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나비종 (나비종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18 Oct 2026 11:49:54 +0900</lastBuildDate><image><title>나비종</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8496114112889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나비종</description></image><item><author>나비종</author><category>독후감</category><title>행복은 윤슬을 닮았다 -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40만 부 기념 스페셜 리커버)]</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17548371</link><pubDate>Thu, 01 Oct 2026 08: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abijong/175483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139760&TPaperId=175483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9/74/coveroff/k46213976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139760&TPaperId=175483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40만 부 기념 스페셜 리커버)</a><br/>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br/></td></tr></table><br/>10대에 막연히 상상했던 나이의 상한선은 서른이다. 무려 50대가 내게도 올까. 60대가 머지않은 지금의 나이가 당시에는 TV 속 연예인처럼 비현실적으로 자리한다. 80대 어머니의 나이와 나의 미래가 선뜻 겹치지 않는 것처럼. 서른 살이면 성숙한 어른일 테니 뭐든 척척 해결하며 살겠지?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기간은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잖아? 고작 서른 살을, 겨우 10대는 무적의 어른인 양 우러러본다. 성인과 어른의 개념을 착각한다.19세 이상 맞아? 인증해 봐. 드넓은 뷰가 야릇하게 펼쳐질 꼬야, 흐흐흐. 붉은빛 OTT가 끈적하게 묻는다. 훗~ 일말의 거리낌도 없다. 성인의 관문을 열어젖히는 열쇠는 몸의 나이에만 다다르면 누구에게나 생기니까. 생년월일 등 소수의 정보만 입력하면 입성 가능한 세계, 몇 개는 묻지만 따지지는 않는 영역 아닌가.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OX문제처럼 답이 명확하다. 노안으로 잘못 클릭하여 낭패를 볼지언정.&nbsp;어른 맞아? 인증해 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으로 증명하나. 성인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른은 정신적인 의미가 더 크니 말이다. 하여 어른의 자격은 신체의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10대에 '스럽다'는 표현으로 불리는가 하면, 중년에 '어른이'라는 신조어로 지칭되기도 한다. '답다'라는 디폴트의 범주에 입성하는 게 의외로 까다롭다. 주관식 답처럼 판단이 모호하다. 성인이 확실한 나는 어른일까,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걸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어른'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자그마한 몸집을 가진 에세이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이다. 책 위에 손바닥을 펼치면 꽉 찰 정도로 아담하다. 288g, 288쪽의 가뿐한 모습이 뽀득뽀득 세수시킨 말간 어린아이 같다. 모자를 쓴 채 바다를 응시하는 표지 속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은은한 파스텔톤 백사장과 부드러운 옥색 바다에 물들어버리기라도 한 듯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진다.살짝 튀어 오르는 하얀 점들은 파도 방울인가. 표지의 중앙을 손끝으로 더듬자, 눈에 띄지 않던 점자가 톡톡 존재감을 드러낸다. 숨은 글씨 찾기에 성공한 듯 작은 희열을 느낀다. 감각 기관을 가르칠 때, 점자 관련 활동을 한 이후로 엘리베이터만 타면 점자에 눈길이 가던 차다. 무슨 뜻일까. 책 제목인가. 질문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답변을 시전하여 신뢰도에 제 발등을 찍지만, 여전히 방대한 지식을 보유한 J에게 표지를 보여준다.사진을 찍어서 요청하니, '바다가 들려'입니다. 이미지를 회전하고 다시 읽어 달라니, '해바라기'입니다. 책 제목을 알려주니,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가 맞습니다. 1번에서 6번까지의 점자 배치를 파악하여 번호를 제시하니, '아아 르논본배 번 작야어드브'란다. 하아. 그래, 좋은 말이겠지. 이쯤에서 포기한다. 정답은 의외의 순간에 허탈하게 드러난다. 알라딘 책 소개를 진작 노트북으로 읽어볼걸. 핸드폰을 한 번 더 두드려 전문을 보았더라도.<br style="box-sizing: border-box;">책날개에 적힌 설명을 보기는 했다. 리커버 공모전의 참여작 1,080점 중에 선정된 표지 디자인, 수상자의 의도를 반영한 디자인적 장치라는 점이다. 핸드폰 액정에 드러난 알라딘 책 소개의 초기 화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기까지만 읽은 나는, 무슨 글씨인지 단순한 궁금증만을 가진다. 대륙붕 언저리에서 깔짝거리던 내 앞에 심해가 펼쳐질 때까지.'바닷가에서 잔잔하고 조용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과 손에 닿는 행복의 의미를 담아 '푸른 바다가 반짝인 어느 날'을 점자로 수놓은'게 진정한 의도라고 한다. 행복의 본질을 관통하는 의미에 순간적으로 전율이 인다. 첫째, 행복은 섬세한 솜털처럼 자칫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니 손끝을 내밀어 천천히 느껴야 닿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행복은 늘 거기에 존재하지만 바다 위의 윤슬이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건 찾는 이의 몫이라는 점이다.점자의 루프에서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제목이 시선을 붙든다. '어른'과 '행복'이란 두 단어의 무게 때문이다. 나는 어른일까. 어른은 성인 인증하듯 당연한 명칭이 아니니 스스로 하는 질문 앞에서 주춤한다. 여전히 결정이 어렵고 종종 책임을 버거워하는 나를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한가. 어느 순간에 '행복'이라는 명사를 붙일 수 있을까. 책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제목 앞을 서성인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아'와 '어'의 교체를 반복하니 조사에서조차 강아지풀 같은 까슬한 차이가 느껴져 글이 섬세해진다. 의미를 지닌 명사는 그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갈수록 명사가 낯설다.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라도 된 양 반복적으로 단어를 곱씹는다. 당신이 말하는 '사랑'과 나의 '사랑'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빛깔과 나의 것이 다르듯이, '어른'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리라.자세히 바라보는 이에게 보통 명사는 고유 명사로 탈피한다. 질감, 냄새, 리듬, 온도, 색깔, 무게 같은 비언어적 물리량으로 만들어진 옷을 새로 착장하면, 강렬한 인상을 지닌 단어가 된다. 어쩌면 모든 명사는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명도와 채도가 다른 동음이의어가 아닐까.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 소개에 눈길이 간다.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극이 20여 년이어도 '평범'은 여전히 어려운 명사이기에. 태수 작가에게 '어른'과 '행복'은 어떤 의미를 지닌 명사일까. 그의 해석이 궁금해진다. 화면을 느리게 재생하듯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두 종류의 세상을 보게 되리라.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런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돌아보는 나의 세상이다. 두 세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늠하며, 책이라는 통역사를 통해 저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빛을 선명하게 바라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아는가. 어둠과 나란히 놓는 거다. 작가의 문장은 전반적으로 대조와 대구의 형식을 취한다. 똑똑한 우울증보다는 행복한 바보로 살 거라 말하고, 행복을 설명하는 데 불행이 등장한다. 행복에 대한 그의 정의는 '불행이 없는 상태'이다. 막연히 '상상'만 하던 행복을 '일상'에 있는 불행 가까이 끌어당겨 불행으로부터 한 걸음 남짓 벗어난 영역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우린 너무 쓸데없이 불행하고 너무 복잡하게 행복'하기에.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만큼 불행하다고 여기는 극단의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그렇다면 지금 불행한가. 뭐,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행복의 영역에 있는 게 분명하다. 과도한 자극에 익숙해져 사락사락 반짝이는 행복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행복은 윤슬을 닮았다. 분명 거기에서 보일 것임을 알아도 매 순간 보이지 않는 잔물결 말이다. 삶의 바다가 심하게 출렁일 때면 여유롭게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하며, 바람 한 점 없는 순간에도 반짝임은 보이지 않는다.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는 과도한 눈부심으로 외면하게 만든다. 바라보는 각도와 빛과 물결의 일렁임이 조화로울 때, 비로소 윤슬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편안하게 숨 쉬며 삶과 함께 리듬을 타는 순간, 우리는 물결을 보듬는 빛의 손길을 알아챈다. 작가가 말하는 '어른의 조용한 행복'을 나는 이런 느낌으로 해석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행복의 몇 가지 물리량을 나만의 시선으로 정의해본다.행복의 맛은? 드시기 전에 충분히 흔들어줘야 느낄 수 있는 0.1%의 소금만 첨가된 무가당 두유 맛.행복의 온도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늘 곁에 있으나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상적인 온도, 상온. 극한의 열기나 냉기가 삶을 훑고 갔을 때, 폭풍 후에 불어오는 최초의 바람으로부터 전해지는 온기.&nbsp;행복의 질감은? 구석구석 방 청소를 하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마음으로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손걸음을 옮길 때,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손끝으로 흘러 들어오는 다정한 점자의 감촉.&nbsp;행복의 무게는? 있는 듯 없는 듯 평상시에는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게 분명한 공기의 무게.물질로 비유하는 행복의 상태는? 압축하면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팽창하면 한껏 확장되는 기체.행복이 내는 소리의 크기는?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속삭임과 잘 어우러지는 20~30데시벨.행복의 냄새는? 커피 향으로 우아하게 흘러들다 순식간에 청국장 냄새 풍풍 풍겨도 여전히 매력적인 향기. 삶이 코로나에 걸리는 시기에는 후각처럼 마비되기도 하며 야누스적인 변화무쌍함을 보이기에 정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냄새.행복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 지나 보니 '행복이더라'는 지나갈 때 잡지 못하고 떠나보낸 회한, 앞으로 '행복할 예정이다'는 매번 앞서가기에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상상이니, '행복하다'만이 유일하게 감각 할 수 있는 지금의 경험이리라.<br style="box-sizing: border-box;">특별할 것 없는 말들이 작가의 경험을 통과하니 물 만난 꽃차처럼 생생해진다. 문장의 형태로 차례에 제시된 제목만 읽어도 겉바속촉의 소금빵을 먹는 듯 기분 좋은 맛을 선사한다. &nbsp; &nbsp; &nbsp;&nbsp;'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트럼프가 총에 맞았을 때 나는 내 주식이 가장 먼저 걱정됐다, 진짜 사이코패스는 감옥에 있지 않다, 왜 한국인의 최선은 90%가 아니라 110%일까,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을 솔직하다고 소개한다, 불행은 견딜 수 있지만 '너보다' 불행한 건 싫어, 성공은 어렵다. 쉬운 건 성공이 쉽다는 말 한마디일 뿐, 내 인생이 잘되길 바라는 건 의외로 나밖에 없다.' 바삭한 문장들이 촌철살인의 후련함을 뿜어낸다.'그만두는 것도 용기, 그만두지 않는 것도 용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가장 먼저 아프지 않은 척을 한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야, 너무 잘하고 싶어지면 반대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돼.' 몰랑몰랑한 촉촉함을 안겨주는 문장들이다.무엇보다 마음이 드는 건 그의 관점이다. '포기가 습관이 되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포기하게 된다. 자신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안티는 나였다, 우린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이 날 수 있는 사람이다.' 본문 속 문장들이 답정너 화살표가 되어 '나'를 맞추니 마음이 후련해진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천천히 글을 쓰다 저녁 준비를 한다. 남편이 어제 사 온 백합 봉지를 냉장고에서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2초 외과 의사로 빙의하여 주방 가위로 비닐을 절개한다. 자신 있게 공기의 감촉을 선사했지만, 순간 주춤한다. 실로 오랜만에 백선생님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사촌인 바선생도 한동안 찾지 않았기에 순서가 헷갈린다. 처음부터? 끓은 다음? 손안의 비서, J에게 도움을 요청한다.하아. BGM의 볼륨 조절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조개 향을 첨가한 완성작이 되고 말았으니. 순간 고급 재료를 저급한 실력으로 발라버렸다는 민망함에 은밀한 심폐소생술을 시도한다. 일단 화이어! 다시 우르르 오케스트라를 시전할 때, 마법의 링 투하! 휴, 일단 조개의 정체성은 살렸다. 그럼, 그건? 당신의 예상이 맞다. 식감은 지못미. 오래 가열하여 질겨졌지만 제 발이 저린 당사자를 제외하고 한 사람만 희생하면 되니까 괜찮다.드넓은 궁중 팬 안에서 백합들이 한가로이 헤엄을 친다. 간만에 재료를 사 온 1인에게 괜스레 미안해서 식탁에 놓으며 한 마디를 꺼낸다. "물이 너무 많네." "배 띄우면 되지." 순간, 웃음이 윤슬처럼 반짝인다. "오늘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겨." 웃지 않는 척하는 희생자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글이 토닥토닥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걸까. 심장이 몰랑몰랑한 밀가루가 된 기분이다. 작은 말에도 금세 반응하여 간지럼을 탄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자신에게 선물하게 되는 순간부터 어른'이라는 문장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나에게 무언가를 선물했던 순간이 언제더라. 좋아하는 장소로 나를 데려가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좋아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주던 기억 말이다. 드문드문 떠오른다.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나에게 잘해주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산책하듯 카페로 가서 커피를 옆에 두고 이어폰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음악 속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처럼.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중일까.태수 작가의 문장들은 자극적이지 않다. 점자처럼 톡톡 심장을 두드린다. 잔잔한 비에 젖어 드는 몸처럼 심장이 조금씩 들썩인다. 미세한 리듬으로 덩달아 울리는 행복이 조용하게 출렁인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님의 깨달음처럼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이 책이 행복을 향해 나를 끌어당긴 걸까.글로 박제되어 있던 행복이 어느 순간 책에서 빠져나와 가만히 자유 낙하를 한다. 나의 마음은 저항 없는 중력으로 담백한 세상을 끌어당긴다. 행복은 잔잔한 마음으로 느끼는 실시간의 감각이다. '쿵 소리를 내는 아찔한 진동'이 아니기에 내가 할 일은 고요한 물리량을 지닌 채 가까이에 머무는 행복을 다만, 깨닫는 것일 뿐. 어쩐지 보드라운 윤슬이 눈앞에서 반짝이는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9/74/cover150/k46213976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97412</link></image></item><item><author>나비종</author><category>독후감</category><title>평범은 힘숨찐 비범이다 -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초판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nabijong/17400275</link><pubDate>Sun, 19 Jul 2026 17: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abijong/174002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5359&TPaperId=174002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85/8/coveroff/k8821353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5359&TPaperId=174002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돌이킬 수 없는 약속 (초판본)</a><br/>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02월<br/></td></tr></table><br/>갈수록 어려워지는 단어가 있다. 치우침 없이 평평하고 널리 두루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글자, '평범(平凡)'이다. 두 글자 합쳐봐야 고작 8획의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 명사는 이토록 단순한데, 삶에서 동사로 구현될라치면 이만큼 까다로운 글자도 드물다. 평범은 선이 아니라 점에 가까운 걸까. 외줄타기 광대가 수시로 잡아야 하는 무게 중심처럼 방심하다가는 순식간에 균형이 깨지니 말이다.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평범한 삶을 꿈꾼다. '많은 욕심 부리지 않아요. 그저 나날이 평범한 일상이면 좋겠어요.' 평범을 꿈꾸는 나 역시 종종 이런 말을 한다. 한데 '평범'을 곱씹을수록 문장 안의 '그저'라는 말이 어색해진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이고 좋은 삶은 유토피아에 가까울 정도로 도달하기 어려운 상태인지 모른다. 섬광인 듯 순식간에 머물다 지나가니,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하리라.야쿠마루 가쿠의 추리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무카이도 평범한 삶을 꿈꾸는 인물이다. 15년 전의 과거를 버리고 진중한 동료와 레스토랑의 공동 경영자로 새출발한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그는 지금 행복하다. 작가는 주인공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평범한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죄를 지은 사람이 평범한 삶을 꿈꾸어도 되는 거냐고.  &nbsp;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보이는 법칙이다. 문제는 이 룰이 종종 깨어진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는 어이없게도 죄와 벌이 비례하지 않는다. 많은 작가가 이러한 불합리함을 소설에 투사한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대가로 19년간 복역했던 상황처럼. 야쿠마루 가쿠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죄와 벌'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소설 속에서는 죄를 지은 인간들이 등장한다. 놈놈놈 시리즈를 보는 듯 나쁜 놈들이다. 뭐 이런 노무시키들을 봤나! 분개하다 보면, 만만치 않은 놈이 또 나온다. 사람 닮은 짐승이라 여겨도 될만하다. 이들을 응징하는 건 정당한 행위일까. 작가는 '올바른 형벌이 내려지지 않는 세상과 사법 현실에 대해' 절망한 인물의 심정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죄를 저질렀지만, 시간이 흘러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용서의 범주에 허용되는 죄의 상한선은 어디까지일까.인간의 본성은 뭐라 정의하면 될까. 성선설에 가까울까, 성악설에 가까울까. 장발장을 보면 성선설이 맞는가 싶다가도, 사회 면을 통해 보도되는 촉법소년들의 죄상을 보면 성악설이 맞는가 싶을 때도 있다. 아니면 선함이나 악함은 '선천성'에 가까울까. MBTI로 구분되는 성격처럼 타고난 기질 중 하나일까. 다만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고 맹자나 순자가 공통적으로 지향한 것처럼, 교육을 통해 선함을 지키거나 악함이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닐까.  &nbsp;  선과 악은 절대적인 가치라 여겨왔다. 착한 건 착한 거고, 나쁜 건 나쁜 거니까. 한데 경험과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갈수록 혼란스러워진다. OX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각보다 많아서 오히려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A에게 나쁜 사람이 B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는다. 부분적인 모습으로 한 사람의 전체를 규정짓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고.드라마 &lt;김부장&gt;의 주인공 김부장은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제목이 주제를 관통한다. 최부장이나 소부장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성을 붙인 데는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바람이 담긴다. 자발적인 평범함이다. 힘숨찐의 능력은 사람이 깔리는 위기의 순간에 마차를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한 장발장처럼,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발휘된다.소설 속 주인공 무카이의 역린은 딸이다. 딸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종횡무진하는 아빠 김부장의 모습에 그가 겹쳐진다. '예전의 나는 단지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 여러 나쁜 짓을 해 왔지만, 지금의 나는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배우 소지섭이 연기하는 김부장은 선한 걸까, 악한 걸까. 그의 손에 쓰러진 이들의 관점에서는 악한일 수도 있으니 애매하다.  &nbsp;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원제는 '서약(誓約)'이다. 일상적인 약속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 말이다. 주인공은 15년 전에 서약에 가까운 약속을 한다. 장발장 역시 미리엘 주교 앞에서 '평생 정직하고 선하게 살겠다'고 서약한다. 이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 반면, 무카이의 서약은 '독자의 목줄을 죄는 장편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주인공의 목줄을 죈다.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로코를 지향하는 드라매니아에게 드라마 &lt;김부장&gt;은 그리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홍보 내용도 아빠의 부성애와 안경 쓴 아저씨들만 잔뜩 나오는 데다 제목까지 평범하니 우연히 1화를 보기 전까지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드라마를 이끄는 건 궁금의 향연이라 했던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그다음 전개가 또 궁금해서, 어제의 나는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까지 하고야 만다. 몰입감에 엄지척한다.근래 접했던 소설 중에 이토록 강한 몰입감을 안겨준 작품이 있던가. 소설계의 &lt;김부장&gt;을 보는 듯 380쪽을 완독하는 데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는다. 주인공의 갈등과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전개에 흡인력이 있다. 외국 작가의 소설이라는 생각을 잊을 정도로 번역 또한 자연스러워서 가독성이 좋다. 엔딩까지도 깔끔한 디저트를 먹은 듯 개운하다. 낭비되는 복선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nbsp;  이름까지 의미를 담아 설정한 점도 좋다. 두 가지가 생각난다.하나, 주인공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이름 'HEATH'이다. 소설 속에서 히스는 '스코틀랜드 황무지에서 군생하는 키 작은 식물'을 의미한다고 언급된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피어나는 식물처럼 강인함을 상징하며 섬광처럼 빛나는 희망을 보여준다.둘, 등장인물의 이름 '고헤이'이다. 고헤이는 한자로 '공평(公平)'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주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미래에 얼마만큼의 빛이 내리쬘지' 초조해했던 주인공 무카이는 고헤이에게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빛은 보이는 거야.'라는 말을 건넨다. 이는 작용과 반작용의 문학 버전이 구현되기라도 하듯 고헤이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로 되돌아온다. '노력하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빛이 보일 거예요.'라고 말이다.책날개와 뒤표지에 소개된 내용만 리뷰 작성에 사용하려고 노력한 나를 스스로 칭찬한다. 잠시 언급한 책 속의 문장도 미스터리의 열쇠가 되지는 않으니 스포 사수에는 성공한 듯하다. 이 글의 빅픽처는 궁금증을 유발하여 책장을 펼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라고. 책을 완독한 다음, 나의 리뷰를 다시 접하면 평범한 느낌이 조금은 특별해질까. &nbsp;&nbsp;  &nbsp;  삶에서 '평범'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빛이다. 장발장의 소망은 그저 전과자라는 낙인 없이 딸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이건만, 김부장의 소망은 그저 간첩이라는 낙인 없이 딸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이건만, 무카이의 소망 역시 그저 사랑하는 가족과의 평범한 삶이건만. 세상은 '그저'를 거저 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우주계에서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도가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된다는 규칙 말이다. 청소하지 않고 가만히 둔 방이 어질러지는 게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내버려둔 방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기현상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거저 얹어지는 질서는 없다. 인간의 의지가 작용해야 한다.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빛이 보인다는 야쿠마루 가쿠 작가의 다독임을 믿는다. 평범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평범의 속성은 '힘숨찐 비범'인지도 모른다. 수시로 삶의 균형을 맞추며 주변과 나를 돌아보고 노력해서 얻어내는 상태이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비범한 고수인가.당신은 지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진정한 고수가 맞다. 다만 여기에서 안주하면 균형은 금세 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역시 평범이라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삶을 똑바로 응시하려 한다. 빛은 보려고 하는 이의 눈에만 스며들어올 수 있으니.<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85/8/cover150/k8821353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850872</link></image></item></channel></rss>