들&gt;을 보니 뭉클하다. 이렇게나 집요하게 파고들다니! 신생아, 우는 아기, 중증 질환자, 거식증 환자, 우울증 환자, 과체중 비만 환자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 방법부터 신체 자극을 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효과, 촉각 민감성으로 예민한 유형 구분하기, 지능과 촉각 기능 사이의 상관관계, 햅틱 추적 시스템 개발, 피부 융선과 지각 기능의 관계, 촉각 중단 현상의 메커니즘, 단세포 생물의 촉각 작용, 인체의 촉각 수용체 상태에 관한 정확한 분석 등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연구 결과의 신뢰도와는 별개로 '촉각'에 대하여 알기 위한 노력을 보니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에 경외감이 든다. 이런 과정이 모여서 학문이 서서히 발전하는 거겠지. 피부 감각 구조의 모식도를 무심코 지나치던 순간이 떠오른다. 발견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본뜬 명칭을 각각의 감각점에서 확인하며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땀을 가늠해 본다. 인체에 있는 하나의 점을 발견하기 위해 수년을 탐구한 마음을 생각하니 찡한 감동이 다가온다.책을 읽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다만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내용이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진 것과는 별개로 오타가 너무 많아 몰입감이 깨진다는 점을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고 싶다. 절판 도서라 재출판의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촉각에 관한 도서인 만큼 다른 책과 겉표지의 감촉을 차별화하면 어땠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돋을새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책 표지의 감촉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들었던 생각이다.<br>맞닿는 감각은 어떤 감각보다 느낌이 짙다. 손길과 손길이 닿는 순간,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책을 접하기 전에 시도했던 나의 액션을 떠올려보면 말이다.제일 좋아하는 스킨십은 손을 잡는 거다. 심히 안타까운 건 손을 잡아줄 인간이 없다는 것. 직계비속은 다른 머스마의 손을 선호하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80대 노모의 손을 잡기도 새삼스럽다. 50대가 되어버린 형제자매의 손을 잡기도 어색하다. 가장 많은 기회가 보장된 사람과 함께 살고 있지 않냐고? 간지럽다니! 손을 만지는 게 어찌 간지러울 일인가 말이다! 즐겨 입던 터틀넥 스웨터를 입지 못하게 되어서야 이해 모드가 가동된다. 나이가 들면 촉각에 변화가 생긴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 거다.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감전된 듯 움찔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조금씩 접촉 부위에 변화를 준다. 불굴의 시도 결과, 딱 한 군데 태풍의 눈을 찾아낸다. 심 봤다! 감질나는 범위이지만 이게 어디냐. 감사할 따름이다.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현관에서 "안아주떼염~"을 시전하며 이중 공략을 펼친다. 접촉 면적과 압력은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적용하여 자극을 분산시키자는 전략이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인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처음에는 움찔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스킨십이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를 빵빵하게 장착한 나는 '터치 바이 터치'를 들으며 '유아 마이 올타임 러버'가 실현되는 빅픽처를 그린다. 훗~! 비실비실 회심의 미소가 새어 나온다.  &nbsp;  ※p63, 6째줄: 단어을 → 단어를p140, 밑에서 9째줄: 자극에 관한 실험했을 → ~ 실험을 했을p152, 맨 아래줄: 끼치는 영향을 끼치는지 → 영향을 끼치는지 또는 끼치는 영향을p155, 3째줄: 모델을 개발은 → 모델 개발은p182, 5째줄: 정학히 → 정확히p194, 5째줄: 신경 통해 → 신경을 통해p198, 9째줄: 에너지가 필요하는 증상 → ~ 필요한p208, 밑에서 5째줄: 어렵기 않기 때문에 → 어렵기 때문에p215, 밑에서 9째줄: 증가하고 하는 → ~ 있는p236, 밑에서 2째줄: 받아드려 → 받아들여p250, 밑에서 3째줄: 특별한 기술적 도움 없이도 관찰할 수 없다. → ~ 도움 없이는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00/66/cover150/89544396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0006699</link></image></item><item><author>나비종</author><category>독후감</category><title>샐러드 레시피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17345481</link><pubDate>Sat, 20 Jun 2026 17: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abijong/173454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2349&TPaperId=173454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76/59/coveroff/s6121371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2349&TPaperId=173454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a><br/>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br/></td></tr></table><br/>저마다 바라보는 세상을 이미지로 구현해 본다. 커피숍에 앉아 잠시 고개를 든 지금, 내 앞에는 은은한 조명 몇 개, 창 너머로 흔들리는 나뭇잎, 습기를 머금어 살짝 뿌연 공기, 연한 황토색 탁자, 자료를 들추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건너편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하얀 종이와 모니터의 세상이 펼쳐질 터이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해도 우리가 보는 세상은 모두 다르다.다른 세상을 살던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회 제도로 묶일 때,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스즈키 유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 그 답이 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랫말을 들어보았는가. 또한 부모의 DNA를 공유한다 해도 생물학적 유전이 정서적 연결까지 보장하지는 않을 터.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 어쩌면 한시적으로 시공을 공유하는 개별적인 존재인지 모른다.'관계'의 눈으로 이 소설을 바라보면, 가족 간의 심리적인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에서 따끈하고 담백한 두부 맛이 난다. 학문적인 관점으로 따라가면, '인용'에 대한 심오한 고찰에서 알싸한 맛이 느껴진다. 진실을 탐구하는 순수한 '열정'을 지켜볼 때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천일염의 맛이 전해진다. '세계관'으로 접근하면 광대한 바다인 양 탁 트인 시야에서 달큰한 바람 내음이 스며든다. 키워드에 따라 맛의 편차가 큰 작품이다.  &nbsp;  '괴테'라는 자물쇠로 채워진 소설. 문안으로 펼쳐지는 세상은 상상과 다르다.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세계관에 대한 사유로까지 확장된다. 엄지보다 얇은 두께라고 방심하면 낭패다. 내용이 방대하여 휘리릭 읽기 어렵다. 시를 마주한 듯 함축된 의미를 곱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오미자처럼 다양한 맛이 나니 호불호가 갈리리라 예상한다.괴테 연구 일인자 도이치 교수의 결혼기념일,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진 가족 식사. 그는 후식으로 나온 녹차 티백에 새겨진 명언의 출처를 보고 동공 지진을 일으킨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한데 섞는다.'라는 영문 뒤에 적힌 '괴테'라는 글자 때문이다. 괴테가 한 말은 다방면으로 많지만, 과연 이 말도 했을까.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만, 확신은 없다. 확실한 출처를 찾기 위한 학자로서의 추적이 시작된다.'괴테가 말하기를'은 괴테의 권위를 앞세워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말하는 관용구라고 한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습관적인 접두사처럼 말한다나. 방대한 저작을 남겼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으니까. 저자는 거장 뒤에 숨는 독일인들의 습관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인용'의 본질을 톺아본다.  &nbsp;  인용의, 인용에 의한, 인용을 위한 책을 만들 테닷! 스즈키 유이는 작정한 게 분명하다. 소설 전체에서 인용 쓰나미가 몰려온다. 창고 대 방출된 인용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갈 지경이다. 배경지식이 얄팍하니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실존 인물인 괴테가 진짜로 한 말인지, 소설 속 괴테 연구자에 빙의한 작가가 창작한 가상의 말인지 헷갈린다. 경구들이 언급될 때마다 수시로 AI의 도움을 받는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말이 독일에 실제로 있어?', '「비유적 및 경구풍으로」라는 괴테의 작품이 있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동료 학자 시카리는 명언의 세 가지 유형을 언급한다. '원래 말의 복잡한 의미가 단순하게 변하고, 걸핏하면 뜻이 거꾸로 뒤집히는' 요약형, '닳고 닳을 정도로 쓰여서 원전이 뭔지도 알 수 없는' 전승형, 그럴듯하게 '작가가 지어낸' 위작형이다.그는 인용의 날조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데도 당당하다. '작가나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라며, '사람은 자신의 사상 전체가 아니라 파편으로 이해된다.'라는 주장을 피력한다.  &nbsp;  파편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일화가 떠오른다. 코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가 길고 유연한 뱀이나 밧줄처럼 생겼다 말한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단단하고 굵은 나무 기둥, 귀를 만진 이는 곡식 키나 부채 같다고 한다. 배를 만지며 거대하고 단단한 장독을 상상하고, 꼬리를 만지곤 쓸개 빠진 빗자루 같다고 제각기 주장했다는 우화 말이다.그들의 주장은 전체 모습과 확연히 다르므로 거짓일까. 느낀 그대로 말한 입장에서는 억울할 터이다. 그렇다면 진실일까. 진실 혹은 거짓의 기준으로 답을 특정하기가 난감하다. 그러니 파편은 야누스적이다.한 인간이 모든 세상을 볼 수는 없으니, 개인의 세상은 파편일 수밖에 없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에서 키워드를 찾는다. 결국 '거리'의 문제다. 볼록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물체의 이미지가 거리에 따라 다른 것처럼. 렌즈를 통과한 빛은 거꾸로 선 작은 상, 거꾸로 선 큰 상, 똑바로 선 큰 상, 상이 맺히지 않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기준은 초점이다. 초점에서는 상이 생기지 않으니, 렌즈를 통해 물체를 보려면 초점을 벗어나 움직여야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대상을 바라볼지는 내가 정할 일이다. 세계관 역시 마찬가지다.  &nbsp;  소설에서는 상반된 두 세계관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이다.처음으로 딸기쨈을 만들어 본 기억이 생생하다. 방대한 양의 설탕과 딸기를 찜통에 넣어 졸이느라 어찌나 쫄았던지. 마그마처럼 꿀렁대며 덤벼드는 혼합물의 위협에 주방 장갑에 앞치마로 무장을 한다. 가스레인지 앞에 의자를 놓고 그 위로 올라간다. 최장신 주걱을 간택하여 몸을 사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설탕과 딸기의 원형이 시간의 블랙홀로 사라졌을 때, 걸쭉한 결과물이 탄생한다.잼을 만드는 과정도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리라. 평화롭게 주걱을 젓는 면봉 크기의 여인은 수시로 튀는 건더기와 사투를 벌이며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여인과 동일인이다.'거리'라는 키워드로 소설 속 세계관의 차이를 이해하려 한다.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킨다.' 먼 거리에서는 희극적으로 보이는 잼적 세계가, 가까운 거리에서는 사소한 움직임조차 까슬까슬한 솜털처럼 감각되어 비극적으로도 보이는 샐러드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nbsp;  '세계는 어떤 식으로 하나여야 하는가'. 저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괴테가 남긴 두 가지 경구를 언급한다. '세계는 죽이나 잼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딱딱한 음식을 씹어야 한다.', '세계는 말하자면 안초비 샐러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어 먹어야 한다.'라는 문장이다.다시 추적! 녹차 티백의 시간이다. 괴테의 경구를 보면 티백 문장의 핵심 개념이 등장하는 듯하다. 세계관을 사랑에 적용하여, '사랑은 모든 사물을 잼처럼 혼동시키지 않고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든다.'라고 번역한 다음, 괴테님의 영역에 포함시켜도 되는 걸까. 주인공의 갈등에 덩달아 마음을 얹는다. 답은 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소설 속 서사의 흐름은 명쾌하지만, 증강 현실을 보는 듯 몽롱함이 남아 다큐적인 답에는 의문이 남는다.사실 답이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말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다. '그렇게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게 어때?' 나는 소설의 맛을 보고 얼마만큼 소화했을까. 소설에서 언급된 세계관을 '가족'의 범주에 적용해 본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프랙털이 존재하며 사회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니까.가족도 거리에 따라 잼으로도, 샐러드적으로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멀리서 보면 혼연일체가 된 잼으로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샐러드의 개별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관계로 말이다. 괴테는 샐러드파, 소설 속 서사로 판단한다면 저자도 샐러드파다. 나도 한 표를 더한다.  &nbsp;  샐러드적 세계관은 음미할수록 매력적이다. '따로 또 같이'를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상태 아닌가. 저자는 서서히 변화되는 도이치 가족의 관계를 통해 샐러드적 세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남편과의 25년보다 딸과의 22년에 훨씬 말할 맛'을 느끼는 도이치의 아내는 괴테의 작품을 기억하지도, 남편이 번역해서 바친 작품을 읽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내는 거실 TV로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수시로 보지만, 남편은 그 유튜버가 독일인 정원사라는 사실 이외에 어떤 사실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녹차 티백으로 공통된 대화를 잠시 나누던 가족은 '각자의 취미에 몰두해 삼위일체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어'진다. '거실에 있어봤자 아내와 나눌 이야깃거리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샐러드 볼에 함께 담겨있을 뿐, 각자 겉도는 재료로 존재하는 구성원이다.괴테 티백이 샐러드 소스가 되는 순간, 이들의 관계는 서서히 어우러진다. 도이치의 출처 찾기 프로젝트에 한 사람씩 가담하기 시작한다. 5년 만에 딸의 방에 들어가고, 독일에 함께 가서 아내의 최애 유튜버를 만나고, 딸의 남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받고, 장인어른까지 합세한다. 어떤 식으로든 괴테와 연결된 구성원들은 괴테 패밀리로 대동단결한다. 방대하게 뻗어나가는 가계도의 연결 고리에 같은 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가 탄생한다.  &nbsp;  도이치 패밀리는 독일어 원문으로, 영문판으로, 일본어판으로, 번역한 판본과 방송용 원고 등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파우스트』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파우스트』, 재밌더라." 아내의 한마디로 남편은 '모든 게 좋다.' 조화로운 가족의 풍경은 녹차 티백의 문구와 자연스레 겹친다.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다.'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드는 사랑의 말이 구현된 장면이다.가족 사이에 연결되는 관계는 계속 변화한다. 부부의 출발은 이보다 선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했으리라. 아내를 보았을 때 '눈동자 안쪽부터 눈꺼풀 뒤쪽까지 그녀의 색으로 가득 찼던’ 도이치처럼.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시간이 벌여 놓는 관계의 거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거리를 좁히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이치는 그의 아내가 남편이 선물한 책에 나오는 정원을 제일 먼저 작품으로 도전했음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를 바라보려 하는 작은 시도를 만난다. 바라보려 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몰랐거나 너무 늦게 알았을 마음이다.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게,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릴 만한 거리에서 말로, 행동으로 적절한 온기를 전할 필요가 있다.  &nbsp;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소설 속 인물의 말은 문학 창작의 본질을 꿰뚫는다. '사랑'을 주제로 얼마나 많은 작품이 탄생했는가. 바다에 던져진 전설의 맷돌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네버 엔딩 스토리가 쏟아지고 있으리라.'사랑'이라는 보통 명사를 고유 명사로 바꾸어 작품 안에 박제하는 일,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의 몫이다. 다수의 사람이 선택하는 틀에 박힌 붉은 색 말고, 직접 고른 물감을 혼합하여 채도와 명도를 변화시키거나 과감한 색상을 선택하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색깔로 구현하는 것. 작가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기성복은 익숙한 맛처럼 다수의 독자에게 그런대로 맞지만, 개성이 없다. 맞춤복은 한 벌 뿐이지만 소수에게만 편안하다. 극단의 선택지 사이에서 적절한 무게 중심을 찾아내기 위해 작가는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무게 중심은 선이 아니라 점이니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 신선하면서 편안한 착장을 독자에게 건네기 위해서는.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분석하면 '신선함'은 성공적이다. 문학의 거장, '괴테'를 소재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작품을 접해보지는 않았어도 풍문으로 명성을 들었거나 요약된 줄거리 정도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는 인물 아닌가. 그를 공통분모로 '인용, 열정, 관계, 사랑, 세계관' 등의 요소를 구현한다는 발상이 파격적이다.  &nbsp;  이상적인 가족 관계의 샐러드는 어떤 맛인가. 나의 결론은 '조화로운 맛'이다. 사실 샐러드 만들기에는 복잡한 레시피가 없다. '모든 재료를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소스를 뿌린다. 잘 섞는다.' 이게 전부다.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소스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레시피이리라. 샐러드적 세계관이 적용되는 거리에 서서 공통점을 찾아내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원문에 담긴 수많은 인물과 생소한 문화를 설명하는 데 필요했겠지만, 인용의 쓰나미는 주석의 쓰나미로 복제된다. 프롤로그에 1개, 1부 20개, 2부 21개, 3부 26개, 4부 31개, 5부 15개, 6부 12개, 에필로그에 10개, 저자 후기에 2개. 245쪽의 본문에 138개의 주석이 달린다. 본문을 읽다, 아래쪽 주석을 읽다, 다시 올라가기를 수시로 반복하니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과한 친절이 안개 속을 헤매게 만든다.괴테는 이 세계에 언제나 안개가 끼어 있다고 본다. '세계는 완전한 빛과 어둠의 중간에 있다.'고. 빛과 어둠의 대립이 색을 이루어 모든 색이 각각 빛나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색깔을 인정해 줄 때, 빛나는 색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다음에 보여줘." "전에 보여줬잖아." "그래? 그럼 다시 한번 보여줘. 집에 가면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나도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 도이치 부부의 대화에서 은은하게 전해지는 샐러드 맛이 참 좋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76/59/cover150/s6121371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676591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